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기술
윌리엄 글라써 지음 / 하늘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약간 유치한 느낌이 나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클림트의 표지 그림으로 보아 우연이 아니라면 이 책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까 싶다. 긴 열차여행 내내 읽을 거리가 아무 것도 없었기에 동행이 갖고 있던 것을 뺐어 읽었는데, 책이란 것도 영화나 텔레비전처럼 아무 기대없이 볼 수 있고, 그럴 때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인간의 '욕구'가 행동의 동인이라는, 심리학의 고전 명제 아래 결혼생활과 밀접하다 여기는 다섯 가지 욕구-생존, 힘, 사랑, 자유, 즐거움-를 기준으로, 나와 상대방의 욕구 정도를 알아내고 이것이 서로 간에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를 설명한다.

그의 이론은 그러나 부부 조화의 기준이 되는 욕구로 그가 선정한 다섯 가지 욕구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타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많은 이들의 생생한 사례, 그리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역시 그의 이론이 최소한 어느 정도의 귀납적인 근거를 갖는다는 점은 이 책을 부인할 수 없게 하는 지대한 이유다.

최소한 그의 이론은, 모든 심리학 이론들이 근본적으로 그러하듯이,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독자들은 자신과 상대의 욕구 강도를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나와 다른 존재임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조화를 이루게끔 노력하는 심리적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욕구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잘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저자는 잘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 교제하는 것은 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가장 어려운 상대도 끝까지 맞춰가려는 노력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랑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다섯 가지 욕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노년의 서양 학자가 지닌 인간관계의 단면일 뿐이라는 생각은 젊은 로맨티스트의 항변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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