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저자 고관수

지상의책(갈매나무)

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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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는 몹시 지혜로운 사람에게도 마구 노래하라고, 실없이 웃으라고 부추기고, 춤을 추라며 일으켜 세우기도 하잖아요. 심지어 하지 않아야 더 좋았을 말을 내뱉게도 합니다.

_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자연 상태에서 효모는 당분이 풍부한 과일의 표면에 산다. 포도의 표면을 하얗게 덮고 살아갈 정도로 포도 껍질을 좋아한다. 포도 껍질에는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포도당이 넘쳐나기에 여기에 사는 효모는 대사과정이 복잡하고 많은 효소가 필요한 호흡 대신 빨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발효를 선택한다. 굳이 에너지 효율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효모는 살아가는 데 가장 적절한 방식을 택했고, 인간은(또는 그 맛을 아는 다른 생물은) 효보가 전혀 의도치 않게 내놓는 부산물을 즐기는 셈이다.

_「인류의 진화에는 미생물이 있었다?」



그리고 이 밖에도 여러 가지로 사람의 지혜가 미치는 한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의 가호를 얻으려고 신전에서 조력을 구하거나 예언이나 그와 유사한 것에 의지해도 전혀 영향이 나타나지 않아, 종당에는 병에 쓰러진 자들도 이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_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장내에 침입한 살모넬라균은 장내의 황화합물을 산화시켜 테트라티오네이트(tetrathionate)라는 호흡 전자수용체(electron acceptor)를 합성한다. 이 방법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발효가 아니라 효율이 좋은 세포 호흡으로 생장한다. 그런데 살모넬라가 이용하는 황화합물인 테트라티오네이트는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를 물리치기 위한 인체 면역반응의 부산물이다. 그러니까 살모넬라균은 우리 면역체계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다른 미생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장내에서 폭발적으로 숫자를 늘려간다.

_「최초의 민주주의를 세균이 무너뜨렸다고?」



"널 보러 왔어, 헬렌. 네가 매우 아프다는 소리를 들었다. 너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럼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구나. 아마도 제시간에 딱 맞춰 온 것 같아."

"어디 가는 거야, 헬렌? 집에 가는 거야?"

"응. 오래 지낼 집, 내 마지막 집으로."

"안 돼. 안 돼, 헬렌!" 나는 슬퍼서 말을 멈췄다. 내가 눈물을 삼키려고 애쓰는 동안 헬렌에게 기침 발작이 일어났다.

_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결핵균은 현생 인류의 출현과 함께했으며, 함께 이동해왔다. 물론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하지만 산업화 이전에는 어느 지역에서도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 결핵균은 산업혁명의 세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격한 도시로의 인구 집중, 열악한 노동 환경, 빈약한 위생 시설로 말미암아 인간 스스로 불러온 파괴적인 병원균이다. 결핵균이 인간의 역사를 바꾸었다기보다는 인간이 역사에서 가장 급격하고도 본질적인 변화의 시기 결핵균을 불러냈다.

_「사람마다 시대마다, 결핵은 왜 잠복기가 다를까?」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는

사나흘은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_이문재, <푸른 곰팡이>, 《산책시편》



이제 다시 미래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항생제 내성으로 기존의 항생제가 쓸모없어지는(이미 쓸모없어진 경우도 없지 않다)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메커니즘을 갖는 항생제 개발의 어려움, 비용과 수익성의 문제, 임상시험의 복잡성, 내성 문제 등으로 많은 제약회사가 항생제 개발에서 발을 빼는 실정이다. 어쩌면 우리는 흔한 세균 감염에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포스트 항생제 시대(Post-antibiotic era)’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_「포스트 항생제 시대, 미생물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미생물은 지구에 최초로 나타난 생명체이면서, 외치가 그랬듯 인류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함께해왔다.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지식이 쌓여가면서 단순히 함께해온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건강은 물론 정신세계에까지 몸속 미생물의 영향이 뻗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생물은 부단히 인간을 바꿔왔다. 어쩌면 인간은 미생물에 종속된 존재가 아닐까?

_「미생물 생태계를 보면 인간 특성이 보인다?」



과거 우리는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을 질병을 일으키는 못된 녀석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해로운 세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한 미생물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뿐만 아니라, 해롭다거나 이롭다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미생물을 나눌 수 없으며, 대신 미생물 군집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미국 뉴욕 대학의 마틴 블레이저(Martin Blaser)가 인간 진화의 운명이 우리의 마이크로바이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듯이, 미생물은 과거뿐 아니라 곧 현재가 될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_「미생물은 의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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