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낭만과 사색으로의 산책
고일석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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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베네치아에선 골목길 어디에선가 행여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해도 막막한 두려움에 몸 떨 걱정일랑은 할 필요 없다. 베네치아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는 것은, 귓불을 간질이는 물의 속삭임에 잠시 가슴을 내어주는 일상의 한 순간일 뿐이다.


사유가 묻어나는 글이 어느새 흠뻑 빠지게 만든다.

지금 당장 베네치아에 가지 못하더라도, 언젠간 베네치아에 가봐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아쉬운 마음에 동해라도 갔다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다.

베네치아의 한 조각, 한 조각을 건네주는 그런 책이다.


저자, 고일석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항공대에서 수학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및 샌디에이고대학에서 MBA와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박사후 연수과정을 수료하였다.

20여 년간 동국대학교 멀티미디어학부, 동아대학교 경영정보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각종 단체의 이사 및 의장직을 역임하였고 100여 편의 연구 논문과 20여 권의 전문 도서 및 수십 종의 국가 및 기업 프로젝트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현재는 뉴욕의 연구기관에서 예술과 문화, 사회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 「베네치아 가면과 카니발의 연구」와 「베네치아 카니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연구」 등과 같은 각종 논문과 저서를 집필 및 발간하고 있다.

지식과 문화 연구소의 의장과 예술과 과학 교류협회의 부의장직을 맡아 각종 강연회와 학술 행사를 주관하고 참가하면서 학술적이고 인문학적인 전문지식을 세계 각국의 학자, 전문가들과 연구 교류하고 있는 기술 및 인문학자이자 사회문화 분야의 학자이다.





그 곳, 베네치아


곤돌라, 가늘게 흐르는 물길, 좁은 골목길, 오래된 성전, 마을 광장,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펼쳐놓은 가게, 수많은 여행자들과 그 가슴마다의 사연, 베네치아는 이 모든 것을 빼곡하게 잘 늘어놓은 아름답고 거대한 야외 갤러리이기에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그 물빛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하얀 종이 위, 아드리아바다가 코발트블루 잉크로 순식간에 그려진다.

사진없이 오롯이 글을 읽는 것뿐인데 머릿 속에서는 이미 베네치아의 풍경이 그려지며 나도 모르게 여행을 하고 있었다.



수필 같은 여행길



밤새 뿌려진 짙은 안개가

세상 군상들을

잿빛 실루엣에 가둔 새벽,

잠자리 뒤척인 지난 꿈의

방황에서 깨어난다


따뜻하게 내린 찻물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첫 경험 부끄러운

오렌지빛 새벽이

가만가만 창을 넘어선다


켜켜이 쌓였던 꿈의 잔상을

말간 첫 빛으로 씻어내고

붓쟁이의 그림과

글쟁이의 글과

노래쟁이의 노래를 따라

수필 같은 여행길에 오를 시간이다


베네치아, 이곳은 포강을 흘러온 이탈리아의 물줄기가 아드리아바다와 만난 연안의 모래톱과 갯벌에 나무말뚝을 박고 또 박고 그 위에 잘 다듬은 돌을 쌓고 또 쌓아서, 사람과 사람이 마을과 마을을 일구어 바람이 흐르는 물길마다 배를 띄우고, 다리와 다리로 서로를 이어서 살아가고 있는 물과 나무와 돌과 바람의 마법에 걸린 바다 위에 지어 올린 성(城)이다.


곤돌라의 검은 반짝임에 몸을 맡긴 달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며 달빛 찰랑이는 밤 물살에 오른 검은 곤돌라에서는 또 어떤 낭만이 진하게 배어날까. 어쩌면 팽팽하게 물오른 여행자의 낭만이 곤돌라가 흘러가는 수로 위로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톡톡 터져서 뽀얀 밤안개로 슬며시 번져나지나 않을까.


베네치아하면, 역시나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곤돌라'이다.

작은 배 곤돌라는 이탈리아로 '흔들리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뱃머리와 끝부분이 하늘을 향해 휘어져 올라가 있는데 그 모양새가 고대 서쪽 문명 어디에선가 볼 법한 모양이다.

에게해와 지중해를 낀 고대 서양의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약 10미터 길이를 자랑하며 성인 대여섯명은 탈 수 있다고 하는데, 곤돌라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뱃사공이다.

(이탈리아어로, 곤돌리엘레(Gondolielle)라고 한다.)

CF 혹은 영화를 통해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근사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뱃사공의 모습을.

젊고 잘생긴 이탈리안 뱃사공이 뱃전에 서서 긴 노를 휙휙 저어 좁은 수로를 나아가는 모습을.



