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뉴스
셰릴 앳키슨 지음, 서경의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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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미디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조작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물음에 오랜 경력의 언론인인 셰릴 앳키슨이 답한다.

책 한권에 내러티브 뉴스에 관한 숨겨진 뒷이야기의 모든 것을 신랄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뉴스는 더 이상 모든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저자, 셰릴 앳키슨은 40년 경력의 언론인이다. 무당파이며 “Full Measure with Sharyl Attkisson”의 진행자이자 편집장이다.

그녀는 CBS NEWS, CNN, PBS에서 일했고,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취재해왔으며, 에미상과 에드워드 머로 탐사 보도상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공화당 초선의원들의 모금 활동에 대한 비밀 조사','2002년 적십자사의 경영실태에 대한 독점 보도', '부시 정부의 TARP(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의 구제금융에 대한 조사' 등으로 에미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하였다.

앳키슨은 B-52와 F-15 전투기에 탑승한 적이 있는 몇 안 되는 기자 중 한 명이며, 태권도 5단의 유단자이다.




내러티브는 다양한 측면을 가진 이슈를 한쪽 측면에서만 보여주는 경향이 크다. 어떠한 논리적 접근도 배제된다. 공격 대상에 적용된 기준이나 판단은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세력과 그 동조 세력에게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Ⅰ 셰릴 앳키슨 그리고 CBS


뉴스는 두 가지 종류의 편향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의도적 편향, 부지불식간의 편향이다.

의도적 편향은 식별하기 쉬우며 뻔뻔하며 자신의 속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자랑스러워하며 부정하지도 않는다.

의도적 편향에 저지르는 기자들은 자기합리화에 최적화되어 있는 셈이다.

반면, 비의도적인 편향은 오늘날 뉴스에서 보이는 문제점들이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이를 저지르는 기자들은 스스로 편향이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한다고 한다.


96년도, 저자가 워싱턴에서 취재 기자로 일할 당시의 일이다.

'스티브 포브스의 일률 과세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것', 이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이었던 포브스였다.

포브스의 일률 과세는 부자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한 정책이라는 내러티브였다.

경험 많은 동료들을 보아도 스스로 명백한 편향적 시각으로 기사를 쓰고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저자에게 꽤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 때때로 우리는 기사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어야만 하는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진짜 뉴스를 놓칠 때가 많다. "


이십 여년을 CBS에서 근무하면서 저자는 문득 깨닫게 된다.

진정한 스토리를 외면하기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에 에너지를 쏟는 게 맞는 것이라고.


2013년 1월, 보잉 787 드림라이너 화재 사건을 조사해보라고 지시를 받게 된다.

살펴본 결과, 저자는 독점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수년 전, 드림라이너에 사용된 배터리 시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대형 화재의 비디오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내부고발자를 설득해 카메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고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할 것이라 확신했었다.

기사는 워싱턴 DC의 선임 프로듀서의 승인을 받았지만 정작 뉴욕이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CBS 이브닝 뉴스의 책임 프로듀서는 왜 화재 영상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영상을 삭제하길 원했다.

워싱턴 선임 프로듀서와 뉴욕 프로듀서의 언쟁이 오고갔고 결국 기사는 잘리게 되었다.

그 후, <CBS 토요일 오전 뉴스>팀에 제안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윗사람들의 압박으로 인해 방송이 무산된다는 것은 결국 보잉 측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저자가 CBS를 떠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였다/

2019년, '보잉 737 맥스기' 추락사고 두 건이 발생했다. 346명의 희생이 있었다.

이는 저자가 6년 전 드림라이너 기사에서 다루었던 것과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보잉 737 맥스기 추락사고를 보며 저자는 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약 사고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결함에 대한 나의 드림라이너 기사가 보도되었더라면, 737 맥스기의 비극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Ⅱ 내러티브의 무기화, 미투 내러티브


내러티브를 가장 사악하게 사용하는 것은 파괴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내러티브의 파괴적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미투(#MeToo)운동의 끔찍한 무기화이다.


2006년, 직장 내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괴롭힘, 성폭력에 대항하는 캠페인으로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연예계, 언론계는 물론이고 정계의 인사들까지 미투 고발이 이어지면서 말그대로 난리가 났었다.

미국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미투 운동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하였다.

남자든 여자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범죄 행위가 성립되었을 때 고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미투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어둡고 위험한 현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즉, 미투 내러티브가 파괴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었다.

무작정 한 여성이 목소리를 내면 모두가 '무조건 믿어주라'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이런 문제로 굳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학대, 강간, 추행을 빌미로 거짓말 할 여성은 없다는 말은 매우 큰 오류이다.

1931년 앨라배마에서 아홉 명의 흑인 청소년이 두명의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거짓 혐의로 고발을 당했었다.

1987년 타와나 브롤리라는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들에게 납치, 강간당했다고 허위로 고발했었다.

2014년 <롤링스톤>지는 버지니아대학생의 허위 강간 고발 기사를 게재했다가 기자가 명예훼손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한국 또한 미투운동이 크게 일어나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 이를 악용하는 여성들 또한 있었다.

잠깐 보였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제트기의 비행운처럼, 대부분의 고발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신빙성을 잃어가거나 잊혀지곤 한다.

