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단일한 어떤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무한한 다양성 그리고 삶의 조건과 결부되는 다양한 조합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이 책의 저자들이 공유하는 정신이다. 요약하자면 ‘기술은 어디에나 있으며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과 관계한다’ 정도가 되겠다. -9쪽
하이데거에게 기술이란 인간이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이다. 세상의 존재들을 인간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학이다. -16-17쪽
기술은 물질적 생산에 관련되어 있으며,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가능성과 목적하는 바를 확장한다. (중략) 우리가 기술을 만들지만, 기술은 우리 경험과 인간관계 및 사회적 권력관계를 바꿈으로써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 어떤 기술은 인간 사회를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만, 다른 기술은 독재자의 권능을 강화한다.-17쪽
근대 기술은 인간 몸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근대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도와주는 ‘도구’였다면, 근대 기술은 인간의 노동을 종속시키는 ‘기계’의 외양을 지닌다. -20쪽
기술과 사회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기술의 진보가 사회의 진보로 자동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21쪽
어떤 노인이 밭일을 하고 있었다. 항아리를 안고 힘들게 물을 떠오고 있었다. 이를 본 젊은이가 왜 편리한 ‘기계’를 쓰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기계는 기계로서의 기능과 효율이 있다. 여기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사람의 본성을 망치게 된다." (<장자>)-34쪽
현대 사회의 문제는 상징 능력과 기술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데에 있다. 말하자면 기술이 너무 빨리 성장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 문화적 의미를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36-37쪽
기술이란 그 자체로 인간과 세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단순히 자연의 모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구의 제작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매체로서 기술은 나름대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니 인간의 지각에 영향을 주고, 예술을 보충해줄 수 있다. -48쪽
현대 기술은 자연에게 에너지와 원자재를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56쪽
기술은 인간에게 완전히 종속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인간의 목적을 이루면서도 새로운 계기들을 만들어낸다. -51쪽
근대에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던 결과로 자연의 다른 존재자들을 학문과 응용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결국 스스로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주체는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의지만 남은 셈이다. -59쪽
전통 기술은 상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의 다른 활동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는데,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 또 기술의 제작에 있어서는 자동화를 통해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면서, 사용에 있어서는 사용하지 않을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61쪽
기술 사회의 현실은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68쪽
기술은 외부로부터의 어떤 간섭도 용인하지 않으며 어떤 제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 도덕은 도덕적 문제를 판단하지만, 기술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오직 기술적인 기준들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판단은 인간 행위에 중요한 제약이 되는 윤리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 기술은 스스로를 선과 악의 기준 너머에 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제약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여겨졌다. 이제 그런 구분조차도 별다른 필요가 없다. 기술의 힘과 자율성은 너무나 공고해져서 이제는 무엇이 도덕적인지를 결정하는 재판관도, 새로운 도덕의 창조자도 기술이다. 그러니까 기술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기술의 자율성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자율성은 없다. (자크 엘륄, <기술사회>)-69쪽
인간의 가치나 필요는 효율성의 논리 앞에 무력하다. 사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사람이다. 모든 제조업에서 자동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기술의 생산뿐 아니라 소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더 빠른 컴퓨터와 더 얇은 휴대전화가 꼭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의해 기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필요를 창출한다. 누가 지하철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그렇게 간절히 소망했던가?-71쪽
기술시대의 인간은 기술과 맺는 다양한 관계들을 더불어 고려할 때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비록 인간 본래의 모습이 축소 혹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전통적인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축소에 대한 반성적 자각이 있다면 그런 전제 위에서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기술과 공생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이디 기술철학의 중요한 함의가 아닌가 생각한다-83쪽
(라투르의 기술결정론과 사회결정론 모두에 대한 비판적 시각) 사람이 총을 가짐으로써 사람도 바뀌고 총도 바뀐다는 것이다. 총을 가진 사람은 총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고, 마찬가지로 총도 사람의 손에 쥐어짐으로써 옷장 속에 있는 총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즉 총과 사람의 합체라는 잡종이 새로운 행위자로 등장하며, 이 잡종 행위자는 이전에 사람이 가졌던 목표와는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 겁만 주려 했는데 총이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식이다.-89쪽
축음기와 전화기의 경우는 기술의 예기치 못한 용도가 그래도 ‘생산적인’ 다른 용도로 전환된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술 연구의 결과가 항상 이렇게 행복한 결말을 갖는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류는 플라스틱의 내구성에 찬탄을 보냈다. 이 놀라운 문명의 이기가 가진 ‘썩지 않는’ 장점이 미래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리라는 점을 예상한 기술자는 거의 없었다. -105쪽
기술 연구 과정에는 기술 자체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기술에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고려와 잠재적인 부작용에 대한 명시적 고려가 필요하다. -106-107쪽
기술 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기술이 가진 잠재적 혜택만이 부각되고 불확실한 위험은 축소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기술이 가져올 위험이 불확실할 때조차 기술 연구자들은 사회적 수준에서 그 위험에 대해 설명하고,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108쪽
기술결정론이란 기술은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기술이 그렇지 못한 기술을 대체하는 내부 논리에 의해 발전하는 데 비해 사회는 그렇게 선택된 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러 변화를 겪게 된다는 생각이다. -167쪽
현재 수준의 유전공학은 이처럼 기대효과 이외의 예기치 못했던 효과에 대해 많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예기치 못했던 효과가 항상 혹은 대부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이미지에 상응할 정도로 끔찍할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 하지만 긍정적 불확실성과 부정적 불확실성은 확률적으로는 동등할 수 있어도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나 대응방식이 동등할 수는 없다. … 여기에 생명공학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더라도 생명공학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불확실성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특정 기술의 사용은 거의 항상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혹은 개인의 수준에서건 사회적 수준에서건 그것이 가져올 유용함과 위험을 저울질하여 선택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계속)-270쪽
(이어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전공학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많은 잠재적 혜택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많은 경우 미리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 사이에서 사회적 공감대에 기초한 적절한 선택을 수행하는 일이다. 생명공학이 우리에게 기술적인 도전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을 제기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70쪽
기술의 사회적 책임은 이 사회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다루기 쉬운 도구는 아니다. 높은 사회적 이상과 목표가 설정되고 이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희망적 열정이 있을 때 기술이 훌륭한 조력자가 되는 것이지 사회가 목표도 없이 표류한다거나 저급한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따라 가려 한다면 거대한 기술의 힘에 사회가 오히려 휘둘리고 말 것이다. 기술이 자체의 힘으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든다거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술을 잘 선택하고 발전시킴으로써 도덕적인 사회,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310-311쪽
엔지니어는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엔지니어는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데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이나 역사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직접 문제를 제기하거나 만들어내야 한다. 하는 일이 사회적 안전과 직접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 사회의 전문인 집단으로서 엔지니어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이상과 목표를 찾는 데 동참하며, 사회적 이상과 목표에 입각하여 자기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면밀히 분석하고, 프로젝트의 결과가 이에 어긋나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기업이 지나치게 이윤만 앞세운 나머지 사회 안전을 해치지 않는지 견제하여야 한다. 엔지니어는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에 대해 일차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가장 정확히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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