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오래 전부터 나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곤 했는데, 특정 단체에 가입하거나 특정 단체의 이름으로 무슨 활동을 해본 적은 없었다. 대학 때도 노래패에 들었으나 그게 민중가요를 하는 곳인지 몰랐고, 그 안에서 드럼만 열심히 치면 됐다.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에서 드럼을 치며 어떤 의식을 가져본 적도 없고, 누군가를 위해서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다. 그냥 그곳에서 드럼을 칠 뿐이었다. 

  선배들은 집회나 시위가 있을 때 갓 들어온 후배를 설득하며 동참하길 원했는데, 내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자유의지에 의한 자발적 행동이 아닌 행위는 의미 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모든 행동은 자발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주를 받거나 친하니까 마지못해 나서는 건 영 내 스따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강요하는 이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사안에 따라 때로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건 나 자신이어야 한다.

  대학을 다니면서 집회인지 시위인지 모르겠지만 딱 한 번 비스무리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몇 시간 동안 총장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더랬다. 노래패에 몸담았고 웬만한 민중가요는 다 들어봤고, 다 연주해봤지만, 시위나 집회는 아직도 어색하다. 그런데 어째 이십대 초에도 하지 않던 짓을 뒤늦은 나이에 제대를 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인 이십대 후반에 시작하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시 여의도에 처음 발을 들였고, 최근 광우병 사태로 그곳을 다시 찾았다.

  올해 서른이다. 남들 스무살 때 하던 짓을 이제서야 하고 있으니 뒤늦게 사회에 눈 뜬건지 아니면 아직 철이 없는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어리버리하게 대학생활하던 스물 한두 살의 어린 녀석이 알면 뭘 얼마나 알겠나. (물론 지금도 어리긴 매한가지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 붙들고 분노하며 정치의식을 키웠던 것도 아니고, 신문을 보면 까만건 글자요, 하얀건 여백이었으니, 논술 준비해야 한다고 보긴 보라는데 봐야 뭔 소린지 하나도 몰겠고. 여튼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를 보는 눈은, 세상을 보는 눈은, 자발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아서 생긴다. 누가 주입하고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과거 대학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 앉혀놓고 마르크스니 노동이니 민주화니 하면서 가르쳤다고는 하는데, 그것도 배우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가능한거지 억지로 사상교육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워낙 독립적으로 논지라 - 왕따 - 그런 선배도 없었다. 오히려 나한테 그런 걸 권유하면 바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왜 주입하려 드느냐는 거지. 내용이 무엇이건 주입은 아주 딱 질색이다.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대학 때부터 교회 다녀보라고 말하던 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 친한 선배 한 분은, 이런 나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꾸준히 엽서를 보내줄 뿐. 이런건 거부감 갖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 벤취에 혼자 앉아있는데 누가 와서 전도하려고 하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곤 했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주변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건 그들이 나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다니며 사교육과 공교육을 넘나든게 3년이다. 그간 학생이자 비정규직 선생이었고, 몇 달 전 비로소 정규직 직장인이 되었다. (업종은 변경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비정규직 직장인이었던 때가 더 크다. -_- 그치만 금액과 상관없이 비정규직일 때보다 정규직인 지금이 훨씬 편안하다. 그지 같은 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사람들이 정규직을 원하는 건 그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신분을 획득한 뒤에도 고용불안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3개월 내지 1년 이내에 찾아올 거라는 불안감은 적어도 이젠 없다.

  이야기가 옆구리로 샜는데, 내가 나이 먹고(?) 정치적 성향을 더 강하게 드러내는 건, 말과 글을 넘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는 건, 지난 내 삶이 나를 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만들어줬고,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약자의 삶이란게 어떤 것인지 맛배기나마 경험해보았고, 신분적 차별은 나의 지식이나 됨됨이나 기타 등등의 모든 것을 떠나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근래 알게 된 한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강제로 의식을 규정할게 아니다. 의식은 자연스럽게 내 존재를 통해 형성된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오늘 진보신당의 당원이 되었다. 특정 단체에 소속되는 것에 - 그것이 정치단체든 무엇이든 간에 -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내게 당원이 된다는 것은, 그간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을 지지해왔건 것과는 달리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를 특정 단체 안에 들여놓는다는, 내가 특정 단체의 소속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진보신당의 각종 사안에 대한 목소리는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간 티비나 신문 등 언론을 통해 그들을 지켜봐왔고 마음 속으로 그들을 지지해왔다. 그리고 오늘 심상정 대표를 만나고 한 발짝 더 다가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제 신용카드 포인트와 현금을 더해 약간의 후원금을 넣었는데, 넣고 생각해보니 너무 그릇이 작았다. 그래서 심상정 대표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그 생각이 나 홈페이지를 열고 후원금을 더 넣으려다, 가입하자 결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야금야금 후원할 바에야 정식으로 당원이 되어 꼬박꼬박 조금이나마 보태자는 생각에. 나는 이제 진보신당 당원이다.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05-10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0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0 0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05-10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상정의원과의 만남 어땠나요? 아 부러워요
후기는 역시나 승주나무님의 몫이겠죠?

나는 11시까지 야근했는데 으흑 으흑
정규직이 편하긴 뭐가 편해요 으흑 으흑

마늘빵 2008-05-10 02:29   좋아요 0 | URL
비정규직을 안해봐서 그래요. 봉급이 더 적어도, 야근해도, 못살게 굴어도 정규직이 더 편해요. -_- 나는 비정규직일 때보다 지금 봉급도, 근무시간도, 휴일도, 업무자율도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이라고요. 그치만 또 다른 일반회사들과 비교해보면 열악하지는 않은. 그러니까 지금은 그럭저럭 살만 하다는 :)

Jeanne 2008-05-1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철밥통 비정규직'인디...ㅋㅋㅋ
그게 젤 좋은거야요.
(이러다 짤리나?)
(그럼 모해. 맨날 출근하기싫어 죽을상인데)
와서 괜히 자랑하려다 하소연..


