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돌연사가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의 영향인지 한 교수님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40대를 무사히 살아남으면 평균 연령 이상으로 장수할 확률이 대폭 올라간다는 것이다. 40대에 돌연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평균 연령을 낮춘 것이고 그 고비를 지났다니 평균 연령을 올리는 그룹에 들어간 거니 당분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설마 정말 그럴까 싶지만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에는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아 보인다. 사람이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는 없지만 중간에 치이고 자신의 경력만을 신경쓰다보면 삶이라는 사다리에서 길을 잃기 일쑤다. 가족이 없어서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라면 홀가분하기나 할 테고 거의 없는 여유 시간을 자신에게 퍼부을 수 있겠지만 대개 40대 남성은 가장인 경우가 보통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투자하고 그 덕분에 벌어들인 돈을 쓸 시간조차 없는 처량한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가족들이 누리는 금전적 여유를 위해 모든 시간과 신경을 쏟아붓다보니 시간이 나더라도 퉁명을 떨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시간을 보내고 은퇴해서 그제야 자신을 삶을 찾으려고 하면 가족들은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다. 여기 비슷한 난관에 봉착한 가장이 한 명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아이들 4명, 회사의 사장인데다가 탄탄대로를 달리는 경력, 그로 인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까지 다른 사람이 언뜻 생각하기에는 다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내와 외식 약속을 번번이 어겼고 툭하면 고함을 지르는 아빠인데도 그의 귀가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다. 심지어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홀로 라디오를 들었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네 명의 아이들이 아빠를 맞이하려 현관문을 향해 내달릴 것을 알았으면서도 말이다. 생활수준은 신입일 때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동시에 가족도 늘어서 그가 생각하는 여유를 누릴 수도 없었다. 항상 일이 최우선 순위에 있었고 집에 돌아갔을 때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소진되어 있어서 움직이기도 싫었다. 술을 마시려고 들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자기 몸 상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음에도 얼굴 안에 얼굴이 들어 있는 형상의 뚱보 아빠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잘 참아주었고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였지만 점차 그것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그의 일 때문에 수없이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해야 했고 그 영향인지 둘째 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부인하는 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를 '응가 아빠'라고 부르는 때까지 있었다. 그 상태에 대해서 외롭다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쳇바퀴를 돌듯이 생활은 계속 되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일변하게 하는 거대한 사건이 터진다. 회사가 합병되면서 그가 운영하던 자회사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물론 그는 유능한 사람이었으므로 언제든지 다른 자리로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에 따라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이주해야 했다. 이사 온지 12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말이다. 그는 고민을 시작한다. 잃어버린 자신의 삶과 가족들의 유대감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 아내에 대한 죄스러움, 자신이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이 섞여 그는 하나의 결심을 한다. 1년 동안의 휴지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 그 시작부터 꼬여서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부터 쉽지가 않지만 그의 40대를 여는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삶의 방향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지난 이후 그도 그의 가족도 변화한다. 그들을 변화시킨 그 시간은 때로는 웃음이 나게 하고 때로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저자는 개인적 체험을 말하고 있지만 삶의 방향성을 잃고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의 삶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