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사회윤리
홍경남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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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그 지식으로서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타내고 체계화하는 방법에서 민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을 체계화하고 교육하는 길은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쪽

한국의 과학 기술은 극도로 전문적이고 폐쇄적이며 비사회적인데, 이는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과학 기술 담당 계층의 의식 구조를 차지한 ‘중인 의식’의 잔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중인은 양반과 상민의 중간 위치에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였고, 그래서 스스로 사회와는 유리된 존재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들이 우리 학문 사회에 ‘문과’와 ‘이과’라는 두 가지 문화를 형성하게 하였고, 이 두 가지 문화는 다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저자가 [김영식, ‘한국 과학의 특성과 반성’, <근현대 한국 사회의 과학>, 창작과비평]을 옮기며) -10-11쪽

우리의 언어는 다만 세계를 기술하거나 서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가치를 가지고 세계를 평가한다. 이렇게 사실과 가치가 얽혀 있음을 직시할 때야 (사실에 관한 지식은 가치에 관한 지식을 가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좁은 과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과학적 실천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합당하게 그려낼 수 있다.-19쪽

도덕 내지 윤리는 인간 사회의 유지를 꾀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 옳음(정의, 공정)의 기준과 좋음(행복, 선)의 기준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기준 설정은 특정 사회에만 적용되는 관습을 넘어서 누구나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좋음을 추구하고, 이러한 좋음을 보편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옳음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바로 이러한 좋음이나 옳음의 보편적 기준에 대한 반성적 학문이다. -50쪽

나는 그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이해한다. 이러한 대화와 이해가 가능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서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유가 없다면 모든 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요, 우리의 행위에 대한 근거나 이유를 찾아 대화하고 이해하는 일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자유를 기초로 하여 좋고 나쁜 것과 옳고 그른 것을 가리고 판별하게 하는 삶의 지혜를 찾는 것이 바로 윤리학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6-57쪽

도덕다원주의자는 모든 상충하는 도덕적 체계를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덕다원주의는 여러 다른 도덕적 입장들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모두 똑같은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략)
도덕 규범은 그것이 나온 사회 역사적인 맥락에 의거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인간의 가치와 관련하여 어떤 종류의 합리적 평가나 비판도 있을 수 없다는 도덕상대주의의 견해와는 달리 도덕다원주의는 객관적인 가치의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인다. -92쪽

도덕상대주의자와 도덕다원주의자는 둘 다 도덕적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좋은 삶을 위한 단일한 포괄적 기준이나 가치 체계나 도덕적 기준이 있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극악한 도덕 체계라도 받아들이는 이가 있다면 그것을 배제하지 못하는 도덕상대주의와는 달리, 도덕다원주의자는 공통적인 인간성의 측면에 비추어 그러한 것을 배제할 수 있다. 도덕상대주의는 상충하는 도덕적 주장을 판정할 수 없게 하지만 도덕다원주의에서 그러한 충돌의 정도는 완화될 수 있고 상충하는 도덕적 주장들을 저울질하여 합의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도덕적 가치들은 우리의 공통적인 인간성의 측면에 비추어 서로 비교할 수 있다. 보편적 가치는 없지만 인간 사회를 존속하게 하는 최소한의 가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는 인간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다.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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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7 - 나의 소심한 반항


  작년초 내가 이 회사에 입사 했을 때에는 자기계발비며, 야근비며, 초과근무수당이며 기본적인 복지는 갖춰져 있었다. 월급이 생각보다 적지만 그래도 개념있는(?)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경영하는 CEO의 마인드 - 난 사장과 회장과 CEO의 차이를 모르겠다 - 가 이 정도라면 꽤 기분 좋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사 두달쯤 지나고, 자기계발비로 뭘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제도가 폐지됐단다. 무슨 강의를 들으러 다닐까, 집앞에서 다니던 피트니스 클럽 기한이 끝나면 회사 앞에 등록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폐지됐단다. 어이쿠. 많이 서운했다.  

  그래도, 시간당 오천원의 야근비는 살아있었다. 아홉시까지 일한다는 전제하에. 아홉시 전에 가면 야근비 없다. 작년 한 해 이렇게 놀아본 적도 없을 만큼 일을 무쟈게 많이 했다. 뭐 다른 직장에 근무하는 야근 밥먹듯이 하고 집에도 못들어가는 사람들과 또 비교를 해보면 많이 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선 무쟈게 많이 했다. 무쟈게. 열두 달 중 한 달은 집에 안 들어가고, 잠을 하루에 너댓 시간 잤으니 할 말 다 했지. 주말에는 여섯 시간 이상 일해야 돈을 줬다. 시간당 오천원. 피씨방, 편의점, 음식점 알바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맨날 알바비 수준 받는다고 투덜대긴 했지만.  

