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나 성실하다. 내가 봐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 봐도 그렇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꾸준히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귀납적인 삶을 산다.  귀납적인 삶이란 인생의 매 순간순간마다, 매 해마다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연역적인 삶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어느 한방에 터뜨릴 그 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귀납적인 삶도 연역적인 삶도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못하다느니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우월하다느니하는 평가는 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므로. 하지만 귀납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인생의 한 꼭지 한 꼭지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 최종적으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도달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남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관심갖고 있는 그림이나, 글이나, 지적능력이나, 혹은 창작력 기타 등등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 이거 하나면 인생 뜰 수 있어, 라고 할 만한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걸 알기에 매일, 매주, 매년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다. 한개, 두개, 세개, 네개, 일년, 이년, 삼년, 사년 지나다보면 어느 순간 그간 쌓인 내공이 빛을 발할 때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어쩌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나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슬며시 사라져갈지도 모른다. 나의 귀납적인 삶은 그 어떤 것의 목표지점을 향해 달린다기보다는 그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감, 만족감에 촛점이 맞추어져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 통해서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과 상상력과 지식을 쌓아가며, 이렇게 끄적거림의 축적을 통해 어느날 번뜩 이전과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 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원하는 아무런 결과도 도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더하기 1'에 희망을 건다는 자체만으로 기분 좋은 오늘을 보낸다. 오늘을 즐기며, 나를 즐기며.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는 그 이전에 삶에는 목적이 필요할까, 라는 질문이 전제된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아마도 하루하루 나의 경험에 '더하기 1'을 하며 즐기는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내가 무엇이 되어있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나의 '더하기 1'의 인생에 대한 결과물로서 존재할 뿐이다.

  내 삶의 목적은 지금 이렇게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부글부글 끊어오를 때 한번씩 글로 써주며 과열되지 않게 돌봐주고, 책을 읽고 좋은 문구에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멜랑꼴리하고 우울하며 격렬한 포티쉐이드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따뜻한 핫초코 한잔과 약간 바스락 거리듯 태워진 토스트 위에 달콤한 피넛잼을 듬뿍 발라먹는 것이다. 푹신푹신 침대는 아니어도 두꺼운 이불자락 깔고 그 위에 발라당 누워 똑같이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쓰고 꿈쩍하지 않는 것이다. 리뷰를 써야한다며 한쪽 구석에 읽고서 아직 쓰지 않은 책들을 쌓아두고 언제쓰지 언제쓰지 에이 다 까먹었다, 나중에 다시 읽고 쓰자, 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너무나 하찮아 보이고 사소해보이지만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오늘도 나는 '더하기 1'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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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9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2-09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납적인 삶,연역적인 삶 에대한 정의를 오늘 처음 알았어요.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려는 순간 더하기 1의 철학을 배웠구요,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는 제 삶의 일부분도 보았습니다.

마늘빵 2006-12-09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아 그림은 관심만 있고 손도 못대고 있는 분야 중 하나 입니다. 중딩때는 - 그래봐야 중딩실력이 중딩이지만 - 꽤 잘 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막 싹이 커질 나이에 그만 둬버린 거 같아요. -_- 공부를 하다보니깐. 다 싸그리 잊었습니다.

승연님 / 아 이 단어는 제가 생각한건 아니고, 저를 향해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삶이 귀납적인 것 같다고. 이 말을 듣고 한번 생각해 본거에요. ^^

거친아이 2006-12-0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보면 참 배울 점이 많고 닮아가고 싶은 면이 많아요.
하나도 하찮게 안 보이고 소소한 사소함은 더 보기가 좋죠 ^^

비로그인 2006-12-09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함이 내 장점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엄청난 자신감이자
동시에 덕목이죠.

멋져요. 마음으로부터 존경을 보냅니다.

