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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별사
정길연 지음 / 파람북 / 2025년 1월
평점 :

안의, 별사
저자 정길연
파람북
2025-01-17
소설 > 역사소설

- 시대를 앞선 사상가의 마지막 순간
- 끝까지 꺾이지 않은 연암의 신념과 기록

성큼 다가온 봄에 잘 어울리는 소설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책은 연암 박지원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려낸 장편소설입니다.
『안의, 별사』는 안의에서 이별하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인간의 고뇌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상가로서의 연암이 아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연암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맡아두었던 물건을 돌려보내오, 밤마다 내 그림자의 좋은 짝이었소. 내 이미 목을 빼고 돌아갈 날 기다린 지 오래고, 아침 일도 저녁이면 하마 옛일이니, 떠나는 이 순간도 내일이면 아마득한 옛날로 여길 것이오, 부디 자중자애하오.
때아닌 진눈깨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후 들어 바로 바뀌었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곡인 양 빗줄기는 가늘고도 검질깁니다. 지난해 7월 중순 이후 여러 달 내리 가물었지요. 섣달 끝ㅈ락에 와서야 홀연히 뿌리기 시작한 비가 곡우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는군요. 빠끔한 날 드물어 꽃도 풀도 나무도 땅속에서부터 감감합니다.
따로 기별은 아니 주시려나 봅니다.
정작 더 난감하고 우스운 일은 홍섬이 돌아간 뒤에 일어났어요. 집안일 하는 아이가 두 다리를 뻗고 대성통곡하였지요. 맹랑하게 울음판 벌이는 고것이 내심 부럽더군요. 제가 해볼 도리라고는 가야금 끌어당겨 가만가만 열두 줄 쓸어나 보는 정도이지요. 상중이라 악기는 그저 나무통에 불과합니다.
나리를 마주 뵌 것이 작년 가을 외할아버지를 여의었을 때가 마지막이었군요. 몸소 상청을 찾아주시니 비통함 속에서도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요.
밤사이, 안인 듯 밖인 듯 경계가 흐릿하여 주저앉았다 일어섰다 오락가락하였지요. 묘연히 발돋움하여 관아 주변을 몇 바퀴째 돌다가, 아직 얼음 빠지지 않은 뒷산 대숲에 들어가 내아 기와지붕을 내려다보았어요. 울컥하여 무어라고 무어라고 혀 밑에 감춰둔 말을 외쳐보는데, 대나무 꼭대기에 매복 중이던 살바람이 되다 만 소리를 채가고 말았답니다. 몽중방황이런가요. 온 마을의 길들을 둥둥 떠서 헤매는 헛것이 진짜 저인 것 같았습니다. 아니, 진짜 저였습니다.
가도 가도 흙먼지와 아지랑이뿐인 요동 벌판을 내 눈으로 보았다. 산해관까지 일천이백 리. 하늘 끝과 땅 끝이 마치 아교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했다. 요동에서 나는 갓 태어난 아이마냥 한바탕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경자更子년(1780) 여름의 일이었다. 조선 땅에 돌아온 뒤부터 조랑말 고삐를 잡고 맬 때마다 매양 감질이 났다. 부리는 말은 노쇠해 눈곱이 꼈고, 나서는 길마다 비좁고 굽었다. 말 잔등에 바짝 엎드린 채 비나 구름 사이를 휙휙 지나치던 경자년의 일이, 혹 장님이 꿈속에서 보았던 헛것만 같았다.
북경을 다녀온 사신이라면 연행기를 쓰는 것이 관행이 된 지 오래다. 김창업이나 홍대용, 박제가 정도를 제외하면 판에 박은 듯 기술하는 내용이 비슷하다. 나는 연경에서 열하로, 다시 연경으로 정신없이 내달리며 보았던 일들을 시시콜콜히 풀어놓았다. 중국의 노래나 풍습도 사실은 나라의 치란에 관련된 것들이니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다. 성곽과 궁실 구조라든지, 농사짓고 목축하는 일과라든지, 도자기 굽는 가마와 쇠 다루는 대장간의 일상도 하찮다 하여 빠트리지 않았다. 그 일체에서 이용후생의 길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용감한 과부는 단순히 개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절개를 인정받기에 부족하다 여겨 마지막 선택을 한다. 왕왕 한낮의 촛불처럼 무의미한 여생을 스스로 끝내버리고 남편을 따라 죽기를 비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여 물에 빠져 죽거나, 불 속에 뛰어들어 죽거나, 약을 먹고 죽거나, 목매달아 죽기를 마치 극락에 들듯이 한다.
명분은 아름다우나, 목숨을 가벼이 다룸이 너무 지나치다. 나라에서도 붉은 정문을 내려 칭송하니, 방방곡곡에서 비바람에 삭아 빠개질 문짝과 꽃 같은 목숨을 맞바꾸는 결단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과부의 죽음을 장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작은아버지 소리 듣게 된 둘째 종간은 한술 더 떠 '골상이 비범하다'고 써놓았더라. 이렇게들 요량이 없어서야.
멀리서 어린놈을 궁금쩍어 하는 할아비를 위해서라도 생김생김을 생긴 대로 구체적으로 일러주면 좀 좋을까.
가령, 이마가 넓다든지, 툭 튀어 나왔다든지, 모가 졌다든지, 정수리가 평평하다든지, 또는 둥글다든지. 천리 밖에 나와 앉아서도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말이다.
미덥지 않음이 다른 데서도 드러난다.
땅덩어리가 참말 둥글다면 이 강물도 공처럼 굴러 굴러 한곳에 가 모이지 않을까요. 엉터리없는 말인 줄 알지만, 그렇게 믿으면 그런 것이지요.
음양의 인연만 인연이겠는지요. 옷깃 스친 인연이 이 강모래처럼 쌓이고 쌓여 저마다 환희와 슬픔과 회한을 빚었겠지요.
그러니 무연재, 인연 없는 집이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아닐는지요.
저 글씨들처럼 이전의 저를 지우려 합니다. 비웠으니, 비었으니, 다시금 새로이 채우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지요.
그리하려고요. 모쪼록 그리하려고요.