마늘빵 2008-05-10 10:56   좋아요 0 | URL
철밥통 비정규직이 어딨어요. -_- 철밥통이란건 내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정년때까지 잘리지 않는다는걸 의미할텐데. 정말? 고용불안은 비정규직이 갖고 있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죠. 신분상의 '계급'도 엄연히 존재하고.

Jeanne 2008-05-1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왜 화를내고 그래요~
그래요 나 고용불안 비정규직이에요!
--;;
'계급'도 낮은..

마늘빵 2008-05-10 11:13   좋아요 0 | URL
-_- 어 화낸게 아니구. '철밥통'이랑 '비정규직'이랑은 만날 수 없는 단어라는거죠 머. :) 저는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꾸준히 관심갖고 지속적으로 틈나는대로 문제제기할 생각입니다.

Jeanne 2008-05-1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정도는 나도 아러요!
괜히 농담 한번 해봤구만.

드팀전 2008-05-1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래서 늘 '계몽'이 조심스러운거지요...아래로부터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걸 테고.
주입이 싫은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어요.저 역시 '너 혼자 데모하냐' 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던 분파주의자 중에 하나였을테니까...그렇지만 '주입'하는 태도때문에 '주입'의 내용까지 거부하는 것도(물론 귀책사유는 주입하려는 자들거겠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나라고 믿는 그것'을 소아적으로 지키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최근에 푸코의 책을 보시는 것 같던데...푸코의 권력론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나라고 믿는 주체'는 없는 것이 되버리겠지요.아프님이 지키고자 하는 '나'에 대해서도 너무 믿지 마세요. 20대 하다가 30대에 접는 데모,때늦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 천년 동안 남들 계속하는 데모에 함께 하신 것 뿐입니다.그리고 안전한 데모 ㅋㅋ
아! 이 위대한 역사 정신과 정확히 어울리는 웃기지 않는 삐딱함이라니 ...
회사 근처 병원 갔다가 잠시 ...이너넷을

마늘빵 2008-05-10 14:17   좋아요 0 | URL
흐흐. 비어있는 구멍을 지적해주시는군요. ^^ 맞습니다. 때늦게 하는게 아니라 수천년동안 해오던거에 머리수 하나 늘었을 뿐이죠. 시위행렬에 나서는걸 대단하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 땅꼬마부터 허리구부러진 할머니까지 - 거라 생각하고요. 제 경우 머리에서 행동으로 나아가기까지 시간이 더뎠을 뿐이죠. 당원 가입 결정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

에링 2008-05-1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원 가입 축하드립니다. 진보신당 홈페이지도 자주 들러주세요~~! 라고 하면 강요가 되려나 ㅎ

마늘빵 2008-05-10 17:41   좋아요 0 | URL
에링님 반갑습니다. 저는 자유주의자인데 묘하게도 진보신당과 궁합이 잘 맞습니다. :) 홈페이지는 이미 즐찾해놨습니다. ^^

2008-05-11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2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런저런 2008-05-1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네. 동지.^^

마늘빵 2008-05-12 07:58   좋아요 0 | URL
흐흐. 동지. ^^

2008-05-13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3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i 2008-05-1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보신당 가입 축하합니다. 자신과 잘 맞는 정당을 발견하게 되는 것만도 얼마나 어려운지. 그걸 발견하고 가입에 성공했다니 정말 축하할 만한 일이죠.^-^ 저도 빨리 찾게 되면 좋겠네요.

마늘빵 2008-05-13 15:03   좋아요 0 | URL
:) 혹시 냐오님도? ^^ 맞다고 생각한건 사실 오래 되었죠. 민노당 시절부터. 저는 특별히 민노당이라고 해서 저랑 다르지도 않습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를 수 있지만, 큰 범위에서는 비슷하니까요. 단 선택이 진보신당이었던 것은, 심상정과 노회찬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Arm 2008-05-1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무언가의 정수를 잃고 계속해서 미친 듯 돌아가지만..
우리, 끊임없는 나아감 속에 있는 것이겠죠?
아프님의 용기에 박수를!
저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해버리는 저의 이 '노예계약'이 끝나면 진보신당 당원을 신청할겁니다. 이제 한 달만 참으면 되네요. ^^

마늘빵 2008-05-18 00:08   좋아요 0 | URL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을 '그날'을 기다리며. :)
 


  조중동과 정부, 경찰은 광장에 나온 중고생이 무슨 사주라도 받고 그곳에 모인 줄 아나본데, 학생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이야 자기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사주를 받고 나왔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10대는 온전한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아해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판단이 끝났으면 그 다음은 감정적 표출과 함께 행동하는 것. 지금 광장에 나오는 중고등학생들은 스스로의 판단 하에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일 뿐.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지 말라. 

  언론이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들끼리의 대화를 들어본 결과, 광장에 나온 '투표권 없는' 중고등학생들은 이렇든저렇든 관심없는 '투표권 있는' 어른들보다 훨씬 나았다. 누가 그들을 보고 정신적으로 미숙하다 말하는가. 감정적으로 부화뇌동하여 주관없이 뒷공작에 의해 그 자리에 나왔다고 말하는가. 오히려 뒤늦게 자기들도 나서겠다고 밝힌, 몇몇 대학 - 그것도 정말 몇 개뿐 - 학생회를 비롯한 2,30대들보다 훨씬 낫다. 