맑음 2006-12-0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나이엔 왜 1+1이 2가 안 될까란 사실에 괴롭죠. 윗분들의 20~30년 세월을 몇 년만에 따라잡고 싶다는, 이런 날로 먹고 싶은 심보 때문에 20대가 힘든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님 말씀처럼 귀납적인 인생을 살다보면 3+4가 7이 아닌 10 그 이상의 숫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습니다. 삶이 산수처럼 정확한 건 아니니까요.^ㅅ^

프레이야 2006-12-0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하신 아프락사스님, 정말 그러실 것 같아요. 더하기 1의 삶을 사시는 분이니까요. ^^ 마음으로 박수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열정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더하기가 귀납적인 삶이라면 그런 면에서 결국 변증법적 삶으로 귀결되는 게 진짜 우리 삶이지 싶으네요. 하나씩 빼기를 해야하는 시점이 조만간 올 거라 여기고 산답니다. ^^

춤추는인생. 2006-12-0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꾸준한 더하기 1의 삶이 이렇게 제마음에 와닿는 글을 만들고 있다는거
모르세요?^^


얼룩말 2006-12-1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초코, 책, 두꺼운 이불.. 가장 사치스런 삶^.^

비로그인 2006-12-10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삶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나름 열심히 산다고는 하지만 가시적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전혀 나아지는 것 같다는 느낌도 안 드는 걸 보면 삽을 푸고 있는 걸지도-_-;;

마늘빵 2006-12-10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 배울 것도 없는데 그리 말씀해주시니 어찌하나요. ^^

체셔고양이님 / 아 말씀 듣고 보니 그러네요. 스스로가 성실하다고 말할 정도면. 이거 거만한건가요? ㅎㅎ 이런. 말씀 감사합니다.

맑음님 / 네 아마도 세월이 더 흐른 뒤에 산수가 아닌 덧셈 공식이 결과를 드러내겠죠? 아직까진 산수계산대로 밖에 안나오는거 같아요. ^^

배혜경님 / 고마워요. 성실한 척인지 성실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일 산적해놓고 빈둥거리는 경우도 많아서. 오늘만해도 아 대학원 공부해야 되는데 말로만 해야지 해야지 이러고 있다가 뒤늦게 시작했어요. 제 머리는 예열시간이 너무 오
래걸려요. -_- 하지만 성실과 열정으로 살겠심다.

춤추는 인생님 / ^^ 아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제 글을 본 사람들이 자기자신까지도 성찰할 수 있는. 아직 멀었죠 뭐. 말씀 고마워요.

얼룩말님 / 아핫. 저 사치하는거에요? ^^ 그만 이불 속으로 들어갈래요. 피곤해요. (한것도 없으면서)

마늘빵 2006-12-10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콸츠님 / 야심한 시각에 안주무시고. ^^ 제가 볼땐 콸츠님도 귀납적인 삶을 살고 계신거 아니던가요? 그렇게 보이는데. 지금 나아지는게 없는건 여전히 1 더하기 1이 2밖에 되지 않거나, 그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어느 순간 1 더하기 1이 3이 될 날이 올겁니다. 콸츠님이니까.

stella.K 2006-12-1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아프님의 그 꼬물락거리는 삶이 제게 생기를 전해주는군요. 흐흐. 저도 연역적 삶과 귀납적 삶을 처음 알았어요.^^

마늘빵 2006-12-1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스텔라님 / 앞으로도 생생하게 살겠습니다. 살아있는 왕새우처럼. -_- 비유가 이상한데 갑자기 새우가 떠오르지.

비로그인 2006-12-1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삶에 대한 '결기'를 엿봅니다.


stella.K 2006-12-1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새우튀김 좋아해요! ㅎㅎㅎㅎ

잉크냄새 2006-12-1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행간을 읽으시며 사시네요. 멋져요.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지음, 김봉래 옮김 / 문지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타나엘이여!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던져 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달려 나가라.
 나를 잊어버려라.

1927년 7월 앙드레 지드

 "이 작은 책에 씌여있는 그 어느 내용보다도 그대 스스로가 모든 것에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도록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라고 밝히듯 이 책은 그저 한 세계에서 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의 도우미 역할만 할 뿐이다. 그대 고민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이 책은 많은 부분을 건드려주고, 고독에 빠지게도, 슬픔에 빠지게도, 안락함에 빠지게도 한다. 언어는 시적이고, 아름다우며, 추상적이고, 또한 구체적이다. 주저리 주저리 긴 언설 늘어놓지도 않으며 짤막한 시구절의 형식을 띠고서 너의 욕망과 본능을 일깨워 줄 것이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다정다감하게, 이미 말을 뱉어낸 자와 상관없이 그것은 읽은 이 각자에게 각기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욕망에는 이득이 있고, 그 욕망의 만족에도 이득이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욕망에는 증가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거니와,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허망한 소유보다도 나를 풍부하게 하여 주었노라고 고백한다. '욕망은 채워지는 법이 없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3)

