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와 정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예고없이 선물로 받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 수많은 서재지인들이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올릴 때마다 당장 장바구니로 달려가 지르고픈 충동을 느꼈다. 당연히 내 손에 들어왔으니 가만 둘리가 있나. 마침 읽던 책을 다 읽고 새 책을 골라야 할 상황이었기에 망설임없이 이놈을 택했다.

  디 스태트 데어 트러이멘덴 뷔허. 맞나? 독일어를 배운지 오래되서 발음도 헷갈리는구나. 어쨌든 직독직해하여 번역해도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제목이 뽑아져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좀더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원본의 제목을 바꾸는 일이 많은데 - 대표적인게 얼마전까지 즐겁게 읽었던 알랭 드 보통 씨의 책들, kiss&tell 을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 로 바꾸었었다. 다른 저서도 마찬가지 - 이 책은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나보다.

  발터 뫼르스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 그의 전적이 궁금하여 뒷조사를 해보니 이 책 말고도 이전에 번역된 책들이 좀 있다. <밤> <푸른곰 선장의 13 1/2의 삶>(전3권)이 그것. 제목이 어째 별로 구입하고픈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는다. 책 표지도 마찬가지. (아래 참조)

 


 

 

 

 

 


  이 소설은 환타지다. 그러나 요즘 중고생들이 즐겨 읽는 그런 류의 환타지가 아닌 색다른 환타지다. 소재도, 서술방식도, 스토리도. 모든 것이 새롭다. 기발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단순하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소재로부터 대단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중심소재는 당연히 '책'이다. 작가, 독자, 서점주인, 출판업자, 헌책방 아저씨, 책 중개인 등등 책과 어떻게든 관련된 직업이면 그들은 모두 이 책의 주인공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독자다. 서평을 쓰고 있는 나. 나도 독자이며 취미 서평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이 책의 주인공이며 책을 읽기 전에 일단 그들은 흥분을 감추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판매량이 현시점에서 5만부를 돌파했다고 자랑하는 것 역시. 그 5만부라는 것은 이 책의 소재가 '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말하는 책은 대개 비평서이거나 에세이였다. 예를 들자면 <탐서주의자의 책>과 같은. 하지만 이 책은 출판의 현 세태를 꼬집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자고 사회분위기를 조장하는 그런 책도 아니다. 다만 책을 소재로 하여 즐거운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 뿐.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벌어지는 환상모험담. 위대한 작가 단첼로트가 타계하고 그의 제자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라는 어려운 이름의 독일공룡은 그로부터 받은 작자미상의 뛰어난 원고를 하나 받아들고 모험을 떠난다. 부흐하임으로.  그러나 그곳에서 만나 이 원고를 보여준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놀라고 질질짜고 웃고 하다가 마지막엔 절대 이 책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아니 도대체 이 원고와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하지만 힐데군스트는 떠나지 않고 오히려 이곳에 남아 원고의 저자를 찾아나서는데.

  일반 환타지에서 신비의 검을 찾아 떠나는 대신 이 책에서는 신비의 원고 주인을 찾아 떠난다. 도중에는 지하에서 활동하는 위험한 책 사냥꾼과 책으로 가장한 온갖 벌레들과 괴물이 도사리고 있고, 그를 음해하려는 자들로 넘쳐난다. 마치 이 마을의 모든 이들이 그의 존재를 달가와하지 않는 듯 한데.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이 환타지의 또다른 맛은 책과 관련된 자들이 내뱉는 대화 속에 의미심장한 문장들이다.

  예를 들면, 작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상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은 수많은 서재폐인들을 지칭하는 듯 하다. 후훗. 물론 그들은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장바구니에 넣지는 않지만 말이다. 눈에 띄는 족족 맘에 드는 책들을 가만 두지 못하는 사람들.

 "상관없다! 중요한건 책이야! 사자! 사자! 나는 큰 바구니를 집어 들고 서가에서 책들을 마구 끄집어냈다. 제목이나 저자 이름은 물론, 가격이나 책의 상태를 볼 것도 가릴 것도 없이 하찮은 책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비싼 초판본이건 값싼 덤핑 책들이건 나한테는 제기랄, 상관없었다. 그 책들이 내게 흥미 있는 분야든 아니든, 그것들을 구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책들을 갖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뜨거운 갈증이 나를 사로잡아 오직 한 가지만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바로 책을 사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이었다."