  물론 국민 모두가 미친소 수입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각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하지만, 분명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2,30대들이, 나아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이들이, 격렬히 반응하는 10대들보다 못한 건 분명하다. 우석훈은 과거의 프랑스처럼 10대들이 들고 일어나 수능시험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들의 분노가 입시를 향하지 않고 미친소를 향하고 있는 건, 자신들의 생존 문제가 걸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더불어 미친소 반대 시위에 나와, 영어몰입과 입시압박에 대한 자신들의 메세지를 동시에 드러내기도 했다. 

  이명박이 독단적 결정 혹은 똥꼬집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성난 군중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의 분노는, 곧 식탁에 미친소가 오르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동시에 국민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부시와 짝짝궁이 되어 결정했다는 데에 있다. 미친소만 못마땅한게 아니라, 아무리 반대가 거세도 물러나지 않는 똥꼬집이 못마땅한 것이다. 정당한 절차인 투표를 통해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것은 아니다. 바른 정치를 하지 않는, 민심을 반영하지 않는 군주는, 혁명에 의해 물러나게 해야 하는 것이 다음 순서.

  아무리 분노를 표출해도, 아무리 욕을 해도, 씨도 먹히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를,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귀를 틀어막고 자기 할 말만 해대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자기 생각대로 곧이곧대로 밀고 나가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현재 모든 시선이 미친소에 쏠려있는 사이, 어쩌면 대운하 작업이 척척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지. 아 이때다 하고. 그러지 마라.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기업에서 하던 짓 국가에다 적용하지 마라. 당신 하고픈대로 하고 싶으면 그 많은 돈으로 기업 하나 차려서 그 안에서 당신 맘대로 하라. 국민을 생쥐삼아 광우깡 먹이지 말고.

p.s.

1. 때로 어떤 표현은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현재 중고등학생들의 자발적인 적극적 참여의 행렬을 프랑스의 68혁명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 말은 피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젊은 아해들의 이성적인 판단과 적극적인 행동으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낫게 바꿔보자는 것. 우석훈의 말을 믿는다. 이들이면 가능하다.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의 판단과 자발적 참여, 연대면 충분히 바꿀 수 있다. 

2. 광우병 발생 가능성이 있느냐의 여부는 아주 간단히 파악된다. 정부가 99% 안전하다고 했다면, 나머지 1%는 안전하지 않은 것이고, 1%라도 안전하지 않다면, 들여와서는 안 된다. 정부가 그렇게 말했다. 99% 안전하다고. 왜 자기들이 그렇게 말을 해놓고 다시 또 안전하다고 말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광우병 발생하면 그때 수입중단하겠다"고 말한 대통령은 개념을 가지시라. 발생하면 이미 그땐 한 명 죽는다. 한 명만 죽겠나. 수입중단 시점에 한 명이지, 이미 수천명 죽어가고 있다. 어디 수천명 뿐이랴. 그래 어쩌다 운 좋아서 한 명만 죽는다고 치자. 그래도 한 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들여와선 안 된다. 한 명은 목숨 아니더냐. 제정신이고서야 어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3.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면, 그것을 파시즘의 조짐이라 판단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렇게 따지면 '모든 한 목소리'는 모두 파시즘으로 치부 될 것. 디워, 황우석 사태와 동일하게 보면 안 된다. (동시에 디워와 황우석 사태를 또한 동일시해서도 안 될 것.) 어떤 이들은 단지 그것이 '다수'의 목소리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갖기도 하는데, 다수의 이성적인 판단과 적극적인 행동은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물론 지금 이 사태를 비이성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멍청한 짓으로 보는 이들도 있을 터. 그것이 비이성적인 판단인지 아닌지는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 따질 것까지 없다. 그냥 간단하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반대하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웽스북스 2008-05-08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만 이제 아래세대에게도 빚진 세대가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명박 장로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 들을 때는 귀를 틀어막으셨나봐요

가시장미 2008-05-0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 만큼만(더 바라지도 않는다!)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인지!!
 
팬옵티콘


  약 한 달 전쯤 어느 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낸 바 있는데, 의문이 생겨 틈이 나는대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었다. 예전에 쓴 글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어느 고등학교 시험에 정답을 '판옵티콘'으로 써야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어떤 학생이 '팬옵티콘'으로 적어냈고, 선생은 이것을 틀렸다고 채점했다. 학생이 네이버에 팬옵티콘이 틀린거냐고 물었고,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해준 것 같진 않다. 이 내용을 가지고 대학원 수업에서 강의를 듣는 선생님들과 교수님 간에 논쟁이 있었는데, 교수님은 '팬옵티콘'이 더 명확하다 했고,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판옵티콘'으로 나왔으니까 판옵티콘'만' 맞게 해야 한다 했다. 

  이에 대한 나의 주장은, 교수님쪽에 가까웠는데, 'Panopticon'을 한국어로 표기할 때 가능한 모든 단어를 정답으로 맞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판옵티콘도 맞게, 학생이 쓴 팬옵티콘도 맞게, 단행본 제목으로 나와있는 파놉티콘도 맞게, 더불어 많이 쓰이지 않지만 페놉티콘도 맞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교과서에 나와있고, 선생님이 가르쳐준 정답만이 정답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교육은, 공부는, 반드시 학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학생이 관심이 있어 접한 단행본이나 논문, 혹은 그밖의 자료들을 통해서 충분히 접할 수 있고, 그것이 별 무리없이 쓰여진다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정도가 지난 글의 요지였는데, 내 나름대로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추후 조사를 더 해보았다. 일단 국회도서관에서 판옵티콘으로 검색했을 때 관련 논문과 학술지가 꽤 나오고, 파놉티콘으로 검색했을 때도 수적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팬옵티콘으로 검색했을 때는 수적인 열위를 보이긴 했지만, 역시 논문과 학술지에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공식용어였다. 심지어는 흔히 사용되지 않는 페놉티콘으로도 관련 논문이 한 건 검색되었다. 이쯤되면 네 가지 용어에 대해 이것이 맞다 저것이 맞다고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현실을 감안해본다면.

