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꿈꾸는가 - 성 심리학으로 쓴 21세기 사랑의 기술
에스더 페렐 지음, 정지현 옮김 / 네모난정원 / 2011년 10월
절판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대상과의 관계가 바뀌는 심리적 혁명이 일어난다. 자아의식은 물론 배우자, 친구, 부모, 친인척들과의 관계에서의 정체성까지 전부 바뀐다. 그 뿐인가, 몸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재정도 직장생활도 바뀐다. 우선순위가 바뀌고 역할이 다시 정의되고 자유와 책임의 균형에 전면적인 재정비가 이뤄진다.
말 그대로 아이와 사랑에 빠진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사랑에 빠지면 만사를 젖혀두고 그 대상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아기의 탄생과 함께 자원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당분간 부부를 위한 몫이 줄어든다. 시간, 의사소통, 잠, 돈, 자유, 스킨십, 사생활 전부 예전보다 줄어든다. 부부는 아이가 생기면 더욱 커다란 행복과 개인적인 성취감도 느끼지만, 그 변화가 부부 관계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말한다. -192-193쪽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탐구할수록 성적 판타지에 담긴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에너지와 상상을 통한 효율성, 치유력과 심리적인 힘까지. 판타지는 개인의 고유한 역사와 광범위한 상상을 합친다. 우리는 판타지라는 비행기를 타고 가능과 불가능 사이를 오간다. 판타지는 잡동사니처럼 흩어진 마음의 재료로 성적 흥분이라는 순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과 같다.
-230쪽

에로스의 상상력은 생기를 열성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자 욕망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다. 판타지를 살리면 쾌락의 길을 가로막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장애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판타지가 무엇을 충족시켜주는지 알면 당신이 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무엇을 찾고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에로스의 상상에는 성에 눈뜨게 해주는 열정적인 에너지가 들어 있다.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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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인문 강의를 권함 : 르네21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르네21 수요인문강의 중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바디우의 존재론 편. 강사 박정태.  

  (선생님께서는) 알랭 바디우의 책은 많이 번역이 되었는데, 그의 책을 번역한다는 건 무지 어려운 작업이라 하셨다. 제목을 잊었는데 오래 전에 어떤 출판사가 판권을 사갔는데 아직도 번역이 되지 않았다고. 번역된 책들 제목을 보니 그 중 내가 인터넷 공간에서 알게 된 분께 선물을 드린 책도 보인다. 사랑 예찬. 제목만 보면 연애 지침서 같지만 아니다.  

  어떤 철학자에 입문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를 알고, 내용을 접하는 것이다. 분명 우리가 평소에 알고 쓰던 용어들인데 이상하게 읽으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도통 알 수 없는 그런 문장들을 자주 접한다. 번역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그 철학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자기식으로 재정의해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만의 독창적인 용어였는데 우리식으로 말을 바꾸다보니 우리에겐 익숙한 단어로 번역된 경우 중 하나에 속할 것. 바디우의 책 중 하나에 바디우가 사용하는 용어들을 해설한 부분이 있다고 하여 선생님께서는 이것을 번역하여 강의 자료로 주셨다. (배경이 들어간 것은 박정태 선생님이 직역한 바디우 용어 부분)

1. 유적 다수로서의 존재와 사건의 발생  
    이건 유적 다수란 존재를 수적으로 보겠다는 말이다. 수량으로 말이다.   

* 존재론  
-존재로서의 존재에 관한 학이자 현시에 대한 현시를 말함. 존재론은 순수 다수에 관한 사유이기 때문에 칸토어적 의미의 수학 또는 집합 이론으로 실현됨.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은 비록 그것이 겉으로 논제화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미 수학의 전체 역사 안에서 실현되고 있었음.  
-결코 일자에 의지함이 없이 순수한 다수를 사유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론은 필연적으로 공리적임.

해설:
-현존은 존재가 존재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신이 만물 속에 현존한다는 식. 현시는 그 모습 그대로 다 펼쳐진 상태를 의미한다.

-위 문장에서 칸토어라는 수학자가 등장하는데, 그의 수학 이론은 이렇다. 가오스는 무한을 한 상자 안에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칸토어는 자연수는 무한이라고 보았다. 무한으로서의 자연수를 상자 안에 담을 수 있다고 본다. 실수 또한 마찬가지. 무한수의 상자보다 실수의 상자가 더 크더라.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0, 2, 4, 6, 8, 10으로 이어지는 짝수의 집합보다 1, 2, 3, 4, 5, 6, 7, 8, 9, 10 으로 이어지는 자연수의 집합이 더 큰 것 같이 보인다. 농도, 밀도의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둘 다 무한한 수의 나열일 뿐이다. 또한, 각각이 1:1로 대응이 가능하다. 짝수 집합의 0은 자연수의 집합의 1에, 2는 1에, 4는 2에, 6은 3에 이후 계속. 우주와 지구에 사는 존재들도 마찬가지. 우주의 존재가 더 큰 것 같지만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다.

  루트 2와 같이 개수를 셀 수 없는 쓸모 없는 수를 피타고라스 학파가 발견하였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1센티미터인 정사각형을 두고 사람들은 그 정사각형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루트 2의 발견으로 정사각형을 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기존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칸토어는 비가산 무한집합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1, 2, 3, 4, 5, 6으로 이어지는 자연수는 힘의 크기가 가장 작은 가산 무한집합이다. 이것은 0.12345, 0.12346 으로 이어지는 실수의 집합과 일대일 대응을 하더라도 해당 실수 집합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실수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그들은 자연수의 집합과 일대일 대응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무한한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한 실수의 집합보다 작다. 결론은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는 것. 바디우가 볼 때 칸토어로 인해 순수 다수에 관한 사유가 가능해진 것이다.  

-위 문장에서 '일자에 의지함'이라는 의미는 이렇다. 무언가에 속한다는 소속감이나 나를 가두는 테두리, 묶음, 정의함 등을 지칭한다. 1학년 1반, 르네21, 서울대학교, 백과사전에서 볼 수 있는 카테고리 동물, 식물, 포유류 등을 지칭한다.  

* 현시
-메타 존재론의 기초가 되는 어휘로서 실제적으로 펼쳐져 있는 다수-존재를 말함. 현시는 "불안정한 다수성"과 상통함. 현시와 비교하여 일자를 보자면, 일자는 결코 현시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불안정한] 다수를 안정되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얻게 되는 결과일 뿐임.  

