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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愛 물들다 - 이야기로 읽는 다채로운 색채의 세상
밥 햄블리 지음, 최진선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4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전 세계 모든 디자인 업체와 디자이너가 수많은 색표가 정리된 팬톤의 컬러북을 한 권 이상 소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생활은 물론 언어, 과학, 산업, 디자인까지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끼치는 색!
"최고의 전략은 색이다!"라고 외치는 저자의 재미있는 색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 밥 햄블리는 1990년 토론토에 본사를 둔 그래픽 디자인 회사 햄블리앤드울리(Hambly & Woolley)를 창업했다.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뉴욕타임스〉, 〈타임〉, 〈선데이 매거진〉 등 여러 매체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왔다. 또한 북미 전역에서 수많은 수강생에게 디자인과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초빙 대상 1순위의 실력 있는 강사로 인정받았다.
현재 ‘컬러 스터디’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사진, 미술, 저술 등의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 색은 그의 모든 활동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색, 이야기의 시작
매년 12월이 되면, 색채 연구 기업인 팬톤에서 다음 해의 색을 선정해 "올해의 색"을 발표한다.
2000년부터 발표해 온 올해의 색은 패션계, 인테리어 업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PMS (The Pantone Matching System)는 팬톤에서 개발한 색상 표준 체계이며 디자이너가 색상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관리한다.
그렇다면 올해의 색은 과연 누가 선정하는 것일까?
올해의 색을 선정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기로 소문났다.
먼저 올해의 색 선정위원회 컨설턴트가 런던과 파리, 밀라노 등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에서 열린 패션쇼를 관람하면서 색상 동향을 파악해 트렌드를 분석하고 예술, 과학, 기술 산업까지도 면밀히 조사한다.
여기에 수많은 사진과 인터뷰까지 참고하며 분석한 뒤 수많은 관문을 넘어 올해의 색을 발표한다.
색은 우리에게 '자극'을 준다.
식食과 관련하여 생각해보자. 예컨대,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에서 기피하는 색상이 있다. 바로 파랑색이다.
파랑색은 실제 식욕을 떨어뜨리기도 해 한때 다이어터들에게 파랑색으로 뒤덮힌 음식 사진들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나아가 색은 우리를 위험한 어떤 것으로부터 미연에 보호해주기도 한다.
공사장이나 도로 위에서 일하시는 분들 생각해보라. 형광색이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가?
물론 경찰관들도 마찬가지다.
항구에 수출입하는 컨테이너박스도 대부분 색이 통일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컨테이너가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면 컨테이너 색깔에 따라 내부 공기가 바뀌기 때문이다.
화물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온, 습도가 변하게 되면 크게 영향을 받게 되니 어두운 색은 태양열을 흡수해 컨테이너 내부 온도와 습도를 높여주고 흰색, 회색, 노란색 등 밝은 계열은 햇빛을 굴절시켜 컨테이너 내부를 어느 정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물품에 따라 컨테이너 색깔을 고려해야 하기에 화물 선적의 표준화된 지침이 마련된 것이다.
이렇듯 색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빨강 | 색을 향한 열정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 무적 함대와 싸우기 위해 씨독이라는 함대를 만들었었다.
씨독은 스페인 함대를 무력화시키고 값나가는 화물을 빼앗아 오는 미션을 받았으니 말만 함대지 여왕이 임명한 공식적인 해적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해군에 입대한 대원들 중에서도 특수부대의 차출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먹을 것도 걱정없을 뿐더러 포상금까지 넉넉했다.
무엇보다 잔뜩 죽어있는 연지벌레를 적군의 배에서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럭키 그 자체였다.
연지벌레는 인체에 무해한 작은 곤충으로, 연지벌레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붉은 색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연지벌레는 금괴나 다름없었다.
스페인 함선 3척에 연지벌레 27톤이 있던 소식을 듣고 씨독이 난포한 사건이 있었다.
스페인인들이 300년 넘게 이 염료의 비밀을 숨겨왔지만 결국 이렇게 들통나버리게 된다.
그러자 유럽 전체에서 연지벌레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18세기 후반, 염료 생산이 활발했을 때 연간 투입된 연지벌레만 해도 천억 마리에 달한다고 하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빨강색은 특히나 수많은 제국을 빛내준 색이었기에 역사적으로도 돋보일 수밖에 없는 색이다.