연암의 생애를 한 편의 책으로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마냥 순탄치 못했습니다.
가족들을 줄줄이 떠나 보낸 아픔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날카로운 필력과 개혁 정신은 여전히 빛나지만 그의 곁을 둘러싼 현실은 점점 더 차갑게 변해가죠.
백성들의 시름은 깊어져 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조정은 그를 지치게 만듭니다.
벗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조정의 권력 싸움은 변할 것 없이 여전해, 점점 나이 들수록 세상의 변화가 더욱 버겁게만 느껴지게 됩니다.
젊은 날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고자 했던 그였지만 훗날 그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삶과 사상을 되짚습니다.
즉 그의 마지막 여정은 단순한 퇴보가 아닌,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길이었습니다.
문득 연암의 젊은 시절과 노년 시절의 두 모습이 그려집니다.
젊은 시절의 연암은 날카롭고 예리한 인물이었다면, 노년 시절의 연암은 권력과 명예 따위에 지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선 채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였습니다.
여전히 책을 놓치지 않았으며, 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변화를 갈망하며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귀감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연암의 내면에 자리한 깊은 외로움과 삶에 대한 통찰이었습니다.
연암의 우울함은 그의 오랜 지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도 우울함을 떨쳐내보고자 책과 붓을 놓지 못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연암 박지원의 마지막을 기록한 소설은 아닙니다.
당대의 사상가로서 시대를 앞서갔지만 그의 사상과 가치관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니깐요.
그럼에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그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나홀로 그 마지막이 쓸쓸할지언정, 그 과정에서 묻어나는 삶의 무게와 사색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자신이 지켜온 가치와 신념을 되새기는 과정인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그가 글을 통해 시대를 향해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의 고뇌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연암의 삶을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