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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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반복이 가득한, 마침표가 눈에 띄지 않는, 쉼표가 가득한 그의 문체는 참 단순하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욘 포세.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저자, 욘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 헤우게순 출생으로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극작가로,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3년 프랑스에서 국가공로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007년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100명의 살아 있는 천재들 리스트 83위에 올랐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소설뿐만 아니라 시, 아동서,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방면의 작품을 쓰고 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연극은 전 세계에서 수천 번 이상 공연되는 국제적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뉘노르스크 문학상, 도블로우그상,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명예상, 브라게상 명예상, 국제 입센상, 스위스 아카데미 북유럽문학상, 유럽연합 문학상,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공로 훈장에 이어 노르웨이 국왕이 내리는 세인트 올라브 노르웨이 훈장을 수훈했다.

그의 작품이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가족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 같은 우리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들이다. 세대 간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말로는 결코 종합적으로 고찰될 수 없는 것, 즉 죄와 실망의 원천 문제를 다룬다. 그의 작품에는 일견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삶의 그림들이 단순한 구조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에는 많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며, 항상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이, 남자(남편), 여자(아내), 소년, 소녀. 여기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할머니, 그리고 때때로 이웃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으며 특별한 고유의 성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항상 단순한, 일반적인 사람들이며, 그들의 관계는 한눈에 파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평범함과 보편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경건하게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고 그 관계가 또한 철저하게 관찰되고 파악될 수 있어서 보편성의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만큼 포세가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현실은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현실의 단면은 굵은 윤곽으로 이루어진 담담한 그림으로 그려지나 그 사이의 여백에는 인간의 삶이 가진 구체적인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대인이 만들어내는 의사소통 부재의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며 인간 의식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원형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포세의 언어는 배우와 연출자에게 커다란 도전이 된다. 그의 언어는 철저하게 압축되고 축약된 형태로, 문장의 조각들,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완벽하게 구두법 없이 쓰인 그의 텍스트는 해석과 리듬의 모든 힘을 배우와 연출자의 손에 넘겨준다. 포세는 삶의 본질적인 것이 파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필요한 소리들을 제거한다. 그의 언어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말의 고유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모노톤의 문장들, 부분적으로는 스타카토처럼 던져지는 문장들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구조들, 인간의 내적인 심리 구조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 응축된 형태로 노출된다. 여기에 포세는 침묵의 순간들을 적절히 이용한다. 인물들의 대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반복 사용되는 ‘사이’의 침묵, 이 행간을 인물들의 말 없는 진실이 넘나든다. 소리와 소리 없음의 독특한 리듬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통해 포세는 인간의 삶이 가진 진정성은 무엇인지 묻는다.




더운물 더요 올라이, 늙은 산파 안나가 말한다

거기 부엌문 앞에서 서성대지 말고 이 사람아, 그녀가 말한다

네네, 올라이가 말한다


아마도 그건 신의 영혼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에 내재해 무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의미와 색을 부여하는, 그리고 그것이, 올라이는 생각한다, 모든 것에 신의 말씀과 영혼이 내재하는 이유다, 그래, 그렇지, 그러나 사탄의 의지 역시 작동한다는 것, 그 역시 확신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센지, 그것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일이라고 올라이는 생각한다, 그 둘은 누가 더 강한지 겨루고 있으니까, 아마 태초부터 그랬을거야, 올라이는 생각한다, 신은 세상을 훌륭하게 창조했으며 전지전능하다고, 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항상 말하지만, 그는 그렇게 굳게 믿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신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신은 존재한다,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을 뿐, 신은 모든 사람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어린 요한네스는 큰 소리로 울고 또 울며 세상 밖으로 울려퍼지는 제 목소리를 듣는다, 울음소리는 아이가 새로이 속한, 세상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따뜻하고 검고 조금 붉고 조금 축축하고 온전한 것은 더이상 없다, 이제 저 자신의 움직임뿐이다, 모든 것을, 존재하는 모든 것을 메우려는 듯한, 무엇인가, 그리고 아이와 아이의 목소리는 분리되어 있는 동시에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거기에는 뭔가 다른 것이 더 있는데, 뭔가, 그의 일부이면서 아니기도 한 무엇이, 아이의 목소리는 저 밖의 모든 것을 갈라놓고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더 커지고 커진다 그리고 다 잘될 거야, 올라이가 말한다



어부 올라이와 마르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요한네스.

