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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부 - 느끼고 깨닫고 경험하며 얻어낸 진한 삶의 가치들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2년 8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저자가 오랜 기간 동안 서울 구치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사형수들을 상담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암을 통해 죽음과 마주하게 되면서 지난 시절 동안 느꼈던 삶의 가치와 삶의 자세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자신을 진정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저자, 양순자는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해왔다. 영암군청 사회복지과 상담실장으로 일했으며, 법무부 교정대상(박애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군부대 강사 활동을 하면서 양순자심리상담소를 운영했다.
‘남을 돕는 일에는 계산하지 말고, 누군가 넘어지면 빨리 일으켜줘야 한다’가 신조인 그녀는 누군가가 SOS를 치면 언제든 달려가는 열혈 상담가였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탔을 때 그녀 옆자리에 앉기만 해도 그녀의 긍정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그래서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사는 게 우울하거나 위로받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그녀를 떠올 린다. 그녀는 2010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지만 두 번의 수술 후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암세포와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2014년 7월, 향년 73세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Ⅰ 어른으로 살아보기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한참은 힘들 겁니다."
의사가 조심스레 저자에게 말을 꺼냈다.
피할 수 없는,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말이었다.
저자는 이미 암을 받아들인 상태였기에 수술을 하지 않고 안에 있는 암과 함께 가겠다고, 그렇게 담담하게 의사에게 말했다.
30여 년 동안 집행장으로 향하는 사형수들을 본 저자는 그들을 이렇게 기억했다.
죽을 때조차도 마음 편히 가지 못하고 말이 많았다고.
지금은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나 또한 알지 못했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렇다.
사형수들은 집행날을 알지 못해 갑자기 문을 열고 여러 사람이 들이닥치면 그 때 짐작했다고 한다.
담담하게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물을 쏟고 일어서지 못하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열심히 산 사람은 죽음에 의연할 뿐만 아니라 이별도 잘한다고.
뒤돌아보고 멈칫거리는 것은 결국 최선을 다하지 못해 미련이 남아서라고.
저자인 양순자 선생님은 암과 함께 사셨고 2014년 7월 세상과 작별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대로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산다면 분명 이별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별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불량품이라고 하셨으니깐.
30여 년 전,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했던 서대문 형무소.
봉사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며 종교단체를 통해서 심사를 받아야만 했다.
구치소에 종교위원을 두는 이유는 교도소 직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일, 사형수와의 상담때문이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정신적으로 급격히 불안해져 사형수 대부분이 악몽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사고를 치기도 하고 자해를 하기도 하니 직원들이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위원은 정해진 날에 찾아가 사형수를 면담하며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런 시간이 2년에서 3년정도라고 한다.
그 중 저자의 마음에 걸렸던 사형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형수 한씨는 딸만 일곱으로 형편이 워낙 어렵다보니 딸들을 식모로 보내 생활을 근근히 해나가던 농부였다.
당시 50만원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중, 잠실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딸에게 찾아가 그 집 주인에게 50만원만 빌려달라고 간청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큰 돈을 덥석 빌려줄 일은 없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화장대에 놓인 보석 하나가 한씨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홀린듯이 보석을 집어들고 가려는 순간, 이를 본 주인과 실랑이가 일어나자 한씨는 도망치듯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단순 강도인데, 그렇다면 한씨는 왜 사형수가 된 것일까?
실랑이를 벌이고 난 뒤, 주인이 넘어지면서 장롱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 것이었다.
한씨는 신문을 통해 사망소식을 접하고선 자수를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경찰서로 향하기 전 사찰로 먼저 가 기도를 하던 중에 죽은 주인의 시어머니를 절 앞에서 만나게 된다.
한씨는 그 시어머니에게 자수하러 간다고 말을 꺼냈고 그렇게 주인의 시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죽은 주인의 시어머니가 법정에서 뜬금없이 자신이 잡아왔다고 증언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변호해 줄 변호사도 없는 한씨는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증거와 증인만이 법정에서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었으니 50대 젊은 남자가 늙은 할머니에게 붙잡혀 왔겠냐는 호소도 법정에서 먹히질 않았다.
저자는 끊임없이 궁금했다고 한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던 노인은 왜 끝까지 내가 잡아 왔다고 거짓 증언을 했던 것일까? 무슨 이유였을까?
가난 때문에 딸 일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사람.
빚 50만 원에 끝없이 몸부림치다 마지막에 강도로 돌변해버린 사람.
살인을 하진 않았지만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
가난 때문에 죗값을 더 치르고 간 사람.
변호해줄 변호사 한 사람없이 홀로 간 사람.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사형 집행 전 위암으로 한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때 아닌 철에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해서 수박도 먹고 수의를 입고 간 유일한 사형수였다고 한다.
아끼던 선배의 물음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선배님, 그들의 삶이 불행했으니 마지막 가는 길에 착한 사람이 곁에 있어 주면 조그만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조금 더 가진 자, 조금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이 불행한 사람에게 밝혀주는 작은 촛불만큼의 배려라고 생각해주세요."
Ⅱ 사람부자가, 결국 옹골진 부자다
돈이 많으면 돈 부자, 친구가 많으면 친구 부자라고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작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하물며 친구가 많다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 의미 없을 때도 있다.
저자는 말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가 진정한 '진짜 친구'라고.
미국 청교도 시절, 한 사형수의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집행관이 사형수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묻게 된다.
