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망, 너무 사양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마망 너무 사양해 -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꼬마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한마디
이화열이 쓰고 현비와 함께 그리다 / 궁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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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맘마미아>를 보다보면 내일 결혼할 딸의 발에 페디큐어를 발라주면서 엄마가 노래를 하는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 가방을 매어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자신을 떠난다니 서글픔과 대견함이 교차하는 듯 그런 노래가 나온다. 어린 시절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에 하나는 내가 자랄수록 부모님이 늙어간다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늙어가는 게 한탄스러울 뿐이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얼른 자라서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거나 키가 엄마의 머리 위로 웃자란 내가 거울에 비칠 때 엄마는 내가 큰 것이 자랑스러운 듯도 했고 서글픈 듯도 했다. 품안의 자식이라던가. 이제 키가 엄마의 머리 위를 넘어선 지는 오래라서 더 이상 내가 자랄수록 늙어가는 게 당연한 순리란 말은 하지 않으시지만 자식은 언젠가 부모를 떠나갈 '슬픈 사랑'이란 자조적 말씀을 흘리시곤 한다. 이 말도 그리 듣기 좋지는 않다.

모성이 만들어진 신화라는 것을 알아도 엄마는 완전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어린 시절도 지금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 <마망, 너무 사양해>에서는 완전하지 않은 엄마가 꼬마 철학자를 만나 웃음을 터뜨리고 산타에 대한 환상을 유지해주지 못해서 서글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고 덜컥 그 자리에 정착을 했고 단비, 현비라는 귀여운 남매를 둔 엄마의 이야기다.

엄마가 발톱을 깎아줄 때 간지럽지 않으니 여섯 살이 될 만하고 단 것 앞에서는 자제력도 사라지는 아들 현비와 자신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으로 후에 자신 같은 딸을 가지고 싶다는 딸 단비의 이야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보게 된다. 아이들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 도서관으로 달려야 하니 난처하기도 하고 자몽주스를 사놓지 않았다고 성을 내는 남편 앞에서 부글부글 화가 끊기도 한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한 동시에 이색적이다. 파리의 주부라서 여기와는 모습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사는 엄마 특유의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다. 아이에게 지능지수를 설명해주다가 곤란해 하기도 하고 바캉스에 갈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터에 자신만은 좀 떼어놓고 가라고 하소연하기도 하는 것이다. 월반한 아이에 대한 걱정을 달고 있기도 하지만 의젓하게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문제라고 답하는 말에 놀라기도 하고 그 와중에 이중문화에 대한 긍지를 품은 아이들에게 감탄하기도 한다.

생명의 탄생이 경이라면 그렇게 태어난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며 키우는 것은 인내일 것이다. 사람의 아이를 키우는 데는 다른 동물에 비해서 너무 오랜 시간이 든다. 언젠가 그게 손해라고 느껴지지 않는지 궁금해서 엄마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키우는 동안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말이다. 엄마의 자긍심이며 즐거움이었다는 말, 그 말을 들은 순간에는 나도 이 책의 아이들처럼 '마망, 너무 사양해'라고 답하고 싶었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놀라게 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마음 편하게 읽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떠올리게 된 건 그 와중에 얻은 덤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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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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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책은커녕 먹고 자고, 아픈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앓았다. 시작은 대수롭지 않았는데 내버려둔 것이 화근이었는지 다음 날이 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말았다. 살려고 간신히 몸을 움직여 병원에 갔다가 돌아와 멍하니 시간을 보냈는데 어찌 시간이 흘렀는지 제대로 기억에 나지도 않는다. 아프고 또 아팠다는 기억만 남은 공백의 5일이랄까. 5일이 지나서야 쌓인 책이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정신이 그제야 든 것이다. 그나마 아직 독기가 다 빠지질 않아서 부담스러운 내용은 읽고 싶지 않았고 에세이 몇 권을 집어 들었다. 병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삶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와 사진집이라고 한다. 무거운 삶이 내리누르고 있는데 그 위에 다른 짐을 얹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이 책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는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간신히 벗어나기 시작한 고통의 그림자에서 적적한 시간을 때울 가벼운 에세이 정도였던 것이다.