  수적으로 열위에 있다고 해서 학자들간에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수적인 우위를 보인다고 해서 그것'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사실상 언어,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옳고 그름은 그것을 쓰는 대중들의 편리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고, 네 가지 다양한 표현들이 학계에서 혹은 대중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무리없이' 사용된다면 모두 다 맞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파놉티콘으로 말했을 때, 팬옵티콘으로 말했을 때, 페놉티콘으로 말했을 때,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경우라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이래도 약간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편집, 교열교정, 국어 계열쪽으로 학위를 가진 전문가는 아니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저명한 인사인 지인께 여쭤봤더니, 명확히 원칙상 어떤 것이 옳은지를 알려면 국립국어원에 문의해보라 조언해주셨다. 그 분의 개인적인 생각도 나와 일치하지만, 현행 표기법상 옳고 그름을 굳이 알고 싶다면 국립국어원에 물어보라는 말. 그리하여 나는 그동안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찾아 뒤적여봤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국립국어원에 전화를 걸어 마지막으로 확인을 요청했다. (기존의 <외래어 표기 용례집>을 찾아봤으나 panopticon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담당자는 파놉티콘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있어 내가 그것이 제레미 벤담이라는 철학자가 사용한 원형감옥을 지칭하는 전문용어이고, 프랑스어가 영어로 옮겨지며 panopticon이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몇분의 시간이 지난 후 담당자는 이것저것 뒤적이며 결론을 내려 설명해주는데, 현행 외래어 표기법상 옳은 것은, '파놉티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과서에 표기되어 있는 '팬옵티콘'은 어찌되는가. 그건 틀린 것이다. 고로 선생이 학생에게 말해준 틀린 이유 - 외래어 표기법상 판옵티콘이 맞다 - 는 잘못된 것이다. 물론 선생은 외래어 표기법이 어찌 되는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고, 뒤적여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지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져 있기 때문에 그것만이 맞다고 주장한 것이고, 자신의 주장에 권위있는 근거를 대기 위해 알아보지도 않은 채 '외래어 표기법' 을 들먹이며 이것이 규정이라고 말했던 것일게다.

  표기법대로 한다고 해도 선생은 틀렸고, 학생의 답이 틀렸다고 말한 그 근거는 잘못된 것이므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물론 표기법대로 하면 학생의 답인 '팬옵티콘'도 틀렸다. 그럼 진짜로 표기법상 옳다고 말해지는 '파놉티콘'만 맞게 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올시다 라는게 내 생각이다. 나의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생각은 위에서 밝힌대로 표기 가능한 널리 인정될만한 표기는 모두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내가 국립국어원에까지 문의해가며 정확히 알고자 했던 것은 그 선생이 말한 그 근거가 정말 맞는가를 확인해보기 위함이었고, 결국 알아본 결과 그 선생의 근거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네이버에서 이 질문을 진작에 봤다면, 답변을 해주겠지만, 아마도 상황이 종료된지 한참된 것 같아 이제 답변해줘봐야 소용도 없을 것이다.

  글을 읽으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을 것이다. 왜 '파놉티콘'만이 표기법상 맞는가. 국립국어원 담당자는 외래어를 한글로 옮겨 표기할 때의 원칙이 있는데 영어의 경우 그 발음기호를 전환하는 법칙에 따른다고 했다. 네이버 사전에서 panopticon 을 검색하면 "pan·op·ti·con

 n. 원형 교도소[병원, 도서관》] 《한 곳에서 내부모두 있게 만든》" 이라고 해설이 달려있는데, 발음기호대로 한번 읊어보시길. '페납티칸'에 가깝다. 의심스러우면 스피커 볼륨을 크게 높이고 네이버 영어 사전에 나와있는 '발음듣기' 를 눌러보면 그 발음이 어떻게 말로 옮겨지는가를 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발음기호상으로 '페납티칸'인 것이 왜 또 '파놉티콘'으로 옮겨지는가. 이것도 의문이 생겨 국립국어원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영어에서 중간에 나오는 o를 옮길 때에는 '아'가 아니라 '오'로 옮긴다고. 그리고 a는 '아'로 옮긴다고. 그래서 결국 '페납티칸'이 '파놉티콘'이 되는 것이었다. 영어원어 발음과 발음기호 따로, 국립국어원 원칙 따로, 교과서 따로, 단행본 따로, 모두 다 따로따로 놀고 있으니 이걸 통일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냥 널리 쓰이는 표현 몇가지 안되니, 기껏해야 세 가지 정도이니, 두루 함께 쓰자는게 내 결론이다. 너무 팍팍하게 살지 말자. 결국 유일하게 옳은 말은 책세상문고에서 나온 제레미 벤담의 편지글을 번역한 <파놉티콘>의 첫번째 각주 뿐이다.

  "프랑스어로는 파놉티크panoptique로 발음하지만 여기서는 벤담Jeremy Bentham이 쓰고 널리 알려진 파놉티콘panopticon으로 표기한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rhk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판옵티콘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발음이 의미를 충분히 분절(판+옵티콘)하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라 '파놉티콘'으로 한다." (파놉티콘, 제레미 벤담, 신건수 역, 책세상, p.128.)

