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두번째 읽는다. 그리고 두번째 리뷰를 쓴다. 아마도 몇년 뒤에 나는 또 이 책을 읽을 것이고, 또다시 리뷰를 쓸 지도 모른다. 같은 책을 두번 읽고 두번 리뷰를 쓰는 이유는,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두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고종석을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그가 우리말을 잘 구사하는 몇몇 작가 반열에 든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으며,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 머리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지적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럼 무엇이 바뀌었나.

  처음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지 이 책이 고종석이 쓴 책이기 때문이었지만 두번째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 책이 복거일에 의해 촉발된 영어공용화론 논쟁과 관련해 많은 점들을 시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98년엔가 시작된 영어공용화 논쟁은 많은 창작물을 생산했다. 복거일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알려왔고, 이에 대한 비판서들로서 김영명의 <나는 고발한다>, 네명의 필자에 의해 쓰여진 르뽀 형식의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영어교육학자 한학성의 <영어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조동일의 <영어공용화를 하자는 망상> 등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나왔다. 이후 복거일은 다시한번 삼성경제연구소 문고판 시리즈의 하나로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를 통해 다시한번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밝혔다.

  이 논쟁은 여기 소개한 책들 뿐 아니라 수많은 신문과 잡지의 칼럼을 통해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내노라하는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의 참여 속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고종석은 그 당시의 논쟁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지만 <감염된 언어>를 통해 영어공용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영어공용화 논쟁을 염두에 두고서, 복거일을 옹호하거나 그의 비판자들을 비판하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부제로 달고 있듯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로 보는 것이 맞다 싶다. 그래서일까. 고종석은 복거일을 옹호하며 영어공용화론에도 찬성의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누구도 고종석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복거일은 나중에 낸 문고판 책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에서는 그의 제자를 자청하는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서 상당부분을 인용하며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고종석의 생각은 복거일이 자신의 두 책에서 이야기한 바의 근거와는 좀 다르게 영어공용화를 옹호한다. 복거일의 주된 논리는 경제성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라는 책을 통해 그는 망 이론을 설명한다. 수도관, 전기관, 가스배관 등의 망으로 연결되어있듯이 언어 또한 망 역할을 하는 것이며, "비록 망의 가치가 꼭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해서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사용자 수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하며 이어서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쓸 때, 한 언어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되면서, 그것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고로 지금 추세는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영어가 그 망의 중심에 있으니 영어공용화를 통해 우리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세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고종석의 논증방식은 좀 다르다. 고종석은 경제성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의 근거의 중심에는 자유주의, 탈민족주의가 있다. 언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계속 한 언어와 한 언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이며, 다른 말로 언어는 감염된다. "인류 문화의 역사는 감염의 역사이고, 그 문화를 실어나르는 언어의 역사도 감염의 역사다. 언어는 다른 세계와 만나면서 풍부해지고 생명력을 얻는다. 모든 언어는 혼혈이며, 순수한 언어란 없다. 갇혀 있는 언어는 이미 죽은 언어이다." 라고 말한다. 고로 우리 언어가 외래 언어에 의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영어와 한국어의 충돌과 변화과정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언어, 조선시대의 어떤 사람이 사용했던 말과, 또 그 이전의 신라시대의 사람의 말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은 모두 같을까? 아니란 말이다. 분명 우리는 신라와 조선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각기 나라에서 사용되었던, 각 시대에서 사용되었던 '우리말'은 지금의 '우리말'과는 다르다. 중국으로부터 한자의 영향을 받았듯, 일본에 의해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듯, 지금의 우리말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다. 이미 많은 변화와 감염의 역사를 거쳐왔으니 앞으로 다른 언어에 의해 변화되거나 감염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한글이 한자와 싸워온 과정은 그대로 민주주의가 봉건주의와 싸워온 과정이다. 우리는 한글이 우리 글이어서 써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사용이 민주주의적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에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자를 배우지 않을 수는 없다. 지난 2천년 동안 한자를 매개로 해서 무수한 중국어 단어, 일본어 단어들이 한국어에 차용됐고, 그렇게 차용된 한자어들은 당연히 한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수입된 한자는 중국어나 일본어에서와는 다른 독자적인 한국 음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차용된 한자어들은 중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한국어이다. " (P216)

  민족, 민족 하지만 극단적으로 민족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는 이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민족이 사라진다고 우리가 정체성을 잃는 것은 아니며,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을지는 몰라도 세계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개인이라는 말과 같다. 민족, 나라에 얽매이지 말고, 민족어, 나라어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일어서자는 것이다.

