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 혼란의 시대를 돌파해 현대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11인의 위대한 생각들
송경모 지음 / 트로이목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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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를 위해 공부하고 연구해온 11명의 사상가와 기업가의 생애와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통 인문교양서이다.

특히 현대 사회와 경제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생각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조망하고 있다.


저자, 송경모는 1964년에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교에서는 조지프 A. 슘페터와 기술 혁신과 진화의 경제사상을 전공했다. 학교를 떠난 뒤 오랜 기간 증권 신용평가와 가치평가, 그리고 증권시장 자문과 중개업에 몸담았다.

지금은 경제학 & 경영전략 연구개발과 컨설팅업을 영위하는 미라위즈의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의 겸임교수로서 경영, 경제, 재무, 인문학 간 융합 지식을 개척하고 교육하는 중이다.

유교 전통이 깊은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한문과 서화의 세계 속에서 자라 자칫 고전과 예술, 전통사상의 세계에 갇힌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수십 년간 현대 학문의 다채로운 사고법과 변화하는 현실의 다양성을 배우고 겪으면서, 동서고금 모든 지식의 무상함을 체험하는 동시에 그 극복법을 성찰하는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 - 개인


언제부턴가 개인의 소중함이 인식되는 순간이 있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피통치자들은 무조건 복종하는 시대였기에, 모든 이에게 자유와 평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통해 개인의 존귀함이 구현되기 시작했고 사법 체계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 시대를, 우리는 근대로 부르고 있다.

궁금증이 생긴다. 근대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각종 이야기에 대한 출판물 보급과 문해력 향상이 그 시작일까?

국민국가의 등장이 그 시작일가?

중요한 것은 근대가 탄생할 수 있도록 수많은 사상가들이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18세기, 북유럽의 아테네로 불리던 스코틀랜드는 문화, 예술, 사상이 융성했던 지역으로 그 중 에든버러가 매우 돋보였었다.

에든버러는 17세기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의 집결지로 그 중심에 에든버러대학이 있었다.

당시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은 직접 교수직을 맡지 않았어도 현직 교수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14살에 글래스고대학에 입학하여 프랜시스 허치슨 교수 문하에서 도덕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28살이 되던 해 모교에서 도덕철학 과목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러다 1763년 글래스고대학을 떠나 버클루 공작의 가정교사가 되어 교수 시절보다 안정적인 보수를 받으며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잉글랜드와 대륙 각지를 여행하며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지식과 사상을 넓혔고 이 시기의 경험과 사색이 그의 국부론에 많은 영향을 끼쳤었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시장 만능주의 또는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할 때면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를 꼭 언급하지만 간혹 개인의 탐욕을 예찬했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사회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시작된 종교 개혁이 지식 사회에 끼친 영향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200여 년 먼저 태어났던 존 녹스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로 프랑스에서 장 칼뱅에게 배움을 받고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존 녹스가 창시한 프로테스탄트 장로교단 내에서 중도파 목사들은 동일한 기독교 전통에 속해 있어도 세속화와 문명화의 가치를 수용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태도가 특이할 수밖에 없는 게 고전적인 기독교의 교리에서 피조물인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금욕, 절제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과 가치들을 수용하다니! 이는 전통 기독교 교리 관점에서는 어쩌면 이단에 가까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중도파 목사들은 계몽주의 철학과 발전된 과학 지식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18세기에 이르러 대다수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 진보적 세계관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를 두가지로 특정 짓자면 앞서 말했던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과 세계관의 변화가 첫번째 현상이다.

두번째 현상은 무엇일까? 바로 상업의 융성이다.

물론 고대나 중세에도 상업은 있었지만 사회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었고 상인은 둘째치고 상거래에 꼭 수반되는 대부업자들의 활동은 사회적으로 경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제와 군주들은 상인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야만 했고 돈이 필요했기에 대부업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십자군전쟁을 통해 상인들의 군수물자 교역이 급증하면서 근대 상업 사회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상업 사회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 society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상업의 융성에 따른 개인의 발흥은 보았어도 기계 발전과 대기업 조직의 등장이 몰고 온 미래는 볼 수 없었다.

그가 경험한 경제는 기본적인 도구 혹은 인력에 의존한 원시적 기계가 투입된 곡물 경제나 장인 경제였기에, 이 점을 꼭 알고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생각 - 국가


중세, 로마 가톨릭 전통 사회에서 게르만 야만족으로 분류되었을 정도로 낙후되었었고 대항해 시대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이 바다로 향했을 때도 소극적이었고 영구처럼 근대 산업혁명의 최초 본원지가 되지도 못했었던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그러나 1440년경 마인츠에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소가 개업하였고 1517년 교회 벽에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던 사건만으로도 미국과 영국에 비해 뒤쳐져 있던 모든 역사를 만회하고도 제칠 수 있을 정도로 인류사에 큰 영향을 끼쳤었다.

