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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온몸에서 솟구치는 기쁨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목소리로 레이나는 말했다. 둘만의 여행이란 조금 '굉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 어디든 갈 수 있는 거지?"
저자,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도를 봐, 그 애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엽서가 도착할 때마다 말야. 처음엔 아무튼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있지, 좀 더 멀리까지 가렴, 하는 마음이 들어 버려서,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
누구든 한 번쯤을 일탈을 꿈꾼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일탈은 나쁜 방향으로 빠진다기보단 '집'이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라 생각해주면 되겠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는 참 재미없게 살아왔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의 생활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아마 환경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항상 품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기서 당장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순응하는 삶만 살아오다 보니 '나'를 위한 선택이 어느새 '남'을 위한 선택이 되어버려 주체성이 사라지고 있음을 대학생이 되고난 후에야 깨달았으니깐.
외출 혹은 여행의 일탈에도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그거, 그냥 떠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냥, 갔다오면 되잖아?'
말이 쉬울 뿐, 여러 요건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새 용기가 필수조건이 되어버린다.
그 용기를 가지고 여행이란 일탈을 택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집 떠난 뒤 맑음』 속 레이나와 이츠카가 되겠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14살의 레이나와 17살의 이츠카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편지 한 통만 달랑 남겨놓고 미국을 보는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대학생도 아니고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 둘이서 말이다.
이츠카짱이랑 여행을 떠납니다.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전화도 하고 편지도 쓸게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거예요. 러브 Love. 레이나.
앞서,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났던 레이나와 이츠카!
그러던 아이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No."
"No?"
여행지의 '믿음'이었던 카드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부모들은 결국 그들이 쓰는 카드를 정지시키고 만 것이었다.
위기에도 결국 구원의 손길은 있는 것일까?
여행하던 중에 아이들이 패터슨 부인이라는 사람을 도와준 때가 있었는데 패터슨 부인의 손녀인 헤일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렇게 헤일리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츠카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독립성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이 부모님들의 태도이다.
레이나의 아빠는 순탄했던 일상에 금이 간 것마냥 불같이 화를 내는데, 이 때 레이나의 엄마가 아빠의 태도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반면에, 이츠카의 부모님은 레이나의 부모님과는 달랐다.
아이들이 돌아와서도 레이나의 부모님은 '레이나의 여행'을 탓하며 투닥거리는데, 그들의 갈등은 레이나에게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의 에피소드 속에서 나 또한 많은 것을 느꼈지만 특히나 부모님의 양육태도 또한 나에게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이해해주는 편인데 아빠가 그렇지 못해서, 엄마와는 관계형성이 잘 되어있지만 아빠와는 점점 멀어져가는 기분이다.
나도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잠시 공부하러 갔다온 적이 있다.
인천공항 톨게이트에 들어간 순간부터 LA를 경유하고 Salt Lake City까지는 온전히 '나' 혼자였다.
거의 한 나절을 홀로 해결해야 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레이나와 이츠카처럼.
아마 나홀로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되면 레이나와 이츠카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을까?
미국을 '보는' 여행을 계획하여 많은 에피소드를 쌓았던 레이나와 이츠카지만, 오히려 내가 그들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미국으로 여행다녀온 기분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