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짭짤한 알바가 들어왔었다. 그 분을 통해 직접 들어온 건 아니고, 의뢰를 받은 친구가 나보고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온 것인데, 흔히 말하는 대필. 나보고 대필 작가가 되어달라는 건데, 거창하게 책을 내는 건 아니고, 직장과 대학을 동시에 다니는 어떤 직장인의 과제물을 대신 해달라는 것이었다. 가격은 무려 십만원. 서평 하나 쓰고 십만원이면 꽤나 짭짤한 금액이다. 너무 잘써줄 필요도 없다고 하니 그냥 평소에 쓰던대로 대충(?) 쓰면 되는건데, 아마 수년전이라면 했을 것이다. 글 한편 쓰고 그만한 돈이 들어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므로.

  그런데, 거절했다. 양심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물론 내가 안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알바를 넘길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직장인의 서평 레포트는 십만원과 거래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쓰여지고 제출되는 것이다. 그럼 결국 어떻게든 그리 될테니 내가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양심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고백하건대, 예전에 나는 술자리에서, 함께 밴드를 하던 똑같이 직장과 대학을 병행하던 동생의 부탁에 못이겨 약속을 해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가 기존에 써놨던 서평 두 개를 펌질하겠다는 거였는데, 이를 허락해버렸다. 

  약속이라고는 하지만 술자리에서 취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던 것이고, 번복하려면 할 수도 있었으나, 내겐 이미 성립된 약속을 뒤집는 것이 번복하는 것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결국 내 서평 두 개를 줘버렸다. 후회했다. 그런 약속을 한 것에 대해서. 그것은 나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안하겠다고, 못주겠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못하고 - 주변에 서평을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거 같으므로 달리 도움을 요청할 길이 없었을듯 - 결국 본인이 시간을 내어 어떻게든 제출했을텐데, 내가 흔쾌히 약속해버림으로써 나의 양심을 배반하고, 그 사람의 양심을 쉽게 어기도록 만들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경우야 기억을 끄집어낸다면 더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던 부정행위를 대학에 와서 하기도 했었다. 결국 시험에 있어 도움을 받진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많이들 하니까, 그런 식으로들 시험을 보니까, 또 조교들도 알면서 다 봐주는 눈치니까, 나도 해봤던건데, 이건 분명 잘못된 행위였다. 주변 사람들이 다 그리해도 나는 그리하면 안 되는 거였다. 딱히 또다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야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릴 때는 친구집에서 가로 3센티, 세로 2센티 정도의 조그만 오토바이 모형 장난감을 훔친 적도 있었다. 나중에 후회했다.

  어제 만난 학교 선생님은 최근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해줬다. 시험 중 한 녀석이 부정행위를 했고, 감독샘이 이를 적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쪽지만 압수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쪽지를 해당 과목 기간제 샘한테 넘겨주고 일을 덮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근데 일을 덮으려면 본인만 알고 있으면 되는데 과목담당 기간제 샘에게까지 알린 것이다. 물론 덮어선 안 되는거다. 그 기간제 샘은 학교일이 처음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그런데 내가 만난 그 샘이 이게 어떤 사건인지를 명확히 짚어준 뒤에야 해당 학생에게 0점을 주고 원칙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대개의 사건들은 주어진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발생하지 않을까. 대구의 초등학교 집단 성폭행 사건도 그렇고 - 듣기로는 백명에 육박한다지 -  걸릴리도 없고, 걸려도 별 문제도 되지 않을테지만, 내게 들어왔던 알바 제의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김으로써, 서로 상부상조(?)함으로써 성립되고 행해진다. 나름 원칙이란 것이 있고,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삼십년을 뒤지면 나올게 더 있을 것이다. 꾸준히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쉽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별 것 아니게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해서는 안 될 행위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그 십만원은 누가 가져갔을라나. ( '')  (미련을 갖는게 아니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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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8-05-0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주 멋진 아프락사스 님이십니다.
그나저나 십만원은 누구에게?? 3=3=3

승주나무 2008-05-05 03:42   좋아요 0 | URL
알라딘을 통해서 제게 오만원이 왔더군요.
또 자랑질(퍼퍼퍽!!!) ㅋㅋ

마늘빵 2008-05-05 09:50   좋아요 0 | URL
뭐뭐뭡니까. 승주나무님 리뷰당선되신건가요? 확인해봐야지.

파란여우 2008-05-04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아녜요 -.-
ㅋㅋ

마늘빵 2008-05-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 글쎄요. 십만원은 누구에게 갔는지는 저는 잘... 저는 아니라는. 진짜루 아니라는... -_-a
파란여우님 / 파란여우님이 쓰시면 바로 걸립니다. 대충써도. :)

302moon 2008-05-0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가 나와 깜짝(;) 양심을 속이지 않은 것, 멋져요. 박수, 짝짝짝.(웃음)

마늘빵 2008-05-04 23:27   좋아요 0 | URL
박수받자는건 아니고 -_-a 과거사 고백이라고나 할까요.

순오기 2008-05-0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녁에 이걸 읽고 추천만 하고 댓글은 못 달았어요. 몇몇 후배나 친구의 리포트에 도움 준 적도 있었고, 아예 내 걸 가져가서 안 가져 온 사람도 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어서 찔렸거든요. 물론 돈을 주고 받고 해 본 적은 없어요. 하여간 양심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야죠~ 잘 하셨어요!!^^

프레이야 2008-05-0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얼마전 제 경우가 생각나요.
'원칙대로 하길 원한다'는 제 말에 어떤 엄마가 계속 씹어대던군요.
자기는 원칙대로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못박더군요. 그게 휴머니즘은 아닐텐데요.
전, 원칙대로 되길 원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징계가 가해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자필로 서명했지요. 인간적으로 많이 생각한 나름의 배려였어요.
그런대도 제가 '~ 원한다'는 제 원칙에 대해 뭐라고 따지다니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아무튼 원칙대로 잘 하셨구요. 서평 빌려드린 건 좀 별로인 것 같아요.ㅎㅎ
참, 저도 하나 고백해요.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컨닝 시도했어요.
사회 시험시간이었는데요, 결국 제대로 못 보고 컨닝실패했어요.

마늘빵 2008-05-0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 사실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지나가는 일들이 꽤 많을 겁니다. 저도 가만히 떠올려보면 더 있죠. ^^ 앞으로 안하면 되는거죠.

혜경님 / ^^ 서평 빌려준 건 그렇죠. -_- 술자리에서의 약속이라해도 약속이었던지라. 혜경님은 그래도 커닝을 거의 안하셨네요. 전 오히려 초중고에서는 한번도 안하고 - 초등학교 때 성적에 안들어가는 시험이라고 보여줬다가 걸려서 혼난 적은 있어요 아주 눈물 쏙 빠지게 - 대학에 와서 그랬다는게 더 부끄럽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