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 현대인의 삶으로 풀어낸 공자의 지혜와 처세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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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동양고전, 대표적으로 논어를 자연스레 떠올릴 것이다.

대부분 논어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한자 자체도 어렵게 느껴지고 숨은 속뜻을 파악하는 것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응용되어진 책을 골라 읽으면 된다.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는 공자에 대한 가르침을 알기 쉽게 분리하여 풀이한 책으로 핵심적인 내용만 얻어갈 수 있다.

내용에 앞서 목차를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저자, 판덩은 ‘판덩 독서’ 창시자이다. 시안교통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했으며, 베이징 사범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1999년 국제 대학토론대회에서 우승했다. 중국 중앙 텔레비전에서 〈12스튜디오〉, 〈싼씽 지식 급행열차〉 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04년부터 베이징 교통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13년 베이징 교통대학을 사직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따서 ‘판덩 독서회’를 창립했다. 판덩 독서회는 지식 서비스 프로그램으로 오디오북, 동영상, 이미지 등을 활용해 책을 설명해 준다. 2018년 판덩 독서회는 브랜드 전략을 완성해 정식으로 ‘판덩 독서’로 명칭을 바꾸었고 지금까지 4천만 명이 넘는 회원에게 영향을 주었다.




Ⅰ 학이 學而 배움에 대한 ‘마인드셋’이 천하를 다스린다


학이시습지 學而時習之


공자가 말하길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사람이 평생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배움이다.

공자는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를 첫 문장에 배치하였다.

공부란 누구에게나 썩 유쾌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공자 또한 그것을 알기에 '배우고 제때 익히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삶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강조하고 있다.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이해하는 것이고 '익힌다'는 것은 배운 지식을 응용하고 시도하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예기」에 따르면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확하게 분별하며, 성실히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배움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두 가지로 추론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아예 배우려 하지 않는 경우이며 두 번째는 배우기만 하고 응용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경우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말고, 단숨에 목표를 이루려 하지 말고, '배우고 제때 익히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공자가 말하는 문제 해결방법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즐거움'이다. 공자가 말하는 즐거움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비웃는 냉소나 남을 얕잡아보는 자극적인 블랙 유머식의 즐거움도 아니다.

… 공자의 즐거움의 핵심은 '구하지 않음'에 있다. 즐거움은 외부를 향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힘을 쓰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거나 싸우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에서 '즐겁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긴 즐거움을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을 만나거나, 방법은 알지만 할 수 없을 때는 '배워서 제때 익히고'라는 구절을 떠올리자. 외부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에 담긴 뜻을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일을 완벽하게 해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이해해주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라는 <학이>의 문장을 마음속으로 암송해보자.


"우고 제때 익힌다."

"구가 먼 곳에서 찾아온다."

"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공자의 세 가지 말은,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깨우침이기에 잘 새겨야 한다.

그래야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현명하게 풀어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군자무본 君子務本


유자가 말하길 "그 사람됨이 효도할 줄 알고, 공경할 줄 알면서 윗사람을 거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을 거역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군자가 근본에 힘을 쓰는 것은 근본이 세워져야 도가 생기기 때문이며, 효도하고 공경할 줄 안다는 것은 바로 어짊의 근본이다!"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알고, 형제들을 공경하며, 우의를 지키는 사람이 윗사람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어진 문장도 같은 의미이다. 즉, 가족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직장에서도 상사를 존경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처리할 덕목을 갖추고 동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며 배신과 배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기에, 모든 일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즉,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은 성격과 인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으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도 사람의 태도에 근간이 되는 것을 습관이라 말하며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을 잘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훗날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됨됨이를 갖게 될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개인적으로 이 말이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을 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부모같지 않은, 자식같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린 자녀를 학대하고 방임하는 것은 물론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부모부터 재산 문제 등으로 부모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하는 자식까지.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의 환경 탓할 필요없이 습관만 잘 만들어 나가면 된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마거릿 대처가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듯이 반복되는 작은 습관을 조금씩, 조금씩 고쳐나간다면 분명히 바뀔 것이다.


현현역색 賢賢易色


자하가 말하길 "어짊을 어질게 하되 외면에 대한 관심과 바꾸고, 부모에게 효도함에 있어 힘을 다하며, 군주를 섬김에 있어 몸을 바치고, 친구를 사귐에 있어 말에 신뢰가 있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를 배운 사람이라 말하겠다!"


'어짊을 어질게 하되 외면에 대한 관심과 바꾸고-' -첫 구절만 살펴보려고 한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간 뒤에 거둔 어린 제자인 자하에게 한 말로, 지나치게 외면의 것에 치중하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초면인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이렇다보니 비슷한 맥락으로 오늘날 명품에 대한 욕구가 높아져 오픈런이라는 현상도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으니 조금은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 대한 내면을 파악할 수 없으니 섣불리 사람 됨됨이에 대해 판단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겉모습이 일차적인 판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때 봐야 할 것은 깔끔함과 단정함이다.


옛사람들의 지혜는 뛰어났다. 그들은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조건에서 행동의 평가 기준을 설정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은 어짊과 같은 인간의 내면과 본성이었다.




Ⅱ 위정 爲政 북극성처럼 빛나는 리더가 되기 위한 스물 네 가지 이야기


비여북신 譬如北晨


공자가 말하길 "덕으로 정치한다는 건,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뭇별들이 둘러싸는 것과 같다."