  그런데, 몽땅 폐지됐다. 회사 사정이 어렵단다. 물건이 안 팔린단다. 잘 좀 만들으란다. 더 열심히 일하란다. 월급이 밀렸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알바비도 폐지된 마당에 월급까지 밀려서 사람들은 적금까지 깼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나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지금은 월급은 제때 나온다. 그런데, 회사 사정은 여전히 안 좋단다. 근래들어 요상한 이야기가 들렸다. 팀별로 조를 짜서 야근을 한다고 한다. 이건 뭥미?! 아니 왜. 나의 동급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팀장이 그리 지시했단다. 아마도 팀장은 더 위에서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오늘 동료 하나가 당장 할 일은 없는데 '야근하는 날'(?)이라 책이나 읽어야겠다고 말했다.  

  야근하는 날. 살다살다 별 소리를 다 들어본다. 야근해가면서 급히 해야 할 게 없는데도 야근을 해야한다니. 야근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일도 없는데 야근을 하다니. 회사가 정신을 놨구나 싶었다. 경영 쇄신한다고 외부 인사 불러다가 부서도 개편하고 그랬는데, 기껏 한다는 게 야근조를 짜고 요일을 정해 야근을 하는 거라니. 입이 떡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았다. 요즘, 개념있는(?) 회사들은 창조경영이다, 창의경영이다, 펀 경영이다 하며 오히려 직원들의 여가를 지원해주고, 최대한 자유시간을 줘서 아이디어를 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얼마전 티비에서도 그런 회사들이 소개됐는데, 이 회사는 흐름을 거스르는구나.  
 
  교육을 시켜달랬더니 엉뚱한 노동부 지원 무료 독서 통신 교육을 모두 신청하라고 하지를 않나. 수강 강좌가 죄다 무슨 미래를 준비하는 자기계발, 고객 서비스 만족, 커뮤니케이션, 기적을 만드는 문제해결능력 이런 거다. 들을 게 하나 없는데 - 물론 읽어서 전혀 도움이 안되는 건 아니다 - 그 중 좀 괜찮은 책이 들어있는 강좌를 신청해서 한달에 한권씩 읽고 문제를 푼다. 문제도 책을 온전히 읽으면 풀 수 없는 것뿐이다. 차라리 책을 안 읽고 해답이 있을 만한 구석을 펼쳐서 찾는 게 더 빠르다. 난 그래도 온전히 읽고 싶어서 문제 상관없이 읽고 문제 풀다 모르겠으면 그냥 넘어갔더니 점수가 엉망이다.

  다시, 다행히 내가 속한 부서 팀장은 야근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받았는데 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지시를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는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굳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나는 앞으로 두달 간 다시 죽었다 살아나야 할 수밖에 없는 기간이라 굳이 지금 조를 짜서 야근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 일년 야근 시간 다 합쳐도 안 될만큼 많이 일하게 된다. 제발 이번엔 집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다. 앞으로 한달 뒤의 모습이 또 눈에 선하다. 그렇게 죽어라 해도 뭐 돌아오는 거 없다. 그냥 사명감으로 일할 뿐. 사실 나는 강요하면 더 엇나가는 녀석이란 걸 대충 아는 것도 같다. 평상시에도 눈치 안 본다. 자유롭게 냅두면 때되면 알아서 무료 노동한다.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게 그래도 남은 매력이었는데, 그나마도 이제는. 휘모리님 페이퍼보고 버닝했다. 에혀, 지금도 메신저에는 회사 동료가 접속 중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더 열심히 해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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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0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이 슬퍼해요 ㅠ.ㅠ

이잘코군 2009-09-07 20:51   좋아요 0 | URL
엉엉. 엉엉. (카트라이더에서 캐릭터 우는 소리)

프레이야 2009-09-0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글픈 현실이네요. 그럼에도 힘내요!!

이잘코군 2009-09-07 20:51   좋아요 0 | URL
-_ㅠ

2009-09-08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7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9-09-0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보약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힘들어서 어째요. 회사가 직원들을 쥐어짜는군요..ㅜ.ㅜ

이잘코군 2009-09-08 09:27   좋아요 0 | URL
아직은 가끔씩 야근해서 괜찮아요. 토욜은 매일 오전부터 밤까지 있지만요. -_- 곧 월화수목금금금 시작합니다. 이런건 괜찮아요. 한두달 뭐 잠못자고 밤샐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중요한 건 회사 마인드에요. 이게 점점 이상한 길로 가는 거 같으니.

다락방 2009-09-08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진짜 열받네..