  이 책의 재미는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서술과 더불어 바로 이런 다시 한번 곱씹어보며 음미할 만한 대사들을 툭툭 내던지는 그들 사이의 대화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가운데책을 놓고 서로 눈알을 붉히고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가 합의볼 수 있는 변치 않는 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을 놓고 펼쳐지는 이 환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부흐링 족은 원래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자세히는 우리도 모릅니다. 추측하건대, 알 속에서 병아리가 자라듯이 우리도 책 속에서 생겨 자란 것 같습니다. 지하묘지 아주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파손되기 쉬우며 해독 불가능한 룬문자들로 쓰인 책들 속에서요. 어느 때가 되면 책은 마치 알껍데기처럼 깨집니다. 그러면 도롱뇽처럼 작은 부흐링 족 하나가 그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지요. 그는 가죽 동굴까지 찾아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아마도."

 

  난 또 하나의 부흐링이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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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8-2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 생각에 아프락사스님은 알에서 깨고 나오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
*진지한 리뷰에 죄송합니다. ^^;;

2005-08-28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5-08-29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 ^^ㅋ 아 그런가봅니다. ㅎㅎㅎ
속삭이신님 / 넵! ^^
 
꿈꾸는 책들의 도시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구판절판


"도덕적인 책이나 비도덕적인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이란 잘 쓰였든가 못 쓰였든가다. 그게 전부다."-37쪽

"우리가 책 좀벌레들처럼 종이를 갉아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독서를 하면 배가 부릅니다."
"독서처럼 아주 고도의 정신적인 일을 하면 음식을 소화할 때와 같은 평범한 현상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겁니다."-74쪽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뱃속에 채워 넣으면서도 조금도 살이 안찌는 이런 홀쭉한 타입들을 나는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릅니다! 어제만 해도 이자는 두꺼운 바로크소설을 세권이나 읽었습니다. 세권요. 그런데도 보십시오! 뱀장어처럼 호리호리합니다! 만약 내가 그랬다가는 나중에 몇 주 동안 다이어트 독서를 해야 할 겁니다."-75쪽

"주석들이란 서가 맨 아래에 있는 책들과 같습니다. 몸을 굽혀서 봐야하므로 아무도 그것을 즐겨 읽지 않습니다."
"세번째 문장을 쓰고 난 후에는 언제나 숨을 깊이 들이마셔요."
"당신이 쓴 문장들 가운데 강남콩을 집어 올리려고 애쓰는 코끼리의 긴코를 상기시키는 문장이 있으면 그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한 명의 시인이 표절하면 절도이지만, 많은 시인들이 표절하면 그것은 탐구입니다."
"두꺼운 책들은 지은이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두꺼워진 겁니다."-91-92쪽

"독서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절약하는 지적인 방법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뭔가 품위를 쥐어짜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돈도!"-94쪽

"부흐링 족은 원래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자세히는 우리도 모릅니다. 추측하건대, 알 속에서 병아리가 자라듯이 우리도 책 속에서 생겨 자란 것 같습니다. 지하묘지 아주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파손되기 쉬우며 해독 불가능한 룬문자들로 쓰인 책들 속에서요. 어느 때가 되면 책은 마치 알껍데기처럼 깨집니다. 그러면 도롱뇽처럼 작은 부흐링 족 하나가 그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지요. 그는 가죽 동굴까지 찾아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아마도."-96쪽

"(문학은) 순간적인 것이다. 아무리 쇠로 책을 만들고 다이아몬드로 글자를 새긴다 해도 언젠가는 이 지구와 함께 태양에 부딪치면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영원한 것이란 없는 법이다. 예술에는 전혀 없다. 한 작가가 죽은 후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희미한 램프처럼 서서히 꺼져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가다."

