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끊어버렸는지,
안개 자욱한 밤에 나는 보았다
주검의 모가지처럼
디롱거리는
디룽대는
외가닥 줄 끝을
또 어디선가 앰불런스 소리가 다급하게 흘러가고
죽지 않은 내가 가야 할 곳은
언제나 모든 것의 반대편이라고 중얼거리는 밤에
그칠 것 같지 않은 안개와 잡음과
신음이 흘러나오는 공중전화 수화기
인적 드문 기차 건널목 근처, 유리파편 흩어져 있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앰불런스에 실려간 주검이 남긴 잔액으로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를 누르면
안개 저편에서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그대의 호곡(號哭)
뚜뚜뚜뚜뚜뚜.....-70-71쪽
새롭다. 환상적인 상황 설정. 괴기스러운 분위기. 공중전화 박스, 라는 이제는 '특이한 장소'가 되어버린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리파편이 흩어져 있고, 벌써 '주검'이 된 통화하던 이가 앰불런스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는가.
시인은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태연히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가 그 신음과 안개가 피어나는 수화기를 들고, '앰블런스에 실려간 주검이 남긴 잔액으로',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를 누르고, 상대의 '호곡(號哭)' 즉 부르짖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뚜뚜뚜뚜뚜뚜'라고. 어찌보면 결말은 우습기도 하고, 섬뜻하기도 하다.
단순 기계음에 대한 비유라기 보다는, 어떤 단절감, 단절감이라는 비명 소리. 허공과 공허라는 존재감 같이. 그러나 실제적인 소리로 울려퍼지는 네 부재의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