왜 이렇게 인간들이 개념이 없는걸까요? 그게 정말 윗대가리들의 문제적 사고인데, 야근하면 무조건 일을 잘 하는 줄 아는거죠. 거기에 잘 보이고자 낮에 뻥뻥 놀다가 저녁 다섯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밤 늦게 퇴근하여 사랑받던 여직원이 저희 회사에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바보들, 정말 바보들이에요.

전 몇년전까지 같이 근무하던 상사가 일곱시쯤 퇴근해도 인사도 안 받아주더라구요. 아홉시쯤 까지 있으면 좋아서 입이 찢어져가지고 역시 사람들은 직장을 최우선으로 해야 해, 그게 사람이야, 그게 직장인이야 하는 소리를 늘어놓고 저녁 먹으러 가자고 설레발치고. 아, 쓰다보니 또 열받네요.

지금은 다행히 일은 근무시간내에 다 끝내고 퇴근시간에는 퇴근하자는 상사와 같이 일하고 있어요.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일적으로 더 능률이 오른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그리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인의 능력임을 왜 모르는 걸까요? 늦게까지 싸매고 앉아있는게 일을 잘하는게 결코 아닌데 말이죠.


저희는 제조업이고 본사는 지방에 있는데, 아직도 본사나 지방 공장에서는 정시에 퇴근을 못하며 주말에도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나마 관리직은 특근수당,야근수당도 없어요. 이게 굉장히 묘한 문제인데요, 가끔은 회장이나 사장 혹은 CEO 가 그걸 바라는게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미리 지레짐작으로 기어간달까요.

우리는 성인이고, 자신이 할일이 있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르지 않아도, 돈을 주는게 아니어도 맡은 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들은 믿지 못하는가 봅니다.

이잘코군 2009-09-08 09:29   좋아요 0 | URL
다행히도, 제게는 강요하는 사람은 없어서 - 오히려 상사가 제 눈치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 - 아직까진 '자발적 강제'(이런 모순되는 말이!)보단 '자율'에 따라 움직입니다. 복지제도 다 없애고, 연봉도 작은데 오르지도 않고, 월급도 밀렸으면, 없던 휴가라도 만들어주던가 뭐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야근조를 짜고 앉았으니.

카스피 2009-09-08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라삭스님,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정신없기 매 한가지에요.아시는 선배왈 팀장이나 상사 잘못만나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것도 다 반사라고 하더군요.ㅠ.ㅠ

이잘코군 2009-09-08 09:30   좋아요 0 | URL
그쵸. -_- 위에 누가 있으냐, 그가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서 아랫사람들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죠. 벌이가 많으면 그래도 아 벌이에 야근수당이 포함되었나보다 하는데, 벌이도 시원찮은데 수당은커녕, 없는 일 만들어 강제로 야근을 하고 있으니...

순오기 2009-09-08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업들이 이런 상황이군요~ ㅜㅜ
그러니 초등교사들이 좋을 수밖에요~ 육아기간은 3시면 퇴근이고, 사실 애들 보내고 별로 할 일없이 음악만 방방 틀어놓고 있는 선생님도 있어요. 오후에 수업하는 내 옆교실 선생님이 그래요~ 그래도 음악은 들을만한 걸 틀어놔서 나쁘진 않지만...^^

이잘코군 2009-09-08 13:51   좋아요 0 | URL
^^ 저도 선생님 할 때가 더 편한 거 같긴 해요. 수업 없으면 책도 보고, 수업 준비도 했고, 칼퇴하고 운동도 하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그랬죠. 대학원 병행하면서도 그때가 더 시간이나 마음이나 여유가 많았어요.

BRINY 2009-09-0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

이잘코군 2009-09-08 13:51   좋아요 0 | URL
-_- 에혀...

머큐리 2009-09-0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회사다니는 얘기 안쓸거에요...눈물나서 쓰기 싫어요...

이잘코군 2009-09-08 13:51   좋아요 0 | URL
네. 회사 야기해봐야 슬프죠. -_-

보석 2009-09-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한숨만....;;;

이잘코군 2009-09-08 22:37   좋아요 0 | URL
한숨만... -_- 뭐 여기뿐이겠습니까. 개념있는 회사 찾기가 더 힘들듯.

