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와 정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예고없이 선물로 받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 수많은 서재지인들이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올릴 때마다 당장 장바구니로 달려가 지르고픈 충동을 느꼈다. 당연히 내 손에 들어왔으니 가만 둘리가 있나. 마침 읽던 책을 다 읽고 새 책을 골라야 할 상황이었기에 망설임없이 이놈을 택했다.

  디 스태트 데어 트러이멘덴 뷔허. 맞나? 독일어를 배운지 오래되서 발음도 헷갈리는구나. 어쨌든 직독직해하여 번역해도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제목이 뽑아져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좀더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원본의 제목을 바꾸는 일이 많은데 - 대표적인게 얼마전까지 즐겁게 읽었던 알랭 드 보통 씨의 책들, kiss&tell 을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 로 바꾸었었다. 다른 저서도 마찬가지 - 이 책은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나보다.

  발터 뫼르스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 그의 전적이 궁금하여 뒷조사를 해보니 이 책 말고도 이전에 번역된 책들이 좀 있다. <밤> <푸른곰 선장의 13 1/2의 삶>(전3권)이 그것. 제목이 어째 별로 구입하고픈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는다. 책 표지도 마찬가지. (아래 참조)

 


 

 

 

 

 


  이 소설은 환타지다. 그러나 요즘 중고생들이 즐겨 읽는 그런 류의 환타지가 아닌 색다른 환타지다. 소재도, 서술방식도, 스토리도. 모든 것이 새롭다. 기발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단순하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소재로부터 대단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중심소재는 당연히 '책'이다. 작가, 독자, 서점주인, 출판업자, 헌책방 아저씨, 책 중개인 등등 책과 어떻게든 관련된 직업이면 그들은 모두 이 책의 주인공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독자다. 서평을 쓰고 있는 나. 나도 독자이며 취미 서평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이 책의 주인공이며 책을 읽기 전에 일단 그들은 흥분을 감추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판매량이 현시점에서 5만부를 돌파했다고 자랑하는 것 역시. 그 5만부라는 것은 이 책의 소재가 '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말하는 책은 대개 비평서이거나 에세이였다. 예를 들자면 <탐서주의자의 책>과 같은. 하지만 이 책은 출판의 현 세태를 꼬집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자고 사회분위기를 조장하는 그런 책도 아니다. 다만 책을 소재로 하여 즐거운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 뿐.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벌어지는 환상모험담. 위대한 작가 단첼로트가 타계하고 그의 제자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라는 어려운 이름의 독일공룡은 그로부터 받은 작자미상의 뛰어난 원고를 하나 받아들고 모험을 떠난다. 부흐하임으로.  그러나 그곳에서 만나 이 원고를 보여준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놀라고 질질짜고 웃고 하다가 마지막엔 절대 이 책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아니 도대체 이 원고와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하지만 힐데군스트는 떠나지 않고 오히려 이곳에 남아 원고의 저자를 찾아나서는데.

  일반 환타지에서 신비의 검을 찾아 떠나는 대신 이 책에서는 신비의 원고 주인을 찾아 떠난다. 도중에는 지하에서 활동하는 위험한 책 사냥꾼과 책으로 가장한 온갖 벌레들과 괴물이 도사리고 있고, 그를 음해하려는 자들로 넘쳐난다. 마치 이 마을의 모든 이들이 그의 존재를 달가와하지 않는 듯 한데.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만 이 환타지의 또다른 맛은 책과 관련된 자들이 내뱉는 대화 속에 의미심장한 문장들이다.

  예를 들면, 작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상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장은 수많은 서재폐인들을 지칭하는 듯 하다. 후훗. 물론 그들은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장바구니에 넣지는 않지만 말이다. 눈에 띄는 족족 맘에 드는 책들을 가만 두지 못하는 사람들.

 "상관없다! 중요한건 책이야! 사자! 사자! 나는 큰 바구니를 집어 들고 서가에서 책들을 마구 끄집어냈다. 제목이나 저자 이름은 물론, 가격이나 책의 상태를 볼 것도 가릴 것도 없이 하찮은 책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비싼 초판본이건 값싼 덤핑 책들이건 나한테는 제기랄, 상관없었다. 그 책들이 내게 흥미 있는 분야든 아니든, 그것들을 구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책들을 갖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뜨거운 갈증이 나를 사로잡아 오직 한 가지만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바로 책을 사는 것, 사는 것, 사는 것이었다."

  이 책의 재미는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서술과 더불어 바로 이런 다시 한번 곱씹어보며 음미할 만한 대사들을 툭툭 내던지는 그들 사이의 대화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가운데책을 놓고 서로 눈알을 붉히고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가 합의볼 수 있는 변치 않는 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을 놓고 펼쳐지는 이 환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부흐링 족은 원래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자세히는 우리도 모릅니다. 추측하건대, 알 속에서 병아리가 자라듯이 우리도 책 속에서 생겨 자란 것 같습니다. 지하묘지 아주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 파손되기 쉬우며 해독 불가능한 룬문자들로 쓰인 책들 속에서요. 어느 때가 되면 책은 마치 알껍데기처럼 깨집니다. 그러면 도롱뇽처럼 작은 부흐링 족 하나가 그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지요. 그는 가죽 동굴까지 찾아옵니다. 그것은 본능입니다. 아마도."

 

  난 또 하나의 부흐링이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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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8-2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 생각에 아프락사스님은 알에서 깨고 나오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
*진지한 리뷰에 죄송합니다. ^^;;

2005-08-28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5-08-29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 ^^ㅋ 아 그런가봅니다. ㅎㅎㅎ
속삭이신님 / 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