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문>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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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 시절 9월 11일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평소 습관대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세계 무역 센터 건물에 여객기가 부딪히고 화염이 치솟았으며 건물에서는 잔해와 알 수 없는 작은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 작은 것들은 사람이었다. 방금 일어나서 멍한 머리로 생각하기에 그건 도무지 현실일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당연히 영화의 한 장면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침 뉴스기는 했지만 가끔 뉴스에서 문화가 산책이라면서 영화를 소개해주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한낮에 하는 뉴스에서나 그랬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날 종일 그리고 그 날이 지나서도 계속하여 그 장면은 반복 보도 되었고 세계 무역 센터 자리가 잿더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묻힌 잿더미 말이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사실이라고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동기조차 납득하기 어렵기만 하다. 사람이 벌인 가장 오래된 범죄 중 하나가 살인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납득이 가는' 동기가 존재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나마 치정이라든가 돈 문제와 관련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약간이라도 드는데 반해서 전혀 납득이 가지 않고 그렇기에 더 무서워지는 사건들이 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거나 문화나 예술에 대한 몰이해를 폭력으로 드러내는 반달리즘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 책 <달의 문>에서는 납득이 가는 동시에 가지 않는 살인 동기가 등장한다. 차라리 흔한 동기라면 납득이 가면서 약간이라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납득하기 어렵기에 살인자의 악의가 더욱 두려워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동시에 그 사람들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동기가 묘한 것이라서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 속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달의 문>이다. 전작에서 살인자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거나 살인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소설을 써온 저자는 이번에도 범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다만 그들이 벌이는 범죄는 살인이 아니라 비행기 납치다. 물론 비행기를 점거하는 와중에 아직 어려서 반항이 어려운 유아들을 인질로 삼고 여차하면 죽일 생각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 비행기 납치라는 진행 중인 범죄가 있는 상황에서 예상 못한 살인이 벌어진다.

비행기라는 거대한 밀실을 배경으로 한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비행기 납치범들은 쓸데없는 요소를 줄이고자 우연히 사건에 말려들은 커플 중 남자 쪽에게 탐정역을 맡긴다. 심지어 그의 이름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고 입은 티셔츠에 쓰인 대로 자마미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투덜거리지만 의외로 명석하게 사건을 풀어가는 자마미군의 밀실 살인,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 같이 보였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죽일 각오를 하고 비행기를 점거한 납치범들의 비행기 납치, 예상치 못했던 결말과 숨은 악의의 세 가지 흐름이 모든 복선이 숨어 있는 동기의 색채를 따라 흐르고 또 모아지면서 이야기는 미묘한 감정을 자아냈다.

진행 중인 범죄가 따로 있는 가운데 끝나버린 밀실 살인이 다른 사건과 어떠한 연관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가 이색적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인 동기였다. 겨우 그런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냐고 외치던 자마미군의 노호성대로 '겨우 그런 것'인 동시에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동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니 두려워졌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동기는 납득이 가도, 가지 않아도 섬뜩하다. 그런 면에서는 '겨우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쪽이 정신적으로 건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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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유쾌한 과일 - 나오키 문학상 수상작가 하야시 마리코 대표작
하야시 마리코 지음, 정회성 옮김 / 큰나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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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위대한 미스터리이고 그 실체를 파헤치고 부수는 이야기 따위 듣고 싶지 않다는 비명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최대 3년이라는 이론이 제시되었다. 사실 사랑의 형태는 한 가지가 아니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개인차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평생도록 처음 만난 것처럼 사랑에 빠져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금세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이 길어야 3년이라는 이야기에 따르면 평생 동안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열정적 사랑의 기간은 3년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열정적 사랑이 아니라 같이 있으면 편안한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함을 품은 사랑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열정적 사랑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사랑으로 변한 것을 더 편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연인과의 일생을 편하게 때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런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다기보다 사랑에 빠져 있는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단순히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서 오싹한 긴장과 피 끓는 열정을 원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이 책 <불유쾌한 과일>에선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마야코, 삼십 대에도 원숙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여자다. 결혼한지는 좀 되었으나 도통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쾌락 지상주의자였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누릴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공들여 미모를 손보는 마야코에게 임신은 몸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자 시어머니의 간섭이 더 심해지고 끝내는 같이 살게 될지도 모르는 길이었으니 그 쪽으로는 관심도 없었다.

거기에 지나치게 친밀한 모자지간도 불만이었다. 결혼 전에는 원만한 가정에서 자라고 교양 있는 부모를 가진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참견쟁이 엄마를 가진 둔한 남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야코의 일상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불행했다면 그 시련을 과장하면서 마야코는 비련의 여주인공인 기분을, 자신이 특별하다는 기분을 과시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좀 안 좋기는 했지만 분가해서 살고 있는데다가 부딪히는 것은 명절에나 한정되어 있었고 교양 있는 척하는 시어머니는 마야코에게 심하게 굴지는 않았다. 비꼬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한 일자리도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면 되는 일인 터라 그녀는 더없이 지루했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자신의 미모에도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따분했다. 결혼 전처럼 남자의 열정적 시선을 받을 일도 없었다. 은근한 유혹을 받기는 했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 자신의 수준을 낮추는 것은 흥미가 없었다. 성적으로도 자존감에 한해서도 불만족스러워진 마야코는 불륜을 결심한다. 특별히 몸을 섞을 생각은 없었지만 예전처럼 관심과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결심을 한 이상 이제 그녀가 찾을 것은 불륜 상대를 찾는 일 뿐이었다.