그래서인지 독일은 서구 역사에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확연히 구분되었었다.

그뿐만인가.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베토벤, 괴테, 칸트, 헤겔을 배출해 클래식 음악과 낭만주의 문학, 이상주의 철학을 주도하였었다.

20세기에 히틀러의 등장으로 인류사에 죄악 국가라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1991년 통독 이후 1993년 유럽연합 창설 전후,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에도 독일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항상 굳건하기만 했다.

즉, 튼튼하고 단단하다라는 이미지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독일은 개인보다 국가를 중시하는 사상이 강세를 보였는데, 우리가 이에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프리드리히 리스트이다.

애덤 스미스가 국가의 부와 번영을 이루기 위해 개인의 자유와 능력이 중요하다고 보았다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국가 시스템이 한 나라의 번영을 달성하는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가죽 염색업을 영위한 아버지는 리스트가 자신의 가업을 승계해주기를 바랐지만 어린 리스트는 아버지의 뜻과 달리 관청에 회계원으로 취업하게 되고 이후 1817년에 튀빙겐대학의 행정학 교수로 취임하게 된다.

1820년에는 뷔르템베르크주 주의원으로 선출되어 기존 사법 및 행정 제도를 세게 비판했다가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살이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를 피해 해외로 도피했지만 결국 체포당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선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펜실베니아 지역에 정착한 그는 농장 경영, 신문사 운영, 탄광 개발 등에 참여하며 미국의 다양한 기업가와 지식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때 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눈을 갖게 된다.

그러나 말년에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인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훗날 리스트의 저서들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정치경제학의 국가 시스템」은 그의 사상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다.


리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Nation은 특정 권력 기구와 정치 체제에 속한 사람들의 집단, 영토의 구획, 혈통의 계보를 넘어 그 안에서 공유하는 관습, 도덕, 규범, 지식 수준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담이지만, nation의 뜻이 이렇다보니 어떤 한국어를 쓰더라도 이 의미를 근사하게 반영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독일 역사주의 학파에 속했던 리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 역사주의의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역사주의는 분석하고자 하는 사회가 처한 역사적/사회적 특수성에 바탕을 두고 분석해야 하며, 이 특수성을 무시한 보편적 원리만으로 탐구해서는 결코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역사철학과는 전혀 성격이 다름을 의미한다.

독일 역사주의는 세상의 전개를 일방향으로 보지도 않았고 종말론에 강박당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육한 특질과 역사 속 특수한 경험들을 이해해 교훈을 도출시키는 것이 올바른 역사 연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독일 역사주의가 보편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와 사회의 특수성, 개별성에 초점을 두었다.

리스트는 개인이 진정한 개인으로 성립하기 위해 개인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 안에 적절한 조건들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이 조건들을 무시하고 국가의 부가 자유로운 개인들로부터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묘사했으니 리스트는 자연스레 그의 주장을 문제삼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우수한 잠재력을 지닌 개인이라도 국가라는 최고의 통일 형태가 뒷받침되어 주지 못한다면 개인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예컨대 미국 역시 개인들의 노력만을로 국가의 융성을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와 정부의 현명한 개입 덕분에 국가의 융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작성하고 싶지 않았다. 문체의 아름다움은 민족 경제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경제학 저서에서는 장점이 아닐 뿐 아니라 결함인데, 불건전하거나 약한 논리를 덮고 궤변적 논변을 근원적이고 생각이 깊은 곳으로 통하게 하는 데 오용되는 일이 드물지 않은 것이다. (중략) 예리한 감각이 있어 보이는 연역, 과장된 문구들, 그리고 꾸민 말투를 쓰는 사람들은 오직 사물의 본성을 근원적으로 들여다볼 예리한 감각이 결여된 자들, 스스로 명확하지가 않아서 남에게도 명확히 전해줄 도리가 없는 자들뿐이다."




최근 읽었던 책들만 봐도 주요 인물들이 자연스레 겹쳐 책 읽는 내내 지식의 폭이 확장되고 있음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경영/경제서 혹은 인문서를 놓치지 않고 본다면 아마 책에 나온 인물들의 절반 이상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계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만 모아놨기에 추천하고 싶다!


항상 연말이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올해는 그 계획을 1월 1일에 세웠었다.

올해 독서 계획은 '선명하게 남을 수 있도록'이라는 작은 목표를 세워 좀 더 체계적으로 읽고자 계획을 세웠는데 새해 첫 달부터 바쁘게 일하느라 서재에 앉을 시간이 없었다.

서재에 앉지를 못해 기록에 남길 수만 없었던 것이지, 여느 때처럼 1월달도 빽빽하게 독서는 했으니 올리고 싶은 책들은 매우 많다.

이제야 마음 편히 서재에 앉아 보니 벌써 2월도 사나흘밖에 남질 않았다.

하아, 서평 방식을 바꿀까 고민중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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