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오래 전부터 나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곤 했는데, 특정 단체에 가입하거나 특정 단체의 이름으로 무슨 활동을 해본 적은 없었다. 대학 때도 노래패에 들었으나 그게 민중가요를 하는 곳인지 몰랐고, 그 안에서 드럼만 열심히 치면 됐다.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에서 드럼을 치며 어떤 의식을 가져본 적도 없고, 누군가를 위해서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다. 그냥 그곳에서 드럼을 칠 뿐이었다.
선배들은 집회나 시위가 있을 때 갓 들어온 후배를 설득하며 동참하길 원했는데, 내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자유의지에 의한 자발적 행동이 아닌 행위는 의미 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모든 행동은 자발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사주를 받거나 친하니까 마지못해 나서는 건 영 내 스따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강요하는 이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사안에 따라 때로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건 나 자신이어야 한다.
대학을 다니면서 집회인지 시위인지 모르겠지만 딱 한 번 비스무리한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몇 시간 동안 총장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더랬다. 노래패에 몸담았고 웬만한 민중가요는 다 들어봤고, 다 연주해봤지만, 시위나 집회는 아직도 어색하다. 그런데 어째 이십대 초에도 하지 않던 짓을 뒤늦은 나이에 제대를 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인 이십대 후반에 시작하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시 여의도에 처음 발을 들였고, 최근 광우병 사태로 그곳을 다시 찾았다.
올해 서른이다. 남들 스무살 때 하던 짓을 이제서야 하고 있으니 뒤늦게 사회에 눈 뜬건지 아니면 아직 철이 없는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어리버리하게 대학생활하던 스물 한두 살의 어린 녀석이 알면 뭘 얼마나 알겠나. (물론 지금도 어리긴 매한가지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 붙들고 분노하며 정치의식을 키웠던 것도 아니고, 신문을 보면 까만건 글자요, 하얀건 여백이었으니, 논술 준비해야 한다고 보긴 보라는데 봐야 뭔 소린지 하나도 몰겠고. 여튼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를 보는 눈은, 세상을 보는 눈은, 자발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아서 생긴다. 누가 주입하고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과거 대학에서는 선배들이 후배들 앉혀놓고 마르크스니 노동이니 민주화니 하면서 가르쳤다고는 하는데, 그것도 배우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가능한거지 억지로 사상교육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워낙 독립적으로 논지라 - 왕따 - 그런 선배도 없었다. 오히려 나한테 그런 걸 권유하면 바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왜 주입하려 드느냐는 거지. 내용이 무엇이건 주입은 아주 딱 질색이다.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대학 때부터 교회 다녀보라고 말하던 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 친한 선배 한 분은, 이런 나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꾸준히 엽서를 보내줄 뿐. 이런건 거부감 갖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 벤취에 혼자 앉아있는데 누가 와서 전도하려고 하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곤 했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주변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건 그들이 나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다니며 사교육과 공교육을 넘나든게 3년이다. 그간 학생이자 비정규직 선생이었고, 몇 달 전 비로소 정규직 직장인이 되었다. (업종은 변경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비정규직 직장인이었던 때가 더 크다. -_- 그치만 금액과 상관없이 비정규직일 때보다 정규직인 지금이 훨씬 편안하다. 그지 같은 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사람들이 정규직을 원하는 건 그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신분을 획득한 뒤에도 고용불안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3개월 내지 1년 이내에 찾아올 거라는 불안감은 적어도 이젠 없다.
이야기가 옆구리로 샜는데, 내가 나이 먹고(?) 정치적 성향을 더 강하게 드러내는 건, 말과 글을 넘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는 건, 지난 내 삶이 나를 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만들어줬고,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약자의 삶이란게 어떤 것인지 맛배기나마 경험해보았고, 신분적 차별은 나의 지식이나 됨됨이나 기타 등등의 모든 것을 떠나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근래 알게 된 한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강제로 의식을 규정할게 아니다. 의식은 자연스럽게 내 존재를 통해 형성된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오늘 진보신당의 당원이 되었다. 특정 단체에 소속되는 것에 - 그것이 정치단체든 무엇이든 간에 -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내게 당원이 된다는 것은, 그간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을 지지해왔건 것과는 달리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를 특정 단체 안에 들여놓는다는, 내가 특정 단체의 소속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진보신당의 각종 사안에 대한 목소리는 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간 티비나 신문 등 언론을 통해 그들을 지켜봐왔고 마음 속으로 그들을 지지해왔다. 그리고 오늘 심상정 대표를 만나고 한 발짝 더 다가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제 신용카드 포인트와 현금을 더해 약간의 후원금을 넣었는데, 넣고 생각해보니 너무 그릇이 작았다. 그래서 심상정 대표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그 생각이 나 홈페이지를 열고 후원금을 더 넣으려다, 가입하자 결정했던 것이다. 이렇게 야금야금 후원할 바에야 정식으로 당원이 되어 꼬박꼬박 조금이나마 보태자는 생각에. 나는 이제 진보신당 당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