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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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에리카 산체스

동녘

2024년 01월 31일

원제 : Crying in the Bathroom: A Memoir

에세이 > 외국 에세이 > 여성 에세이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 있으니 바로 편견입니다.

가난한 멕시코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저자 또한 백인들이 멕시코인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을 피할 순 없었죠.

미디어 속 멕시코 여성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진다고 합니다.

얌전하거나 혹은 문란하거나.



다 괜찮아지겠지


저자는 대학 시절 3년 내내 부모님 집에서 기차로 통학하게 됩니다.

파트타임으로 벌던 임금으로는 기숙사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으니깐요.

그러다 4학년이 되기 전 여름방학 동안 멕시코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는데 대학 마지막 해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년간 만난 남자친구가 갑자기 사랑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더니 한 백인 여자애와 금세 사귄 것이죠.

이를 보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녀는 멕시코 전역을 돌다 어느 해변에서 만난 부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몇 주간을 그렇게 놀다 술을 많이 마셔 췌장염에 걸리게 됩니다.

이제 와서 부모님에게 자신의 행방을 알려야 하나 싶은 고민에 빠졌지만 스물 한 살이나 먹었으니 그해 초 짐을 싸 친구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옛날 사람 그 자체였던 저자의 부모님은 이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채로 집을 나갔으니 노발대발하였고 딸 역할을 거부하고 싶어서 나간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한 달에 200달러를 내며 친구 집의 빈방을 썼지만 워낙 허름하다 보니 부엌의 이미지는 고통과 절망 그 자체였죠.

저자는 이 시기를 애정을 담아 잡년의 해라 부르며 시험 전날에도 파티와 술자리가 있다면 입고 있는 잠옷을 벗어 던지고 나가기 바빴습니다.

그런 그녀가 질염에 걸리게 되는데 병원에서는 단순 질염이라고 했지만 그렇기엔 낫지 않는 병과도 같았습니다.

몇 달 동안 먹었던 약과 치료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녀는 설탕과 탄수화물 과감히 끊게 됩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온 봄, 낫지 않는 질염의 원인이 당뇨병 혹은 HIV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마음 졸이며 HIV 검사를 하게 되고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게 됩니다.


대학의 마지막 해, 보험 중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버티며 궁색한 생활을 지속했지만 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저자는 무엇이든 열심히 해 파이 베타 카파에 선발되었고 대학생 문학상 시 부문에서 수상하게 됩니다.

또한 우수 학생 특별 교육에 참여해 우등생으로 졸업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나, 에리카 산체스는 마드리드로 간다."

늦은 봄 무렵, 아직도 낫지 않은 질염으로 고생중이던 그녀가 인터넷에서 본 방법대로 티트리 오일로 질염을 세척하게 되는데 엄청난 통증에 다시 병원을 찾게 됩니다.

헤르페스라는 진단을 받고 스스로 더럽다고 자책하던 그녀는 의사의 오진임을 알게 되고 한시름 덜게 됩니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만성적인 외음부 통증인 외음부 전정염 진단을 받고 무료 침술원까지 추천받았지만 통증을 막을 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6월 초, 드디어 저자는 졸업하게 됩니다.

몇 주 후면 스페인에 가는 그녀는 어느 날 레게 클럽에 가게 되는데 한 남자를 알게 됩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이민자에 열 살이나 많은 그의 이름은, 압둘.

그녀의 생활 방식을 불쾌해 할 정도로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었는데, 이때 저자가 그에게 탐욕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여름 내내 싸우고 몸을 맞대며 보냈는데, 어느 순간 그에게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결국 드러맞게 됩니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알고 지내던 파키스탄계 미국인 여성과 계약 결혼을 했는데 실수로 상대를 임신시켜 세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무엇보다 아내는 조현병을 앓고 있어 헤어지기 어렵다고.

저자를 음탕한 여자라고 비난하면서 스페인에 가지 말라던 이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니!

그렇게 밤새 울다 다음 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습니다.

그는 절대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 당장 헤어져야 한다고.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지독히 중독되었던 탓인지 그들은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지독히도 그녀를 괴롭혔던 외음부 통증은 온갖 의사를 찾아 돌아다니다 새로운 치료법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바로 물리치료였습니다.