제목대로 이 책은 도시를 고향으로 여기지만 덜컥 산골생활에 눈을 돌리고 빠지고 만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필례에 들어갔다가 필녀라는 사람을 만나고 어느 순간 필녀와 자신의 입장이 바뀌어 있음을 발견한다. 한때는 객이었으나 이제는 자신이 산골 생활의 주인이 된 것이다. 오히려 필녀가 놀러 와 아이들이 주는 카네이션에 감탄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물론 세쌍둥이 엄마의 산골생활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때는 보신탕이라고 하면 기겁을 하던 사람이 개다리를 삶아서 건지고 있어서 친정어머니를 식겁하게 만들기도 하고 벌을 치다가 쏘여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아이 셋을 그것도 세쌍둥이를 건사하는 일은 어디 쉬웠을까. 그래도 그녀는 씩씩하게 살아간다.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낀 사람마냥 다 끊어냈다가도 먹고 살자니 하게 된 방장사, 밥장사에서 만난 손님들에게 정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오히려 손님이 오지 않을 때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녀의 산골 생활은 이 짓을 하지 않고 오두막에 살다가 땅을 팔았다면 떵떵거리고 살지 않을까 하는 회한에 잠기기도 하지만 세쌍둥이의 예쁜 짓에 웃음 짓고 김장거리를 잔뜩 쌓아 놓고도 아이들과 별을 보는 사치를 누리기도 한다. 그 와중에 장터에서 장을 볼 때마다 느끼는 즐거움이나 길이 뚫려서 마트로 영화관으로 놀러가면서 도시에 대한 향수병을 달래는 색다른 기쁨을 펼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제각기 다 독특하고 그러면서도 다 평범하다. 얼마나 아플지의 대략적인 기간을 묻기 위해 주치의에게 '평균적 기간'을 물어봤다. 결국 나라는 개인은 독특해보이지만 전체로 치면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쌍둥이 엄마의 산골이야기도 그런 면에서 독특하면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에 평범하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더 독특하게 부럽게 느끼게 되는 것은 도시 사람 특유의 산골 생활에 대한 동경 때문일 것 같다. 아니면 일을 미뤄두고 별을 보러 나가는 여유를 잃고 있기 때문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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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2010-03-0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안님,
'사람의 인생은 제각기 독특하고 그러면서도 다 평범하다.'에 공감합니다.
아프신 와중에도 책을 읽어주심,리뷰를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완쾌되셨으리라 여기며 즐거운 봄 날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올려주신 리뷰 '건강하게 살아가기'
저희 세쌍둥이네 풀꽃세상 홈페이지 (www.jindong.net) 풀꽃사는 이야기방으로 퍼가는 것을 신고합니다.
 
흑백합
타지마 토시유키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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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은 흔히 순결의 상징으로 불린다. 하지만 머리가 떨어지는 꽃이라 병문안에 가져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한다. 사소한 것, 마지막 한 조각이 그 사람의 평가를 바꿀 수 있다. 추리소설은 크게 두 종류의 추리소설이 있다. 이른바 정통파라 불리는 것은 책의 시작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탐정역할을 맡은 사람이 조사를 해 나간다. 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던져놓고 군데군데 복선을 심은 다음 마지막에 전체 그림을 바꾸는 한 조각을 던져두는 종류의 것이 있다.