"어떤 책이 얼마나 잘 팔리고 팔리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혹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한 작가를 인지하는가 안 하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것이 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우연과 부당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내 말은, 네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네 안에서 얼마나 환하게 오름이 타오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253쪽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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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구판절판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상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117쪽

"상관없다! 중요한건 책이야! 사자! 사자! 나는 큰 바구니를 집어 들고 서가에서 책들을 마구 끄집어냈다. 제목이나 저자 이름은 물론, 가격이나 책의 상태를 볼 것도 가릴 것도 없이 하찮은 책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비싼 초판본이건 값싼 덤핑 책들이건 나한테는 제기랄, 상관없었다. 그 책들이 내게 흥미 있는 분야든 아니든, 그것들을 구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책들을 갖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뜨거운 갈증이 나를 사로잡아 오직 한 가지만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바로 책을 사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이었다."-206쪽

"정말이지, 대체 누가 이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을 사들였단 말인가? 설마 내가?
나는 책더미 속을 마구 헤치면서 제목을 하나씩 읽어갈수록 더 정신이 났고 더 절망적이 되었다. 나는 재미있는 책이나 가치있는 책이라고는 한 권도 사지 못하고, 그저 종이 쓰레기들과 싸구려 책들만 쓸어 모은 것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돈을 전부 기껏해야 모닥불 속에나 던져질 만한 책들을 사는 데 지출한 것이다."-208쪽

"정말 어렵군요! 이해가 안돼요."
"이것을 이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골고가 말했다.
"그 이해 안될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니까요."
"그건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말했다.
"책이란 읽기 위해 써야 한다고 봅니다."
"글쎄요!"
(골고와 나의 대화)-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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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8-28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인가 구경하고 왔더니 마이리뷰가 무려 49개나 되네요. 리뷰 평도 다들 좋구요. 잘 읽구 갑니다.^^

이잘코군 2005-08-2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이게 그 서평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책일 겁니다. 알라딘을 얼마전 시끄럽게 했던.
 

 

  어제 엄마가 일을 나가셨다가 밤늦게 들어오셨다. 10시경쯤. 엄마는 항상 아침 9시쯤 나가셨다 이때쯤 들어오신다. 많이 배우신 것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으신 것도 아니라 어려워진 가정형편에 아버지가 을 벌어오지 못하시자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든지 몇년이 흘렀다. 거의 6년정도? 몇년후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생하시는 엄마. 사실 빌붙어서 계절이 바뀔 때면 옷 챙겨받아 입었고, 때마다 비싸고 맛있는 과일 실컷 먹고 있으며, 작년엔 내 눈 라섹 수술비와 다한증 수술비까지 대주셨다. 물론 아빠도 조금 보탰지만. 그러니 벌어오면 거금이 바로바로 어딘가로 새버리고 남는 돈이 없다. 얼마나 허탈하실까. 뼈빠지게 일해 번돈이 그렇게 한순간에 쭉 빠져버리니.

  밤늦게 들어오신 엄마한테 동생이 뭐라고 한다. 난 문닫고 컴퓨터 앞에 있어서 잘 못들었다. 그런데 대략 동생이 엄마한테 화내는 분위기였다. 엄마는 마지못해 또 "알았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 자주 연출되기 때문에 난 이제 그러려니하면서 관심도 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엄마가 일어나고, 내가 일어나고, 밖에서 복숭아 까먹으면서 엄마가 그러신다.

  "이따 김밥이나 한줄 사와야겠다"

  "왜"

 "ooo가 내가 전에 일요일날 김밥이나 싸야겠다고 했는데 어제 과일 사오느라 무거워서 김밥 재료를 안사왔는데 김밥 먹고 싶다고 그러네"

 "헉! 저거 정신이 있는 애가 없는 애야? 왜 저런대..."

