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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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일전에 청계산에 갔다온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등산해본 것이 어렸을 때 해보고선 처음인지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숲속길 산책은 해봤어도 제대로 된 등산은 처음이나 다름없어 중턱도 못 가 숨 고르기 바빴다.

등산이 이렇게 어지럽고 숨 쉬기 힘든 운동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끈기 하나로 정상에 올랐다.

그 순간, 온몸을 간지럽히듯 살랑살랑 불어오던 바람부터 잘했다고 쓰다듬듯 뜨겁지 않게 비춰주는 햇살에 힘들었던 순간, 순간들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날씨였다.

산 중턱에 오르기까지는 심장이 아플 정도로 힘들었는데 중턱을 넘어서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오히려 편안하진 않지만 편안했고 덜 힘들었었다.

등산보다 하산이 가장 무서웠다라는 생각이 크게 박혀 있었는데 어렸을 때 무서운 경험을 했었나 싶었는데 어린 시절에 끌고 왔던 그 감정은 역시나였다.

산의 가파름이 얼마나 무서운지 등산스틱이 없었다면 난 아마 기어내려왔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터벅터벅 아무렇지 않게 등산하고, 하산하신 분들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연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내려갈 때는 눈에 한가득 담았다.

포슬포슬한 흙에 뿌리를 내려 하늘까지 곧게 솓은 울창한 나무들, 그 가운데 활짝 핀 꽃들 속에 달콤한 꿀 찾으러 달려온 새하얀 나비.

절대 떨어질 것 같지 않는 바위들이 얼크렁설크렁 모인 가운데 바깥 쪽으로 졸졸졸 흘러내리던 계곡 그리고 바위 옆 나무를 타고 쪼르르 올라가던 청솔모.

키다리 아저씨마냥 키 큰 나무 속에서 느꼈던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그리고 따스한 햇살까지.

수식어 없이, 꾸밈 없이, 말그대로, 참 좋았다.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산을 온 몸으로 느낀 저자가 펴낸 『산의 역사』는 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산의 기원을 시작으로 산마루와 골짜기, 바위와 결정, 화석, 무너지는 봉우리, 흙더미와 돌더미와 같은 산의 생성 그리고 산에서 느낄수 있는 구름, 안개와 뇌우, 눈과 같은 기후의 변화.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를 엿볼 수 있는 산의 변화 그리고 숲과 풀밭에서의 산짐승.

인간들의 산을 향한 숭배 그리고 올림포스 산과 신, 수호신에 대한 이야기가 책 한 권에 전부 담겨 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역사를 찾아 읽고 있는 중인데 우연하게 눈에 띈 책이 바로 『산의 역사』였다.

처음엔 산과 관련된 이야기라 하면 역시 지리에서 배웠을 때 빼곤 접해본 적이 없어 살짝 딱딱하게 읽히겠구나 싶었는데 문득 읽으면서 '지리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물론, 인문서에 가깝긴 하지만 읽다보면 단순히 지리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냈다고 하기에는 딱딱한 면이 크지 않아 지리학자의 관점이 아닌 산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산에 들어오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바위와 숲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덕에 나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과거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새로운 감정이 싹텄다. 산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늘 속에서도 햇빛을 받아들이는 차분하고 늠름한 모습이 좋았다. 푸른빛을 띤 채 빙하를 두르고 있는 그 튼튼한 어깨가 좋았다. 풀밭과 숲과 맨땅이 줄줄이 이어지는 기슭도 좋았다. 멀리 내뻗은 거목의 뿌리처럼, 작은 골짜기마다 개울과 풀밭, 호수와 들판이 힘차게 펼쳐지니 좋았다. 나는 산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바위에 붙은 누렇거나 푸른 이끼와 잔디 한복판에서 반짝이는 작은 돌멩이까지도 사랑스러웠다.


연이은 장마로 인해 집에서 혹은 실내에서 휴가를 보내야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 책을 펼치는 게 어떨까.

솔직히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길 때면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가급적 안 하는 편인데 이번 장마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결국 산사태까지 일어나 안타까운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는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균형'이 있는 법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다보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지금으로선 사람도, 동물도, 모든 생명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이상 큰 피해가 나지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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