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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사라지는 순간 - 프로와 아마의 차이 ㅣ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 책과 마주하다』
로마제국이 천 년 이상 서양 고대사를 독점했지만 오도아케르가 누구인지, 로마는 어떻게 망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어떤 인물들이 등장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된 책이 없어서 항상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해 줄 책이 나타났으니, 바로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사라지는 순간』이다.
참고로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시리즈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을, 그 사람의 일생이 아닌 역사에 등장했던 순간 그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 최봉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김영사 편집장, 중앙M&B 전략기획실장, 랜덤하우스중앙 COO를 거쳐 웅진씽크빅,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프린스턴리뷰 아시아 총괄대표를 지낸 후 현재는 기업, 단체의 자문과 집필을 하고 있다.
Ⅰ 훈족의 영웅, 아틸라
혹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본 적이 있는가?
자연사 박물관 야간 경비원을 맡게 된 래리는 첫 날 밤 밀랍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는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 중 한 무리들이 래리를 향해 달려가는데 그들이 바로 훈족이며 그 중 대장이 바로 아틸라다.
흉노족이 무제의 정벌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여 유목 생활을 하다 헝가리를 통해 유럽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유럽인들은 이들을 훈족이라 불렀다.
북쪽에서 남하하던 '야만스러운' 게르만족은 '문명스러운' 로마와 국경에서 잦은 충돌을 하면서 순화되고 또 일부 편입되고 있었는데 '더 야만스러운' 훈족이 동에서 서로 게르만족을 압박하며 들어온 것이었다.
로마국경에서 자리를 펴던 게르만족은 뒤에서,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훈족에게 떠밀려 다시 대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유럽 대륙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훈족은 영웅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친형을 암살하고 훈족 11대 왕에 오르게 된 아틸라다.
이전 훈족 왕과는 달리 헝가리 일대에 흩어져 살며 고트족을 압박하고 동로마를 위협하며 금을 뜯는 데 그치지 않고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과 로마로 직접 쳐들어가기에 이르렀다.
훈족 왕으로서 서유럽 정복 활동을 펼친 것이 8년에 불과하니 서양인들에게 훈족의 아틸라는 '잔인한 파괴자'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동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어린 나이에 집권을 하게 된다.
7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아들이 걱정되었던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앙숙 페르시아 황제에게 아들의 후견인을 부탁하게 된다.
위험하고도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이는 제대로 수용되었고 실제 재임 기간 동안 페르시아 황제는 동로마 침공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집권 말기에 환관 크리사피우스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페르시아 황제와 맺었던 커넥션도 깨지고 서로마를 지원해주겠다고 부대를 파견했다 참패를 당하고 만다.
이 때, 아틸라의 형 블레다가 이끌었던 훈족이 치고 들어와 많은 공납금을 요구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섭정에 익숙했던 황제는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훈족의 공납금 요구 또한 감당하기 힘들다보니 크리사피우스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항상 해오던 방식대로,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으로 사고하여 결론을 얻는다. 새로운 도전에 맞부딪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심지어 자신의 판단히 현실에서 엇박자를 낼 때도 곧, 다시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현실을 왜곡하여 해석한다.
이렇게 생각했던 크리사피우스였지만, 아틸라는 달랐다.
아틸라는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를 떠나 세르비아, 불가리아를 거쳐 동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로 향하게 된다.
이 때, 내부 단속을 외부 전쟁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 코앞까지 다가온 아틸라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성벽을 앞에 둔 채 인근 도시들을 휩쓸어 나갔다.
성벽에 갇혔던 황제와 신하들은 가타부타 할 새도 없이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치욕적인 조약을 맺는 것으로 전쟁을 마무리맺을 수 있었다.
유럽 전역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민족에 의해 로마제국이 무너질 수 있음을 직면했으며 단순히 황금만 뜯는 것이 아닌 제국 전체를 삼켜버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백척간두 진일보, 백 척이나 되는 긴 장대 위에 서서 허공을 향해 한 발을 더 내딛기는 쉽지 않다. 백 척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상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허공을 향해 한 발 내디딘다. 그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시공간이 바뀌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지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한 발 더 내딛지 않으면 끝내 모를 차원이다.