사랑, 열정, 성공은 물론 분노, 승리까지 수많은 의미를 상징하기도 한다.
과거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이 염료를 살 수 있어 왕족이나 귀족이 주로 입었지만 연지벌레로부터 추출한 코치닐 색소가 구해지기 쉬워지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합성염료가 개발되자 코치닐 색소는 그렇게 점점 묻혀갔다.
오늘날 '카민 카민산, 식용색소 적색 제40호'라고 표기되어 있다면 이는 코치닐 색소가 함유되었다는 의미이다.
노랑 | 10년을 정의하다
책상에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를 보니 노란색이 한눈에 보인다.
유리병 위에 꽂혀진 노란색 튤립, 노란색 별 모양의 무드등 그리고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있는 벨 피규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책장을 살펴보니 노란색이 한눈에 보인다.
노란색 얇은 혹은 두꺼운 책들 그리고 전공책.
생각보다 내 방에 노란색이 많음을 느꼈다.
1960년대에서는 알록달록, 밝은 계열의 색상이 주를 이루었다. 그 흐름을 타고 노랑의 시대가 찾아왔던 것이었다.
처음 노란색은 파스텔 계열로 포함되어 꽃무늬 천이나 주방 벽에 사용되었는데 이제는 무언가를 대표할 수 있는 색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았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 초상>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의 한 장면을 확대해 그린 작품에 노란색을 사용했다.
노란색하면 곧장 떠오르는 게 있었으니 바로 스마일 버튼이다.
1963년 출시되자마자 행복의 상징이 되었으며 미소, 흐뭇함 그리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산업이 발달하며 60년대부터 색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늘어났었는데 이 때의 세대들이 색을 이용해 자신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자제하거나 조용히 지냈던 전 세대와는 달리 자신들의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드러내길 원했던 세대인지라 희망과 깨달음의 상징인 노란색은 60년대를 규정하는 색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빛을 발한 색이었다.
보라색 | 숭고한 대의
110여 년 전, 런던에서 에멀라인 팽크허스트와 동료들이 여성 참정권 운동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다.
투료권을 쟁취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조직 내 불화와 결집력 부족으로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08년, 주간지 편집자 에멀라인 페틱 로렌스는 이 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색깔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보라색은 왕실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라색은 모든 참정권 운동가들 속에 흐르는 고귀한 피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유와 존엄을 향한 본능을 나타냅니다. 흰색은 사생활에서든 사회에서든 결백한 삶을 살겠다는 의미이며, 봄의 상징인 초록색은 희망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3만 명 이상의 여성이 하이드 파크에 집결해 보라색, 초록색, 흰색으로 물들이게 되었고 이 3가지 색은 공식적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라색은 권력자가 독점한 색상으로 야망, 품위, 독립을 뜻했었다.
미국에서는 용감한 군인에게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하며 중국에서는 보라색이 불멸을 상징한다.
즉, 여성 운동가들이 보라색을 사용한 것은 굉장히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보라색이 여성의 권익 운동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시위 현장의 역할 또한 컸다.
어떤 로고나 휘장도 사용하지 않고 구호조차 외치지 않았다. 단지 색깔 하나로 위대한 과업을 이뤄냈던 것이었다.
보라색은 때로 풍자을 나타내기도 한다.
purple pros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과장되고 그럴듯한 표현을 써서 독자들의 동정심을 유발해 관심을 끌려는 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고대, 보랏빛 염료는 지중해에 서식하는 고둥의 분비물에서 얻었었는데, 약 28g의 염료를 얻으려면 25만 마리에 달하는 고둥을 채집해야 했다.
즉,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매우 비싼 가격으로 거래될 수밖에 없었다.
생산 과정도 까다로웠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만들 수도 없었다.
레바논 남부 해양 도시인 티레가 염료의 주생산지여서, 티레의 이름을 따 티리언 퍼플이라고도 불렀다.