 참고 : 지난글 '팬옵티콘' (http://blog.aladin.co.kr/abraxas/1961965)

 


댓글(5) 먼댓글(1)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주제 사라마구와 외래어 표기법
    from 자유를 찾아서 2009-03-05 00:26 
      최근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몇 권 연속해서 읽다가 의문점이 생겼다. 엄밀히 예전에 어디서 흘려들었던 건데 떠올랐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아마도 사라마구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에 신문에서 그에 관해 다루느라 알아보다 그것 자체가 기사가 된 경우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땐 사라마구에도, 외래어 표기법에도 관심이 없었던 때라 유심히 살피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관심이 생겼다. 지난해 왜 '파놉티콘'과 '판옵티콘'과 '팬
 
 
순오기 2008-05-0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립국어원에 문의해 확실하게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외국어를 우리말로 표기할 때, 어떤게 정확한지 알고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말 표기도 제대로 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현실이라...영어몰입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새 초등생들 우리말 우리글 교육보다 영어교육을 우선하니, 우리말 우리글 언제 제대로 배우려는지 참말 깝깝합니다!ㅠㅠ

마늘빵 2008-05-05 23:19   좋아요 0 | URL
국립국어원에서 일단 원칙에 의한 정해진 표기법을 알려주긴 했습니다만, 모든 단어를 이런 식으로 물어서 표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외래어 표기 용례집이 업데이트되어 매달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원칙일 뿐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저는 판옵티콘, 파놉티콘, 팬옵티콘, 패놉티콘, 페놉티콘 다 쓸 수 있다고 봅니다. :)

마노아 2008-05-0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시험본 서술형 답안 중에 '대한매일신보'를 '대한메일신보'로 쓴 학생들이 꽤 여럿 나왔어요. 녀석들은 '메일'이란 말이 더 익숙했기 때문에 불궈진 실수였겠죠. 맞게 해주었어요. 근데 '대한매일신문'이라 쓴 녀석은 틀리게 했죠. ( '')

마늘빵 2008-05-05 23:18   좋아요 0 | URL
이 경우는 좀 다르지 않나 싶어요. '매일'과 '메일'은 엄연히 다른 단어인데. 표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게다가 '대한매일신보'는 하나의 고유명사잖아요. -_- 이건 틀리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_-a '대한매일신문'이 '대한메일신보'보다는 더 가까워보이는데.

마노아 2008-05-06 23:23   좋아요 0 | URL
메일은 맞춤법이 틀린 것이고, 신문은 이름을 틀리게 썼다고 판단해서 그랬어요.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
마사 너스봄 외 지음, 오인영 옮김 / 삼인 / 2003년 6월
품절


세계시민주의는 보편적 정의와 선을 중시하는 반면, 세계화주의는 시장 질서와 자본의 자유 이동을 강조한다. 애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의 세계시민주의가 인간은 그들이 세계 어디에 살든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윤리적 견지의 세계주의를 강조한다면, 신자유주의적 사고 방식에 구현되어 있는 세계화주의는 윤리적으로 가치 중립적인(사실은 '비윤리적'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자본 주도적인 성격을 노출하고 있지만, 여하튼 가치중립적으로 표현해서) 태도를 표명한다. (역자 오인영)-11쪽

도덕적으로 임의적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다. 인간은 인류적 질서보다 더 협소한 정치적 질서 속에서 살고 있고, 바로 그러한 정치적 질서 안에서 공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가 주로 제기되고 결정되기 때문에 동료-시민의, 즉 동일한 질서의 한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결코 임의적인 일이 아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자유주의가 국가를 강조한다는 세계시민주의자들의 비판이 과장되었다고 본다. 즉 세계시민주의자들이 찬양하는 문화적 다양성은 국가들의 실재의 복수성에 좌우되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들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콰미 앤서니 애피아) -54쪽

국가는 원래부터 도덕적 문제이다. 국가는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항상 도덕적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강제적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규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국가 제도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근대인의 수많은 목적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남용의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홉스가 생각했듯이, 국가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공인된 강제형식을 독점해야만 하고, 그러한 권한의 행사는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조금도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많은 포스트-식민 사회들에서조차도, 정당성을 필요로 한다. (콰미 앤서니 애피아)-55쪽

인간은 소규모로 사는 것이 가장 낫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만이 아니라 나라, 도시, 거리, 사업, 기능, 직업 및 가족 등도 공동체로서, 또한 인류적 지평보다는 협소하지만 도덕적 관심의 영역으로는 더 적절한 수많은 동심원의 일부로서 옹호해야 한다. 세계시민주의자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국경 안에서나 국경을 초월하여 충분히 연대할 수 있는 민주 국가에서 애국적 시민이 되어 살아갈 권리를 당연히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세계시민주의자로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러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콰미 앤서니 애피아)-56쪽

세계시민주의자들이 좋은 시민으로써 우리가 살기를 바라는 세계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세계에서 특수한 이 지역, 저 지역, 이 계곡, 저 해안, 이 가족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애착은 지역에 대한 애착에서 시작하며, 그 이후에나 밖으로 뻗어나갈 뿐이다. 세계시민주의를 지지하기 위해서 그런 점들을 무시하게 되면 종착지가 없는, 모국에서도 세계에서도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위험에 곧바로 빠질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소란스러운 다문화적 정치가 주는 교훈이다. 즉 미국인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ㅁ너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폴란드계 미국인 혹은 유대계 미국인이나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타고난 시민으로서 존엄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들은 먼저 자신의 지역 공동체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벤자민 R 바버)-62쪽