yamoo 2010-03-18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도 작년생각나네요..ㅎㅎ 야근..이건 몇년전에 삼성 입사한 신입사원이 1년만에 퇴사하면서 한국기업의 기업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건에도 나왔던거죠..할일도 없는데 부장 과장 퇴근안하니 죽치고 앉아있는거..완전 바보같은 일인거 같습니다. 아는 후배하나는 무역회사에 다니는데 근무시간에는 욕이다, 뭐다 정말 정신없이 일하다가 6시만 되면 칼퇴근합니다. 외국애들이 모두 퇴근하니 더 일할 게 없다는 군요..ㅋㅋ 생산성 향상이 어디서 오는지 대한민국 사기업의 윗선은 잘 모르는 거 같다는..회장이 지시하면 모합니까..조직문화가 바뀌지 않는데..그나마 전 탄력근문제라 다행이긴 해요..ㅋㅋ

이잘코군 2010-03-18 10:2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 회사는 야근문화는 강하진 않은데, 팀장에 따라서 야근을 시키는 곳도 있습니다. 일이 없는데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죠. 바보 같은 일입니다. 저도 근무시간에 일 다 하고, 퇴근은 칼같이 하자 주의입니다. 그래서 요새 칼 퇴근을... ^^ 무조건 근무시간 길고, 배터리처럼 돌린다고 다 되는 줄 아는 윗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3M인가 이 회사는 근무시간의 일부는 알아서 놀라고 한다지요. 창의성있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이요. 기획안은 족친다고 나오는 게 아닌데, 족치면 다 나와야 합니다. 이 나라 대부분의 기업은.
 
욕망하는 테크놀로지 - 과학기술학자들 '기술'을 성찰하다
손화철 외 지음 / 동아시아 / 2009년 3월
절판


기술은 단일한 어떤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무한한 다양성 그리고 삶의 조건과 결부되는 다양한 조합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이 책의 저자들이 공유하는 정신이다. 요약하자면 ‘기술은 어디에나 있으며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과 관계한다’ 정도가 되겠다. -9쪽

하이데거에게 기술이란 인간이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이다. 세상의 존재들을 인간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학이다. -16-17쪽

기술은 물질적 생산에 관련되어 있으며,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가능성과 목적하는 바를 확장한다. (중략)
우리가 기술을 만들지만, 기술은 우리 경험과 인간관계 및 사회적 권력관계를 바꿈으로써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 어떤 기술은 인간 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다른 기술은 독재자의 권능을 강화한다.-17쪽

근대 기술은 인간 몸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근대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도와주는 ‘도구’였다면, 근대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종속시키는 ‘기계’의 외양을 지닌다. -20쪽

기술과 사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기술의 진보가 사회의 진보로 자동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21쪽

어떤 노인이 밭일을 하고 있었다. 항아리를 안고 힘들게 물을 떠오고 있었다. 이를 본 젊은이가 왜 편리한 ‘기계’를 쓰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기계는 기계로서의 기능과 효율이 있다. 여기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사람의 본성을 망치게 된다." (<장자>)-34쪽

현대 사회의 문제는 상징 능력과 기술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데에 있다. 말하자면 기술이 너무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 문화적 의미를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36-37쪽

기술이란 그 자체로 인간과 세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단순히 자연의 모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구의 제작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매체로서 기술은 나름대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니 인간의 지각에 영향을 주고, 예술을 보충해줄 수 있다.
-48쪽

현대 기술은 자연에게 에너지와 원자재를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56쪽

기술은 인간에게 완전히 종속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인간의 목적을 이루면서도 새로운 계기들을 만들어낸다. -51쪽

근대에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던 결과로 자연의 다른 존재자들을 학문과 응용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결국 스스로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주체는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의지만 남은 셈이다. -59쪽

전통 기술은 상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의 다른 활동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는데,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 또 기술의 제작에 있어서는 자동화를 통해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면서, 사용에 있어서는 사용하지 않을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61쪽

기술 사회의 현실은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68쪽

기술은 외부로부터의 어떤 간섭도 용인하지 않으며 어떤 제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 도덕은 도덕적 문제를 판단하지만, 기술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오직 기술적인 기준들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판단은 인간 행위에 중요한 제약이 되는 윤리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 기술은 스스로를 선과 악의 기준 너머에 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제약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여겨졌다. 이제 그런 구분조차도 별다른 필요가 없다. 기술의 힘과 자율성은 너무나 공고해져서 이제는 무엇이 도덕적인지를 결정하는 재판관도, 새로운 도덕의 창조자도 기술이다. 그러니까 기술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기술의 자율성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자율성은 없다. (자크 엘륄, <기술사회>)-69쪽

인간의 가치나 필요는 효율성의 논리 앞에 무력하다. 사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사람이다. 모든 제조업에서 자동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기술의 생산뿐 아니라 소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더 빠른 컴퓨터와 더 얇은 휴대전화가 꼭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의해 기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를 창출한다. 누가 지하철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그렇게 간절히 소망했던가?-71쪽

