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9월 11일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평소 습관대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세계 무역 센터 건물에 여객기가 부딪히고 화염이 치솟았으며 건물에서는 잔해와 알 수 없는 작은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 작은 것들은 사람이었다. 방금 일어나서 멍한 머리로 생각하기에 그건 도무지 현실일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당연히 영화의 한 장면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침 뉴스기는 했지만 가끔 뉴스에서 문화가 산책이라면서 영화를 소개해주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한낮에 하는 뉴스에서나 그랬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날 종일 그리고 그 날이 지나서도 계속하여 그 장면은 반복 보도 되었고 세계 무역 센터 자리가 잿더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묻힌 잿더미 말이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사실이라고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동기조차 납득하기 어렵기만 하다. 사람이 벌인 가장 오래된 범죄 중 하나가 살인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납득이 가는' 동기가 존재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나마 치정이라든가 돈 문제와 관련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약간이라도 드는데 반해서 전혀 납득이 가지 않고 그렇기에 더 무서워지는 사건들이 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거나 문화나 예술에 대한 몰이해를 폭력으로 드러내는 반달리즘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 책 <달의 문>에서는 납득이 가는 동시에 가지 않는 살인 동기가 등장한다. 차라리 흔한 동기라면 납득이 가면서 약간이라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납득하기 어렵기에 살인자의 악의가 더욱 두려워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동시에 그 사람들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동기가 묘한 것이라서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 속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 <달의 문>이다. 전작에서 살인자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거나 살인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소설을 써온 저자는 이번에도 범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다만 그들이 벌이는 범죄는 살인이 아니라 비행기 납치다. 물론 비행기를 점거하는 와중에 아직 어려서 반항이 어려운 유아들을 인질로 삼고 여차하면 죽일 생각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 비행기 납치라는 진행 중인 범죄가 있는 상황에서 예상 못한 살인이 벌어진다. 비행기라는 거대한 밀실을 배경으로 한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비행기 납치범들은 쓸데없는 요소를 줄이고자 우연히 사건에 말려들은 커플 중 남자 쪽에게 탐정역을 맡긴다. 심지어 그의 이름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고 입은 티셔츠에 쓰인 대로 자마미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투덜거리지만 의외로 명석하게 사건을 풀어가는 자마미군의 밀실 살인,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 같이 보였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죽일 각오를 하고 비행기를 점거한 납치범들의 비행기 납치, 예상치 못했던 결말과 숨은 악의의 세 가지 흐름이 모든 복선이 숨어 있는 동기의 색채를 따라 흐르고 또 모아지면서 이야기는 미묘한 감정을 자아냈다. 진행 중인 범죄가 따로 있는 가운데 끝나버린 밀실 살인이 다른 사건과 어떠한 연관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가 이색적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인 동기였다. 겨우 그런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냐고 외치던 자마미군의 노호성대로 '겨우 그런 것'인 동시에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동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니 두려워졌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동기는 납득이 가도, 가지 않아도 섬뜩하다. 그런 면에서는 '겨우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쪽이 정신적으로 건강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