보편주의적 견해나 한계를 설정한 견해 모두 인간의 생존과 안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둘 중 어느 하나도 별 생각 없이 도덕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여 폐기할 수 없다는 시지윅의 견해에 동의한다. 따라서 그가 언급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의무는 어떤 형식으로든 이미 모든 사회와 도덕적 전통이 알고 있는 것이다. 즉 아무리 소규모일지라도 내적 지지와 충성 없이 생존할 수 있는 집단은 없다. 두 견해의 지지자들은 최소한 그러한 약간의 의무가 생존에 필수적인 가치라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물론 더욱 좁게 한정된 의무가 인류 전체에 대한 의무와 빚을 수 있는 마찰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두 견해의 주창자들 대부분은 살인, 약속의 파기 및 사기 등에 있어서는 모든 동심원의 모든 경계를 초월해 유지되어야 할 어떤 금기가 있으며, 심각한 긴급 상황에서는, 예컨대 지진 이후에는 경계를 초월해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의무가 국내의 요구들에 우선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시실라 벅)-70쪽

애국주의는 주권 국가가 국제 사회를 조직하는 기초라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선권은 자연스럽게 교육, 사회화, 포부 및 충성이 지향할 방향의 기초로서의 국가주의 의식에 주어진다. 이런 식의 방침은 영토상의 주권 국가가 어느 정도 자율성과 일차성을 갖는다고 가정하는데, 기실 그런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국가가 다시 존재하려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직이 국가적, 지역적, 세계적 차원에서 큰 구조적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날 그러한 국가의 자율성과 일차성은, 도전받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다양한 유형의 지방화와 세계화에 의해서, 특히 복잡한 형식의 경제적, 전자적, 표의적인 통합에 의해서 중요하고 누적적인 타협이 강요되거나 심지어 대체되고 있다. (리처드 폴크)-87쪽

세계시민주의적인 견해는 명백히 세계적 차원의 윤리와 인본주의를 갖고 있지만, 급속하게 경계를 초월해서 경험을 통합하고 있는 세계화 경향들과 충분히 구별되지도 않거니와 그것들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현재 통화 딜러와 카지노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초국적 법인과 은행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시장 주도 세계화의 파괴적 도전에 대한 대처 없이, 환상적인 세계시민주의를 국가주의적 애국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기획하는 것은 현대적 형태의 흐리멍덩한 순진무구에 빠질 위험이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세계시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 방식에 구현되어 있는, 윤리적으로 결함 있는 세계화에 대한 비판 및 세계를 전체로 파악하는 인식에 담긴 윤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내용을 최소화시키는 법을 어떤 식으로든 제정하려는 세계주의에 대한 비판과 마땅히 결합되어야만 한다. (리처드 폴크)-90-91쪽

무엇보다 세계시민주의는 부모, 조상, 가족, 인종, 종교, 유산, 역사, 문화, 전통, 공동체, 국적 등과 같이 생명을 주는 기존의 사실들을 애매하게 만들고, 심지어 부정한다. 그것들은 개인의 '우연적인' 속성이 아니다. 그것들은 본질적인 속성이다. 우리는 자유로이 유영하는 자율적인 개인들로서 세계에 편입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간으로, 정체성을 지닌 인간으로 충분히 형성시키는 모든 고유하고 독특한 특성들을 완전히 갖추고서 세계로 유입된다. 정체성이란 우연도, 문제도, 그리고 선택도 아니다.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지, 의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도중에 선한 동기에서 이런 소여의 어느 한두가지를 배제하거나 변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에게 상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 정체성을 다시 새롭게 창조하기를 갈망하는 '변화무쌍한 자아'는 자신의 국적을 부인하는 사람이 국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정체성 없는 자아이다.(거트루드 힘멜파브)-114쪽

자기 문화의 업적에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은 다른 문화의 업적에 대해서도 별로 가치를 부여할 것 같지 않다. 종교가 없는 학생은 다른 사람의 종교적 헌신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나라의 영웅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웅들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순진함을 경멸하기 십상이다. 어린이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우선 가치를 존중하는 법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중략) 그 대신에 어린이들을 '세계시민'이 되도록 교육하면, 아마도 그들은 십중팔구 애국자도 세계시민주의자도 되지 못하고, 세계 전역에서 실재하는 결함투성이의 개인과 문화들을 포용할 줄 모르는 추상과 이데올로기의 애호가가 될 것이다. (중략) 그런 교육은 고결한 세계시민주의를 고무시키는 영감이 아니라 자칫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친밀한 사람들을 덜 사랑한다고 해서 소원한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W 매코넬)-118-120쪽

나에게는 '세계시민'이 아니라, 바로 그 누군가가 동료이며, 무덤까지 함께 갈 동반자라는 사실이 도적적으로 중요하다. 내 생각에, 그것은 우리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견해에 호소하고, 다른 모든 인간과의 공감에 호소한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반면에 사람들은 '잠재력'에 호소한다. 그 잠재력은 실제로 보편적일 뿐 아니라, 내가 속해 있고 우리가 물려받은 전통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계 시민'은 언젠가는 그런 유의 도덕적 무게를 지닐 것이고, 마사 너스봄도 새로운 도덕적 통찰의 예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힐러리 퍼트넘)-137-138쪽

"만일 누군가가 내일 새끼손가락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고 하면, 그는 오늘 밤 자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억 명의 형제들이 잔해 위에서, 자신의 그 하찮은 불행보다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저 객체로 보일뿐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파멸 위에서 태평하게 코를 골며 잘 수 있을 것이다. 결코 그들을 본 적이 없다면. 그러므로 결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인류의 한 사람'인 자신에게 닥친 하찮은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그 수억 명의 형제 인류의 목숨을 희생시키려고 할 것이다. (애덤 스미스) (아마티아 센이 자신의 글에서 인용)-160쪽