올라이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그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다.

아침마다 커피 주전자를 올려놓고 먹을 것을 생각해보고 서쪽 만으로 산책을 나갈 지, 날씨가 좋다면 배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을지 등의 생각을 반복한다.

지루하지만 불평할 것도 없다.

몸 누울 집도 있고 자식들은 벌써 장성해서 손주까지 있는데다 막내 싱네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 거의 매일같이 그를 보러 오니깐.

그 날은 몸이 참 가벼워 희한하기만 하다.

매일같이 아프던 뼈마디가 하나도 안 아파 희한하기만 하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데,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들도 모든 것이 금빛으로 반짝거리니 희한하기만 하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만으로 내려가는데, 해변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페테르였다.



페테르 자네 오랜만이네,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가 돌아서서 요한네스에게 눈을 껌벅해 보인다

그럴 줄 알았지, 자네가 올 줄, 알았어, 페테르가 말한다

자네 게망을 보러 가려는 거로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래야지, 페테르가 말한다

……

그러니까 어제, 자네가 옆에 있어야 했는데 말이야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자네가 옆에 있어야 했는데, 그가 말한다


이상하다, 페테르는 이미 죽었는데 요한네스 눈앞에 있다는 것이.

요한네스는 오래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페테르가 눈앞에서 고깃배를 끌어당기고 있으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금 죽어 있는건지 살아 있는건지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눈앞에서 이리도 멀쩡하게 있으니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페테르의 머리를 반드시 잘라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요한네스는 페테르의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곤 눈앞에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싱네를 발견하게 된다.

저를 보러 오는 싱네가 반갑기만 한데 싱네는 요한네스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버린다.

싱네 또한 이상했다. 일 때문에 빨리 오지 못해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는데도 아버지 요한네스가 도무지 받질 않았다.

평소처럼 산책하지도 않으셨고 무엇보다 해질녘까지 불 한 번 켜지 않았다면 혼자 임종을 맞으신 건 아닌지.

그렇게 성큼성큼 올라가고 있는 길에 형언할 수 없는 어떤 물체가 그녀에게 마주 오는 것을 느꼈고 그 중심을 통과하는 순간 너무나 차가웠다.



지금 서쪽 만으로 가는 건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그래, 페테르가 말한다

거기서 뭘 하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이제 떠나는 거야, 자네와 내가, 페테르가 말한다

그렇군, 요한네스가 말한다

내 고깃배를 타고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지, 페테르가 말한다

그래 자네가 알아서 하게 페테르, 요한네스가 말한다


그래 이제 길에 접어들었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는 독특한 분이었죠, 유별난 구석이 있었지만,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

아내가 죽고나니 집안이 조용하다.

썰렁한 집안, 요한네스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귀찮기만 하다.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 걷던 중 해변에 서 있는 페테르를 보게 된다.

페테르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깨닫게 된다.

페테르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탄생부터 죽음까지, 요한네스의 일생을 한 권에 담아낸 이 책은 마침표가 없다.

쉼표만이 가득할 뿐인데, 이는 삶과 죽음은 곧 연결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표현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백세인생이라고 하지만 누구는 얼마나 더 짧게 혹은 길게 살지, 누구는 얼마나 더 빠르게 혹은 늦게 죽을 지는 알 수가 없다.

결국 삶과 죽음의 과정도 연결 지어진 '하나의 과정'이기에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


어제 오후에 올리려고 했는데 급 컨디션이 안 좋아지더니 비오는 오늘 하루종일 아팠었다.

잠시 닫아놓았던 노트북 켜서 얼른 올려보는데… 책장 앞에 높이 쌓여있는 책탑에 눈길이 멈춘다.

책은 참 많이 읽고 있는데, 쓰는 게 따라가지를 못 한다. 잠시 멈추었던 글도 내년에는 연재 시작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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