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가 그림자를 쫓아 좁은 골목을 달리는 여우의 모습을 보았다. 그림자는 여우를 유인해 자신의 사무실로 끌어들인다. 그림자로 살면서 탐정을 하는 자가 여우에게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후에 영혼을 탐해서 악역으로 변해버리는 그림자 탐정의 모습은 은근히 대필 작가와 맞아 떨어졌다. 사람의 말도 그렇지만 글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담긴다. 말이 그 사람의 생각을 수제비처럼 뚝뚝 끊어낸 것이라면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은근히 졸여서 완성하는 것이라서 그 사람의 생각이 알게 모르게 배어난다. 그런데 대필 작가라. 다른 사람의 글을 대신 써주고 그림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갑갑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림자 탐정처럼 영혼(이름)을 원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잘 풀리면 좋겠지만 문제가 생기면 악역으로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서 대필 작가를 만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대가의 소설을 대신 쓰다 살인을 벌이고 만 범인으로 등장하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는 이야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에서는 달랐다. 주인공은 대필 작가로 살고 있지만 특별히 쓰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출판사에서 일해서 글재주는 있지만 다른 일자리는 마뜩찮아서 대필 작가 일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의 대필은 말 그대로 자서전이나 여행기를 대신 써주는 수준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대가의 것을 대신 써주면서 데뷔를 기다리는 우울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계가 어려운 글쟁이가 선택할 법한 새로운 직업군이랄까. 주인공은 '제3의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대필 작가로 살아간다. 불편한 정도의 가난을 겪으면서 살고 있지만 때때로 들어오는 일감을 소신에 따라 거부하거나 잠에 취해 상담 전화를 받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사치만큼은 누리고 있었다. 그는 타인의 글을 담담하게 대신 써주면서 살아간다. 아직 쓰고 싶은 것이 없는 그에게 대필을 그저 생계 수단일 뿐이다. 그는 대필을 부탁하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인생사를 한 올 한 올 풀어 가는데 그 과정은 그의 글처럼 담담하다. 누구의 인생이나 이야깃거리는 있고 풀어내자면 과장을 할 법도 한데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상처럼 단조롭다. 그럼에도 눈길을 끌고 그 속 이야기도 조금씩 궁금해졌다. 작가의 말 중에서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기분이었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은 흔하되 흔치 않은 모습이고 일상이면서도 일상 속에서 도드라진다. 그 사람이 왜 울고 있나하는 찰나의 궁금증을 품고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제목이자 주인공의 아내가 남긴 문패의 문구인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란 말의 의미도 궁금하고, 주인공이 동네에서만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애견 태인이의 운명도 궁금하지만 소설을 평탄하면서도 몽환적으로 그러면서도 따스하게 흘러간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언젠가 마르고 그 눈물이 따스하게 닦아주는 손길이 있다면 더 쉽사리 달래질 수도 있는 것처럼 호기심은 있되 천천히 담담하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책이라 소설치고 편안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