해설 :
-존재론은 '현시에 대한 현시'에 대한 사유.
-"철학은 현시에 대한 현시를 사유함으로써 현실을 인식한다."(바디우)
-집합으로 묶인 다수를 우리는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일자에 의지하는 것. 이런 식으로 묶여 있으면 새로운 것은 발생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안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어떤 이들은 파리 시민임녀서 프랑스 국민이기도 하다. 파리 시민은 프랑스 국민 안에 있는 카테고리이다. 프랑스 국민이 루이 16세의 목을 쳤다. 파리 시민이라는 카테고리의 언어 코드, 지식 등으로는 프랑스 국민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는 것. 묶인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언어 체계로는 묶을 수 없는 사건인 것.  
_발생한 정치적 사건은 무한하게 불안정하게 펼쳐져 있는 유적 다수를 보여준 것이다. 현시에 대한 현시를 철학이 보고 존재의 모습을 읽어낸다. 존재의 모습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은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 이것이 진리라는 것. 철학은 진리를 인식한다. 철학은 진리를 생산하지는 못한다. 철학은 오직 인식할 뿐이다. 사건이 건수(현시에 대한 현시)를 주면 철학은 이를 인식한다.
-사랑은 도저히 접근 불가능한 둘의 체험이다. 사랑하기 이전에는 홀로 존재했거나 이 세상이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존재했거나 둘 중 하나. 사랑하는 순간은 오직 둘만 존재하게 된다.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다. 둘의 체험인 것. 좋아하는 이유들이 각기 있겠지만 그런 조건들을 제외한 둘만의 체험이다. (작성자 주: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삶의 영역에서 정치(이것은 기존의 무엇을 깨고 발생하는 사건), 사랑, 예술(무한하게 펼쳐진 시적 언어), 학문(과학)은, 철학의 건수를 제공한다. 철학은 불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철학의 종말을 논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작은 없다. 철학은 건수를 통해서만 그때그때 존재하고 활동한다.
-'불안정한 다수'는 묶는 것이 없는 것. 현시이다.


* 상황
-현시되어진 모든 안정된 다수성. 따라서 그것은 다수성이되, 하나-로-셈하기의 체제 또는 구조와 더불어서 이루어진 다수성임.

해설 :
-안정되었다는 것. 하나로 셈하기를 통해 묶고 해석한 것. 묶는다는 것은 불안정함을 피하는 것이고 곧 안정이다.
_귀속 관계


* 공백의 공리
-전혀 원소를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하나의 집합이 존재하며, 이 집합은 공집합 표시를 그 고유의 이름으로 지님.

해설 :
-상황을 묶고 싶어 집합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불안정한 것이 있다. 그래서 그 나머지들을 묶은 기호가 공집합이다. 묶고 묶어서 안정화를 추구했는데, 아무리 묶어도 남는 것이 있다보니 이것도 기호로 묶은 것.


* 공백
-한 상황의 공백은 그 자체가 곧 자기 존재와의 봉합을 가리킴. (존재론적 상황 안에서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하나-로-셈하기의 비-하나로서의 공백은 일종의 지정할 수 없는 점이라 할 수 있음. 현시되고 있는 것이 셈을 벗어난 형태 아래에서 현시 안을 배회함이 확인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통해서임.
-공백의 공리를 참조할 것. 

해설 :
-상황의 참 존재는 묶인 것들을 벗어난 것. '공백=공집합=비하나'는 봉합. 자기 존재와의 접근을 가리킴.


* 귀속
-집합론의 근본적이면서 유일한 특징으로서 하나의 다수 베타(b)가 또 하나의 다수 알파(a)의 다수-구성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함. "베타는 알파에 귀속한다" 또는 "베타는 알파의 원소이다"라고 말함.  
-위의 말을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의 항(또는 하나의 원소)이 어떤 상황에 의거하여서 현시되고 또 하나의 고려 아래 세어질 때 그 항은 바로 이 상황에 귀속하는 것이 됨. 포함은 재현을 가리키는 데 반해서 귀속은 현시를 가리킴.

해설 :
-'하나의 다수 베타'는 하나의 항이자 그 자체가 집합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국민, 파리 시민
-어떤 상황은 집합을 의미한다.
-"포함은 재현을 가리키는 데 반해서 귀속은 현시를 가리킴"은 포함된다는 것은 곧 재현이라는 의미이다.


* 상황의 상태
-[어떤 상황에 귀속하는 하나의 항이 그 상황에 의거하여서 하나의 고려 아래 세어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한 상황의 구조 또한 그 상황의 상태에 의거하여서 하나의 고려 아래 세어짐. 따라서 상황의 상태는 셈에-대한-셈 또는 메타구조임.
-상태의 필요성은 [상황 안에서의] 공백의 모든 현시를 몰아내고자 하는 요구로부터 비롯됨. 상태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상황을 가득 묶어 채움.
-상황의 상태는 상황의 부분들(부분-다수들 또는 부분집합들)을 대상으로 하나-로-셈하기를 가능케 함.

해설 : 
-공집합이 안정성을 해치니까 원래의 집합 {a, b} 집합의 부분 집합들 {a}, {b}, {a,b}, 공집합을 생각해본다. 이들을 원소로 하는 집합을 생각한다. 공집합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위 네 부분 집합을 묶는 새로운 집합의 탄생 p(a)=[ {a}, {b}, {a,b}, 공집합]. 이렇게 되면 [ ] 라는 언어로 공집합까지 다시 묶을 수 있다.
-항과 집합간의 관계
-'셈에 대한 셈' : 앞의 '셈'은 상황, 뒤의 셈은 이에 대한 셈. 예를 들어, 해병대 지부회라는 틀 안에 경기 해병대 지부회, 충주 해병대 지부회 등이 묶인다. 귀속된 지역 해병대 지부회가 해병대 지부회라는 틀 안에 다 들어가 있는지 다시 셈하는 것이다. 하위 집합에 포함되는 원소는 하위 집합을 포괄하는 집합에도 포함되는 원소이다. 셈에 대한 셈을 하는 이유는, 묶어지지 않은 불안정한 것을 드러내고 세고 몰아내기 위함이다. 보다 안정적인 다수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인 것.
-집합과 집합 간의 관계

 
* 사건적 장소
-상황 안에 놓인 하나의 다수가 있되 만약 그 다수가 전체적으로 특이하다면, 즉 다수 자체는 [상황 안에서] 현시되고 있지만 다수 자신의 원소들 중 그 어느 원소도 [상황 안에서] 현시되고 있지 않다면, 이 다수는 하나의 사건적 장소임. 따라서 사건적 장소는 [상황에] 귀속은 하지만 근본적으로 포함은 되지 않으며, 또 그는 [상황의] 원소이지만 결코 상황의 부분 [부분집합]은 아님. 이리하여 그는 전체적으로 비정규적임.
-한편 이러한 다수는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있다고 말해지거나 또는 세우는 자로 불림.

