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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빨간 맛 - 발렌시아에서 보낸 꿈결 같은 한 해의 기록
한지은 지음 / 바이북스 / 2020년 4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덕에 모두가 여행은 커녕 외출도 자제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잠잠해지는 것 같다가도 여기저기서 소규모로 터지면서 확대되니 나부터 조심하고 자중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도, 외출도 못 하니 사람 심리라는 게 더 나가고 싶은 마음이 큰 법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여행 에세이'를 보는 게 가장 좋은 답안이 아닐까.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저자가 스페인에서 지내는 동안 한 해의 일상을 담은 『스페인의 빨간 맛』이다.
저자가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 한 해를 보내기 전까지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그 한 해 동안 발자취를 남겼던 나라의 사진들을 볼 때면 내 가슴이 다 설레었다.
"여자 혼자 여행하면 위험하지 않나요?"
저자 또한 글 첫 머리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허나 저자는 이에 대한 질문에 똑부러지게 답한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로써, 여행자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에는 절대 가지 않고 해가 지고 나면 절대 혼자서 돌아다니지 않고 낯선 이의 호의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지침들을 말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혼자 여행'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여자 혼자 여행', 국내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 '해외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 등 키워드들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자 혼자 여행 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그만큼 여자 혼자서 여행가는 것이 많이 늘었음을 의미한다.
저자를 비롯하여 혼자서 여행다녀오는 여성분들 보면 그 용기가 참 부럽다.
스스로 겁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조금 겁이 있어서 혼자 여행, 1박은 꿈도 못 꾸는 것 같다.
(그래도 당일치기로라도 국내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도 여행이라 생각해본다.)
또한, 저자가 여자로서 여행하는 것이 참 좋았다고 언급했는데 나 또한 이 부분에 참 공감한다.
여행에 포함시킬 순 없으나 미국에 잠시 가 있을 때 일행과 잠시 떨어져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 올 때마다 너도 나도 친절하게 도와주셨던 기억이 있다.
낯선 곳에 동 떨어진 것이 처음이었는지라 당시 매너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던, 수트가 잘 어울리셨던 할아버지부터 키가 엄청 컸던 대학생 오빠까지 도와주셨던 분들을 다 기억할 정도이다.
여행 중에 나는 무엇을 바라 소비하는가.
행복한 여정을 완성하는 현명한 소비의 방향을 파악하기란 내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다만 여행 중에 내가 취한 그 모든 결단과 행동이 나의 행복뿐 아니라 상대의 기쁨을 함께 목표한 것이었을 때 내 마음에 요동 없는 깊은 만족이 알더라는 것만을 경험적으로 알 뿐이다. 채워지지 않은 지혜를 희구하는 연유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여행길 위에 나는 서 있지 않던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한 예감이 나를 찾아온 건.
…… 내가 걸어둔 옷가지들과 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이웃들의 빨래가 사랑스러웠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갖은 생활의 소리들도 듣기에 좋았다. 이곳에서는 나 역시 내 민낯을 부끄럼 없이 내보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빨래를 널고 화분을 키우고 바람을 맞고 주민들의 생활을 돌아볼 내 모습이 선연히 그려졌다.
'나는 아마 이곳에서 살게 될 것 같다.'
이러한 강렬한 순간이 있었기에 저자가 발렌시아에 오랫동안 머물었지 않았나싶다.
책 속 내용을 읊기만 해도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이 완연한 도시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니깐.
책은 진즉 읽었었고 외출할 때면 갖고 다니던 책이 한동안 이 책이었기에 벌써 두 번을 읽고도 중간 중간 좋았던 부분들을 한 번은 더 봤으니 저자가 머물렀던 루트들이 내 머릿속에서 선연하게 그려진다.
해외 경험이 드물어 저자가 발렌시아에서 느낀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순 없지만 마음까지 평안하고 고요해지는 곳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다라는 느낌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