 "나타나엘이여! 그 모든 책을 언제 우리들은 불살라 버리게 될 것인가!
바닷가의 모래가 부드럽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은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나의 맨발이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먼저 감각이 앞서지 않은 지식은 일체 나에게는 소용이 없다." (P34)

  "삶과 꿈을 연결시키지 말고 현실 속에서 영혼의 시를 찾아내도록 하라. 현실 속에 시가 부재 중이라면 그대의 삶 속에서 시를 가꾸도록 하라."(P205)  

  모든 언어는 이토록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말도 버릴 것이 없으며, 어떤 말도 나에게 해당하지 않는 법이 없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자라면 누구나 이 책의 어느 한 대목에 멈추어서서 한동안 반복해서 읽고,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길 것이다. 언어는 매우 간결하나 글자수가 적다고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한 페이지에 담긴 글귀들의 힘은 나를 억누르고 책장의 무게는 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하나의 개인인 동시에 모두이다.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바로 나 자신이다. 여기 숨죽이고 그대를 느끼는 나 자신이다.

  "내 삶의 마지막 문은 항상 벌판을 향해 열려 있었다. 걷고 싶은 욕망, 거기엔 길이 열리고, 쉬고 싶은 욕망, 거기엔 그늘이 있다."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나를 읽고 나를 떠난다. 그리고 저어기 벌판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너의 열정을 불태우고, 희망을 이룰지어다.

  이 책은 살아 숨쉬는 모든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리고 고민하는 자를 위한 책이다. 어떤 편견과 선입견과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하얀 백지상태로 이 책을 접할지어다. 여기 씌여 있는 글들은 모두 당신의 사실에 대한 고백일지니.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던져버려라. 하지만 네가 무엇으로든 괴로워할 때 다시 손에 쥘 수 있도록 주변에 버려두어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고민과 생각들은 앞으로 한참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니. 너의 삶이 끊임없이 지속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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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6-12-10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있는대로 살아내긴 쉽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중 하나에요.

마늘빵 2006-12-1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아직 확실히 와닿진 않아요. 좋은 책이란 건 알겠는데. 다음번에 다시 봐야죠. ^^
 

  나의 기억력이란 참 뭐시기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내 기억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데, 본것도 많고 읽은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느낀 것도 많은데, 언제나 나는 아 거기, 에서 끝난다. 예를 들어, 나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나왔고, 분명 남들과 비슷비슷한 경험을 했을텐데, 내가 기억하는 건 별로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아  순간 참 참혹했지, 아 맞아 그 동요 배운 적 있어, 많이 들어본거 같은데, 이런 식이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제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라는 동요(?)를 배웠다고 하면, 나는 누군가가 이 노래를 부르면 응 나 그거 배운 적 있어, 나 알아, 이런 정도의 맞장구로 기억을 더듬는달까. 나의 이런 기억력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마찬가지다. 설마 연애까지? -_-

