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유쾌한 과일 - 나오키 문학상 수상작가 하야시 마리코 대표작
하야시 마리코 지음, 정회성 옮김 / 큰나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위대한 미스터리이고 그 실체를 파헤치고 부수는 이야기 따위 듣고 싶지 않다는 비명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최대 3년이라는 이론이 제시되었다. 사실 사랑의 형태는 한 가지가 아니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개인차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평생도록 처음 만난 것처럼 사랑에 빠져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금세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유효기간이 길어야 3년이라는 이야기에 따르면 평생 동안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열정적 사랑의 기간은 3년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열정적 사랑이 아니라 같이 있으면 편안한 미소가 지어지는 따뜻함을 품은 사랑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열정적 사랑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사랑으로 변한 것을 더 편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연인과의 일생을 편하게 때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런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다기보다 사랑에 빠져 있는 자신에 만족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단순히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서 오싹한 긴장과 피 끓는 열정을 원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이 책 <불유쾌한 과일>에선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마야코, 삼십 대에도 원숙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여자다. 결혼한지는 좀 되었으나 도통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쾌락 지상주의자였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누릴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공들여 미모를 손보는 마야코에게 임신은 몸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자 시어머니의 간섭이 더 심해지고 끝내는 같이 살게 될지도 모르는 길이었으니 그 쪽으로는 관심도 없었다.

거기에 지나치게 친밀한 모자지간도 불만이었다. 결혼 전에는 원만한 가정에서 자라고 교양 있는 부모를 가진 남편이었지만 지금은 참견쟁이 엄마를 가진 둔한 남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야코의 일상이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불행했다면 그 시련을 과장하면서 마야코는 비련의 여주인공인 기분을, 자신이 특별하다는 기분을 과시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좀 안 좋기는 했지만 분가해서 살고 있는데다가 부딪히는 것은 명절에나 한정되어 있었고 교양 있는 척하는 시어머니는 마야코에게 심하게 굴지는 않았다. 비꼬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한 일자리도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면 되는 일인 터라 그녀는 더없이 지루했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자신의 미모에도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따분했다. 결혼 전처럼 남자의 열정적 시선을 받을 일도 없었다. 은근한 유혹을 받기는 했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 자신의 수준을 낮추는 것은 흥미가 없었다. 성적으로도 자존감에 한해서도 불만족스러워진 마야코는 불륜을 결심한다. 특별히 몸을 섞을 생각은 없었지만 예전처럼 관심과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결심을 한 이상 이제 그녀가 찾을 것은 불륜 상대를 찾는 일 뿐이었다.

결혼을 한 유부녀가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고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불륜을 선택한다는 소재라니 파격적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개 자체는 그리 파격적인 편은 아니다. 뻔하다면 뻔한 불륜 소설이지만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입센의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가 남편을 떠나는 선택이 아니라 불륜을 선택했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마야코의 행동은 지독히 이기적인 편이다. 오직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움직이고 모든 행동은 그녀 입장에서는 타당한 것이다. 죄의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녀의 편에 서기는 거북스럽지만 발칙하면서도 거리낌없는 그녀의 상상력만은 때로 웃음이 나게 한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씁쓸함이 남는 것은 제도 아래서는 그녀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그녀의 자유는 솔직함으로 통용되었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