해설 :
-국가라는 집합 안에 불법 체류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의 행정적인 부분으로 보면 잡히지 않는다. 교사들은 진선여고 촛불 고딩들이 시청에 있는지 없는지 살피러 갔는데 시청 광장에서 본 그들은 진선여고라는 지식 체계, 언어 체계로는 그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이 읽히지 않는다. 박정태 샘과 가족들은 주민등록이 말소되었지만 한국에 있을 수 있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개념적으로 읽히지 않는 것들, 특이한 것들인 셈.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라고 말함.


* 특이한, 특이성
-하나의 항이 특이하다는 것은 그 항이 (상황 안에서) 현시되고 있지만 (상황의 상태에 의거하여서는 [상황 안에서]) 재현되지 않는 것을 말함. 따라서 특이한 항은 상황에 귀속은 하지만 상황에 포함되지는 않으며, 하나의 원소이지만 부분은 아님.
-특이성은 돌출과 정규성에 대립함.
-특이성은 역사적 존재, 특히 사건적 장소의 본질적인 속성임.


해설 :
-박지성, 이영표, 펠레, 마라도나, 지단 등 축구 선수들의 집합이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둘이 뭉쳐 다녔다. 두 사람이 원소인 부분 집합이 형성된다. 이 상황에서 읽히고, 또 묶였다. 묶인 집합을 베타라고 하면 이는 전체 집합 알파에 포함된다. 베타를 집합으로 보지 말고 하나의 항으로 보면, 그것은 '한국인'이라는 항으로 바꿀 수 있다. '한국인'이라는 항은 '축구 선수'라는 집합 알파, 항 알파에 속하지 않는다. 집합으로 보면 묶이는데 항으로 보면 묶이지 않는, 읽히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 '돌출' 이라고 한다.
-애써 묶었는데 그 안에서 일부를 묶었더니 이상하게 묶인 집합을 벗어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즉, 일자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묶고 묶으려 해도 묶이지 않는 것이 나타난다. 일자는 인위적인 것이다.
-특이성은 역사적 존재, 정규성은 자연적 존재이다.

=> 정규적이다, 특이하다, 돌출적이다 라는 세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정규성으로 잡혀 있는 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 초과점의 정리
-모든 집합 알파에게 있어서는 집합-p(a) 즉, 집합 a의 부분[부분집합]들로 이루어진 집합-의 원소이지만 집합 a의 원소는 아닌 집합이 최소한 하나는 꼭 존재한다. 따라서 외연성의 공리에 비추어 볼 때, 집합 a와 집합 p(a)는 서로 다른 집합임.
-집합 a 위에 가해지는 집합 p(a)의 이러한 초과는 일종의 국지적인 차이인 바, 코헨-이스턴으 ㅣ정리는 이러한 [국지적인] 초과에 그 어떤 전반적인 위상을 제공함.
-초과점의 정리는 언제나 최소한 하나 이상의 돌출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 따라서 상황의 상태는 상황과 결코 일치할 수가 없음.

해설 :
-마라도나, 펠레, 박지성, 이영표 등을 원소로 하는 본래의 집합 알파의 원소들을 가지고 부분 집합을 만들어 이것을 p(a)라고 부르자. 박지성과 이영표의 묶음은 베타에 속하는데 이 베타는 알파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묶음은 p(a)에는 속한다. 알파(a)<p(a)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 둘은 각각 다른 집합이다.
-상태 p(a)가 상황 a를 초과한다는 것. 언제나 하나 이상의 최소한의 돌출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상황의 상태가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공백의 가장자리
-상황 안에 있는 사건적 장소의 위치상의 특징. [사건적 장소 자체는 상황 안에 현시되어 있지만] 사건적 장소와 그 어떤 원소들도 [상황 안에] 현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ㅏㅅㅇ황 안에서 보자면 사건적 장소 "아래에는" 오로지 공백만이 있게 될 뿐임. 달리 말하자면, 이러한 다수의 분산 배치는 이다수가 상황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결코 상황 안에 있지 않음. 이러한 다수 중의 하나가 상황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임.
-기술적으로 표현하자면, '베타가 알파에 귀속됨'의 경우, 만약 모든 '감마가 베타에 귀속됨'(말하자면, 감사는 베타의 모든 원소를 말함)에 대하여 ''감마가 알파에 귀속됨'이 아닌' 경우라면, 즉 감마가 알파의 원소가 아니라면, 베타는 [알파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해짐. 아울러 이 경우 베타는 알파를 세운다고 말할 수 있음. (이 점에 대해서는 세움의 공리를 참조할 것)

해설 :
-진선여고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있긴 있는데 진선여고라는 코드로는 읽히지 않는다. 이를 두고 '공백의 가장자리에 있다' 라고 말한다.  


* 세움의 공리
-비어 있지 않은 모든 집합은, 그 집합 자신과의 교차[교집합]가 공백이 되는 원소를, 따라서 본래의 집합의 원소들이 아닌 원소들을 자기의 원소들로 지니는 그런 [집합으로서의] 원소를 최소한 하나는 소유하고 있음. 기호로 표현하자면, '베타가 알파에 귀속됨'이지만 '베타와 알파의 교집합이 공집합인 베타', 따라서 '감마가 베타에 귀속됨'일 때 ''감마가 알파에 귀속됨'이 아님'이 분명한 베타가 [알파 안에 최소한 하나 이상] 존재함. [상황의 개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상황에 귀속은 하지만 상황에 포함되지는 않는, 또는 상황의 원소이지만 부분은 아닌 특이한 항이 최소한 하나 이상 상황 안에 존재함]. 이 경우 베타는 알파를 [알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코 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우고 있다고, 또는 베타는 알파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하여짐.
-[모든 집합 알파는 '베타와 알파의 교집합이 공집합인 베타'를 최소한 하나 이상 자기의 원소로 지니며 이때 베타는 알파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저히 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알파를 세워 나간다는 점에서] 이 공리는 [모든 집합의] 자기-귀속의 금지를 함축함. 그리고 [베타가 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알파를 세워 나감은 곧 사건의 지정할 수 없는 발생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공리는 결국 존재론은 사건에 대하여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줌.