 그렇다. 어젯밤 그것은 동생이 기여이 일요일 아침에 김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이었고, 엄마는 마지못해 그래 싸주마 했던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도대체 저건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건지(페이퍼 보시는 분들께 이런 용어를 보게 해서 죄송) 모르겠다. 정말 화가 난다. 개념이라는게 없는 애다. 매번 자기 옷사주고 용돈주고 스케일링 해주고 뭐 해주고 할 때만 살랑살랑 거리며 엄마옆에 붙어있지 저런 엄마가 돈도 안주면 내처버릴 애다. 갑자기 얼마전 읽었던 프란츠 카프카 의 <변신>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그가 벌레 로 변신하자 이전까지 그가 벌어오던 돈으로 먹고 살던 기억은 간데없이 그를 내처버린.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리며, 여자이고, 대학 4학년 휴학중이며, 전공과 전혀 관련없는 아나운서 시험을 보겠노라고 저러고 있은지 꽤 지났다. 그리고 몇 차례 떨어졌다. 그런데 난 얘가 계속 떨어지다 지쳐서 다른 직업을 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절대로 절대로 이런 아이는 아나운서 같은거 해서는 안된다. 아나운서 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덕목들 - 물론 내가 그걸 다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지만 난 스스로를 판단할 때 그래도 기본적인 요인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지니지 못한 인간이 누군가에게 행사하게 될 그 영향력. 이건 실로 무서운 것이다.

  나는 아나운서를 만들어주는거 달달 외워서 입으로 내뱉는 앵무새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상 사람들이 아나운서에 대해 갖는 관심이나 신뢰는 대단한 것이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 그리고 일부 아나운서의 경우 앵무새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에 영향력 있는 발언을 하는 경우도 많다. 손석희씨같은. 또 몇 차례 어떤 아나운서가 티비를 통해 자기생각을 한 줄 말했다가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온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봤을 때 아나운서의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며, 이 자리는 아무나 차지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바, 내 동생 같은 위인이 이 자리에 들어가서는 절대 안된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직업이던 아나운서 아닌 다른 직업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은 절대 안된다. 내 동생은 그냥 조그마한 회사에 들어가서 그 부서내에서 일만 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사할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아해도 아니다. 누가 얠 데려가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근데 외모는 그냥 그런대로 되는 이 아해를 데려가도 그 남자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또다른 문제이다. 왠만한 남자가 아니고서야 이 아해를 버텨내지 못할 듯 싶다.

  난 저것과 거의 말을 안한다.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을 한다. 잉크 샀으니 돈 줘. 프린터 고장났다. 어제 신문 어딨냐 뭐 이런 정도. 그런데 이것이 가끔 지가 아쉬울 땐 웃으며 살랑대며 내 방에 들어와 아무런 말 없이 내 디카를 가져가거나 - 아니 지것도 아닌데 얘는 전에 내가 뭐라하면 마치 자기걸 내가 뺏어가는 양 난리를 친다 - 기타 뭐 내 도움이 필요할 때 그땐 웃으며 다가온다. 그래도 난 이제 이와 같은 경혐을 겪어본지라 역시 딱딱한 변화없는 표정으로 받아치곤 한다.

  엄마가 아침에 김밥나라에서 김밥을 사오면 저건 또 맛있게 냠냠 먹고 있겠지. 아니면 집에서 만든 김밥이 아니라고 또 한소리하거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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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5-08-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막내가 좀 이기적인 데가 있지요...
피를 나눈 형제도 참 아니다 싶을때가 있어요.
그래도 어쩌요...가족인걸.....이쁜 구석(?)을 찾아보세요....

2005-08-28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5-08-2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막내는 안 저랬는데(나 막내^^)

BRINY 2005-08-2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내는 막내티 낸다는 데 동의해요.

로렌초의시종 2005-08-2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 없는 동생을 거두고 있어서 유일하게 좋은 점은 타인에게 관대할 수 있다는 것과 인격수양이 된다는 것이죠. 물론 저는 완전히 수양이 안되어서 수시로 폭발 중입니다.

