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 물랭호텔 1 - Hoôtel du Moulin
신근수 지음, 장광범 그림 / 지식과감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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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룬 것이 없다. 혹시 이룬 것이 있다면, 살아오면서 이룬 것이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들과의 인연에 감사한다.
감사할 줄 아는 것에 관해서라면, 손주들이 태어나서 함께 생활하며 새롭게 배웠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보아도 우리 같은 평범한 호텔로서는도저히 욕심내기 어려울 수준의 가격이었다.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안타 까웠다. 동경의 그림값이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는 것, 파리 그림 시장보다.
도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시회 개막식이 끝난 뒤, 그는 나를 위하여 동경 안내를 해 주었다. 나의 구미에 맞추어 전통 일식집에 초대하고, 긴자의 유명 식당에서 온 가족이 참석한 저녁식사 자리를 갖기도 했다. 단골 고객에게 감사할 목적으로 방문했는데, 내가 큰 대접을 받는 결과가 되었다.

영어 선생으로는 유능했지만, 경영 능력은 그에 못 미쳤던 모양이다. 학원 사업에 실패한 후, 부인과 헤어진 것으로 짐작되었다. 나이또 씨가 말했다.

"제 평생소원이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었어요. 물랭호텔에 예약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과묵하지만 친절한 성격을 가졌다. 매너가 점잖아서 모든 근무자들이 좋아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도록 부담 주지 않으려 배려했다. ‘영국 신사란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잠시 대화를 멈추고, 세 잔째의 포도주를 마셨다. 갑자기 한순간, 지구가 회전을 딱-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과 열흘 전, 포먼 씨는 내 앞에 서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인사말도 나누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한 줌의 재가 되어 유리병 속에 담겨져 돌아왔다. 살아 있음의 허무함, 죽음의 더 허무함.

포면 2세는 다음 날, 포르투갈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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