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나 성실하다. 내가 봐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 봐도 그렇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꾸준히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귀납적인 삶을 산다. 귀납적인 삶이란 인생의 매 순간순간마다, 매 해마다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연역적인 삶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어느 한방에 터뜨릴 그 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귀납적인 삶도 연역적인 삶도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못하다느니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우월하다느니하는 평가는 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므로. 하지만 귀납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인생의 한 꼭지 한 꼭지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 최종적으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도달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석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남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관심갖고 있는 그림이나, 글이나, 지적능력이나, 혹은 창작력 기타 등등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 이거 하나면 인생 뜰 수 있어, 라고 할 만한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걸 알기에 매일, 매주, 매년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다. 한개, 두개, 세개, 네개, 일년, 이년, 삼년, 사년 지나다보면 어느 순간 그간 쌓인 내공이 빛을 발할 때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어쩌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나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슬며시 사라져갈지도 모른다. 나의 귀납적인 삶은 그 어떤 것의 목표지점을 향해 달린다기보다는 그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감, 만족감에 촛점이 맞추어져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 통해서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과 상상력과 지식을 쌓아가며, 이렇게 끄적거림의 축적을 통해 어느날 번뜩 이전과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 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원하는 아무런 결과도 도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더하기 1'에 희망을 건다는 자체만으로 기분 좋은 오늘을 보낸다. 오늘을 즐기며, 나를 즐기며.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는 그 이전에 삶에는 목적이 필요할까, 라는 질문이 전제된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나에게 있어서 삶의 목적은 아마도 하루하루 나의 경험에 '더하기 1'을 하며 즐기는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내가 무엇이 되어있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결코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나의 '더하기 1'의 인생에 대한 결과물로서 존재할 뿐이다.
내 삶의 목적은 지금 이렇게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부글부글 끊어오를 때 한번씩 글로 써주며 과열되지 않게 돌봐주고, 책을 읽고 좋은 문구에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멜랑꼴리하고 우울하며 격렬한 포티쉐이드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따뜻한 핫초코 한잔과 약간 바스락 거리듯 태워진 토스트 위에 달콤한 피넛잼을 듬뿍 발라먹는 것이다. 푹신푹신 침대는 아니어도 두꺼운 이불자락 깔고 그 위에 발라당 누워 똑같이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쓰고 꿈쩍하지 않는 것이다. 리뷰를 써야한다며 한쪽 구석에 읽고서 아직 쓰지 않은 책들을 쌓아두고 언제쓰지 언제쓰지 에이 다 까먹었다, 나중에 다시 읽고 쓰자, 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너무나 하찮아 보이고 사소해보이지만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오늘도 나는 '더하기 1'의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