몸이 습관적으로 스트레스를 전부 질에 쌓아두고 있다며 의사는 몇 주 동안 물리치료를 받게 하였는데, 그렇게 길고 긴 시간동안 시달렸던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고뇌와 냉소가 마침내 풀어지기 시작했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나의 질은 공연히 고통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어야 했다.



Ay mija, cómo estás fea


'아이고, 얘는 어찌 이리 못생겼을꼬'

저자의 삼촌은 애정 어린 농담이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는 네 살 때 왜 자신이 못생겼는지 욕실 세면대 위로 올라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쳐다보았습니다.

멕시코 여성들은 대부분 자녀의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의 엄마도 머리 아플 정도로 단단하게 머리를 땋아 주었는데 당시 예쁜 아이의 정의에 대해 그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내린 결론은? 관심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자그마한 백인 여자아이들.

사춘기 때는 그녀에게 특히나 고통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몸의 변화 뿐만 아니라 피부도 말썽이었고 한껏 꾸민다해도 피부색은 바꿀 수 없었으니깐요.

텔레비전에서는 뚱뚱하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마른 몸을 걱정거리로 여기니 이상적인 몸무게는 짐작가질 않았고, 그녀가 열한 살이 되던 때에 샌드위치가 너무 먹고 싶어 사촌에게 가자고 조르니 그녀의 할머니는 식탐이 왜이리도 심하냐며 꾸짖기까지 했었습니다.

모두가 저자의 몸을 실망스러워했습니다.

저자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입술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인터뷰를 하던 중에 사진사가 얼굴을 찍어야 하니 작게 웃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할 정도로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를 그리스, 이탈리아, 중동, 인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모든 지역 출신으로 착각합니다.

큰 코와 입술을 보고 백인으로 착각하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하게 그녀의 출신을 추측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밝은 갈색 피부와 비교적 날씬하고 장애 없는 몸을 지녀 다양한 공간에 어울려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음에 만족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다른 유색인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 그 자리에 있냐고 추궁당하거나 내 몸 자체로 사람들이 겁을 먹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서른일곱이 된 그녀는 밝은 갈색 피부와 작은 체구, 비대칭적인 가슴, 두꺼운 허벅지, 풍만한 엉덩이를 가진 제 몸을 매우 사랑한다고 합니다.

주체적인 힘을 갖고 있으며 마침내 자신의 몸과 성적 매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어서 더이상 부끄럽지 않다고 합니다.

남들 시선이 무슨 소용일까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인걸요.





살면서 에리카는 무시와 폄하는 물론 위협까지 당하며 생존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힘을 얻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곧 생존이었고 그 삶 속에 회복과 재탄생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2045년 이후 백인 비율이 50% 이하란 전망을 내보이고 있을 정도로 인종 구성의 과도기에 놓여져 있는데 다양한 인종이 미국 전역에 머물고 있지만 인종차별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죠.

더하면 더했지 덜한 수준은 아니니깐.

대선에 다시 도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Make America Great Again!

현재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도 승리한 그는공화당 대선 후보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중 지지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민자들을 강력하게 제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민자들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고도 발언한 그는 미국인을 더 챙기겠다고 강력하게 피력중이죠.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비난했지만 그간 보여준 미적지근한 행태에 일종의 지루함을 느낀 일부 자국민들은 트럼프에게 돌아서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이렇듯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보니 유년기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더 체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삶의 본보기가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죠.

가족이 있다 해도 어린 아이에게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키워지는 자존감이 제각각이니깐요.

특히 제한적인 기대를 갖도록 키워지게 되면 결국 커서도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다 보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더 복잡한 고통을 느끼고, 더 쉽게 망가진다.



이미 어른이 되어 이 문제에 대해 자각했다면 스스로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근래 준비하는 것 때문에 너무 바빠 매일매일 업로드하지 못하지만 미라클 모닝을 실천중인데 그 시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명언들 위주로 필사하고 있어요.

분야 가리지 않고 다 읽긴 하지만, 제가 읽는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저것 다 읽는 건 아니에요.

에세이를 읽어도 '배움'이 있는 에세이 위주로 읽고 있고 다 비슷비슷한 얘기만 있어 기피한다는 자기계발서도 나름 선별하며 꾸준히 읽고 있죠.

저도 쓰고 읽는 것만으로 원동력을 얻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저자의 이야기가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저자도 저자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지금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작가이자 미국에서 가장 핫한 에세이스트 중 한 명이 되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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