울보 2005-08-2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도 장녀인데,,동생보다 더 막내같거든요,,,딸둘이라..
결혼하고 철이 든다 생각하는데 엄마는 결혼전의 제가 더 좋다고 하네요,왜요,,몰라요,ㅎㅎ

책속에 책 2005-08-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동생도 정말 막내티가 줄줄 흐른다고 모두가 입을 모으던 아이였는데요..대학졸업하자마자 사회물을 먹더니 어른스러워졌어요..요즘은 자매가 아니라 친구삼아도 좋을만큼...사회에 나가 차가운 비바람을 맞아보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아프락사스님이 그때까지만 오빠답게 너그러이 이해하세요~^^

이매지 2005-08-28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딱서니없는 동생때문에 날이갈수록 성격만 나빠지고 있습니다 -_ -

비로그인 2005-08-2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배 이해합니다. 단연 저희집만 그러한게 아니었군요. ㅠ

2005-08-28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5-08-2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분 때문에 많이 속상했겠네요. 위에 댓글을 보니 많은 분들께서 좋은말씀 해주셨는데. 아직 어리고 돈을 버는게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해보지 않아서 그럴거에요. 밉지만 그래도 한 가족이니 오빠로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더 큰소리치죠. ^^ 혹시 알아요? 나중에 철들어서 어머니에게 정말 잘하고 오빠도 잘 챙기는 모습 보여줄지.

인터라겐 2005-08-2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러다 언니한테 엄청스레 맞으면서 컸어요... 철이 없어서 그렇겠지요..나중엔 더 잘 하겠지요... 안그럴까요?

클리오 2005-08-2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마태님 페이퍼 같아요... ^^ 어느 집이나 철없는 사람이 한명쯤 있는 것 같아요. 형제자매가 아니면 부모가... ^^

perky 2005-08-28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땜에 속상해하는 맘 충분히 이해가 되요..그래도 님이 철들어서 어머니께서 많이 든든해 하시겠어요..

sweetrain 2005-08-2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돈 대신 월급 한번 받아보라죠. 저런 소리 나오나...ㅡ.ㅡ 아님, 차라리 독립을 시켜 버리세요. 방 하나 얻어주고 알아서 돈 벌어 살아 보라고...아마 한달도 못 버티고 정신차려서 올 겁니다...(앗 남의 동생에게 뭐 이런 시니컬한 반응을...ㅡ.ㅡ)

이잘코군 2005-08-2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단비님 잘 하셨습니다. ㅋㅋㅋ 댓글이 넘 많아서 답글 달 엄두를 못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sweetrain 2005-08-2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 4년차...ㅡ.ㅡ 남의 돈 받기가 쉽지 않더군요...

릴케 현상 2005-08-2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 규탄 분위기 미워-_-

코마개 2005-08-2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뭐야..다들 막내를 미워하네.

이잘코군 2005-08-2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전 장남입니다.

mannerist 2005-08-2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나. 매너는 아빠/엄니랑 형이 그런 시절 두들겨 패서 그나마 사람 구실 하고 사는건가요? 그래도 패지 마세요. 매너처럼되요 -_-;

2006-06-23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 화제의 영화를 나도 드뎌 봤다. <박수칠 때 떠나라>. <친절한 금자씨> 만큼이나 관객의 평이 엇갈리는 이 영화. 일전에 밴드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단 한명을 빼고는 아무도 이 영화를 보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먼저 영화를 보고 안좋은 평가를 내렸던 것. 그만큼 한 사람의 관객의 힘은 영화의 흥행과 직결된다. 영화 개봉 이전의 사전 홍보효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리 홍보가 덜 됐다 하더라도 일단 먼저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그  힘은 실로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은 비단 영화 뿐 아니라 책이나 음악 등의 모든 문화장르의 흥행에 이러한 작동기제가 작용한다.

  나를 포함 세명이서 이 영화를 관람. 함께 본 한 명은 그다지 확 끌리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평. 그냥 그랬다 정도. 나는 오 재밌다 라는 반응. 역시 같은 영화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자리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감상이 다르다.



* 6자 회담(?)하는 뽕팔이들. 얘네들도 잠깐이지만 아주 재밌었다. 흐흐

  처음에 범죄추리극 정도로 비춰지던 이 영화가 영화 중반즈음해서 이상하게 바뀐다. 갑자기 공포물이 되어버린 것. 머냐? 하지만 재밌다. '장르의 극적인 전환' 이라고 까지는 못하지만 장난스럽게 살짝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것이 귀엽다. 그러더니 어어 더 이상해진다. 과학적인 증거물에 의존해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무당을 데려와서 굿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진짜로 귀신이 들렸고 카메라를 담당하던 생방송 감독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한다. 칼을 쑤신 범인을 지목하고, 이어서 나타나는 진범. 그러나 진범은 따로 있다. 누구일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무당에 의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 오 깬다. 그래도 재밌다.