  고종석은 분명 복거일의 근거와는 다르지만 영어공용화를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의견은 달리 반박하기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심정적으로 나는 영어공용화에 반대한다. 그것은 내가 영어를 못해서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과 나라를 걱정해서일까, 한국어를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영어공용화의 필요성과 그 효과가 그다지 적절하지 않고,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까. 내가 고종석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찬성만큼은 동조해줄 수가 없다. 그의 논쟁에 대한 논거는 매우 깔끔하고 신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지금의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 쓰고 있는 언어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그러나. 이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건, 언어가 감염된다면 그냥 그대로 내버려둘 일이지 인위적으로 '영어공용화'라는 정책을 통해 앞당길 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그것이 영어든, 프랑스어든, 인도어든, 중국어든, 한국어와 다른 외래어는 앞으로도 계속 영향을 주고 받을테고, 언젠가는 또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미래의 누군가와 나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서로의 언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영어공용화는 강요에 불과하다. 고종석의 말대로라면 이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감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지 억지로 주사기에 약물을 투입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외래어가 됐든 번역투가 됐든,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인위적으로 몰아내는 것이 전체주의적인 만큼 인위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것도 전체주의적임을 말하고 싶다.

  고종석은 영어공용화에 대해 적극 찬성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의 어딘가에서 그는 복거일과 박이문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이문은 이 논쟁에 있어 복거일의 민족주의 비판을 적극 지지했지만, 영어공용화에 대해선 지지를 유보한다. 중세유럽 지식인이 라틴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것과 지금 우리네의 사정은 많이 다르며,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해도 몇세기 후 영어가 널리 자연스럽게 보급된 상황에서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언어가 도구가 아니라고 말했다. 고로 내가 이 앞 문단에서 고종석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는 또한 고종석이 영어공용화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둘러대본다. 그는 아직도 박이문과 복거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까.

 

* 처음으로 중복 리뷰를 올리게 됐다. '중복리뷰'에 대해 안좋은 시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 알고 있지만, 나름대로 첫 독서와 두번째 독서의 느낌과 생각이 많이 다르므로 양해를 구한다. 단지 땡스투 몇십원 더 받자고 이러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더불어 전의 리뷰를 지우지 못하는 것은, 그때 이 책을 읽은 나에 대한 예의라고 해두자.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2-0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 주제에 대해 파고드는 독서, 부러워요..

마늘빵 2006-12-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번 필 받으면 이렇습니다. 이번에 한꺼번에 지른 책들도 그런 경향이 있죠.

혼자놀기 2006-12-08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색깔 넣는 것 어떻게 하면 가능하나요? 알라딘은 바로 붙이기가 안되어서 하나하나 다 타자로 쳐서 기입을 하는데 너무 힘드네요..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ㅡㅡ;

마늘빵 2006-12-0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놀기님 / 그냥 리뷰쓰는 란에 쓰고 위에 색깔 지정하는거 있어요. 그거 아이콘 클릭하고 색지정하면 되는건데.

짱꿀라 2006-12-0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아프락사스님의 리뷰 정말 굿입니다. 저도 언제나 이런 글을 써보려나.......

마늘빵 2006-12-08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 참 별거 아닌데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면 어찌하옵니까. 다시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죠.

stella.K 2006-12-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고종석의 글 읽고 반했지요. 그리고 한번도 읽지 못했습니다. 한 책을 여러번 읽는군요. 좋은 책은 거듭해서 읽을 필요가 있죠. 좋은 독서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복리뷰에 관해 말이 많다구요? 내가 좋아 나의 공간에 리뷰를 쓰겠다는데 그게 한번이면 어떻고 두번, 세번이면 어떻단 말인가요? 뭔가 문제인지...
글구 아프님 서재지붕 근사하네요. 딱 내 스타일이네...=3=3=3

2006-12-09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12-0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숨은님 / 전 고종석 글은 다 좋더라구요. 영어교육 어쩌구 하는 책이 있는데 그건 빼고 나머지 책들은 모두 모아두려고요. 일찌감치 절판된건 어쩔 수 엄꾸. 그냥 머 중복리뷰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는거 같아서요. 저 책은 리뷰가 몇개 없거든요. 그래서 두개인게 또 티가 나죠. 교보군요. 흠. 근데 이번에 왕창 질러서, 일단 가서 머 있나 구경해봐야겠어요. 감사해요. ^^

얼음장수 2007-02-25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달째 사무실 구석탱이 서랍에서 먼지 맞고 있는 책입니다. 조만간 읽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