오늘날의 편파적인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투 내러티브가 얼마나,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분명 더 많을 것이다.


2017년 11월, CBS의 오랜 방송 진행자인 찰리 로즈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가 성추행 혐의를 보도했다. 2018년 5월 추가 보도가 이루어졌고 7월 전 NBC 기자 로난 패로우가 <뉴요커>에 초대형 폭탄 기사를 실었다.

패로우의 기사 내용은 이랬다.

여러 명의 CBS 남자 직원들이 부적절하고 성차별적인 행동을 하며 부실 경영, 은폐,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 휘말린 인물이 <60분>의 제작 책임자였던 제프 페이거였다.

당시 페이거의 경쟁자들이 미투 내러티브를 무기화해서 그의 경력을 박살내버렸었다.

어떻게 CBS에 대한 세간의 주목을 이용해 그를 비방하고 논란거리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페이거의 경영 방식에 대한 불만을 직장 내 성희롱을 묵인했다는 주장으로 유도한 뒤 이어 페이거 자신이 만연한 성추행에 동참했다는 비난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이러한 근거없고 편파적인 주장은 결국 내러티브의 힘 때문이었다.

이후, 페이거는 CBS에서 해고되었는데 단순히 부실 경영이나 성추행 고발이 이유가 아니었다.

그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보낸 메시지 때문이었다.

'뒷받침할 만한 증거의 제시 없이 이러한 허위 고발을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내가 입는 피해에 대해서 당신이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나를 해치려다가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에 대한 해로운 주장들을 당신 스스로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보도한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협박성 문자가 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었다.

CBS 내부자들은 왜, 어떻게 페이거가 미투 내러티브라는 무기에 의해 희생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매일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엄청난 경쟁과 권력 다툼이 있었습니다. 미투 보도는 제프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페이거가 CBS에서 해고된 후에 저자가 직접 그를 만났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답했다고 한다. 변호하게 되는 순간, 희생자들을 괴롭히거나 미투 운동에 반대하는 것처럼 오해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러티브의 가장 큰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맞서 싸우기에는 내러티브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Ⅲ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좋은 저널리즘이 늘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다. 사실, 주류 내러티브를 거스르는 좋은 저널리즘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


강력한 이익집단들이 감추거나 왜곡하려는 사실을 기사로 옮기기란 기자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옮기고자 하는 기자들은 신뢰받을 순 있겠지만 특별한 이익집단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언론사 상사들 또한 힘 있는 집단의 압력을 받고 싶지 않아 하니 애초에 골칫거리 따윈 만들지 않는다.

마크 레빈이 말하길, 현대의 매스미디어는 더 이상 우리가 상상하는 저널리즘의 이미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의 자유 언론은 표준이 없는 직종으로 퇴보했다. 정부의 억압이나 탄압 때문이 아니라, 자기 검열, 집단사고, 편향성, 누락 및 선전선동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_마크 레빈


어린 기자들은 스스로를 사회 운동가로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있어 내러티브에 맞는 보도를 함으로써 대중이 올바르게 생각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는 특정 언론은 '민중의 적'이라고 비방했을지 몰라도 그런 짓들은 하지 않았다고 레빈은 말했다.

여기서 그런 짓이란 전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와 그의 FBI는 뉴욕타임스, 폭스, AP를 비밀 소환장 또는 감시로 뒤를 캐고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레빈은 덧붙인다.


"첫째, 보도국은 보도와 의견을 분리하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보도국에 자칭 이론가라고 하는 자들을 고용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왜냐하면 이론가들은 객관적으로 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보나 보수 성향을 표방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적어도 뉴스 취재에 있어서 어느 정도 객관적 기준과 절차를 적용하십시오. 현재는 이 두 가지 모두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전 우리에게는 믿을 만한 뉴스 원천이 있었다.

단지 특정 방송사의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특정 관심사에 대해서는 특정 언론사를 신뢰할 순 있지만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매체를 이용하곤 한다.

즉,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뉴스에 나오는 헤드라인 외에 유튜브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 매체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전통적 미디어는 대중이 자신들의 내러티브에 주목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보도만이 정확하고 공정하며, 다른 각도의 보도는 믿을 수 없거나 당파적이라고 비난한다.




근래 제일 오랜 시간 투자하여 읽은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1984」까지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저자가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지만 한국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가짜뉴스, 기레기 등과 같은 원색적인 단어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라 생각한다.

미디어의 신뢰도 하락아 그 이유 아니겠는가.

대충 짐작은 했고 알고는 있었지만 확신이 가질 않았는데, 편파적인 기사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부터 방송국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고나니 한숨이 절로 났다.


잠깐이긴 했지만, 한때 꿈이 기자나 아나운서였다.

진실을 전할 수 있는 위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진했을 때에 잠깐의 착각이었는지라 금세 현실을 파악하고 나서는 접었긴 했지만.


진실이 내러티브에 맞지 않을 때 뉴스는 진실을 버린다.


알 권리가 있는 국민에게, 가짜뉴스가 판치는 지금 시대에서 진정하고 신뢰있는 뉴스가 적어도 하나 이상은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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