해설 :  
-모든 집합에는 사건적 장소가 있다. 파리 시민은 베타 정규적 항. 그런데 이 정규적 항이 읽히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기존 집합 프랑스 국민 알파에서는 읽히지 않는다. 알파와 베타의 교집합이 없다. 즉 공집합인 것. 이러한 베타가 사건적 장소에 하나 이상이 있다. 이를 두고 베타는 알파를 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또는 베타는 알파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한다. 
-"세움의 공리는 모든 집합의 자기 귀속의 금지를 함축함." : 알파는 알파 자신에게 속할 수 없다. 칸토어의 자기 귀속의 금지 원칙. (러셀이 이를 위배하는 경우를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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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에게 인문 강의를 권함 : 르네21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from 자유, 그리고 자유 2011-10-11 12:26 
    수요일마다 르네21(http://www.renai21.net)에서 듣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철학' 강의. 다섯 번째쯤 되는 것 같다. 바쁜 일로 두 번을 빠졌고, 세 번 중 두 번은 들뢰즈, 그리고 최근에 들은 강의가 바디우다. 들뢰즈 강의를 두 번 빠지긴 했지만 들뢰즈의 핵심 개념은 알았고, 들뢰즈보다 더 수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어렵게 언어를 구사한다는 바디우에 입문한다. 들뢰즈나 바디우나 이름만 들어본 건 마찬가지. 들뢰즈와 바디우 강의를 들으면서,
 
 
jollyman 2012-04-0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초과점의 정리에 대한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군요. 이렇게 바디우 존재와 사건의 내용을 보다니 반가운걸요. 이게 박정태 선생님의 강의록이라면... 어쩌면 선생님이 번역하신 <들뢰즈: 존재의 함성>이라는 책에 붙어있는 어펜딕스에도 나올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서평질을 하다가 그 내용이 필요한 경우가 생겨서 구글 검색을 하니 아프락사스님의 블로그가 바로 뜨더군요. 문제는 이걸 거기다 어떻게 알아먹기 쉽게 넣느냐는 건데...ㅎㅎㅎ 답이 안나오는군요. 바디우가 그걸 증명해 놓은 걸 그대로 정리해서 쓰는 것도 그렇고...(증명된 걸 보고 있으면 꼭 사기를 당한 느낌이 나거든요.ㅎ) 아 참... 그리고 강의록 정리하신 글 처음에 언급하신 책은 <존재와 사건>이라는 책이구요, 그 판권을 15년이 넘는 기간동안이나 보유하고도 아직까지 책 번역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출판사 이름은 새물결이라는 출판사랍니다.
 
알랭 바디우의 존재론 강의록

  

  

 

 

  수요일마다 르네21(http://www.renai21.net)에서 듣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철학' 강의. 다섯 번째쯤 되는 것 같다. 바쁜 일로 두 번을 빠졌고, 세 번 중 두 번은 들뢰즈, 그리고 최근에 들은 강의가 바디우다. 들뢰즈 강의를 두 번 빠지긴 했지만 들뢰즈의 핵심 개념은 알았고, 들뢰즈보다 더 수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어렵게 언어를 구사한다는 바디우에 입문한다.  

  들뢰즈나 바디우나 이름만 들어본 건 마찬가지. 들뢰즈와 바디우 강의를 들으면서, 오히려 기존에 알던 철학자보다 모르던 철학자를 백지 상태에서 접수하는 것이 공부하는 데는 더 낫지 않나 생각해본다. 오랫만에 생소한 형이상학과 존재론에도 빠져들고, 나름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르네21에서 수요일마다 하는 다른 강좌들은 강사가 중간에 달라지기도 하는데, 내가 듣는 이 강의는 한 분이 들뢰즈와 바디우를 모두 가르치신다.  

  선생님은 키가 작으시고 수염을 깔끔하게 기르셨다. 그냥 봐도 철학자 또는 예술인 같은 모습인데, 말을 하시기 전에는 좀 진지하고 무겁게 느껴지고, 말을 하시면 활달하고 열정적으로 변하신다. 좁은 강의실에서 십여 명의 나이대가 다양한 학생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이렇게 따라가기 버거워 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들뢰즈 강의 때는 한 번 꾸벅꾸벅 졸아 죄송하기도 하다. 근데 강의 땐 다 알겠던데 들뢰즈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생소해지더라는.

  바디우가 들뢰즈보다 더 어렵다고 하셔서 겁먹었는데, 첫 강의를 들어보니 바디우의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은 무난히 통과한 것 같다. 내가 이해한 바를 잊지 않기 위해 강의록도 작성하고, 선생님이 쉽게 예를 들어 말한 바를 그대로 받아 적어놓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은 들뢰즈와 바디우가 처음인데, 이런 게 프랑스 철학의 특징인가 하고 일반화시켜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철학 어지간히 수학을 좋아한다. 덕분에 고등학교 때 이후 접할 일이 없던 미분과 적분, 함수 그래프에, 자연수, 무한수, 루트 별별 것들이 다 뇌의 폐기 처분 코너에서 보류 코너로 자리를 바꾼다.  

  내일이 또 강의 날이다. 바디우를 몇 차례 더 입문한 뒤 선생님은 들뢰즈와 바디우를 미학, 정치철학 영역 등에서 비교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이 강의는 존재론과 형이상학에서 시작해 미학과 정치철학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모든 면을 한번 제대로 훑는 강의가 될 것. 정치철학쯤 가면 내 눈이 더 반짝거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길 기대한다.  

  찾아보면 요새 좋은 강좌들이 많다. 바쁜 직장인들도 일주일에 하루쯤 틈을 내어 이렇게 생소한 공부에 공을 들이는 건 어떨까. 아트앤스터디와 같은 동영상 강좌도 있고, 철학아카데미와 같은 입문/전공 철학 오프라인 강좌, 또 수유너머와 같은 공동체 세미나, 르네21과 같은 서양, 동양, 교양 각 영역별 하나씩 개설되는 오프라인 강좌도 있다. 교육 기간에 따라서 싸면 10만 원 좀 넘고, 비싸면 40만 원 정도 한다. 이 강의들이 내 삶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돈이 아니다. 한 번 빠져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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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랭 바디우의 존재론 강의록
    from 자유, 그리고 자유 2011-10-11 12:27 
    르네21 수요인문강의 중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바디우의 존재론편.강사 박정태. (선생님께서는) 알랭 바디우의 책은 많이 번역이 되었는데, 그의 책을 번역한다는 건 무지 어려운 작업이라 하셨다. 제목을 잊었는데 오래 전에 어떤 출판사가 판권을 사갔는데 아직도 번역이 되지 않았다고. 번역된 책들 제목을 보니 그 중 내가 인터넷 공간에서 알게 된 분께 선물을 드린 책도 보인다. 사랑 예찬. 제목만 보면 연애 지침서 같지만 아니다. 어떤 철학자
 
 
Ritournelle 2011-10-11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철학(자)들이 수학을 좋아하는 측면은 바디우나 라캉에게서 특히 더 부각이 되는 것 같아요. 들뢰즈의 경우엔 수학이 바디우처럼 강하게 부각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차이와 반복>에서 미/적분을 자신의 존재론 혹은 형이상학으로 전유하는 대목이 보이지만, 그 강도가 바디우처럼 강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바디우는 미/적분이 아니라 집합론을 자신의 존재론 혹은 형이상학, 더 나아가 정치철학으로까지 밀고나가지요. 라캉의 경우엔 수학이 정신분석의 이론화와 분석화[이 둘은 상호동형적 관계에 있지만]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공부=인문학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바쁜 회사 생활에서도. 건투를 빕니다.