  책을 읽을 때에도 분명 그 분야에 대한 많은 책들을 읽었고 꽤나 재밌게 읽었지만 내가 기억하는거라곤 아 참 좋았어, 참 신선했어 등의 느낌이나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런 비슷한 말을 했지, 에서 그친다. 하지만 함께 대화하는 그 사람은 이 책의 어디에서 누군가가 말했던 대사까지 기억해낸다. 내가 이상한건가 그녀가 이상한건가. 그녀의 기억력이란 것도 대단하지만, 나의 기억력이란 것도 평범하진 않은 듯 하다.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텍스트의 어느 한부분을 기억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난 글을 쓸 때, 내가 읽은 자료들을 찾아서 쓴다.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 기억에 존재하는 것은 단지 그 책의 어디쯤엔가 이런 말이 있었어! 라는 것뿐. 그러니 나의 기억력은 보조매체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보조매체는 항상 나의 주변에 있어야만 온전한 기억력으로 발휘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책을 빌려 보지 않고 대개 사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빌려보면 느낌만 남고, 사보면 집에 있으므로 필요할  때 내 머리 속 검색창을 이용해서 찾아낼 수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나의 기억방식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단 몇번이고 쭉쭉 줄을 그으며 읽어서 책에 구멍이 날 때까지 반복한다. 책에 밑줄그어진 까만 연필 자욱과 송송 뚫린 구멍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하다. 열심히 한 듯 해서. 시험공부가 다 끝나고 나면 내 머리 속에는 물론 사소하고 구체적인 지식도 남아있지만 예를 들자면 공리주의의 두 갈래에는 벤담과 밀이 있다, 양적공리주의와 질적공리주의라는 것이 있다 이런거. 그러나 이보다 내가 시험에 유용하게 써먹는 것은, 지식이 떠오르지 않을 때 책의 어디쯤에 뭐가 있었다 하는 기억력. 일종의 인덱스. 그럼 그 과목이 국사과목일 경우 쪽수와 위치를 대강 기억해내면 연대순으로 나열이 가능하다. 한번은 중학교 때 친구가 아침에 전혀 나오지 않을 법한 걸 물었는데 내가 이에 대해 답해주고, 그건 참고서 몇쪽 오른쪽 상단에 있다고 이야기해주니 헉 놀랜다.

  내 기억력이란 이렇다. 책이나 영화 뿐 아니라 내가 경험한 것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그 시절의 언제쯤엔가 첫키스를 했고, 정확한 날짜나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느낌이었다는 식. 나는 왜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을 하며 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고민의 내용보다는 아 그때 참 괴로웠지 라는 식의 기억.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그 느낌과 내용을 리뷰를 통해 적어내는 것은 이런 나의 반쪽짜리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흐릿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기억을 붙잡고자 나는 기록을 한다. 보고 읽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온전히 간직해내지 못하는 삶은 참 불행하다. 아마도 앞으로도 내 기억력은 늘 이런식이겠지만 - 개선방법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고 -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열심히 보조기억매체를 만들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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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2-0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하는 엉뚱한 상상 중에..사람 머리...구체적으로 귀 뒤쪽에 메로리 카드를
꽂아 넣을 수 있는 슬롯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였답니다...^^

마늘빵 2006-12-0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그런데 그게 가능해도 완전하진 않아요, 지식만을 보존할 뿐 느낌은 보존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둘다 원해요.

2006-12-08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2-0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스린 비글로라는 여류감독의 영화인



이 영화 보셨나요..혹시..?? ^^


비로그인 2006-12-0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프락서스님도 그렇다구요? 대단한 발견이에요. 제 화두 중 하나가 '나는 왜 사소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까'이거든요. 어쩌면 통찰하는 뇌와 기억하는 뇌가 같이 작용 못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네요.

2006-12-08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달 2006-12-0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래. 그게 너무 심할 땐 정말 살아가는 것에 대해 회의가 느껴질 때도 있지.
하지만 좋은 기억은 가급적이면 잊지 않으려고 해. 잊지 않게 되더라구.
그리고 오빠와 나 같은 사람은 꼭 일기를 써야해.
'기록' + '일기' 의 기능의 '일기'

마늘빵 2006-12-0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속삭이신 젊은 여성분 / 제게도 사소한 기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떼어주세요. 나는 왜 기억력이 이모냥이야.
메피스토님 / 그 영화는 첨 듣는데요. 무슨 영화에요??
라라님 / 아. 그러게요. 뇌가 따로 노나봐요. 둘다 하면 과열되나. -_-a
어제 속삭이신 춤추는 여성분 / 저도 좀 떼어주세요. 언급하신 책 중에 두 개는 알아요. 1번 4번. ^^ 시는 아직 제가 읽어도 잘 와닿지 않고, 1번책은 한번 보고 싶은거에요. 책추천은 따로 속삭일게요.
미미달 / 응 난 항상 일기를 써야돼. 기록을 해서 내 기억을 보완해야돼. -_- 그래서 맨날 이런거 쓰는거야.