기술시대의 인간은 기술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을 더불어 고려할 때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비록 인간 본래의 모습이 축소 혹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전통적인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축소에 대한 반성적 자각이 있다면 그런 전제 위에서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기술과 공생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디 기술철학의 중요한 함의가 아닌가 생각한다-83쪽

(라투르의 기술결정론과 사회결정론 모두에 대한 비판적 시각)
사람이 총을 가짐으로써 사람도 바뀌고 총도 바뀐다는 것이다.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고, 마찬가지로 총도 사람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옷장 속에 있는 총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즉 총과 사람의 합체라는 잡종이 새로운 행위자로 등장하며, 이 잡종 행위자는 이전에 사람이 가졌던 목표와는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 겁만 주려 했는데 총이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식이다.-89쪽

축음기와 전화기의 경우는 기술의 예기치 못한 용도가 그래도 ‘생산적인’ 다른 용도로 전환된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술 연구의 결과가 항상 이렇게 행복한 결말을 갖는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류는 플라스틱의 내구성에 찬탄을 보냈다. 이 놀라운 문명의 이기가 가진 ‘썩지 않는’ 장점이 미래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리라는 점을 예상한 기술자는 거의 없었다. -105쪽

기술 연구 과정에는 기술 자체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기술에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고려와 잠재적인 부작용에 대한 명시적 고려가 필요하다. -106-107쪽

기술 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기술이 가진 잠재적 혜택만이 부각되고 불확실한 위험은 축소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기술이 가져올 위험이 불확실할 때조차 기술 연구자들은 사회적 수준에서 그 위험에 대해 설명하고,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108쪽

기술결정론이란 기술은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기술이 그렇지 못한 기술을 대체하는 내부 논리에 의해 발전하는 데 비해 사회는 그렇게 선택된 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러 변화를 겪게 된다는 생각이다. -167쪽

현재 수준의 유전공학은 이처럼 기대효과 이외의 예기치 못했던 효과에 대해 많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예기치 못했던 효과가 항상 혹은 대부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이미지에 상응할 정도로 끔찍할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
하지만 긍정적 불확실성과 부정적 불확실성은 확률적으로는 동등할 수 있어도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나 대응방식이 동등할 수는 없다. … 여기에 생명공학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더라도 생명공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불확실성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특정 기술의 사용은 거의 항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혹은 개인의 수준에서건 사회적 수준에서건 그것이 가져올 유용함과 위험을 저울질하여 선택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계속)-270쪽

(이어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전공학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많은 잠재적 혜택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많은 경우 미리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 사이에서 사회적 공감대에 기초한 적절한 선택을 수행하는 일이다. 생명공학이 우리에게 기술적인 도전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을 제기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70쪽

기술의 사회적 책임은 이 사회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다루기 쉬운 도구는 아니다. 높은 사회적 이상과 목표가 설정되고 이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희망적 열정이 있을 때 기술이 훌륭한 조력자가 되는 것이지 사회가 목표도 없이 표류한다거나 저급한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따라 가려 한다면 거대한 기술의 힘에 사회가 오히려 휘둘리고 말 것이다. 기술이 자체의 힘으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든다거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술을 잘 선택하고 발전시킴으로써 도덕적인 사회,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310-311쪽

엔지니어는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는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이나 역사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직접 문제를 제기하거나 만들어내야 한다. 하는 일이 사회적 안전과 직접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 사회의 전문인 집단으로서 엔지니어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이상과 목표를 찾는 데 동참하며, 사회적 이상과 목표에 입각하여 자기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면밀히 분석하고, 프로젝트의 결과가 이에 어긋나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기업이 지나치게 이윤만 앞세운 나머지 사회 안전을 해치지 않는지 견제하여야 한다. 엔지니어는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에 대해 일차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가장 정확히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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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 언어가 춤을 춘다 세상을 다 말하라!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3
윤세진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구판절판


책은 책의 속도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책은 다른 매체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른 매체와 접속하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15쪽

우리말의 ‘오염’을 개탄하는 지식인들 중에는 그 ‘오염’의 원인을 모두 외국어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 한자가 가져온 오염, 일본말이 가져온 오염, 영어가 가져온 오염…. ‘우리말 오염’을 개탄하는 ‘애국자’들의 비장한 글들을 보며 나의 지저분한 언어 사용을 반성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우리말의 ‘순수’를 지킨다는 일이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오염되기 이전의 순수한 우리말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태초부터 ‘순수한 단일체’였다는 발상만큼이나 근거가 없다. -118쪽