마늘빵 2011-10-11 15:36   좋아요 0 | URL
네, 들뢰즈는 양반이군요. 바디우가 좀 더 심하긴 한 거 같아요. 첫 강 들어보니. 무화과나무님 들뢰즈, 라깡, 바디우를 다 아시는군요. ^^

'생활인'이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 요즘 어찌 지내시나요?

Ritournelle 2011-10-1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 중에 있습니다. ㅋ.
아, 그리고 바디우는 프랑스에서 들뢰즈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물론 들뢰즈를 매우 색다르게 해석하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요[생전에 들뢰즈가 다른 철학자들을 해석했던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바디우도 들뢰즈에 대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게 유효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박정태 선생은 바디우 제자예요. 학위논문도 바디우 밑에서 들뢰즈에 대해서 썼고. ㅋ. 전 개인적으로 직장 생활자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는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직장인들을 구원하는 것은 봉급과 여가가 아니라 <인문학>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 같은 지식인에게 그 반대로 돈과 여가이겠지만...이 무슨 기묘한 역설과 모순인지? 아! 그리고 저번에 알라딘 중고샵에 대한 페이퍼는 매우 유효하게 읽었습니다...건강하세요...

마늘빵 2011-10-12 09:35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박정태 샘 바디우 제자라는 건 말씀하신 거 같아요. 정말, 먹고 살기 어려울 때에도 저는 빚을 내가면서 강의를 듣고 다녔네요. 마음이 힘들 땐 그런 강의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서 논문 마무리하시길!
 

 

 
  



*왼쪽은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홀로 읽고 있는 누구나 철학 총서, 오른쪽은 강의하시는 박정태 선생님이 번역하고 엮은 강의 주교재다.
 

  르네21(http://www.renai21.net)의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강의>. 두 번 들었다. 세 번째 강의였지만 두 번째 강의를 빼먹은 탓이다. 첫 강의에서 들뢰즈 철학의 세계관과 다섯 가지 특징을 배웠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사건 발생 논리, 그리고 수학의 미분과 적분을 끌어들여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살폈다. 아직까지는 들뢰즈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 공부라고 봐야 한다. 칸트 철학을 공부할 때 선천과 선험의 개념을 구별하는 것처럼.  

<사건의 발생 논리>

  우선 들뢰즈의 '사건의 발생 논리'를 이해할 때 차등화와 차이화의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 프랑스어에서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들었다) '디페랑씨아씨옹'이라고 똑같이 소리나는 두 단어에서 '씨'라는 소리가 나는 부분의 스펠링이 't'와 'c'로 각기 다른데, t가 들어간 디페랑씨아씨옹을 박정태 선생님은 '차등화'라고 번역을 하고, 'c'가 들어간 디페랑씨아씨옹을 '차이화'라고 번역을 하신다. 프랑스어로 표현했을 때의 언어상의 미묘한 차이를 한글로 번역했을 때도 살리고 싶었던 것. 디페랑씨(t)아씨옹은 차등화, 미분화로, 디페랑씨(c)아씨옹은 차이화, 분화, 육화, 적분화로 번역한다.  

  위의 개념 구별로부터 다음과 같이 나아간 내용을 정리해볼 수 있다. 배운 내용을 쉽게 정리해보고 싶지만 배운 내용보다 더 쉽게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첫째, 잠재의 차원에서 다수가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는 무엇, 이것은 잠재의 차원에서 다수가 차등화되어 있는 무엇이다. 둘째, 현실의 차원에서 다수가 '온전하게' 결정되어 있는 무엇, 이것은 현실의 차원에서 다수가 차이화되어 있는 무엇이다.  

<개별 미분화/개별 적분화>

  다음으로, 들뢰즈에게 있어서 개별 미분화와 개별 적분화 개념을 이야기해 보자. 고등학교 때 누구나(?) 배운 수학의 미분과 적분 개념을 그대로 가져다가 해석한다.

  일단 기억을 더듬어서 미분 f(x)란 곡선을 곡선의 구간으로 나누고, 곡선과 관련된 각 구간을 이루는 점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미분은 곡선을 쪼개 점으로 만들고, 각 점의 수학적  성격을 순간변화율로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적분 s(x)는 원래 함수의 면적을 나타내는 함수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수학적 미분과 적분에서, 미분을 잠재적 영역으로, 적분을 현실적 영역으로 해석한다. 'y는 x제곱'의 현실적 영역 속의 곡선을 미분화하여 '무한하게' 잘게 쪼개고 또 쪼개고 하면-이때 무한하게 쪼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감각적으로 쪼개는 것에서 나아가 사유의 영역에서도 무한하게 세세하게 쪼개는 것을 의미한다- 잠재적 차원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잠재적 영역 속 점들의 수학적 성격은 순간 변화율의 함수이다. 시간에 적용하여 살피면, '현실적 영역 속의 곡선'은 시간의 분열에서 '과거의 보존'을 의미하며, '잠재적 영역 속 점들의 수학적 성격'은 시간의 분열에서 '현재의 흐름'을 의미한다.  

  잠재적인 것은 애매한 것이고, 이성적 개념의 틀을 벗어나는, 개념 바깥의 구체적인 것, 그리고 특이한 것이다. '개념 바깥의 구체적인 것'이란 말은, 예를 들어 짜장면(국립국어원님께서 표준어로 격상(?)시켜주셨다)을 먹고 '맛있다'라고 표현하는 것, 이것을 제외한 짜장면을 먹고 느끼는 나머지 감정들, 느낌들, 감각들이 바로 '구체적인 것'이다. 특이한 것은 흔히 느끼듯 뭔가 벗어나 있는 것.

  다시, 이러한 일련의 개념 정립 과정과 시간에 적용하는 논리를 통해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억은 단지 지나간 회상의 의미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현재의 지각과 부딪히면서 지각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해주고 있다."  