Mephistopheles 2006-12-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레니엄 신드롬이 걸리는 영화인데..
영상관련 마약이 나온답니다..그러니까 사람의 머리에 장치를 해서
그 사람이 겪었던 경험들을 저장매체를 통해 타인이 간접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내용인데..제법 심각해요..^^ 아마 아프님이 말씀하신 인덱스
인생처럼 사람의 기억을 저장하는 매체가 나오니까 흥미로울 껍니다..^^

마늘빵 2006-12-0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 아 그런 영화가 다 있군요! 흥미로운데요? 내 경험을 타인이 경험한다...
 
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두번째 읽는다. 그리고 두번째 리뷰를 쓴다. 아마도 몇년 뒤에 나는 또 이 책을 읽을 것이고, 또다시 리뷰를 쓸 지도 모른다. 같은 책을 두번 읽고 두번 리뷰를 쓰는 이유는,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두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고종석을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그가 우리말을 잘 구사하는 몇몇 작가 반열에 든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으며,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 머리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지적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럼 무엇이 바뀌었나.

  처음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지 이 책이 고종석이 쓴 책이기 때문이었지만 두번째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 책이 복거일에 의해 촉발된 영어공용화론 논쟁과 관련해 많은 점들을 시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98년엔가 시작된 영어공용화 논쟁은 많은 창작물을 생산했다. 복거일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알려왔고, 이에 대한 비판서들로서 김영명의 <나는 고발한다>, 네명의 필자에 의해 쓰여진 르뽀 형식의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영어교육학자 한학성의 <영어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조동일의 <영어공용화를 하자는 망상> 등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나왔다. 이후 복거일은 다시한번 삼성경제연구소 문고판 시리즈의 하나로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를 통해 다시한번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밝혔다.

  이 논쟁은 여기 소개한 책들 뿐 아니라 수많은 신문과 잡지의 칼럼을 통해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내노라하는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의 참여 속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고종석은 그 당시의 논쟁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지만 <감염된 언어>를 통해 영어공용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영어공용화 논쟁을 염두에 두고서, 복거일을 옹호하거나 그의 비판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부제로 달고 있듯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로 보는 것이 맞다 싶다. 그래서일까. 고종석은 복거일을 옹호하며 영어공용화론에도 찬성의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누구도 고종석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복거일은 나중에 낸 문고판 책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에서는 그의 제자를 자청하는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서 상당부분을 인용하며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고종석의 생각은 복거일이 자신의 두 책에서 이야기한 바의 근거와는 좀 다르게 영어공용화를 옹호한다. 복거일의 주된 논리는 경제성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라는 책을 통해 그는 망 이론을 설명한다. 수도관, 전기관, 가스배관 등의 망으로 연결되어있듯이 언어 또한 망 역할을 하는 것이며, "비록 망의 가치가 꼭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해서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사용자 수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하며 이어서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쓸 때, 한 언어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되면서, 그것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고로 지금 추세는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영어가 그 망의 중심에 있으니 영어공용화를 통해 우리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세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고종석의 논증방식은 좀 다르다. 고종석은 경제성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의 근거의 중심에는 자유주의, 탈민족주의가 있다. 언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계속 한 언어와 한 언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이며, 다른 말로 언어는 감염된다. "인류 문화의 역사는 감염의 역사이고, 그 문화를 실어나르는 언어의 역사도 감염의 역사다. 언어는 다른 세계와 만나면서 풍부해지고 생명력을 얻는다. 모든 언어는 혼혈이며, 순수한 언어란 없다. 갇혀 있는 언어는 이미 죽은 언어이다." 라고 말한다. 고로 우리 언어가 외래 언어에 의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영어와 한국어의 충돌과 변화과정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언어, 조선시대의 어떤 사람이 사용했던 말과, 또 그 이전의 신라시대의 사람의 말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은 모두 같을까? 아니란 말이다. 분명 우리는 신라와 조선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각기 나라에서 사용되었던, 각 시대에서 사용되었던 '우리말'은 지금의 '우리말'과는 다르다. 중국으로부터 한자의 영향을 받았듯, 일본에 의해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듯, 지금의 우리말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다. 이미 많은 변화와 감염의 역사를 거쳐왔으니 앞으로 다른 언어에 의해 변화되거나 감염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한글이 한자와 싸워온 과정은 그대로 민주주의가 봉건주의와 싸워온 과정이다. 우리는 한글이 우리 글이어서 써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사용이 민주주의적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에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자를 배우지 않을 수는 없다. 지난 2천년 동안 한자를 매개로 해서 무수한 중국어 단어, 일본어 단어들이 한국어에 차용됐고, 그렇게 차용된 한자어들은 당연히 한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수입된 한자는 중국어나 일본어에서와는 다른 독자적인 한국 음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차용된 한자어들은 중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한국어이다. " (P216)

