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바디우의 존재론 강의록


수요일마다 르네21(http://www.renai21.net)에서 듣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철학' 강의. 다섯 번째쯤 되는 것 같다. 바쁜 일로 두 번을 빠졌고, 세 번 중 두 번은 들뢰즈, 그리고 최근에 들은 강의가 바디우다. 들뢰즈 강의를 두 번 빠지긴 했지만 들뢰즈의 핵심 개념은 알았고, 들뢰즈보다 더 수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어렵게 언어를 구사한다는 바디우에 입문한다.
들뢰즈나 바디우나 이름만 들어본 건 마찬가지. 들뢰즈와 바디우 강의를 들으면서, 오히려 기존에 알던 철학자보다 모르던 철학자를 백지 상태에서 접수하는 것이 공부하는 데는 더 낫지 않나 생각해본다. 오랫만에 생소한 형이상학과 존재론에도 빠져들고, 나름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르네21에서 수요일마다 하는 다른 강좌들은 강사가 중간에 달라지기도 하는데, 내가 듣는 이 강의는 한 분이 들뢰즈와 바디우를 모두 가르치신다.
선생님은 키가 작으시고 수염을 깔끔하게 기르셨다. 그냥 봐도 철학자 또는 예술인 같은 모습인데, 말을 하시기 전에는 좀 진지하고 무겁게 느껴지고, 말을 하시면 활달하고 열정적으로 변하신다. 좁은 강의실에서 십여 명의 나이대가 다양한 학생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이렇게 따라가기 버거워 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들뢰즈 강의 때는 한 번 꾸벅꾸벅 졸아 죄송하기도 하다. 근데 강의 땐 다 알겠던데 들뢰즈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생소해지더라는.
바디우가 들뢰즈보다 더 어렵다고 하셔서 겁먹었는데, 첫 강의를 들어보니 바디우의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은 무난히 통과한 것 같다. 내가 이해한 바를 잊지 않기 위해 강의록도 작성하고, 선생님이 쉽게 예를 들어 말한 바를 그대로 받아 적어놓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은 들뢰즈와 바디우가 처음인데, 이런 게 프랑스 철학의 특징인가 하고 일반화시켜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철학 어지간히 수학을 좋아한다. 덕분에 고등학교 때 이후 접할 일이 없던 미분과 적분, 함수 그래프에, 자연수, 무한수, 루트 별별 것들이 다 뇌의 폐기 처분 코너에서 보류 코너로 자리를 바꾼다.
내일이 또 강의 날이다. 바디우를 몇 차례 더 입문한 뒤 선생님은 들뢰즈와 바디우를 미학, 정치철학 영역 등에서 비교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이 강의는 존재론과 형이상학에서 시작해 미학과 정치철학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모든 면을 한번 제대로 훑는 강의가 될 것. 정치철학쯤 가면 내 눈이 더 반짝거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길 기대한다.
찾아보면 요새 좋은 강좌들이 많다. 바쁜 직장인들도 일주일에 하루쯤 틈을 내어 이렇게 생소한 공부에 공을 들이는 건 어떨까. 아트앤스터디와 같은 동영상 강좌도 있고, 철학아카데미와 같은 입문/전공 철학 오프라인 강좌, 또 수유너머와 같은 공동체 세미나, 르네21과 같은 서양, 동양, 교양 각 영역별 하나씩 개설되는 오프라인 강좌도 있다. 교육 기간에 따라서 싸면 10만 원 좀 넘고, 비싸면 40만 원 정도 한다. 이 강의들이 내 삶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돈이 아니다. 한 번 빠져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