정치 이야기 꺼내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잘 이끌어가기 위해 국민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데 자기 이익은 물론 권력까지 챙기려는 심보넘치는 국회의원들이 판을 치고 다니니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표심 하나라도 잡기 위해 너도 나도 선거판에 끌어들이니, 돈과 권력 맛에 취한 자들만 자꾸 늘어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부분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전체를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나라에 빗대는 것은 제쳐두고 축소시켜서 말해보자면, 기업의 리더에게도 통하는 말이다.

순자가 말하길, "임금이 요점을 파악하는 걸 좋아하면 모든 일이 상세하게 처리되고, 임금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파악하는 걸 좋아하면 모든 일이 황폐해진다."라고 했다.

한 회사에 중요한 업무가 있을 경우, 사장은 그것만 중점적으로 파악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업무에 책임자가 있으니 지도자가 책임자가 있는 분야까지 파고들어 참견하면 결국 일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경영자를 북극성에 비유한다고 가정한다면, 덕으로 정치한다는 것은 규칙으로 다스려야 할 뿐만 아니라 덕행으로도 다스려야 함을 의미한다.

지도자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조직의 전체 방향을 계획해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위치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덕으로 정치한다는 건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뭇별들이 둘러싸는 것과 같다."는 공자의 말처럼 진중하고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삼십이립 三十而立


공자가 말하길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 구절은 대개 사람들이 본인의 인생단계와 비교할 때 읊곤 한다.


첫 구절만 살펴보면,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라고 표현되어 있다.

아이가 뒤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요즘은 조기교육이 당연해졌다.

외국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어 유치원부터 다니게 하는 부모 또한 많아졌다.

저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을 두었다고 하는 공자를 보며 그 시기에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라 그 시기에 삶의 터닝포인트를 겪었다는 속뜻이 아니었을까 하며 추론하였다.

이전까지는 노는 것이 마냥 좋았지만, 학습으로 얻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노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공자는 도덕과 예법이 인류를 보호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은'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에 이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도덕, 예법, 규범 등이 자신이 원하는 바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구속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들의 경지가 아직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인언수재 人焉廋哉


공자가 말하길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이유를 살피고, 편안함을 관찰한다면 자신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느냐?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느냐?"


이는 상대방을 파악하는 방법에 대한 대답으로 공자의 통찰력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살피는데 눈동자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눈은 악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리다. 그러니 그 말을 듣고 그 눈동자를 살피면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맹자가 했던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크나큰 오류가 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싫은 내색없이 생활해야 하니 포커페이스에 능숙해져 눈에 빛이 없고 어둡다고 해서 선한 사람일지, 악한 사람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실제 맹자보다 공자가 사람을 판별하는 관점이 더 엄격했다고 전해진다.

공자는 사람의 행동을 보고, 이유를 살피고, 편안함을 살피라고 하였다. 즉, 사명, 비전 그리고 가치관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지에 국한돼서 사람을 파악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우리는 상대를 볼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어떤 동기를 품고 있는지, 어떨 때 가장 편안해하는지, 무엇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인품은 바로 이런 부분들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Ⅲ 팔일 八佾 마음이 불안할 때 되돌아보는 예법, 그리고 음악


시가인, 숙불가인 是可忍, 孰不可忍


공자가 계씨에 대해 말하길 "뜰에서 팔일무를 추게 하니 이것을 할 수 있다면 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


당시 춤에도 규범이 있어 열을 맞추어 춤을 춰야 했다고 한다.

선비들은 2열, 경부대는 4열, 제후는 6열, 군왕과 천자만이 8열로 춤을 추었다.

팔일무는 8명이 8줄로 총 64명이 춤을 춘다.

귀족인 계씨는 노나라 왕보다 지위가 낮았지만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삼환씨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며 군왕과 천자만이 출 수 있는 팔일무를 추었는데, 이를 듣고 공자가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면,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양심의 가책이 없는 범죄자도 결국은 무언가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저지른 것이고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에, 고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성선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묘사된다. 나쁜 사람은 나쁜 일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결심한다. 무엇을 결심하는 것일까? 바로 마음이 선함으로 향하여 하는 것을 참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것을 참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을 억누른다. 이렇게 선한 본성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이익, 체면, 지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쟁취해야 할 것을 위해서 본성을 참을 때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선행이라 해서 외면하거나 작은 악행이라 해서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것은 결국 큰 악행이 되고 만다.

또한 지속하다 보면 결국 선한 본성을 억누르는 힘이 커지게 된다.

'이것을 할 수 있다면 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는 결국 자기 내면의 선한 본성을 참는 사람은 더 큰 악행도 저지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내면의 선한 본성을 지켜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원래도 그랬지만, 갈수록 더 무서워지는 것은 결국 인간이란 존재이다.

터무니없고 어이없기도 하고, 화나고 분노하기도 하고… 요즘 뉴스들 보면 이런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들만 가득하다.


왜 도덕 과목이 사라진 것일까?

사람 구실을 하려면 적어도 '기본'은 알아야 하는데, 점점 기본적인 덕목은 무시된 채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학교에서는 입시를 위한 가르침만 있을 뿐,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할 지혜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스스로라도 습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알고 있다면 충분히 적용시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시대가 다르고 틀에 박혀 있다고는 하나, 그 가르침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동/서양 철학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면 이와 관련해 쉽게 풀이한 자기계발서나 인문서를 읽어도 좋다.


동, 서양 고전은 빠지지 않고 재독하다 보니 이와 관련하여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곤 한다.

덕목과 가치관은 과거나 지금이나 적용한들 변함없다지만, 환경과 상황 자체는 많이 달라졌기에 현재를 반영하여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수집해 읽고 글쓰기 노트에 빠짐없이 덧붙이고 덧붙이며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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