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올려주소서
깜깜한 방 속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대신, 왜 그랬을까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밤거리로 나가 무신론자,
그는 어디로 굴러가는지 모르는
속이 빈 커다란 드럼통을 요란하게 굴렸을까
유신론자는 겸손해진다
신이 푸른색 양피지에 적어
돌돌 만 수수께끼 두루마리를
끝도 없이 자기 앞에 늘어놓을 때
그러나 무신론자, 그에게는 다만 즐거운 일
여름이 되면 장미 정원에서
수만 개의 꽃송이가 저절로 피어나듯
수수께끼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으면 되는 일이다
피지 않고 떨어지는 꽃봉오리도 그런대로 좋은 법
유신론자는 매일 확인한다
어디에나 똑같이 찍힌 신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돛단배 사과나무와 기린 화산 무지개
수염고래가 뿜어내는 투명한 물줄기에서
잠자리 날개의 은빛 무늬에서
그런 관점을 비웃을 틈은 없다
사물의 바닷가에 기기묘묘하게 그려진 모래 그림을 관찰하느라
무신론자, 그는 항상 바쁘니까
순간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잠깐 동안에
한 번도 똑같지 않은 그 기하학적 연속 무늬를
그는 어리석자, 유신론자가 보기엔
이미 만들어진 구름다리를 두고
차들이 과속으로 달리는 도로 속으로 들어가니까
노란색 페인트 통을 들고
자신이 지나갈 건널목을 멋대로 그리면서
유신론자처럼 무신론자도 죽는다
두 사람은 수줍게 머뭇거리며 나아간다
하느님의 두 손바닥으로
밤하늘 별로 만들어진 저울 위로
영혼의 무게는 똑같다
사이좋게 먹으려고 두 쪽으로 쪼개놓은 사과처럼-45-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