몇 번 눈을 깜빡이는 사이 돌 틈 저기에서 동화 속 주인공 누군가가 통 통 튀어나왔다가 훌쩍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베네치아에선 골목길을 돌아서 들어선 잔바람에 스르륵 두 눈이 감길 때 골목 어귀의 카페에 앉아 속 하얀 에스프레소잔을 딸그락거리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베네치아에서 여행자는 속이 빈 대본을 받아든 배우가 된다.


바닷길을 지나가는 나지막한 다리, 빼곡하게 들어선 집과 집 사이를 흐르는 미로 같은 골목길, 금방이라도 기도소리가 공명할 것만 같은 오래된 성전은 중세의 어느 한때를 배경 삼은 고전영화의 잘 꾸며진 세트장 같다.


글만 읽었을 뿐인데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베네치아!

꼭 한 번은 가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은 여행지임이 틀림없다.

여행서를 읽을 때, 사진만 잔뜩 있는 책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여행서 외에 어떤 분야의 책이건 사진보다는 글의 비중이 더 많은 책을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여행과 관련된 책은 거의 '여행에세이' 위주로 보게 된다.

특히나 책에서는 글 말미에 시가 계속 등장하는데, 시에서도 베네치아의 모습이 연상될만큼 베네치아가 잘 녹여져 있다.



사색하게 되는, 베네치아


"그래 봐야 인간의 피조물일 뿐인데, 분명 부족한 것들일랑은 어딘가 그늘진 구석에 숨겨두었을 거야."

너무 아름다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괜한 의심이 막아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며칠을 지내다 보면 베네치아에 대한 이런 식의 의심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한낱 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눈에 콩깍지가 덮인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베네치아에서는 어느 작은 것 하나에서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이 빚어낸 아름다움도 이리 완벽할 수 있구나."


그렇다. 여행은 휴식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색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그 당시에는 몰랐어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색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나가는 들꽃 또한 그대로 지나치지 못했었는데, 여행갈 때면 특히 더 그랬다.



숨겨진 색, 부라노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그냥 떠나가는 것일 뿐이야. 오는 것과 가는 것은 흐르는 물살의 방향만이 바뀌는 것일 뿐, 다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이야."


"살아가다 보면 분명 어느 한 때, 흐려진 눈이 삶의 길을 잃어버릴 날이 오겠지. 그날엔 이 물길을 더듬어 너를 다시 찾아야겠어."


이곳에선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녀도, 시신경과 피부돌기에 걸려드는 것이라곤 오직 '색과 색'뿐이어서 여행자가 일으키는 낯선 소음조차도 색의 짧고 긴 파장이 삼켜버리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창틀, 문짝, 지붕, 담벼락, 그 모든 것이 팔레트에 짜놓은 물감들의 수다마냥 색과 색에 매료된다고 하니 눈이 호강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저자가 그랬다. 눈에만 의존하려는 인지 속성을 벗어나야만 부라노의 색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연일 치솟는 확진자 수는 정말이지 눈을 의심케 한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더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

아직 몸이 좋질 않아 백신도 못 맞은 상태인지라 더더욱 병원 외에는 외출도 하지 않는 편이다.

1월 둘째 주에 갑작스런 몸의 이상으로 명절도 간소하게, 조용히 보냈었다.

지난 해에는 가족들끼리 드라이브라도 갔었는데 올해는 도저히 갈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뭐, 이렇다보니 상반기에는 선택지없이 무조건 집콕만 해야 한다.

이럴 땐, 역시 콧바람 쐴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이 있으니 바로 '여행책'이다.

여행서를 읽다보면 유럽만큼은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뿐인데, 베네치아 또한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단순히 여행서라고 하기에는 곳곳을 다니며 느꼈던 저자의 견해와 더불어 그의 사색까지 엿볼 수 있으니 오롯하게 읽을 준비가 된 사람이 책을 펼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고우해커스】라는 사이트가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다녀오게 되면서 알게 된 사이트인데 지구촌특파원이라는 코너 덕분에 애용한 사이트 중 하나이다.

그 때, 미국에서 유학을 한 특파원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다른 특파원과 달리 사진은 한 두장만 첨부하곤 전부 글뿐이었다.

그리고 그 글 속에는 그 특파원의 생각, 나아가 사색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가끔씩 생각날 정도로 그녀의 글을 꽤 좋아했었다.

책을 읽자마자 그 특파원이 연상되는 건, 사색이 담긴 글이라는 공통점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근래 진이 빠져서인지 특히나 바람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가디건 속으로 훌훌 들어오는 바람과 함께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걷는 내내 함께 해주었었다.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손으로 그려내었던 새파란 물감을 한 통 들이부었던 것 같은 푸르른 바다는 어느새 내게 미소를 지어주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코끝을 간지럽히던 진한 원두향의 끌림에 들어갔었던 카페에서 마셨던 부드러운 라떼는 잊지 못할 맛이었다.

지금 당장 해외로 갈 순 없으니 내게 이러한 인상을 남겨주었던 강릉이라도 가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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