결혼을 한 유부녀가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고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불륜을 선택한다는 소재라니 파격적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개 자체는 그리 파격적인 편은 아니다. 뻔하다면 뻔한 불륜 소설이지만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입센의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가 남편을 떠나는 선택이 아니라 불륜을 선택했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마야코의 행동은 지독히 이기적인 편이다. 오직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움직이고 모든 행동은 그녀 입장에서는 타당한 것이다. 죄의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녀의 편에 서기는 거북스럽지만 발칙하면서도 거리낌없는 그녀의 상상력만은 때로 웃음이 나게 한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씁쓸함이 남는 것은 제도 아래서는 그녀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그녀의 자유는 솔직함으로 통용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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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박치기다 - 재일 한국인 영화 제작자 이봉우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책!
이봉우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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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때 외삼촌이 식사를 하시다가 문득 '사람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 안에 내포된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마흔이 되기 전에도 자신의 얼굴,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책임 안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체감할 때가 많다.

그런 만큼 자신의 손으로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낙담과 울분도 생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만들어 준 길을 얌전하게 밟고 가는 사람이 칭찬을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에 일정한 궤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칭찬해 줄 누군가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꽤나 힘들다. 덕분에 어른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출발선 상에서부터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본 세상은 같은 시대라도 다른 것이었겠구나 하는 것이다.

이 책 <인생은 박치기다>의 저자 이봉우가 본 세상은 지극히 불합리하고 서글픈 정글 같은 세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웃기는커녕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 눈을 부라리고 여차하면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했던 것 같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박치기!>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사는 데에 대한 애환이 드러났다면 이 책 끝부분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 <늑대 여인>의 경우에는 어린 소년의 일상적 경험이 실려 있지만 그 느낌은 황혼이 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그가 재일 한국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몰이해와 무관심에 화내는 것을 보면서 움찔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도 재일 '한국인'이라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가 영화 <서편제>를 감명 깊게 보고 그 영화를 수입, 배급하고 싶어서 한국에 오려고 했을 때 여권이 없어서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감은 점차 커져만 갔다. 대사관에서의 기분 나쁜 경험과 어렵사리 도착한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이 의심스레 그를 지켜보는 안기부 직원이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딱히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도 의심과 차별의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영화를 수입해서 상영하려 해도 한국 영화라 거절 당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식견을 믿고 영화를 계약해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는 부분에서는 감탄을 하게도 되었다. 책 전반에서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토로하는 것도 고생담을 늘어 놓으려 한다는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제작하거나 수입하려는 영화 대부분은 아픈 이야기를 뒤에 품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5장에서 그가 자신의 본 영화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결같이 진지한 영화이고 그에 대한 생각 역시 진지해서 그가 살아온 발자취와 품고 있는 책임감이 엿보이는 느낌이었다. 잘 알지 못하기에 차별하고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 영화가 정치를 이기지는 못한다는 한탄, 조국에 대한 애증처럼 복잡한 심경을 진지한 영화 제작자의 경험담을 통해 읽어볼 수 있어서 생각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한때는 예술이나 과학 분야의 문외한이라서 잘 모른다는 말이 변명으로 통용되었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이 죄는 아닐지라도 자랑도 아니라는 일침 이후 그런 말은 올리지 않으려 한다. 또한 재일 한국인에 대해 몰랐다는 것도 어쩐지 미안하게 느껴지는 그리고 그렇게 느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른다는 것, 어떤 주제든 이제 슬슬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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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잘린 뚱보아빠>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나이절 마쉬 지음, 안시열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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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돌연사가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의 영향인지 한 교수님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40대를 무사히 살아남으면 평균 연령 이상으로 장수할 확률이 대폭 올라간다는 것이다. 40대에 돌연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평균 연령을 낮춘 것이고 그 고비를 지났다니 평균 연령을 올리는 그룹에 들어간 거니 당분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설마 정말 그럴까 싶지만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에는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아 보인다.

