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합본 한정판)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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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저자, 이민진은 전 세계에서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이다.

경계인으로서의 날카로운 시선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으로 복잡다단한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포착하며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찬사 속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예일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후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했으나, 건강 문제로 그만두게 되면서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2004년부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8년 미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으로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두 번째 장편소설 《파친코》는 작가가 역사학과 학생이었던 1989년에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후 2017년 출간되기까지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집필한 대작이다.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과 함께 4년간 일본에 머물며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와 취재 끝에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4대에 걸친 가족사를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일본 버블경제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다룬 이 책은 출간 즉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아마존, BBC 등 75개가 넘는 주요 매체에서 앞다투어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고,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33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파친코》는 계속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이민진 작가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의 완결작이 될 세 번째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영도라는 어촌에서 나고 자란 늙은 어부와 아내에게는 아들 훈이가 있다. 아들을 셋이나 낳았지만 몸이 약한 큰아들 훈이만 살아남았다.

이후 성인이 된 훈이는 양진과 혼인한 뒤 딸 선자를 낳게 된다.

세상에서 훈이만큼 딸을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도 드물었다. 훈이는 자식을 웃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토록 선자를 예뻐하던 훈이가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겨울에 결핵으로 죽게 된다.

듬직한 남편이자 아버지를 잃은 양진과 선자는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그러나 슬픔은 잠시 가슴에 묻어두고 다음 날 아침 젊은 과부가 된 양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오빠 아이를 가졌어예."

"확실해?"

"예, 그런 거 같아예."


"선자야……"

"아내와 세 아이가 있어. 오사카에."

"내가 널 잘 돌봐줄게. 하지만 너랑 혼인할 수는 없어. 이미 일본에서 혼인신고를 했어. 일이랑 얽혀 있는 문제가 있어."


그렇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저런 사람이 미혼일 리가 없잖아.

한수가 바닷가에서 제 몸을 원했을 때 마음대로 탐하게 내버려 두었으니, 혼인 없이 아이만 낳게 되면 자신은 평생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다.

숲속 흙바닥에서 남자와 몸을 섞었으니 난잡한 저 때문에 어머니의 평판도 떨어질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아버지, 뱃속에 있는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 같은 진짜 아버지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선자는 고민 끝에 단호하게 한수와 갈라지게 된다.


어느 날, 목사 이삭이 양진에게 물었다.

선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오사카로 데려가면 안 되겠냐고.

자신이 몸이 아파 결혼을 안 했던 것이지만 결혼하게 되면 선자는 물론이고 선자의 아이 또한 사랑으로 품을 것이라고.

양진은 이삭의 계획을 선자에게 말했고 선자는 그 사람의 아내가 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삭과 혼인하게 되면 하숙집, 어머니, 선자 본인 그리고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낙인만큼은 주어지지 않을 테니깐.

오히려 좋은 집안의 훌륭한 사람의 성을 아이에게 물려주게 될 테니깐.

그렇게 선자는 이삭을 따라 오사카로 향하게 된다.




💭

대부분 파친코를 드라마로 먼저 접했을 것이다.

나는 책을 보고 이후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만약 책도 드라마도 보지 않았다면 책으로 꼭! 먼저 보길 추천한다.

읽는 내내 괜스레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도 없지않아 있었는데 특히 선자와 한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도 참 안쓰러웠다.


"야쿠자는 일본에서 제일 더러운 사람들이에요. 폭력배들이에요. 상습범들이라고요. 가게 주인들을 협박해요. 마약을 팔아요. 윤락가를 지배해요. 무고한 사람들을 해쳐요. 최악의 조선인들이 모두 이런 폭력단 일원이라고요. 내가 야쿠자에게 돈을 받아 공부했는데 이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난 절대로 이 더러움을 씻어내지 못할 거예요. 엄마가 이렇게나 어리석다니."

"어떻게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것을 만들 수 있겠어요? 엄마가 날 더럽혔어요."

"난 평생 일본인들한테 내가 조선인 핏줄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조선인들이 화가 많고 폭력적이고 교활하고 속임수를 쓰는 범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요. 평생 이런 소리를 견뎌야 했어요. 난 백이삭처럼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절대 목청을 높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 핏줄은, 내 핏줄은 조선인 핏줄이에요. 게다가 이제는 내가 야쿠자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하든 절대 이 피는 바꿀 수 없어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어요. 어떻게 내 삶을 망칠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리 경솔할 수가 있죠? 어리석은 엄마와 범죄자 아버지라니. 난 저주받았어요."


파친코는 일본인들에게 국민 도박 기계로 불린다. 즉, 도박이 아닌 놀이로 분류되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선인들이 일본에 정착해 정식 직업을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보니 입에 풀칠이라도 했기에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파친코는 야쿠자가 운영한다는 인식이 강해 파친코 사업을 천시하는 일로 치부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떠났지만 재일교포로서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다.


요새 뉴스 보는 것이 참 불편하기만 하다.

국방부에서 장병들의 정신교육 책자인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사과하며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지만 보고도 믿기질 않아서 순간 국방부의 고위급들이 친일파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문득 국가유공자 한 분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잊혀지지만 않으면 된다. 이름 석 자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그저 잊혀지지 않게 기억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가 이따금씩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들과 함께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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