이렇다보니 왕족과 부자만이 티리언 퍼를로 염색한 옷을 입을 수 있었고 보라색을 걸치기만 해도 신분, 명예, 권위를 드러낼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로 과시용 글이나 화려한 글귀를 purple prose, purple patch, purple passage라고 일컫는 것이다.
녹색 | 불편한 진실
"19세기 중반까지 중산층 거실에는 수조, 양치식물 수집함, 나비 박제 보관함, 해조류 모음집, 조개 수집함 등 박물학과 관련된 흔적이 가득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자연에 매우 심취해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사람들이 자기 소장품을 늘리기 위해 시골과 해안가를 뒤지고 다닐 정도였다.
의자나 테이블에 자연 문양을 새겨넣거나 꽃잎과 초목이 어우러진 가구와 카펫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벽지에도 온갖 종류의 꽃무늬 패턴을 집어넣었다.
벽지에는 자연의 느낌을 생생하게 주기 위해 초록색 계통이 주를 이루었다.
제조업자들은 자연의 색상을 구현해내기 위해 매혹적인 초록색을 계속해서 만들어냈고 그렇게 만들어낸 초록색이 바로 셸레 그린이었다.
그런데 셸레 그린의 인기가 정점을 찍을 무렵, 부유층에서 희한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인은 바로 벽지에 있었다. 특히 초록색 솜털무늬벽지는 벨벳 질감을 내기 위해 폐기된 모직물로 만든 분말을 붙였었는데 여기에 비소 함량이 엄청났던 것이었다.
벨벳 벽지의 독성으로 인해 특히 피해본 것은 어린 아이나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제조업체는 알면서도 쉬쉬했고 결국 사망하는 이들까지 나오자 결국은 시인하게 되었다.
벽지 외에도 녹색 유리잔, 녹색 페인트, 녹색 드레스에서도 비소가 발견되었고, 이렇게 비소의 위험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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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할까 한다.
미 백악관이 왜 White House인지 아는가?
1792년 대통령 관저를 짓기 시작했었는데 당시 외벽 자재로 사암을 이용했었다고 한다.
외관에 훼손될 경우를 대비해 석회로 된 백색 도료를 표면에 바른 것인데 날씨에 영향을 받으면 변색될 것을 대비해 코팅 작업까지 했다고 한다.
주변의 빨간 벽돌 건물들과 다르게 백악관만은 새하얀 색이라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White House라고 별명처럼 부르게 된 것이다.
(참고로 착공 8년 후 존 애덤스 대통령이 첫 입주자가 되었다.)
1814년 영국군의 방화사건이 있었던 그 후, 수리를 어느 정도 끝내고 납 성분의 흰색 페인트를 칠해 복구공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백년 후,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통령 서한에 워싱턴 백악관 WHITE HOUSE-WASHINGTON이라는 문구를 새기라고 지시하면서부터 백악관은 단순 별칭이 아닌 정식 명칭이 된 것이다.
우리집은 BLACK HOUSE인지라 WHITE HOUSE로 꼭 바꾸고 싶었었는데, 작년에 드디어 회색 한방울 들어간 하양색으로 외관을 싹 페인트칠하고 마당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블랙으로 포인트를 줬다.
마음같아선 집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이트 톤을 유지하되 내 방은 핑크+베이지 톤으로, 나머지 방들은 베이지 톤으로 집을 꾸미고 싶은데 단독주택을 당장 리모델링할 순 없기에 러그, 커텐 그리고 작은 소품들로 방의 색감을 잡았다.
집에 있어도 항상 바쁘다. 사부작사부작거리는 게 좋아 책도 읽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악기도 만져야 하고 식물도 돌봐야 하고 그리고 집정리도 해야 하기에 파워집순이인 나에게는 집이란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오래 머물고 싶은 안락하고 따뜻하면서도 밝고 환한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 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색'이다.
우리의 세상은 무수히 많은 색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심리적인 영향은 물론 특정 색채를 통해 세대를 나타내기도 하고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즉, 단순히 보여지는 것외에 각 색마다 특성과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참 신기하지 않는가?
합성염료가 개발되기 전에는 빨강색을 작은 벌레에서 추출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작은 벌레가 불러일으킨 파장이.
일상생활은 물론 언어, 과학, 디자인까지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끼치기에 알아둘수록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최고의 전략은 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