중요한 것은 지배적인 언어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 즉 지배적인 언어 안에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들을 뒤섞고 그럼으로써 지배적 언어를 변형시키는 것이며, 한 언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언어를 넘나들면서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과 한자 중에 뭘 선택하는가’라는 사실 자체는 그리 중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쓰는 표현이 ‘영어식 표현이냐 일본식 표현이냐’ 하는 것도 중요치 않다. 그 표현들이 언어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생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언어를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빵빵’하게 해줄 것이다. -125쪽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릴는 결국, 영어가 보편의 언어이므로 그것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쟁의 논리다. 전세계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수적으로 절대 소수지만, 세계 질서 속에서 권력을 쥔 제국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그것은 ‘지배적인 다수어’가 된다. 영어의 보편성이란, 그런 의미에서 권력과 자본의 보편성인 것이다.-130쪽

브루노의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의 언어 단일화는 절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사용하던 언어가 고상하고 학식 있는 언어로 공식화되고, 상대적으로 민중들이 사용하던 여러 지역 방언들은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의미의 ‘사투리’로 격하된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는 의미였던 ‘사투리’라는 단어가 1690년에 발행된 퓌르티에르 사전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비속하고 천한 말’이라는 의미로 정의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의 언어가 공식 언어, 즉 표준어로 승격함으로써 부르주아들의 정치적 독점을 보장해주었다는 사실이다. -134쪽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배에 낭랑하여 그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어서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둘째, 차츰 날씨가 추워질 때 읽게 되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유전하여 체내가 편안하여 추위를 잊을 수가 있게 되며,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땐, 눈을 글자에 마음은 이치에 집중시켜 읽으면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지게 되고, 넷째, 감기를 앓을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부딪힘이 없게 되어,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쳐버리게 된다. (이덕무, <이목구심서>)-176-177쪽

무릇 글을 읽을 때에는 높은 소리로 읽는 것이 좋지 않다. 소리가 높으면 기운이 떨어진다. 눈을 딴 데로 돌려도 안 되니, 눈이 딴 데에 있으면 마음이 딴 데로 달아난다. 몸을 흔들어도 안 된다. 몸이 흔들리면 정신이 흩어진다. 무릇 글을 욀 때에는 착란하지 말아야 하고 중복하지 말아야 하며 너무 급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급하게 하면 조급하고 사나워서 맛이 짧다. (홍대용, <매현에게 주는 글>)-177쪽

소설가 베게트는 여행에 대해 멋진 정의를 내린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꿈이나 영혼 등으로부터 나온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눈이 파란 사람이 세상에 정말 존재하는지, 꿈에서 본 그 황홀한 하늘빛이 어딘가에 정말로 펼쳐져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 그게 여행이라는 거다. -179쪽

텍스트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건설 중인 건물 같은 것이다. 건축가는 자신의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짓지만, 사실 그 건물을 ‘건물’로서 완성시키는 사람은 건축가가 아니다. 건물을 완성하는 건 그 건물 안에서 생활하게 될 거주자의 몫이다. 거주자야말로 건물을 ‘사용’함으로써 건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에 숨어 있는 ‘결정된 의미’ 같은 건 없다. 텍스트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은 그 텍스트와 접속하는 독자에게 맡겨져 있다. 텍스트라는 건물이 만들어진 시대의 건축 양식에 주목할 것인지, 그 건물이 사용되어온 역사에 주목할 것인지, 아니면 내 나름의 기준으로 건물을 리모델링할 것인지, 그건 독자의 몫이다.-201-202쪽

텍스트를 읽는 것은 텍스트를 내 신체의 일부로 느끼는 것이며, 거기에 하나의 해석을 가하는 것이다. -225쪽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낙타가 사자로 변신해야 하는 것과 같다."(니체)-231쪽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공리니 정의니 하는 미명으로, 성인군자란 간판으로, 점잖고 성실한 체하는 가면으로, 유언비어와 여론이란 무기로,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의 글로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칼도 없고 붓도 없는 약자들을 숨도 못 쉬게 하는지를. 나에게 이 붓이 없었다면 수모를 받고도 어디가서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깨어났다. 그러기에 늘 이 붓을 들어 기린의 피부 속에 감춰진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있다.(루쉰, <화개집 속편>)-247쪽

페이지(page)라는 말의 어원인 라틴어 ‘파구스’(pagus)는 농부가 일구는 밭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쓰여진 글들이 경작된 밭고랑을 닮은 것도 같다. 좋은 농부의 덕목이 토양과 기후, 경작물에 대한 앎과 성실함, 그리고 뿌린 것 이상을 탐내지 않는 정직함이듯이,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세상에 대한 앎과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다. 물론 이때의 ‘앎’이란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터득한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글을 이루는 것은 어떤 법칙이나 현란한 수사, 잡다한 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걸음걸이와 세상에 대한 시각, 그가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 등이다. -247쪽