사형수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단 한 번만이라도 뵙고 싶다는 부탁을 하였지만 집행관 입장에서 이해는 해도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그 때, 오랜 고향 친구가 사형대 앞으로 나와 친구가 어머니를 잠시 뵙고 있을 동안 자신이 사형대에 올라와 있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형대에 친구가 대신 오르게 되고 사형수는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길을 나선다.
한참이 지나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는데 사형수 옷자락도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집행관은 불쌍한 눈빛으로 사형수 친구에게 말했다.
"이젠 네가 친구 대신 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느냐?"
그러자 친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 친구는 분명 올 것입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늦는 것일뿐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친구가 도착하면 꼭 이 말을 전해주십시오. 친구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갔다고 말입니다."
그 때, 만신창이가 된 사형수가 드라마틱하게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갑작스럽게 내리는 소나기에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떠내려 가게 되었고 그 길을 헤엄쳐 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었다.
한때는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 넓게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크게 상처받는 일이 생겼었다.
유난히 남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그 아이가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니던 것이었다.
뒷담화했던 그 아이에게도 실망했지만 침묵하고 방관한 아이들에게도 조금은 실망했었다.
그 아이가 그 자리에서 그 아이들에게 뒷담화를 했다면 결국 말을 보태지 않았어도 동의하며 들었단 뜻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끝낼 일이지, 굳이 나에게 와서 그 아이가 네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고 일일이 얘기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착하게 살면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그저 내가 잘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결국 그 사람의 인성은 바꿀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때, 내게 뒷담화하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며 주동자인 그 아이를 뒷담화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그들을 보며 그간의 쌓인 정이 한순간에 무너졌었다.
남을 비하하고 뒷담화하면서 괜한 감정 소모를 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도 지치는 일이기 때문에 애초에 할 생각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굳이 똑같이 비하하고 뒷담화하며 고립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나는 그들과는 멀어지는 것을 택했었다, 과감하게.
생각해보면 너무 잘했던 행동이었다.
이후 들었던 이야기로는 곁에 남았던 친구들마저 다 떨어졌을 뿐더러 그들도 서로서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건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연속으로 터지면서 사람을 대하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힘들어 사람 자체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 오게 되었었다.
그 때, 선생님께 조언을 받아 연락처 목록을 과감하게 정리하기에 이르렀었다.
'진정하게'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다 정리해보니, 굳이 내가 연락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과 이렇게나 많이 연락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남은 친구들은 자주 보지 못해도 어제 본 것 같고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며 무엇보다 서로간의 믿음이 있다.
이렇듯 좋은 친구는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 또한 그들에게 가식 없이 진정한 마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Ⅲ 마무리가 깔끔하면 머물다간 자리도 아름답다
30년 동안 교도소만 다니다보니 칠십이 넘었던 시기에 저자가 갈 수 있는 곳은 노인정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오피스텔 관리소장이 통장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게 되었고 며칠을 고민하다 승낙하게 된다.
이력서에서 수상 목록을 쓰려고 보니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아 서울구치소로 연락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굵직굵직한 상을 많이 받았음에도 저자가 상을 버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격상 상을 진열하는 것 자체가 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은연중에 '오만'이라는 병에 걸릴까봐 상장의 의미를 밀어냈었다고 한다.
소신있었던, 저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인간은 물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정해진 수명이 있다.
"인명은 재천이다."
즉,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으므로 우리가 생명을 쥐고 흔들 순 없다.
세계적인 부호였던 록펠러는 99년을 잘 먹고 잘 살았는데 위암 판정을 받게 되자 1년만 더 살게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재산 중 절반을 나누어주겠다고 전세계적으로 홍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99살에 죽고만다.
죽음 앞에서 돈도 권력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심지어 건강해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 우리의 수명은 하늘만이 알 뿐이다.
칠십 평생 아파본 적 없던 저자는 오복을 다 누리고 살았기에 겁날 것이 없었고 암이라는 터널을 두 번이나 벗어나면서 까칠했던 성격이 많이 원만해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에 20구씩 5년 동안 2만 여 구의 시체를 돌봐온 상담자가 찾아오게 된다.
수의를 입혀 보내는 일을 했기에 숨을 거둔 시신의 모습을 매일 볼 수 밖에 없는데, 대부분 평안한 모습으로 죽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평안하게, 평안하지 못하게 가는 얼굴은 확연히 드러나며 성숙하지 못하고 죽은 시체는 모습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저자는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든다고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나이 먹어서 나잇값 못하는 것처럼 추한 것도 없다는 것.
암병동에 입원하면서 긍정적으로 암을 안고 가는 사람과 의사와 병원을 잘못 선택했다며 골 난 사람은 얼굴 색깔부터 달랐다고 저자는 덧붙였다.
아프고 나서도 성장하기는커녕 신세 탓, 환경 탓만 하는 사람도 참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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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제외하고) 사람은 병으로 혹은 사고로 혹은 사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저자의 말처럼 인명은 재천인지라 죽음의 날짜를 예측할 순 없다.
몇 주 전 대학병원에 다녀왔었는데, 갈 때마다 느끼지만 아픈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이다.
또한, 요새 크나큰 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고 있는데 어제는 화성 제약회사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인명피해가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저자, 양순자 선생님은 암 투병을 하시다가 2014년 7월 눈을 감으셨다.
죽음을 앞두고서 이별 연습을 했던 저자는 매우 의연하고도 담담했었다고 한다.
갑작스레 세상을 등진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삶, 적어도 후회는 남지 않는 오늘을 사는 것이 진짜 어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