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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 우리 힘내봐요,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소설 속 내용들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결혼, 이혼, 출산, 양육문제, 실업난과 가계부채 그리고 노후 문제까지, 현 시대에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서울에 와서 처음 같이 지낼 때는 방을 얻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을 구할 때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울생활에 대한 기대에 비해 서울에 대해 잘 몰랐고 독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지와 막연한 희망만이 우리를 끌고 가는 연료가 되었다. …… 신세한탄을 좌절로 마무리하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붙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깜깜한 하늘에서 우리가 품은 희망은 폭죽처럼 금세 빛을 잃고 말았다.
이혼한 뒤 밤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일요일에는 조기 축구를 하고 휴일에는 등산을 하며 지냈다. 전처나 결혼생활이 그리워지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애가 없어서 이혼이 쉽기도 했고 이혼한 마당에야 애가 없는 편이 나았다. 새로운 연애에 대한 관심이나 재혼 생각도 생기지 않았다. 다만 거리나 마트에서 뒤뚱거리며 걸어다니는 꼬마아이들을 보면 자꾸 눈이 갔다. 아이가 있었다면 전처를 견디며 살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 은호는 옥상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약간 경계했으나 올라가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무감해졌다. 그러나 밑에서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보는 건 달랐다. 난간 위의 사람은 검은 점퍼 차림의 중년 남자였고 검은 털모자까지 써서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 은호는 옥상 위의 남자를 지켜보며 담배를 피웠다. 비벼 끌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상태였다. 아까의 쿵 소리와 남자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저 바람을 쐬고 있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뛰어내릴까봐 눈을 뗄 수 없었다.
"많은 걸 편하게 만들지요.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도 하고요." 남자는 죽는 순간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병원의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들도 죽음을 지켜보지 못하고 대부분 사망선고 이후에 통보받는다. …… 가족들은 각자 시간을 내서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자신의 슬픔은 알아서 추스르면 그만이다. 죽음은 변하지 않았고 죽음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죽음의 처리나 절차, 의식은 점점 간소화되고 세련되게 포장되었다. 슬픔이나 애통함은 밖으로 흘러넘치지 않게 단속하고 죽음 자체도 전선처럼 피복에 싸서 땅 밑에 묻어버리거나 송전탑처럼 높이 띄워버렸다.
첫번째 에피소드 [에트르], '나'는 백화점의 한 베이커리 에트르에서 일하는데 집주인이 월세나 보증금을 올리겠다고 말하자 연말인 밤에 집을 보러 간다. 막상 가보니 '나'가 살고있는 동네와 너무 똑같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더 소름돋는 건 집 보러 오던 여자가 야근때문에 집을 보여줄 수 없다고 연락이 온다. 휴, 그런데 더 소름돋는 일이 생긴다. 큰맘 먹고 산 에트르의 케이크를 모르고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그게 '나'의 삶이다.
마지막 에피소드 [변해가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들여보내야 하는 날인데 딸이 곧 아이를 낳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렇게 '나'는 딸이자 엄마이자 할머니가 될 자신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돌아본다.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지만 인생은 굴곡의 연속임은 틀림없다.
앞서 언급했지만 여섯 개의 에피소드 속 주인공들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으니깐.
굴곡없이 평탄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까?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게 사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
읽다보면 크게 공감될 수 있는 내용이라 우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크게 바라지 않아도 소소한 행복을 찾아 살아가며 마음 한 구석에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