<정리 발언>

  기존의 개념을 활용하여 자기 이론을 세우는 철학자들과 달리 칸트나 들뢰즈처럼 기존의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기존의 언어를 활용하지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아니면 단어를 새로 창조해내는 이들의 철학을 공부할 땐 이렇게 개념을 먼저 알고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쓴 글을 한 줄도 읽어낼 수가 없다. 박정태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무척 쉽게 전달하려고 애쓰셨고, 들뢰즈가 언급한 어떤 영화의 장면을 보여주시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노트북을 두 손으로 들고 계시기까지 했다. 수강생은 여전히 열 명안팎으로 적지만 그 수와 관계 없이 의욕이 넘치신다. 대학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많은 교수들의 마인드와는 무척 다르다.

  르네21은 기획 단계에서 저서든 번역서든 좋은 책이 있으면, 그 책을 기준으로 강사를 섭외한다고 한다. 이번에 개설된 단 한 개의 서양 철학 강좌도 역시 마찬가지. 동양 철학 강좌의 김교빈 선생님, 수요 교양 강좌, 금요 강좌 또한 마찬가지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획하고 강의를 운영하는 분들과 열정적인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빼먹지말고 계속 들어야 하는데. 한 번 빼먹는 바람에 세 번째 강의를 못따라갈까봐 지레 겁먹기도 했다. 다음 강좌는 아마도 알랭 바디우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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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1-09-2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 어렵죠ㅜ 근데 박정태 선생님은 예전에 한번 수업들었을 뿐이지만 좋은 분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혹시 수업 때 사탕 나눠주시지 않던가요 ㅎㅎ

마늘빵 2011-09-21 08:57   좋아요 0 | URL
수업 들으셨군요. ^^ 열정적이신 분입니다. 사탕은 안 주셨는데, 아마 연령대가 좀 높은 분들이 많아서 그럴지도... ^^ 계속 공부하고 계시죠?

바라 2011-09-2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직 ㅜ 요새 논문 쓰고 있었는데 엉망이나마 거의 써 가는 것 같습니다;;. 아프님도 환절기 잘 넘기시구요~

마늘빵 2011-09-22 09:56   좋아요 0 | URL
어제도 강의 들었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요. ㅠㅠ 좌절입니다. 넘 어려워요. 얼른 끝내세요. ^^ 계속 학계에 계실 예정이신가요? 감기 조심하시고요.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터넷 공간 중에서도 개인 주소를 가지고 있는 홈페이지냐, 아니면 미니 홈피냐, 포털의 블로그냐에 따라서 그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개인이 만든 홈페이지의 경우 포털에서 잘 검색되지도 않고, 방문객이 지인 등 제한적이다. 미니홈피의 경우 기본적으로 업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라 누구나 접근하기는 쉽지만 방문객이 어떤 콘텐츠를 볼 수 있는가는 순전히 운영하는 이에게 달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체'에게 개방하기보다는 일촌만 볼 수 있도록 하고, 그 중에서도 그룹을 나누어 제한한다. 

  포털 블로그의 경우는 좀 다르다. 포털에 속한 블로그는 무엇을 쓰든 포털 검색에 먼저 보이고, 방문객이 많은 블로그라면 더더욱 쉽게 노출된다. 알라딘은 어떤가. 알라딘에서 개인이 서재를 운영하며 작성하는 콘텐츠도 포털에 검색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노출의 빈도 문제일 것. 포털 블로그처럼 일일 방문객이 많은 것도 아니고, 검색으로 들어오는 경우보다는 알라딘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재를 운영하거나 서재를 운영하지 않더라도 책, 음반, 영화 등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어오는 경우가 많을 것. 이번 논란에서는 서재를 운영하는 한 알라디너의 글이 알라딘 고객 발송 메일에 링크되었고, 이를 타고 들어온 어떤 분이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남겼다. 댓글을 받은 알라디너는 충격 받았다. 그리고 해당 알라디너는 알라딘 운영상의 문제로 돌렸다.

  인터넷에서 글을 쓴다는 것, 그 행위에는 내가 쓴 글을 불특정인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수가 백 명이건 천 명이건 글쓴이가 감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에 대해 누군가 얼토당토않은 댓글을 단다면, 그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든 아니면 그냥 무시하든 글쓴이의 마음이다. 때에 따라서는 어떤 글이 누군가에 의해 펌질을 당할 수도 있고, 펌글을 본 또다른 이가 본래의 블로그를 찾아와 댓글을 달 수도 있다. 댓글이 호의적일 땐 기분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땐 별로일 것. 전자일 땐 글쓴이는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전자나 후자나 많은 이들이 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인데 전자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후자에 대해서는 문제 삼는다면 이 또한 이상한 일.  

  알라딘 회사가 서재에서 화제가 되는 글들을 모아 메일로 발송했다고는 하나, 그 글을 선정한 데에는 어떤 정치성이나 모종의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슈가 되는 글을 엮어서 발송한 것일 뿐. 문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글이 발송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 중 한두 명이 링크를 타고 들어와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남겼다는 데 있다. 해당 알라디너는 전자에 대해서 문제 삼고 있지만, 사실상 후자의 문제인 것. 만일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단 이가 아무도 없고, 칭찬과 동의 일색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 주제가 정치적인 사안이었다고는 하나, 어떤 주제를 민감한 것으로 보고 어떤 주제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볼지를 판단하는 것도 고역이다. '화제의 서재글' 코너에서는 많이 오른 주제인데, 막상 또 알라딘 측의 고객 메일에서 빼버린다면 혹자는 이를 정치적이라고 비판할 것. 알라디너들 사이에서는 화제 거리였는데, 화제가 된 글을 골라 엮는 메일 코너에서 제외하면 '제외했다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느냐, 는 등의 반응도 가능하다. 민감한 주제라고 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 개인이 알라딘 내에 서재를 만들고 글을 쓴다는 것.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글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신변잡기나 영화, 뮤지컬 이야기도 역시 마찬가지. 내 아이의 얼굴을 다수의 사람들이 보지 않기를 원한다면 내 아이의 사진을 올리지 말아야 하고, 내 계좌번호가 노출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쓰지 말아야 하고, 내 직업과 내 학력 등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 역시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내 정치적 성향, 가치관 등도 마찬가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도, 그 글을 공개했다면 그로 인한 책임도 개인이 져야 한다. 나 또한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많이 쓰는지라 이 점을 항상 의식하고 있다. 알라딘에서 쓰는 글 중엔 민감한 부분이 많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고 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미 쓴 글인데 나중에 어떤 이가 안 봤으면 하는 글은 비공개로 돌려놓기도 한다.

