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스테이트
시몬 스톨렌하그 지음, 이유진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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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사로잡는 공상과학의 세계로, 『일렉트릭 스테이트 THE ELECTRIC STATE』

 

 

 

 

 

『책에서 마주친 한 줄』

 

누군가 감지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악귀들을 심연에서 소환하 코드가 그 잡음에 담겨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보기에 자네는 여전히 그 모든 일에 관해 전형적인 20세기식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어. 자아는 어떤 식으로든 뇌에 있어, 마치 눈 뒤에 조종석에 앉은 작은 조종사처럼. 이른바 '자아'란 우리의 기억과 강력한 감정, 그리고 우리를 울게 만드는 그런 일의 혼합체이며, 그외 모든 것 또한 뇌 속에 있다고 자네는 믿을 거야. 자네가 근육이라고 배운 심장 안에 있다면 아주 이상할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자네는 그 모든 것이 자네라는 사실, 자네의 생각, 경험, 지식, 취향, 그리고 의견이 자네 두개골 안에 모두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어 하지. 그래서 자네는 그런 문제들을 곱씹는 대신 '뭔가 더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막막한 어둠 속을 부유하는 투명한 기체 같은 물질의 흐릿한 상(像)에 만족하곤 해.

 

아침에 깨어보니 바람은 잠잠했고 차 밖에는 거대한 노란 오리가 여럿 보였다. 순간 나는 오리들이 밤새 폭풍에 실려온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우리가 잠을 잔 곳은 알고 보니 일종의 사격장이었다. 오리들은 모두 다양한 종류의 대구경 탄환 세례로 만신창이였다.

 

내가 하려는 말은 우리가 라자냐라 부르는 건 실제로는 뇌의 물리적 부분과 그 부분들이 조립되는 과정 사이의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거야. 누구든 라자냐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면 뇌의 복잡성과 다양하게 조립할 수 있는 뇌의 구조를 과소평가한 거야. 그게 아니면 라자냐라는 현상 자체를 과대평가했든가.

전쟁 중 터무니없이 많은 뇌세포들이 접촉한 부작용으로, 군의 뉴로그래프 네트워크 안에 벌집형 지능이 형성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건 다뇌간 지능이라고 불렸지. 그 사람들은 이런 고등 의식이 조종사의 생식 주기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물리적 형태를 취하려 했다고도 믿었어. 그 주장이 맞다면 전쟁시에 일어난 조종사들의 사산이 모두 그 고등 의식 때문이란 뜻이야.

 

다만 통합주의자들은 돈이 무척 많다는 사실과 그 신성한 소년이 그들에게 귀중하다는 사실은 신경 쓸 필요가 있어. 이 일은 아마도 우리의 마지막 기회일 거야, 그러니 만일 이 일의 어떤 점이 자네 마음을 뒤흔든다면, 우리 발밑의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려. 거리는 곧 통행 불가 상태가 되고 손 닿는 데 있었던 기회는 모조리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도록.

 

우리가 하는 짓은 문명인의 행위가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일은 자네에게도 틀림없이 일어났어. 자네는 나와 똑같이 어느 날 잠에서 깨서 갑자기 숙명을 깨달았던 게 틀림없어. 우리가 더는 문명화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걸.


 

『하나, 책과 마주하다』

 

세상은 전쟁으로 인한 잔재들과 뉴로캐스트를 쓴 채 죽어있는 시체들로 즐비하다. 마치 쓰레기장이 된 것 마냥 황량하기 그지없다.

뉴로캐스트란 인간의 뇌와 직접 연결되어 작동하는 가상 현상 기술인데 결과적으로 전쟁은 드론 조종사들의 승리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엉망이 되었다.

먼지만이 폴 폴 날리는 땅, 그 위를 걷는 이들이 있었다. 한 소녀와 노란색의 조그마한 로봇이다.

서쪽을 향해 걷던 그들은 검은 올즈모빌 세단에 멈춰서게 된다.

먼지만 뿌옇게 앉아있을 뿐 올즈모빌은 아주 멀쩡했고 그 옆에 차주로 보이는 노부부가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었다.

여자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지만, 남자의 왼쪽 주머니에는 차 열쇠와 접힌 봉투 하나가 있었다. 봉투 안에는 뭔가 끄적여 놓은 도시의 지도 하나, 10달러 지폐 한 장, 센터 사의 자극 TLE 두 대를 사고 받은 영수증 하나, 그리고 캐나다 입국 허가증으로 보이는 종이가 두 장 있었다.

운 좋으면 태평양까지 편하게 운전하며 갈 수 있을 것 같아 소녀는 시동을 켰다.

소녀는 처음부터 로봇과 함께 떠도는 신세는 아니었다. 아니, 여기저기 전전하며 살았으니 떠돌았던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함께 3년 정도 지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두 달 뒤에 테드와 버짓 부부에게 맡겨지게 된다.

그녀에게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렇게 강제로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위탁 가정에서 적응하며 살지는 못했다.

어느 날 위탁 부모와 함께 자동차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중간에 들른 국립 공원 내 선물 가게 바깥 좌석에서 부부는 소녀를 모욕하였고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해 옆자리의 쟁반을 들어 버짓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위탁모의 코를 부러뜨리고 나서 서머글레이드에 보내진 소녀는 어맨다를 만나게 되는데 이 일은 그녀에게 있어서 호재나 다름없었다.

어찌되었든 그녀가 원하는대로 세상이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아직 찾아오지 못했다.

동생과 생이별을 하였고 위탁 가정에서 적응하지도 못했고 그나마 그녀에게 위로였던 어맨다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종말이 온 듯한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서 자살을 결심한 그녀에게 찾아온 로봇은 그녀를 서쪽으로 이끌게 된다.

 

읽는 내내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와 함께 글을 읽다보면 그 몰입도가 배가 되는 것 같다.

소녀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 이 소설은 1997년이 배경인데 꼭 미래에 머지않아 일어날 듯한 느낌이 왜 드는지 모르겠다.

소녀와 로봇과 함께 모하비 사막을, 산맥을, 해안을, 바다를 함께 다니며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기분이었다.

 

SF소설을 읽다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SF를 쓴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어쩌면 저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상상이 들어서인지 글도 일러스트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중간에 일러스트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책을 덮기도 했다. 그 정도로 보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벤져스의 제작진에 의해 영화화 될 예정이라고 하니 너무 기대된다.

공상과학에 푹 빠져보고 싶다면 『일렉트릭 스테이트 THE ELECTRIC STATE』를 추천한다. 눈을 사로잡는 일러스트가 분명 당신의 마음에 들 것이다.

누군가 감지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악귀들을 심연에서 소환하 코드가 그 잡음에 담겨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하려는 말은 우리가 라자냐라 부르는 건 실제로는 뇌의 물리적 부분과 그 부분들이 조립되는 과정 사이의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거야. 누구든 라자냐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면 뇌의 복잡성과 다양하게 조립할 수 있는 뇌의 구조를 과소평가한 거야. 그게 아니면 라자냐라는 현상 자체를 과대평가했든가.

우리가 하는 짓은 문명인의 행위가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일은 자네에게도 틀림없이 일어났어. 자네는 나와 똑같이 어느 날 잠에서 깨서 갑자기 숙명을 깨달았던 게 틀림없어. 우리가 더는 문명화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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