* 박정아. 난 처음에 그녀인줄 몰랐다. 꽤 연기를 잘 하던걸? 그리 많이 나온건 아니지만. 이쁘다. ^^

  장진 감독이 최근 그가 직접 감독을 한 건 아니지만 참여했던 <웰컴 투 동막골>과 감독으로 나선 <박수칠 때 떠나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내놓은 박찬욱은 한편 뒤로 물러섰다. 오 이런. 실로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보여준 만큼의 등장인물들의 허무하고 웃긴 대화방식이 고스란히 여기에도 전해진다. 같이 영화를 본 누군가는 장진 영화의 최고봉은 <아는 여자>라고 하지만 난 그 영화를 보고 싶어했음에도 아직 못봤으므로 제외하고. 일단 <킬러들의 수다>에서의 그 재미난 대화방식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장르의 전환, 반전의 반전도 재밌었지만 무엇보다 장진 영화의 핵심은 그만의 화법에 있다. 실컷 씨부리다가 순간 멈추고 존재말로 바꿔주는 센스. 내뱉어지는 대사 속에 숨어있는 특유의 억양(?). 아 뭐라 참 설명하기 뭣한 그만의 화법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일단 보는 수 밖에 도리 없다.  



* 떴다 신하균. 불쌍해보이면서도 때론 사악해보이는 그만의 표정. 거짓말을 진실같이, 진실을 거짓말같이 하는 그의 대사법.

  장진도 장진이지만 신하균. 그도 <웰컴 투 동막골> 과 <박수칠 때 떠나라>. 1,2위를 다투는 이 영화로 입이 찢어졌을 듯 하다. 신하균은 뭔가 당하는 역할이 알맞다. 된통 당하고 찌그러지고 다시 카메라로 얼굴을 들어대는 그 표정. 그건 그가 아니면 안된다. 또한 아주 흥행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혈의 누>에 이어 얼굴을 내밀은 차승원의 연기도 볼만하다. <혈의 누>에서도 수사관이었는데 여기서도 현대판 수사관 검찰이다. <혈의 누>의 그의 배역은 썩 어울려보이진 않았지만 <박수>에서는 좋았다. 장진, 신하균, 차승원. 아주 대박 터졌구나.

  마지막으로 음악을 살펴보자면 영화의 음악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장면 장면의 분위기에 효과를 배가 시키는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음악감독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일단 잘 모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장진 영화의 담당 음악감독이라는 점은 알 듯 하다. <킬러들의 수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등을 그가 맡았으니. 장진의 영화 절반 가량은 그의 손에서 음악이 완성됐다.

   아직 안본 이들에게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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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8-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매했어요. 보고 와서 얘기 다시 하자구요. ^^

이잘코군 2005-08-2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넹. 재밌을거에요.

책속에 책 2005-08-2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나서 무척 헷갈려했던 작품이에요..예를 들면 마지막에 신하균은 왜 웃었을까..등등 차승원의 연기는 꽤 좋았는데..신하균은 외려 비중이 작았단 느낌도 들고..원가 매듭하나가 덜 풀리고 끝난 느낌였어요..저는 ^^

이잘코군 2005-08-2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하균은 훼이크가 아니었나... ㅋㅋ

로즈마리 2005-08-2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동막골하고 금자씨 본 다음이라서 그런지 그 중 가장 별루였어요..--;;
막판에 심령영화 된것두..그렇고..언제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것두 그렇구..
웃고싶어도 이거 진지해야 하나? 진지해도 이거 웃어야 하나?
그게 좀 엉성하게 되었네요...장진감독식 유머를 좋아하는데 그런 유머는
동막골에서 더 발휘된 듯 하네요.
동막골하고 금자씨는 재밌었는데...

이잘코군 2005-08-2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세 영화 다 괜찮았어요. 금자씨만 너무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지 이전작들에 비해 조금 실망했었구욤. 장진식의 유머 참 재밌습니다. 전 그냥 힘 빼고 봐서 그런가. 많이 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