  알라딘에서 '다음뷰'를 체크하면 포털 다음에 노출을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의서재&즐겨찾는 서재브리핑에만 노출함'을 체크하면 알라딘 내에서 나를 즐겨찾는 이들에게만 내 글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딘 계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할지, 아니면 불특정 다수 누구든 달 수 있게 할지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 신분을 알 수 없는 아무나 배설하는 댓글-익명으로도 합리적이고 합당하게 글을 쓰는 분들도 있다-을 보기 싫다면 차단하면 된다. 

  알라딘 회사 측이 고객들에게 발송하는 메일에 링크된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알라딘 회사의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당혹스러움이 잘못으로 바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그것이 메인에 링크됨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 링크를 타고 들어온 이의 댓글로 인한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후자라면 이 일을 계기로 공개된 공간에서 쓰는 글의 주제를 가리는 등 각 개인이 스스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어떤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쓴다는 건 때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처음엔 상처가 되지만 겪다보면 무던히 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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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0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여기에 댓글을 다는것도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특히 이부분,

'화제의 서재글' 코너에서는 많이 오른 주제인데, 막상 또 알라딘 측의 고객 메일에서 빼버린다면 혹자는 이를 정치적이라고 비판할 것. 알라디너들 사이에서는 화제 거리였는데, 화제가 된 글을 골라 엮는 메일 코너에서 제외하면 '제외했다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느냐, 는 등의 반응도 가능하다. 민감한 주제라고 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늘빵 2011-09-09 16:04   좋아요 0 | URL
민감한 주제가 실려서 문제라면, 민감한 주제를 부러 뺐을 경우도 역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했어요. ^^

레와 2011-09-0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추천 한번밖에 못해요?!
한 백번은 하고 싶은데.

마늘빵 2011-09-09 16:04   좋아요 0 | URL
^^ 고맙습니다.

치니 2011-09-0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점 정리 확 잘 되네요. 저처럼 논란의 선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보여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11-09-09 16:05   좋아요 0 | URL
저도 한 번 관련 글들을 쭉 읽어보면서 정리해서 글도 그렇게 나왔나봐요. ^^

마태우스 2011-09-0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라딘의 리더 아프락사스님, 님은 언제나 한방에 쟁점을 정리해 주시네요. 전 앞으로도 쭉 님한테 이끌림을 받겠사와요. -팬 드림-

마늘빵 2011-09-09 16:06   좋아요 0 | URL
이러시면 곤란하다는... ^^;; 기생충 알 찾느라 고생하십니다. 거의 고고학자 활동이던데요.

건조기후 2011-09-0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시원하네요.

마늘빵 2011-09-09 16:06   좋아요 0 | URL
^^ 이제 바람이 좀 시원하기는 해요. ( '')

turnleft 2011-09-0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상의 글을 단지 공개와 비공개로 나누는 것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 시키는게 아닐까 싶네요. 글은 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글이 어떤 맥락에 배치되는가도 중요합니다. 글에 대한 작성자의 권리는 내용만이 아니라 그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노출되는가도 포함해야 한다고 보구요.

비록 공개글이라고는 하지만 문제의 글이 뉴스레터를 통해 배포되는 것은 분명 글쓴이가 예상치 못한 맥락에 글이 놓여 버린 경우라도 생각이 됩니다. 글쓴이가 애초에 원한 것은 지인들이 먼저 보고, 화제의 서재글이 되어도 알라딘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보는 정도 아니었을까요. 공개된 글이기 때문에 검색 등을 통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서 볼 수는 있지만 확룰상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을 테구요. 하지만 뉴스레터로 배포된다는 것은 훨씬 더 큰 집단이 그 글을 보게 된다는 것인데요.. 과연 알라딘의 모든 이들이 공개글을 쓸 때마다 그 가능성을 상정하고 글을 써야 할까요? 제 생각엔 공개를 했으니 감수해야 한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것 같네요

물론 알라딘 측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다거나 완전히 잘못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약관 등을 들어 별 문제 없다고 단순히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좀 더 세심한 고려와 정책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늘빵 2011-09-09 16:12   좋아요 0 | URL
네, 턴님 오랫만이에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맥락의 문제. 없다고는 못하는데, 이번 논란 건으로만 한정해서 보면, 문제제기하신 분의 글이 이전에 메일에 두 번 링크되었다는 글을 본 거 같은데, 그렇다면 의식을 못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내가 글을 쓰면서 어디까지를 상상하느냐, 의 문제로 볼 수 있는데. 블로그 초기 운영 시에는 이에 대해 별 생각을 안 했는데, 오래 블로그질을 하다보니 느끼겠더라고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이트 운영자가 유저들이 요구할 때마다 맞춤형으로 보완해주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알라딘은 지금도 충분히 다음뷰와 즐찾서재에만 보이기를 통해 선택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이걸 활용하면 될 듯 하고요.

BRINY 2011-09-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프님. 추천합니다.

마늘빵 2011-09-10 00:17   좋아요 0 | URL
^^

Kir 2011-09-0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눌렀습니다. 종종 알라딘에 추천만이 아니라 동감 혹은 동의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지금도 그래요.
아프님, 잘 읽었습니다!

마늘빵 2011-09-10 00:18   좋아요 0 | URL
^^

글샘 2011-09-0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출판사에선 신문같은 데 글을 실어도 되냐고 분명히 물어보거든요.
별거 아니니 실어도 된다고 하면, 엄청 고마운 체를 하구요.
그게 업계의 상식이자 매너라고 보는데요.
약관에 어떤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따질 때나 쓰는 거라 생각합니다.
뉴스레터 같은 걸 만들땐 반드시 글쓴이에게 전화나 문자로 게재 사실을 알리고 허락을 받아야 그게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매너가 없는 행동을 한다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경찰차 출동하거나 수갑채워 잡아가진 않습니다만, '호의적인 댓글'이나 '악성 댓글'이 붙는 건 글쓴이의 책임이라 하더라도, 매너 없는 일인 건 기분나쁜 일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늘빵 2011-09-10 00:22   좋아요 0 | URL
보기에 따라서 글샘님처럼 알라딘 고객 메일을 신문란과 비슷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좀 다르게 보는데, 알라딘에서 서평 쓴 글을 신문이나 출판사 뒷표지에 실을 때는 별개의 매체이기 때문에 동의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알라딘 고객 메일의 경우는 알라딘 서재란의 '화제의 서재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별도의 매체라면 매너의 문제일 수 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이번 건으로만 보면, 만일 해당 알라디너께서 이것을 매너의 문제로 문제제기하고 싶으셨다면 처음 메일에 링크됐을 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근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안 하시고, 이번에 하시게 된 건 결국 링크를 타고 들어온 '불특정인의 댓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논의의 촛점을 알라딘 시스템에 맞추면서 문제제기하신 건 출발이 잘못된 것 같아요. ^^

turnleft 2011-09-10 02:37   좋아요 0 | URL
포인트는 그럼 뉴스레터가 화제의 서재글과 같은 매체로 볼 수 있는가, 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노출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성격의 매체로 봅니다. 화제의 서재글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라딘 서재 페이지에 들어와서 글을 읽는,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이고, 뉴스레터는 알라딘에 등록된 모든 사용자들이 받아보는 매체니까요.(맞나요? 저는 뉴스레터 같은거 안 오는데;;)

그리고, 당사자의 최초 반응을 가지고 맞다 틀리다를 논하는건 옳은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너도 좋았으니 가만 있었던거 아니냐. 왜 이제 와서 발끈하고 그러냐" 라는건, 어디서 많이 봤던 논리구조 아닌가요.

