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박치기다 - 재일 한국인 영화 제작자 이봉우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책!
이봉우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일곱 살 때 외삼촌이 식사를 하시다가 문득 '사람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 안에 내포된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마흔이 되기 전에도 자신의 얼굴, 자신의 인생이 자신의 책임 안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체감할 때가 많다.

그런 만큼 자신의 손으로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낙담과 울분도 생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만들어 준 길을 얌전하게 밟고 가는 사람이 칭찬을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에 일정한 궤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칭찬해 줄 누군가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꽤나 힘들다. 덕분에 어른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출발선 상에서부터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본 세상은 같은 시대라도 다른 것이었겠구나 하는 것이다.

이 책 <인생은 박치기다>의 저자 이봉우가 본 세상은 지극히 불합리하고 서글픈 정글 같은 세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웃기는커녕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 눈을 부라리고 여차하면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했던 것 같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박치기!>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사는 데에 대한 애환이 드러났다면 이 책 끝부분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 <늑대 여인>의 경우에는 어린 소년의 일상적 경험이 실려 있지만 그 느낌은 황혼이 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그가 재일 한국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몰이해와 무관심에 화내는 것을 보면서 움찔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도 재일 '한국인'이라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가 영화 <서편제>를 감명 깊게 보고 그 영화를 수입, 배급하고 싶어서 한국에 오려고 했을 때 여권이 없어서 곤경에 처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감은 점차 커져만 갔다. 대사관에서의 기분 나쁜 경험과 어렵사리 도착한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이 의심스레 그를 지켜보는 안기부 직원이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딱히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도 의심과 차별의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영화를 수입해서 상영하려 해도 한국 영화라 거절 당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식견을 믿고 영화를 계약해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는 부분에서는 감탄을 하게도 되었다. 책 전반에서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토로하는 것도 고생담을 늘어 놓으려 한다는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제작하거나 수입하려는 영화 대부분은 아픈 이야기를 뒤에 품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5장에서 그가 자신의 본 영화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결같이 진지한 영화이고 그에 대한 생각 역시 진지해서 그가 살아온 발자취와 품고 있는 책임감이 엿보이는 느낌이었다. 잘 알지 못하기에 차별하고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 영화가 정치를 이기지는 못한다는 한탄, 조국에 대한 애증처럼 복잡한 심경을 진지한 영화 제작자의 경험담을 통해 읽어볼 수 있어서 생각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한때는 예술이나 과학 분야의 문외한이라서 잘 모른다는 말이 변명으로 통용되었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이 죄는 아닐지라도 자랑도 아니라는 일침 이후 그런 말은 올리지 않으려 한다. 또한 재일 한국인에 대해 몰랐다는 것도 어쩐지 미안하게 느껴지는 그리고 그렇게 느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른다는 것, 어떤 주제든 이제 슬슬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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