사람이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는 없지만 중간에 치이고 자신의 경력만을 신경쓰다보면 삶이라는 사다리에서 길을 잃기 일쑤다. 가족이 없어서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라면 홀가분하기나 할 테고 거의 없는 여유 시간을 자신에게 퍼부을 수 있겠지만 대개 40대 남성은 가장인 경우가 보통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투자하고 그 덕분에 벌어들인 돈을 쓸 시간조차 없는 처량한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가족들이 누리는 금전적 여유를 위해 모든 시간과 신경을 쏟아붓다보니 시간이 나더라도 퉁명을 떨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시간을 보내고 은퇴해서 그제야 자신을 삶을 찾으려고 하면 가족들은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다. 여기 비슷한 난관에 봉착한 가장이 한 명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아이들 4명, 회사의 사장인데다가 탄탄대로를 달리는 경력, 그로 인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까지 다른 사람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다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내와 외식 약속을 번번이 어겼고 툭하면 고함을 지르는 아빠인데도 그의 귀가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다. 심지어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홀로 라디오를 들었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네 명의 아이들이 아빠를 맞이하려 현관문을 향해 내달릴 것을 알았으면서도 말이다. 생활수준은 신입일 때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동시에 가족도 늘어서 그가 생각하는 여유를 누릴 수도 없었다. 항상 일이 최우선 순위에 있었고 집에 돌아갔을 때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소진되어 있어서 움직이기도 싫었다. 술을 마시려고 들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자기 몸 상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음에도 얼굴 안에 얼굴이 들어 있는 형상의 뚱보 아빠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잘 참아주었고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였지만 점차 그것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의 일 때문에 수없이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야 했고 그 영향인지 둘째 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인하는 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를 '응가 아빠'라고 부르는 때까지 있었다. 그 상태에 대해서 외롭다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쳇바퀴를 돌듯이 생활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일변하게 하는 거대한 사건이 터진다. 회사가 합병되면서 그가 운영하던 자회사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물론 그는 유능한 사람이었으므로 언제든지 다른 자리로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에 따라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이주해야 했다. 이사 온지 12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말이다. 그는 고민을 시작한다. 잃어버린 자신의 삶과 가족들의 유대감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 자신이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이 섞여 그는 하나의 결심을 한다. 1년 동안의 휴지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 그 시작부터 꼬여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부터 쉽지가 않지만 그의 40대를 여는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삶의 방향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지난 이후 그도 그의 가족도 변화한다. 그들을 변화시킨 그 시간은 때로는 웃음이 나게 하고 때로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저자는 개인적 체험을 말하고 있지만 삶의 방향성을 잃고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의 삶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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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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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이란 말이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 쓸데없는 기대감을 심어주어 괴롭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선물이라는 희망이 때로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작은 친절에서 혹시 모를 호감을 읽으려 노력하고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려 살 길을 모색한다.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놓으면 체념이라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 절망이라는 구덩이에 빠져버리니 그 희망이라는 것을 손에서 놓기는 어렵다.

이 책 <굿바이 파라다이스>에서는 다양한 절망의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인생이 본디 그런 것이 아닐 텐데도 상상력이란 이름으로 극대화되어 부풀려진 끔찍하거나 우울한 이야기들이 열편의 단편으로 쪼개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이 가진 상황을 때로는 권태롭게 때로는 우울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그들의 등을 절망이라는 구덩이로 천천히 밀어 넣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터라 불안해하면서도 그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 계속 보게 되었다.

이혼한 아내의 숨겨진 비밀 <그녀의 거짓말>,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하는 가난한 사람들 <벌집에는 벌이 살지 않는다>,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다 수상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 청년 <안녕, 나디아>, 마지막 반전이 놀랍기보다 당혹스러웠던 <시선>, 잊고 있었던 친구의 절망이 판타지적 색채를 갖고 되살아나는 <점>, 샴쌍둥이 형제의 비밀 <하나의 심장>, 수상한 아르바이트 <사향나무 로맨스>, 죽음 그 이후의 비밀을 말하는 <굿바이 파라다이스>, 역겹기까지 한 클럽 <캣 오 나인 테일즈>, 새로운 좀비 이야기 <Happy deathday to you>까지 어느 것 하나 기존의 시각으로 '밝다'고 말할 만한 것은 없다.

성적 환상을 섞어낸 <사향나무 로맨스>에서 주인공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기괴한 괴물이고 그나마 밝은 <벌집에는 벌이 살지 않는다>에서는 방세를 내기 어려워 몸을 파는 사람들까지 나온다. 벌집에 사는 주민들이 자신이 가진 상황을 벗어나고자 평소 쳐다도 안 보던 노인의 수양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우습기보다 서글프다. 이야기 속에서도 수양딸이 되기 위한 선발 대회에 참여한 사람이 한숨을 쉬면서 자신이 뭘 하고 있는가를 탄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점차 주파수를 맞추다보면 <안녕, 나디아>나 <그녀의 거짓말> 같은 끔찍한 상황에 이입하게 되니 심장 박동이 대폭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샴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나름대로 적응하고 사는 것 같았던 <하나의 심장>에서도 형제가 품었던 어두운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언젠가 상상하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될 수 있고 현실이 허구보다는 잔혹한 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 한해서는 걸었던 희망이 매번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봐야 하는 터라 현실보다 잔혹해 보이는 허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마음 아팠던 것은 그 와중에 희망의 싹이 눈에 들어오니 체념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옥에 간 도둑이 했던 한때의 선행으로 부처님이 거미줄을 내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부처님이 내려준 거미줄은 마음만 착하게 먹으면 어떤 것보다 튼튼한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잔혹한 허구의 세계 속의 거미줄은 실제 거미줄에 불과하니 어찌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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