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가 일을 나가셨다가 밤늦게 들어오셨다. 10시경쯤. 엄마는 항상 아침 9시쯤 나가셨다 이때쯤 들어오신다. 많이 배우신 것도 아니고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으신 것도 아니라 어려워진 가정형편에 아버지가 을 벌어오지 못하시자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든지 몇년이 흘렀다. 거의 6년정도? 몇년후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생하시는 엄마. 사실 빌붙어서 계절이 바뀔 때면 옷 챙겨받아 입었고, 때마다 비싸고 맛있는 과일 실컷 먹고 있으며, 작년엔 내 눈 라섹 수술비와 다한증 수술비까지 대주셨다. 물론 아빠도 조금 보탰지만. 그러니 벌어오면 거금이 바로바로 어딘가로 새버리고 남는 돈이 없다. 얼마나 허탈하실까. 뼈빠지게 일해 번돈이 그렇게 한순간에 쭉 빠져버리니.
밤늦게 들어오신 엄마한테 동생이 뭐라고 한다. 난 문닫고 컴퓨터 앞에 있어서 잘 못들었다. 그런데 대략 동생이 엄마한테 화내는 분위기였다. 엄마는 마지못해 또 "알았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 자주 연출되기 때문에 난 이제 그러려니하면서 관심도 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엄마가 일어나고, 내가 일어나고, 밖에서 복숭아 까먹으면서 엄마가 그러신다.
"이따 김밥이나 한줄 사와야겠다"
"왜"
"ooo가 내가 전에 일요일날 김밥이나 싸야겠다고 했는데 어제 과일 사오느라 무거워서 김밥 재료를 안사왔는데 김밥 먹고 싶다고 그러네"
"헉! 저거 정신이 있는 애가 없는 애야? 왜 저런대..."
그렇다. 어젯밤 그것은 동생이 기여이 일요일 아침에 김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이었고, 엄마는 마지못해 그래 싸주마 했던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도대체 저건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건지(페이퍼 보시는 분들께 이런 용어를 보게 해서 죄송) 모르겠다. 정말 화가 난다. 개념이라는게 없는 애다. 매번 자기 옷사주고 용돈주고 스케일링 해주고 뭐 해주고 할 때만 살랑살랑 거리며 엄마옆에 붙어있지 저런 엄마가 돈도 안주면 내처버릴 애다. 갑자기 얼마전 읽었던 프란츠 카프카 의 <변신>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그가 벌레 로 변신하자 이전까지 그가 벌어오던 돈으로 먹고 살던 기억은 간데없이 그를 내처버린.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리며, 여자이고, 대학 4학년 휴학중이며, 전공과 전혀 관련없는 아나운서 시험을 보겠노라고 저러고 있은지 꽤 지났다. 그리고 몇 차례 떨어졌다. 그런데 난 얘가 계속 떨어지다 지쳐서 다른 직업을 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절대로 절대로 이런 아이는 아나운서 같은거 해서는 안된다. 아나운서 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덕목들 - 물론 내가 그걸 다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지만 난 스스로를 판단할 때 그래도 기본적인 요인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지니지 못한 인간이 누군가에게 행사하게 될 그 영향력. 이건 실로 무서운 것이다.
나는 아나운서를 만들어주는거 달달 외워서 입으로 내뱉는 앵무새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상 사람들이 아나운서에 대해 갖는 관심이나 신뢰는 대단한 것이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 그리고 일부 아나운서의 경우 앵무새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에 영향력 있는 발언을 하는 경우도 많다. 손석희씨같은. 또 몇 차례 어떤 아나운서가 티비를 통해 자기생각을 한 줄 말했다가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온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봤을 때 아나운서의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며, 이 자리는 아무나 차지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바, 내 동생 같은 위인이 이 자리에 들어가서는 절대 안된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직업이던 아나운서 아닌 다른 직업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은 절대 안된다. 내 동생은 그냥 조그마한 회사에 들어가서 그 부서내에서 일만 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사할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아해도 아니다. 누가 얠 데려가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근데 외모는 그냥 그런대로 되는 이 아해를 데려가도 그 남자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또다른 문제이다. 왠만한 남자가 아니고서야 이 아해를 버텨내지 못할 듯 싶다.
난 저것과 거의 말을 안한다.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을 한다. 잉크 샀으니 돈 줘. 프린터 고장났다. 어제 신문 어딨냐 뭐 이런 정도. 그런데 이것이 가끔 지가 아쉬울 땐 웃으며 살랑대며 내 방에 들어와 아무런 말 없이 내 디카를 가져가거나 - 아니 지것도 아닌데 얘는 전에 내가 뭐라하면 마치 자기걸 내가 뺏어가는 양 난리를 친다 - 기타 뭐 내 도움이 필요할 때 그땐 웃으며 다가온다. 그래도 난 이제 이와 같은 경혐을 겪어본지라 역시 딱딱한 변화없는 표정으로 받아치곤 한다.
엄마가 아침에 김밥나라에서 김밥을 사오면 저건 또 맛있게 냠냠 먹고 있겠지. 아니면 집에서 만든 김밥이 아니라고 또 한소리하거나.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