  민족, 민족 하지만 극단적으로 민족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는 이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민족이 사라진다고 우리가 정체성을 잃는 것은 아니며,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을지는 몰라도 세계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개인이라는 말과 같다. 민족, 나라에 얽매이지 말고, 민족어, 나라어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일어서자는 것이다.

  고종석은 분명 복거일의 근거와는 다르지만 영어공용화를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은 달리 반박하기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심정적으로 나는 영어공용화에 반대한다. 그것은 내가 영어를 못해서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과 나라를 걱정해서일까, 한국어를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영어공용화의 필요성과 그 효과가 그다지 적절하지 않고,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까. 내가 고종석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찬성만큼은 동조해줄 수가 없다. 그의 논쟁에 대한 논거는 매우 깔끔하고 신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지금의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 쓰고 있는 언어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그러나. 이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건, 언어가 감염된다면 그냥 그대로 내버려둘 일이지 인위적으로 '영어공용화'라는 정책을 통해 앞당길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그것이 영어든, 프랑스어든, 인도어든, 중국어든, 한국어와 다른 외래어는 앞으로도 계속 영향을 주고 받을테고, 언젠가는 또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미래의 누군가와 나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서로의 언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영어공용화는 강요에 불과하다. 고종석의 말대로라면 이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감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지 억지로 주사기에 약물을 투입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외래어가 됐든 번역투가 됐든,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인위적으로 몰아내는 것이 전체주의적인 만큼 인위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것도 전체주의적임을 말하고 싶다.

  고종석은 영어공용화에 대해 적극 찬성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의 어딘가에서 그는 복거일과 박이문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이문은 이 논쟁에 있어 복거일의 민족주의 비판을 적극 지지했지만, 영어공용화에 대해선 지지를 유보한다. 중세유럽 지식인이 라틴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것과 지금 우리네의 사정은 많이 다르며,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해도 몇세기 후 영어가 널리 자연스럽게 보급된 상황에서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언어가 도구가 아니라고 말했다. 고로 내가 이 앞 문단에서 고종석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는 또한 고종석이 영어공용화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둘러대본다. 그는 아직도 박이문과 복거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까.

 

* 처음으로 중복 리뷰를 올리게 됐다. '중복리뷰'에 대해 안좋은 시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 알고 있지만, 나름대로 첫 독서와 두번째 독서의 느낌과 생각이 많이 다르므로 양해를 구한다. 단지 땡스투 몇십원 더 받자고 이러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더불어 전의 리뷰를 지우지 못하는 것은, 그때 이 책을 읽은 나에 대한 예의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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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 주제에 대해 파고드는 독서, 부러워요..

마늘빵 2006-12-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번 필 받으면 이렇습니다. 이번에 한꺼번에 지른 책들도 그런 경향이 있죠.

혼자놀기 2006-12-08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색깔 넣는 것 어떻게 하면 가능하나요? 알라딘은 바로 붙이기가 안되어서 하나하나 다 타자로 쳐서 기입을 하는데 너무 힘드네요..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ㅡㅡ;

마늘빵 2006-12-0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놀기님 / 그냥 리뷰쓰는 란에 쓰고 위에 색깔 지정하는거 있어요. 그거 아이콘 클릭하고 색지정하면 되는건데.

짱꿀라 2006-12-0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아프락사스님의 리뷰 정말 굿입니다. 저도 언제나 이런 글을 써보려나.......