이 책 <흑백합>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순결의 상징으로 불리지만 일견 머리가 떨어지는 재수 없는 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다가 검은 색 백합이라니 그 이미지가 묘하게 일그러진다. 책은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청춘소설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1935년과 1952년을 오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전후를 배경으로 한 소년 소녀의 깨끗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이 주인공 뒤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모든 이야기는 어두운 그림자의 조각들이다. 청명한 바람에 휩쓸려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랄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1952년 롯코 산에 있는 아는 사람의 별장에 놀러오게 된 소년 스스무는 별장집 아들인 카즈히코와 여름을 보내게 된다. 스스무는 그 곳에서 카오루라는 당돌하면서도 묘한 구석이 있는 소녀에게 빠져든다. 세 명의 소년 소녀 각각의 여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소년들은 소녀에게 열을 올리고 그 와중에 소년들의 아버지들의 인연부터 숨은 사건이 곁가지처럼 흘러간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그 그늘의 고리는 너무 깊어서 미처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카오루에게 연심을 품고 만 소년들은 그 해 여름 그녀를 따라서 이리저리 다닌다. 그 와중에 아버지들이 1935년에 수행했던 대기업의 회장님을 만나기도 하고 도도한 자세로 '롯코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성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소년들은 카오루를 만날 수 없는 날이 너무 지루하기만 했다. 그들은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는 개구리였고 편향된 시선으로 상황을 읽어나간다. 그 와중에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은 독기를 뿜어내지만 어린 아이들의 시선으로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자신과 상대에 대한 것뿐이었던 것이다. 반면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조각이 들어오자 전체 그림이 바뀌는 느낌이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단 한 조각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던 것이다. 숨은 의미와 곁가지처럼만 느껴졌던 어른들의 추억담, 이해할 수 없었던 묘한 행동들이 전부 맞아 들어가 버렸다. 사람의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하늘을 보기 때문에 결코 읽을 수 없었던 것을 추리소설로 바꿔놓은 기분이었다. 자신들의 순수한 시절에 집착하느라 미처 읽지 못했던 타인의 독기랄까. 죄는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더니 이번 것은 좀 지나치게 깊었던 것 같다.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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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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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가 그림자를 쫓아 좁은 골목을 달리는 여우의 모습을 보았다. 그림자는 여우를 유인해 자신의 사무실로 끌어들인다. 그림자로 살면서 탐정을 하는 자가 여우에게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후에 영혼을 탐해서 악역으로 변해버리는 그림자 탐정의 모습은 은근히 대필 작가와 맞아 떨어졌다. 사람의 말도 그렇지만 글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담긴다. 말이 그 사람의 생각을 수제비처럼 뚝뚝 끊어낸 것이라면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은근히 졸여서 완성하는 것이라서 그 사람의 생각이 알게 모르게 배어난다.

그런데 대필 작가라.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써주고 그림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갑갑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림자 탐정처럼 영혼(이름)을 원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잘 풀리면 좋겠지만 문제가 생기면 악역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대필 작가를 만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대가의 소설을 대신 쓰다 살인을 벌이고 만 범인으로 등장하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는 이야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에서는 달랐다. 주인공은 대필 작가로 살고 있지만 특별히 쓰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출판사에서 일해서 글재주는 있지만 다른 일자리는 마뜩찮아서 대필 작가 일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의 대필은 말 그대로 자서전이나 여행기를 대신 써주는 수준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대가의 것을 대신 써주면서 데뷔를 기다리는 우울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계가 어려운 글쟁이가 선택할 법한 새로운 직업군이랄까.

주인공은 '제3의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대필 작가로 살아간다. 불편한 정도의 가난을 겪으면서 살고 있지만 때때로 들어오는 일감을 소신에 따라 거부하거나 잠에 취해 상담 전화를 받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사치만큼은 누리고 있었다. 그는 타인의 글을 담담하게 대신 써주면서 살아간다. 아직 쓰고 싶은 것이 없는 그에게 대필을 그저 생계 수단일 뿐이다. 그는 대필을 부탁하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인생사를 한 올 한 올 풀어 가는데 그 과정은 그의 글처럼 담담하다.