Ⅱ 비겁한 시간의 권력자, 오도아케르
천년 제국 서로마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이다.
게르만족 출신의 서로마 장군인 리키메르는 아리우스파라는 이유로 황제에 오를 수 없자 실권을 장악해 무려 17년 동안 꼭두각시 황제를 내세워 권력을 잡았던 인물이다.
그가 폐위시킨 황제만 해도 4명이다.
아비투스는 루비콘강을 건너 황제에 올랐지만 리키메르 반란군과 전투에 패하여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리키메르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던 마요리아누스는 반달족 정복에 실패하고 귀국하던 길에 리키메르의 기습을 받아 살해당하게 된다.
세베루스도 리키메르의 의해 독살당했고 안테미우스는 새 황제를 옹립한 리키메르의 공격을 받아 거지로 분장해 성당에 숨어들어갔지만 결국 참수당하고 만다.
각 황제들의 재임기간은 이렇다. 아비투스는 1년 3개월, 마요리아누스는 4년 4개월, 세베루스는 3년 9개월 그리고 안테미우스는 5년 3개월.
황제도 아닌 실권자에 의해 네 명의 황제가 살해당하고 폐위당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즉, 그는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권력만이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리키메르는 안테미우스를 참수한 지 40일 만에 급사했다고 하는데 자연사한 것인지 독살당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리키메르가 죽고난 뒤, 권력을 잡은 이는 오레스테스였다.
오레스테스는 아틸라에게 자신의 딸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했던 인물로, 로마 약탈자의 장인이자 심복이었다.
리키메르가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면 오레스테스는 잔머리 하나로만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셈이다.
황제의 자리는 아니었다. 황제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만 어린 아들을 황제로 대신 내세웠는데, 그가 바로 서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다.
그러나 권력을 쥐었어도 내리막길 걷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오레스테스가 잔머리를 굴렸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쿠데타가 일어났고 오레스테스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다.
당시 게르만족 용병 국경 수비대 지휘관들이 추대했던 인물이 바로 오도아케르 장군이었다.
무혈 입성에 성공한 오도아케르 장군이었지만 로마인이 아니었기에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순 없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살해하고 다른 이를 올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로물루스가 스스로 퇴위하도록 조건을 제시했고 어린 로물루스는 스스로 황제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도 못한다면 황제를 새로 옹립해야 하는데, 오도아케르는 이를 공석으로 만들어버렸다.
즉, 서로마 제국에 황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때 오도아케르는 동로마 황제인 제노에게 자신의 실권 승인을 요청하게 되고 제노는 그에게 총독에 해당하는 호칭을 하사하며 이탈리아 국왕으로 임명하게 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적당한 지위였다.
결과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사라졌으니 서로마 제국의 문패 또한 사라진 셈이 되어버렸다.
당시 오도아케르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제국은 이렇게 멸망했다. 야만족이라도 쳐들어와서 치열한 공방전이라도 벌인 끝에 장렬하게 무너진 게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없고, 처절한 아비규환도 없고, 그래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_시오노 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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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책을 읽기 전, 세계사 공부했던 기억을 되살려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 생각해 보니 〈… 로물루스가 폐위되자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가 떠올랐었다.
떠올렸던 게 딱 그뿐이었는데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충분했다.
역사적인 흐름이 아닌 인물을 중점적으로 두며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당시 사정을 세세하게 알 수 있어 더 깊게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인문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100페이지 내외의 분량으로 만들어진 미니북 형식으로 되어있어 내용이 길지 않다.
길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다 보면 선택에 따라 미래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데, 이러한 선택을 했던 인물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결국은 과한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게 대부분이었다.
물욕이든, 권력욕이든 적당한 욕심은 나 자신을 이끌어주는 동기부여의 역할도 하지만 선을 넘어버리게 되면 상황 판단이 흐려져 결국 나 자신도 잃어버리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한나라도, 서로마 제국도 몇몇 인물들의 과학 욕심으로 인한 선택 때문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나라의 운명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