마늘빵 2006-12-08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 참 별거 아닌데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면 어찌하옵니까. 다시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죠.

stella.K 2006-12-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고종석의 글 읽고 반했지요. 그리고 한번도 읽지 못했습니다. 한 책을 여러번 읽는군요. 좋은 책은 거듭해서 읽을 필요가 있죠. 좋은 독서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복리뷰에 관해 말이 많다구요? 내가 좋아 나의 공간에 리뷰를 쓰겠다는데 그게 한번이면 어떻고 두번, 세번이면 어떻단 말인가요? 뭔가 문제인지...
글구 아프님 서재지붕 근사하네요. 딱 내 스타일이네...=3=3=3

2006-12-09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12-0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숨은님 / 전 고종석 글은 다 좋더라구요. 영어교육 어쩌구 하는 책이 있는데 그건 빼고 나머지 책들은 모두 모아두려고요. 일찌감치 절판된건 어쩔 수 엄꾸. 그냥 머 중복리뷰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는거 같아서요. 저 책은 리뷰가 몇개 없거든요. 그래서 두개인게 또 티가 나죠. 교보군요. 흠. 근데 이번에 왕창 질러서, 일단 가서 머 있나 구경해봐야겠어요. 감사해요. ^^

얼음장수 2007-02-25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달째 사무실 구석탱이 서랍에서 먼지 맞고 있는 책입니다.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안락사를 합법화해야 할까? 민음 바칼로레아 34
미셸 오트쿠베르튀르 지음, 김성희 옮김, 김현철 감수 / 민음인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30분만에 읽는 안락사 논쟁이란 말은 절대 광고멘트가 아니다.   정말 30분만에 읽었다. 아침 지하철 출근길에. 이 책은 민음 바칼로레아  시리즈 중 하나이다. 바칼로레아는 이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프랑스의 대학입학 논술시험을 지칭한다. 프랑스의 대학입학시험은 우리와 같은 수능체제가 아니라 논술시험이 판가름하는데 그 문제란 것도 우리처럼 옛날의 본고사의 부활 유형이 아니라 아주 짧고 간단한 질문을 던져주고 자유롭게 알아서 서술하는 식이다. 우리네 논술시험은 사실상 제한 조건들이 많기 때문에 답안들이 아무리 잘 써도 그 나물에 그 밥일 수 밖에 없다. 대학에서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답안을 뽑겠다고 하지만, 언젠가 한국일보에 나왔던 기억나지 않는 필자의 의견에 따라 정해진 답안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시험문제가 어떻든 간에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는 주제들을 짧은 시간안에 숙지할 필요가 생겼고, 휴머니스트의 야심작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등등의 시리즈나, 최근 나온 <바칼로레아 철학 논술 수험서> 등등의 책들은 모두 이런 목적으로 선보인 작품들이다. 논술 붐에 좀 팔아보자, 고 나온 책들이지만 밉지는 않다. 상업적 목적 뿐 아니라 해당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나온 내용 알찬 책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민음 바칼로레아 시리즈는 현재 50권 정도가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이 시리즈는 프랑스 대학입학시험용 전문교재로 프랑스의 검증된 과학자가 쓰고, 국내 과학자들의 감수를 거쳐 번역되었다. 가설, 관찰, 실험, 분석, 검증과정을 따라가며 논쟁의 중심에 있는 주제들이 왜 논란거리가 되는지를 안내해준다. <안락사를 합법화해야 할까> 는 안락사 문제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 합법화한 나라의 예, 합법화 했을 때의 예상되는 결과,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파고든다. 찬성과 반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따로따로 안내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짧은 책 그 자체를 하나의 논술 답안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맨 뒤에 소개되어있는 '더 읽어 볼 책들'은 안락사 논쟁과 관련해 더 깊이있는 지식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프랑스의 논술교재를 번역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네 실정에 맞게 손보고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더 읽어 볼 책들' 뒤에 나와있는 '논술, 구술 기출 문제'는 대학입학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본 뒤에 자신만의 견해를 한번 서술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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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0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라는 것을 인정할까요. 네덜란드는 벌써 법적으로 법률제정을 하고 시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환자와 식구의 고통을 감안해 환자가 안락사를 수락할 경우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여러가지의 문제도 또한 있나 봅니다. 저는 잘은 모르지만요

마늘빵 2006-12-08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아직 아니지만, 글쎄요, 유럽국가나 기타 다른 선진국가들과 같이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어있고, 모든 돈과 기술을 투입해도 안되는 경우 안락사를 시키고 있으니, 일단은 환자에 대한 모든 조치를 취해볼 만한 사회적 여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환자와 가족들도 손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는 아직 먼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