글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떠날 수 있을 때 시작된다. -251쪽

글을 쓴다는 건, ‘언어’라는 ‘도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는 자신을 뛰어넘는 실험이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모험이며, 다른 이들과 공감하기 위한 공명통이다. 자신의 신체가 공명할 수 있는 만큼 글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지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293쪽

보통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아끼는 것이라도 남에게 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에 동춘 송준길 선생은 남에게 책을 빌려 주었는데 그 사람이 되돌려줄 때 종이에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았으면, 반드시 책을 읽지 않았음을 나무라고 다시 빌려주었다. (이덕무, <이목구심서>)-309-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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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9-09-1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맘에 드는데요. 아프님 소개라는 것만으로도...
저도 보관함에 담아두기 했어요.^^

이잘코군 2009-09-14 09:21   좋아요 0 | URL
내용 전개가 약간 어수선한 감이 있는데, 도입부를 좀 지나면서 점점 빠져듭니다.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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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읽는 방법 :  이 책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책을 펼친다.

  가슴이 쿵딱쿵딱 거렸다. 이거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거지? 때로는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때로는 몇 주의 간격을 두고 메일 놀이(?)를 하는 두 사람에게 빠져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어버렸다. 주연 배우 레오와 에미 둘, 조연 하나. 내 부실한 기억력에 의하면 출연진은 이 셋이 전부지만 어쩌면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한둘 더 나올 수도.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읽었고, 지인에게 추천해줬다. 이 책을 읽은 두번째 지인이 말하길, 너무 가슴이 답답하다, 라고 했다. 어쿠. "왜?" 라고 물어봤다. 들어보니 지인은 읽는 동안 바람난(?) 에미의 남편에게 감정이입했던 것이다. 아니 주인공인 레오와 에미에게 집중해야지 왜 하필 에미의 남편을 선택(?)한거야. 모르겠단다. 자기 남자친구가 에미같이 그러면 화가 날 거 같다,고 했던가. 그래도, 그래도, 이건 소설이잖아. 어쨌든 화가 났단다. 의도치 않은 반응인 걸.  

  서로 생김새도 알지 못하고, 우연으로라도 만난 적도 없고, 어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익명의 남자(혹은 여자)에게 메일을 보낸 것도 아닌, 두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을까. 가끔은, 그들의 메일을 훔쳐 읽다가 얘네, 지금 사랑하는 거 맞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사랑이라고 결론짓는 내 생각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져야 할지도. 호기심이든, 장난이든, 조건만남이든, 목적이 무엇이든 두 사람은 서로의 모니터를 앞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었다. 보고 싶어요, 레오. 잘자요, 에미.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모닝, 굿모닝. 그러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채팅창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에게 호감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어린 시절 숱하게(?) 채팅을 하다가 아, 이 사람 참 궁금하다,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만나고 싶다, 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생김새를 묻는다. 키는 몇인가요, 몸무게는 몇인가요, 파마했나요, 생머리인가요, 어떤 옷을 즐겨 입으세요, 안경은 썼나요, 눈은 큰가요?  마음과 마음으로 오가던 두 사람은 이제 물음과 물음과 물음을 통해 어느새 서로의 몽타주를 그리고 있다. 마침내! 아, 우리 만나요.  

  그래서 만났다. 만났는데 이상하다. 그때 그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도, 그 사람에게 그때 그 사람이 아닌가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반할 만한 외양이 아니어서였는지, 아니면 스타일이 문제였는지, 몽타주를 잘못 그린건지,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난 건 실수였다. 채팅창을 통해서만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건데. 그렇게 오랜 세월 메일을 주고 받은 레오는 에미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에미는 레오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 건지 궁금한 건 '이들이 만났을까', '만났다면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라는 물음에 닿아있기 때문인지도.  

  미리 이야기해버리면 재미없으니까 여기까지. 분명한 건, 나에게 에미는 무척 매력적인 인물이란 거. 어느날 나에게 이런 메일이 왔(으면 좋겠)다.

  "제목 : 구독 취소. 정기구독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메일로 취소 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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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선물은 아무나 하나
    from 남은 건 책 밖에 없다 2009-09-04 17:09 
    8월의 어느 여름 밤. 존경하는 B선배와 W를 이태원에서 만났다. B선배가 출판사를 운영하는 L님을 모시고 나왔다. 비록 수준이 좀 높지만(!!) 내가 무척 좋아라 하는 출판사. L님에게 처음 인사드리면서 "출판해주신 좋은 책들 덕분에 행복한 밤들이 꽤 있었다"는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반응이었음에도 불구, 나 멘트가 넘 매끄럽구나, 빠다 바른듯...하면서 살짝 스스로 놀랐던..ㅋ ) 처음에 갔던 멕시칸+
 
 
반딧불이 2009-09-0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방문취소, 아프님의 서재 정기방문을 취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댓글로 취소신청을 해도 되겠지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이런것도 되나요?