누구의 인생이나 이야깃거리는 있고 풀어내자면 과장을 할 법도 한데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상처럼 단조롭다. 그럼에도 눈길을 끌고 그 속 이야기도 조금씩 궁금해졌다. 작가의 말 중에서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기분이었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흔하되 흔치 않은 모습이고 일상이면서도 일상 속에서 도드라진다. 그 사람이 왜 울고 있나하는 찰나의 궁금증을 품고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제목이자 주인공의 아내가 남긴 문패의 문구인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란 말의 의미도 궁금하고, 주인공이 동네에서만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애견 태인이의 운명도 궁금하지만 소설을 평탄하면서도 몽환적으로 그러면서도 따스하게 흘러간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언젠가 마르고 그 눈물이 따스하게 닦아주는 손길이 있다면 더 쉽사리 달래질 수도 있는 것처럼 호기심은 있되 천천히 담담하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책이라 소설치고 편안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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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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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코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평소 충동구매를 하는 편이 아닌데 이메일로 온 쇼핑몰 광고메일에서 그 코트를 발견한 이후 2주간이나 그 코트가 아른거렸던 것이다. 사실 2주간을 끙끙댔으니 충동구매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진만을 보고 주문한 물품은 받은 순간 약간의 당혹감과 사소한 거슬림이 남았다. 디자인도 그대로고 마음에 쏙 든 것도 맞지만 단 한 가지가 거슬렸던 것이다. 바로 단추였다. 디자인을 위해 보이지 않게 만든 단추가 전부 똑딱이 단추로 되어 있었다.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훅 잡아당겨야 되는 단추는 사소한 걱정을 달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꼼꼼하게 달려 있지 않던 단추는 우려대로 시착을 했을 뿐인데 달랑거리는 모습을 선사해서 음침한 불만의 씨앗을 남겼다. 확 잡아당겨야 하므로 옷감이 상하면 어쩌나 하는 소심함은 그렇다고 쳐도 말이다. 결국 전부 꼼꼼하게 다시 달아야 했는데 그 동안 입에 똑딱이 단추에 대한 불만을 달고 살았다.

사소한 것들, 그런 것들이 바로 사람을 거슬리게 하고 바로 그런 것들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이 책 <사소한 발견>은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물품에 대한 에세이와 사진을 담고 있다. 단추에서 포크와 숟가락까지 소재도 다양하다. 사물에 대한 생각들, 경험들이 다양해서 흥미롭게 보게 되는 동시에 누구나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물에 대한 생각이므로 편안하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가령 저자의 사물에 대한 생각이나 경험담을 읽으면서 자신이 그 사물에 대해서 했던 생각이 덧붙는 식이다. 책 끝부분에도 사물에 대한 사진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적어볼 수 있는 칸이 따로 달려 있다.

첫 번째 단추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잃어버린 단추가 신경 쓰여서 어쩔 줄 몰랐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단추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는 여자에 대한 단편을 쓴 이야기까지가 들어 있다. 나는 당연히 최근 똑딱이 단추에 대한 불만과 오래 전 맞는 단추를 찾아서 엄마와 남대문 시장에 갔던 기억까지 다양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사물에 대한 단상들이 흘러가는데 타자기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키보드 대용으로 쓸 수 있다는 말에서는 부러움을, 연필을 깎는 즐거움을 말하는 데서는 자신의 서툰 연필 깎는 솜씨에 대한 아쉬움을, 사고의 연장으로 클립을 떠올리는 데에 대한 부분에서는 슬며시 멋쩍음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는 종이에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스테이플러보다는 클립이 좋다고 했지만 종이에 태연히 상처를 주는 스테이플러를 선호해왔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클립으로 리포트를 묶어서 제출할 경우 은근히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클립으로 묶어서 내라고 하지 않는 한 그렇게 내면 감점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면 종이에 상처가 난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해봤거나.

이 책 <사소한 발견>은 편안한 시간에 읽기 좋은 책이다. 타인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경험을 되새길 수도 있고 사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쌓아갈 수도 있다. 이 책을 읽고 주위를 돌아보니 사소한 물품들이 주위를 둘러쌓고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어느 것 하나 사소한 것 없이 위대한 발명품들뿐이다. 몇 천 년의 기술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종이와 또 그 이후 오랜 시간이 걸려서 만들어진 지식의 정수인 책부터 짹깍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시계까지 말이다. 그것들이 좀 더 특별한 것은 어떠한 사소한 것들이라도 누군가의 놀라운 발견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이 책 <사소한 발견>에서처럼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기억의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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