우리에게는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 둘 다 필요하다. 왜냐하면 근대 민주주의 국가는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지극히 많은 것을 요구하는 공동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성원들에게 대단히 많은 것을 요구하고, 전체 인류보다는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 더 큰 연대 책임을 요구한다. 강력한 공통의 귀속 의식 없이는 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세계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고려할 때, 우리가 이 사업에서 실패하면, 그것은 인류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찰스 테일러)-168-169쪽

우리는 또 다른 각도에서 이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근대 국가들이 꼭 민주적인 국가들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전통적으로 계급 제도에서 벗어난 국민 국가들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국민 동원을 요구한다. 동원은 공통의 정체성에서 생겨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선택권은, 사람들이 공통의 정체성에 입각한 동원에 호응할지 호응하지 않을지 여부에 이쓴 것이 아니라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정체성들 중에서 자기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는 정체성(들)이 어느 것인지에 놓여 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광범위하고, 세계시민주의적인 연대에 좀더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다. 문명적으로 개화된 세계시민주의를 위해 가끔 벌일 수밖에 없는 전쟁은, 바로 이런 정체성들 사이에서 일언아는 것이지 모든 애국주의적 정체성들을 파기하려는 불가능한(가능하다해도, 자멸적일 수밖에 없는) 시도에서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찰스 테일러)-169쪽

세계 시민권에 대한 너스봄의 견해보다는 그녀의 동심원 이미지가 훨씬 더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근본적인' 충성들 가장 바깥의 원에 두거나 두어야만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의 충성은 나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자의 가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타자를 관통해서 가장 바깥쪽 원에 도달하는 방식을 이용해 매개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으 안쪽의 원에 대한 구체적이고 호의적이며 마음을 끄는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설명을 요구한다. 그런 후에 안쪽의 원을 바깥으로 펼치는 것 못지않게 바깥쪽의 원을 안으로 그려넣으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마이클 왈쩌)-176쪽

진정 세계 시민으로 처신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므로 세계 국가의 부재는 세계 시민적인 행위의 장애물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시민주의는 우리에게 어떤 경우에도 세계의 모든 지역들에 동등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세계시민주의 전통에 속하는 주요 사상가 어느 누구도, 자신과 자기 가족이 속해 있는 지역 및 국가에서의 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부정한 적이 없다. 분명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 국가는 우리의 모든 일상적 행위의 기본 조건을 구성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가족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시민주의자는 특정 지역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시민주의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특성 지역이 그 자체로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분별 있게 선을 행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사 너스봄)-187-188쪽

우리는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애피아가 말하듯이, 세계시민주의적인 이상에는 인간의 문화, 언어, 생활방식의 다양성에 따른 실제적인 즐거움이 내포되어 있다. 이 다원주의는 소위 '좋은 것보다는 올바른 것의 우위'를 주장하도록 세계시민주의적인 자유주의자들을 자극한다. (마사 너스봄)-189쪽

세계시민의식은 그런 경우, 우리 각자의 상상에 엄격한 요구를 부과한다. 확실히 상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애덤 스미스가 지적하듯이, 타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약하고 지속되기 어려운 관념이다. 만일 세계 시민권을 변덕스러운 일상적 반성에 맡겨놓는다면, 우린는 최상의 이념을 제도화하려고 할 때보다 더 제대로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상상력은 개인들의 동등한 가치를 가능한 한 최대로 제도화할 수 있는 법률을, 특히 입헌 제도를 필요로 한다는 일레인 스캐리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법률은 상상력에서 동력을 얻어야 하며, 사람들이 우둔할 정도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률 조항에서는 물론이고,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서도 세계 시민권을 계발해야 한다. 나는 스캐리와 몇몇 사람이 제시한 이유에서, 상상에 의거한 문학 작품들이 그런 계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스캐리의 견해에 동의한다. (마사 너스봄)-19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urnleft 2008-05-05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흥미롭군요..

마늘빵 2008-05-05 09:50   좋아요 0 | URL
나온지 꽤 된 책이고, 그냥그냥 묻혀버린 책인데, 주제가 끌리시죠. ^^ <보스턴 리뷰>라는 잡지를 통해 이루어진 미국 철학자, 작가, 사회학자들 간의 논쟁을 싣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짭짤한 알바가 들어왔었다. 그 분을 통해 직접 들어온 건 아니고, 의뢰를 받은 친구가 나보고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온 것인데, 흔히 말하는 대필. 나보고 대필 작가가 되어달라는 건데, 거창하게 책을 내는 건 아니고, 직장과 대학을 동시에 다니는 어떤 직장인의 과제물을 대신 해달라는 것이었다. 가격은 무려 십만원. 서평 하나 쓰고 십만원이면 꽤나 짭짤한 금액이다. 너무 잘써줄 필요도 없다고 하니 그냥 평소에 쓰던대로 대충(?) 쓰면 되는건데, 아마 수년전이라면 했을 것이다. 글 한편 쓰고 그만한 돈이 들어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므로.

  그런데, 거절했다. 양심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물론 내가 안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알바를 넘길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직장인의 서평 레포트는 십만원과 거래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쓰여지고 제출되는 것이다. 그럼 결국 어떻게든 그리 될테니 내가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양심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고백하건대, 예전에 나는 술자리에서, 함께 밴드를 하던 똑같이 직장과 대학을 병행하던 동생의 부탁에 못이겨 약속을 해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가 기존에 써놨던 서평 두 개를 펌질하겠다는 거였는데, 이를 허락해버렸다. 

