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력이란 참 뭐시기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내 기억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데, 본것도 많고 읽은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느낀 것도 많은데, 언제나 나는 아 거기, 에서 끝난다. 예를 들어, 나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나왔고, 분명 남들과 비슷비슷한 경험을 했을텐데, 내가 기억하는 건 별로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아 순간 참 참혹했지, 아 맞아 그 동요 배운 적 있어, 많이 들어본거 같은데, 이런 식이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제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라는 동요(?)를 배웠다고 하면, 나는 누군가가 이 노래를 부르면 응 나 그거 배운 적 있어, 나 알아, 이런 정도의 맞장구로 기억을 더듬는달까. 나의 이런 기억력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마찬가지다. 설마 연애까지? -_-
책을 읽을 때에도 분명 그 분야에 대한 많은 책들을 읽었고 꽤나 재밌게 읽었지만 내가 기억하는거라곤 아 참 좋았어, 참 신선했어 등의 느낌이나 어디선가 누군가가 그런 비슷한 말을 했지, 에서 그친다. 하지만 함께 대화하는 그 사람은 이 책의 어디에서 누군가가 말했던 대사까지 기억해낸다. 내가 이상한건가 그녀가 이상한건가. 그녀의 기억력이란 것도 대단하지만, 나의 기억력이란 것도 평범하진 않은 듯 하다. 영화를 봐도, 책을 봐도, 텍스트의 어느 한부분을 기억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난 글을 쓸 때, 내가 읽은 자료들을 찾아서 쓴다.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내 기억에 존재하는 것은 단지 그 책의 어디쯤엔가 이런 말이 있었어! 라는 것뿐. 그러니 나의 기억력은 보조매체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보조매체는 항상 나의 주변에 있어야만 온전한 기억력으로 발휘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책을 빌려 보지 않고 대개 사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빌려보면 느낌만 남고, 사보면 집에 있으므로 필요할 때 내 머리 속 검색창을 이용해서 찾아낼 수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나의 기억방식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단 몇번이고 쭉쭉 줄을 그으며 읽어서 책에 구멍이 날 때까지 반복한다. 책에 밑줄그어진 까만 연필 자욱과 송송 뚫린 구멍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하다. 열심히 한 듯 해서. 시험공부가 다 끝나고 나면 내 머리 속에는 물론 사소하고 구체적인 지식도 남아있지만 예를 들자면 공리주의의 두 갈래에는 벤담과 밀이 있다, 양적공리주의와 질적공리주의라는 것이 있다 이런거. 그러나 이보다 내가 시험에 유용하게 써먹는 것은, 지식이 떠오르지 않을 때 책의 어디쯤에 뭐가 있었다 하는 기억력. 일종의 인덱스. 그럼 그 과목이 국사과목일 경우 쪽수와 위치를 대강 기억해내면 연대순으로 나열이 가능하다. 한번은 중학교 때 친구가 아침에 전혀 나오지 않을 법한 걸 물었는데 내가 이에 대해 답해주고, 그건 참고서 몇쪽 오른쪽 상단에 있다고 이야기해주니 헉 놀랜다.
내 기억력이란 이렇다. 책이나 영화 뿐 아니라 내가 경험한 것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그 시절의 언제쯤엔가 첫키스를 했고, 정확한 날짜나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느낌이었다는 식. 나는 왜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을 하며 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고민의 내용보다는 아 그때 참 괴로웠지 라는 식의 기억.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그 느낌과 내용을 리뷰를 통해 적어내는 것은 이런 나의 반쪽짜리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흐릿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기억을 붙잡고자 나는 기록을 한다. 보고 읽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온전히 간직해내지 못하는 삶은 참 불행하다. 아마도 앞으로도 내 기억력은 늘 이런식이겠지만 - 개선방법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고 -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열심히 보조기억매체를 만들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