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초라한 스물아홉이 되었다
김세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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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늘 바라기만 하고 풍족하지
못한 환경을 원망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당연한 부모의 희생만큼
당연한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자식의 도리였다.
부모의 희생처럼 너무도 당연한 것이
자식의 도리였건만 나는 늘 자식의
도리는 쏙 빼고 부모님의 희생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사회는 학교라는 집단에서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차별이 존재한다.
그래서 내가 가진 능력에 따라
생활 수준이 정확하게 갈린다.
성인이 돼서 그냥 대충 살다 보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잘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뭐 해 봐야 딱히 변하는 게 없다며 빈둥거리고 되는 대로
살면서 금보다 귀한 청춘을 똥보다 싼 값에 치르고 말았다.
그렇게 값싸게 치른 청춘으로 나는 초라한 29살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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