  약속이라고는 하지만 술자리에서 취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던 것이고, 번복하려면 할 수도 있었으나, 내겐 이미 성립된 약속을 뒤집는 것이 번복하는 것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결국 내 서평 두 개를 줘버렸다. 후회했다. 그런 약속을 한 것에 대해서. 그것은 나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안하겠다고, 못주겠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못하고 - 주변에 서평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거 같으므로 달리 도움을 요청할 길이 없었을듯 - 결국 본인이 시간을 내어 어떻게든 제출했을텐데, 내가 흔쾌히 약속해버림으로써 나의 양심을 배반하고, 그 사람의 양심을 쉽게 어기도록 만들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경우야 기억을 끄집어낸다면 더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던 부정행위를 대학에 와서 하기도 했었다. 결국 시험에 있어 도움을 받진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하니까, 그런 식으로들 시험을 보니까, 또 조교들도 알면서 다 봐주는 눈치니까, 나도 해봤던건데, 이건 분명 잘못된 행위였다. 주변 사람들이 다 그리해도 나는 그리하면 안 되는 거였다. 딱히 또다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야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릴 때는 친구집에서 가로 3센티, 세로 2센티 정도의 조그만 오토바이 모형 장난감을 훔친 적도 있었다. 나중에 후회했다.

  어제 만난 학교 선생님은 최근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해줬다. 시험 중 한 녀석이 부정행위를 했고, 감독샘이 이를 적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쪽지만 압수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쪽지를 해당 과목 기간제 샘한테 넘겨주고 일을 덮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근데 일을 덮으려면 본인만 알고 있으면 되는데 과목담당 기간제 샘에게까지 알린 것이다. 물론 덮어선 안 되는거다. 그 기간제 샘은 학교일이 처음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그런데 내가 만난 그 샘이 이게 어떤 사건인지를 명확히 짚어준 뒤에야 해당 학생에게 0점을 주고 원칙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대개의 사건들은 주어진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발생하지 않을까. 대구의 초등학교 집단 성폭행 사건도 그렇고 - 듣기로는 백명에 육박한다지 -  걸릴리도 없고, 걸려도 별 문제도 되지 않을테지만, 내게 들어왔던 알바 제의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서로 상부상조(?)함으로써 성립되고 행해진다. 나름 원칙이란 것이 있고,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삼십년을 뒤지면 나올게 더 있을 것이다. 꾸준히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쉽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별 것 아니게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해서는 안 될 행위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그 십만원은 누가 가져갔을라나. ( '')  (미련을 갖는게 아니고 농담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8-05-0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주 멋진 아프락사스 님이십니다.
그나저나 십만원은 누구에게?? 3=3=3

승주나무 2008-05-05 03:42   좋아요 0 | URL
알라딘을 통해서 제게 오만원이 왔더군요.
또 자랑질(퍼퍼퍽!!!) ㅋㅋ

마늘빵 2008-05-05 09:50   좋아요 0 | URL
뭐뭐뭡니까. 승주나무님 리뷰당선되신건가요? 확인해봐야지.

파란여우 2008-05-0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아녜요 -.-
ㅋㅋ

마늘빵 2008-05-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 글쎄요. 십만원은 누구에게 갔는지는 저는 잘... 저는 아니라는. 진짜루 아니라는... -_-a
파란여우님 / 파란여우님이 쓰시면 바로 걸립니다. 대충써도. :)

302moon 2008-05-0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가 나와 깜짝(;) 양심을 속이지 않은 것, 멋져요. 박수, 짝짝짝.(웃음)

마늘빵 2008-05-04 23:27   좋아요 0 | URL
박수받자는건 아니고 -_-a 과거사 고백이라고나 할까요.

순오기 2008-05-0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녁에 이걸 읽고 추천만 하고 댓글은 못 달았어요. 몇몇 후배나 친구의 리포트에 도움 준 적도 있었고, 아예 내 걸 가져가서 안 가져 온 사람도 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어서 찔렸거든요. 물론 돈을 주고 받고 해 본 적은 없어요. 하여간 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야죠~ 잘 하셨어요!!^^

프레이야 2008-05-0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얼마전 제 경우가 생각나요.
'원칙대로 하길 원한다'는 제 말에 어떤 엄마가 계속 씹어대던군요.
자기는 원칙대로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못박더군요. 그게 휴머니즘은 아닐텐데요.
전, 원칙대로 되길 원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징계가 가해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자필로 서명했지요. 인간적으로 많이 생각한 나름의 배려였어요.
그런대도 제가 '~ 원한다'는 제 원칙에 대해 뭐라고 따지다니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아무튼 원칙대로 잘 하셨구요. 서평 빌려드린 건 좀 별로인 것 같아요.ㅎㅎ
참, 저도 하나 고백해요.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컨닝 시도했어요.
사회 시험시간이었는데요, 결국 제대로 못 보고 컨닝실패했어요.

마늘빵 2008-05-0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 사실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지나가는 일들이 꽤 많을 겁니다. 저도 가만히 떠올려보면 더 있죠. ^^ 앞으로 안하면 되는거죠.

혜경님 / ^^ 서평 빌려준 건 그렇죠. -_- 술자리에서의 약속이라해도 약속이었던지라. 혜경님은 그래도 커닝을 거의 안하셨네요. 전 오히려 초중고에서는 한번도 안하고 - 초등학교 때 성적에 안들어가는 시험이라고 보여줬다가 걸려서 혼난 적은 있어요 아주 눈물 쏙 빠지게 - 대학에 와서 그랬다는게 더 부끄럽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