마늘빵 2011-09-10 07:32   좋아요 0 | URL
뉴스레터는 아마 등록을 원한 이들에게만 가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매번 오는데 인문, 사회, 자기계발, 교육 등 여러 분야 중 받아보고 싶은 메일을 설정한 부분에서 달라질 거에요.

저는 포인트는 '불특정인의 댓글'로 봅니다. ^^ 관련된 글들이 모두 뉴스레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제기자가 화가 났던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라 '불특정인의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이었다고 보니까요. 다만, 화살이 잘못 나간 거죠. 화가 났다는 결과의 원인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테러를 화제의 서재글과 같은 매체로 볼 건가'는 이와 별개로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요. "결국 너도 좋았으니 가만 있었던거 아니냐. 왜 이제 와서 발끈하고 그러냐"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성폭행 논리에 비유하기에는 사안의 성격이 너무 다른듯 합니다. '화'의 원인을 잘못 설정하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연휴가 시작됐네요. 미국에서는 한국 명절에 어떻게 하나요? ^^

turnleft 2011-09-10 09:31   좋아요 0 | URL
음.. "성폭행"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뒤늦은 반응을 가지고 당사자의 심리상태를 "추정"해 들어가는 논리구조를 말한 겁니다. 뒤늦게 반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악플이 직접적인 반응을 촉발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 제기된 문제가 아닌 기타 정황을 통해 문제 제기자의 심리 혹은 의도를 추정하는 접근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자꾸 논쟁이 잘잘못을 가리는 방식으로 흘러가면서 어느 쪽이 더 문제냐는 식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현재 뉴스레터가 취하는 방식이 글쓴이의 글에 대한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 정도로 제 의견을 한정하고 싶네요. 저야 철저하게 즐찾공개로만 글을 남기기 때문에 어차피 적용되지 않지만, "블로그 플랫폼 내에서 글쓴이의 권리"라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선 한국 명절에... 일합니다 ㅠ_ㅠ

마늘빵 2011-09-10 10:00   좋아요 0 | URL
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 연휴에 전 영화나 많이 보러 다녀야겠습니다. 추석에 일하신다니... 그치만 또 미국 공휴일도 한국만큼 있겠죠? 별개 이야기지만 대체 휴일제 시행한다 어쩐다 하더니 국회에서 쏙 들어갔습니다. -_-

신지 2011-09-10 13:27   좋아요 0 | URL
실제 제기된 문제가 아닌 기타 정황을 통해 문제 제기자의 심리 혹은 의도를 추정하는 접근방식이 잘못된 것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ㅡ> 그렇다면 조중동의 사설을 곧이곧대로,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제기에만 집중해야겠는데요. 실제로는, 문제제기 이면에는 정치적 의도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을 텐데 말이죠.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합니다. 아이를 심하게 혼냈는데, 아이의 잘못은 표면적인 이유고, 실은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서일 수도 있거든요.

turnleft 2011-09-10 14:05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제 아무리 조중동이 한 소리라도 문제제기에 대한 판단이 먼저지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먼저 까고 들어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 후에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들어가아조. 이건 오히려 평소의 신지님이 주장하셔야 할 내용 같은데 왜 제가 적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마찬가지의 논리라면 신지님은 스스로가 왜 이런 댓글을 남기는지 모르시겠네요. 배가 고프신걸지도 모르겠고... 서로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비난을 돌리려면 굳이 피곤하게 논쟁이라는걸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신지 2011-09-10 15:04   좋아요 0 | URL

1.관련된 글들이 모두 뉴스레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제기자가 화가 났던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라 '불특정인의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이었다고 보니까요. 다만, 화살이 잘못 나간 거죠. 화가 났다는 결과의 원인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테러를 화제의 서재글과 같은 매체로 볼 건가'는 이와 별개로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요.
3. "결국 너도 좋았으니 가만 있었던거 아니냐. 왜 이제 와서 발끈하고 그러냐"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사안의 성격이 너무 다른듯 합니다.

저는 아프님의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도 거의 같은데, 턴님은 거듭 이의를 제기하시는 것이 저로서는 의아합니다. 턴님의 댓글(자꾸 논쟁이 잘잘못을 가리는 방식으로 흘러가면서 어느 쪽이 더 문제냐는 식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은 이미 앞에서 '대답'이 된 것입니다.

즉, 서로 다른 이야기로, 별개로 이야기해 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접근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다시 말해보겠습니다.

ㄱ.
만약에 ㅡ 이번과는 반대의 경우였다면ㅡ 마고님의 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아서 마고님이 칭찬을 많이 받았다면, 의외의 그 방문자들이 꼭 싫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예기치 않은 사태에 깜짝 행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반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마고님 글에 있다.

ㄴ.
온라인에서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뭔가 불안해서 안 올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도 결국 본인이다. 엄연히 나름대로 조심하는 사람이 있고, 덜 조심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반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마고님 본인에게 있다.

이는 논리적인 활동(추론)이지, 점을 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락방 2011-09-11 19:35   좋아요 0 | URL
저도 댓글을 적기 위해서 왔다가 신지님의 댓글을 읽고나니 따로 덧붙일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아프락사스님의 페이퍼도 그랬지만 신지님의 댓글도 지금의(아니 이젠 과거가 되어버렸고 종결되어 보입니다)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보셨고 그렇기 때문에 합당하며 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지님의 댓글에 동의합니다.

마립간 2011-09-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의 수양은 아프락사스님의 글처럼하고 있습니다.
CCTV를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金慶子 2012-07-2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읽기쉽게 쓰여졌지만 행간나눔이 또 하나 배울점이네요.
글의 흐름이 알맞은 장소에서 나누었다는 것이고,
재미있게 썼다는 것이고, 그래서 추천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