이잘코군 2009-09-04 09:15   좋아요 0 | URL
으흣. ^^

머큐리 2009-09-0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 한 번 읽으려구요..ㅎㅎ 정말 괜찮으려나???

다락방 2009-09-04 08:22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라니깐요!! (이젠 막 화낸다 ㅎㅎ)

이잘코군 2009-09-04 09:15   좋아요 0 | URL
읽어보시라니깐요!! (이젠 막 화낸다 ㅎㅎ) 2

비로그인 2009-09-04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책이 너무 좋아서 리뷰를 못쓰겠어요. 정말 너무 멋진 연인을 만나 그저 하릴없이 그녀 얼굴만 쳐다보는 그런 사람의 기분이어요.

이잘코군 2009-09-04 09:16   좋아요 0 | URL
일곱번째 파도 리뷰를 쓰려다가, 쓰다가 책을 바꿨어요. 일곱번째 파도는 쓸 수 있으려나. 소설의 느낌을 살려 쓰고 싶었지만, 못 쓰겠더라고요. ^^

다락방 2009-09-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아프락사스님이 써주셨고,
[일곱번째 파도]를 재미있게 읽는 방법: 반드시, 반드시 새벽 세시를 먼저 읽고 읽는다.

후훗.
저 둘의 순서가 바뀌면 재미는 절반도 안될거에요, 정말.

이잘코군 2009-09-04 09:16   좋아요 0 | URL
딩동댕.

머큐리 2009-09-05 19:20   좋아요 0 | URL
참고로 이 책은 밤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새벽이면 더 좋고...

또치 2009-09-0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거 이제야 읽었는데...
레오, 에미, 베른하르트, 모두 다 내 곁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출근길에 그 생각하니까 살짝 눈물도 나려고 했어요...
암튼 이건 다 애초에 다락방님, "넛 때문이다" !

이잘코군 2009-09-04 09:46   좋아요 0 | URL
엇, 또치님도 설마 베른하르트에 감정이입한거에요? 그런거에요? ^^

또치 2009-09-04 09:52   좋아요 0 | URL
세 사람 모두에게 다 감정이입이 돼요. 휴, 힘들어.

다락방 2009-09-04 10:55   좋아요 0 | URL
어? 여기에 나 있네요 ㅎㅎ

이잘코군 2009-09-04 11:26   좋아요 0 | URL
여기에 나 없다.

무해한모리군 2009-09-0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so-so였지만,
가슴이 콩닥콩닥 뛰게하는 대목이 있었어요.

아프락사스님은 뵙고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너무 똑같아서 놀랐는데~

이잘코군 2009-09-04 09:46   좋아요 0 | URL
엇, 나를 만났을 때 상상했던 이미지랑 같았다고요? ^^ 이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흐흐. <일곱번째 파도>보다는 이 책이 더 입이 바싹 마르고, 두근두근 거려요. 두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들은 어떻고. 번역 참 잘한듯.

무해한모리군 2009-09-04 11:01   좋아요 0 | URL
목소리는 생각보다 조금 느끼했고 ^^
모습은 생각처럼 부드러운 가운데 단정한 모습이 보였어요~
금요일이니까 칭찬모드~~

이잘코군 2009-09-04 11:25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도 눈이 크고 맑고 다정다감한 인상이 딱 맞았어요. 금요일은 칭찬모드. ㅋㅋㅋ

레와 2009-09-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장 이메일 친구를 만들고 싶어 몸을 부르르르 떨었어요! ㅋㅋ

이잘코군 2009-09-04 11:25   좋아요 0 | URL
메일 주소 입력란에 아무 주소나 쓰고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스팸 메일이라고 지워버리려나. -_-

레와 2009-09-04 14:14   좋아요 0 | URL
음.. 그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요! ㅎㅎ

무스탕 2009-09-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아프님 페이퍼의 첫 줄, 붉은 글씨만 읽고 바로 요기로 마우스 내려버렸어요 ^^
아프님 권장대로 아무 소식도 접하지 않고 읽을거에요!!
(눈 감고, 귀 막고 앞으로만 가야지, 꼭!!)

이잘코군 2009-09-04 23:0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네, 사전 정보 없이 읽으시는 게 제일 좋아요. 야심한 시각에 두 시간이면 다 보지 않을까 해요. ^^ 분위기 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