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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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달라 보였다. 수염이 사라졌고 눈가에 주름이 늘고 다크 서클이 있었다. 손에는 파인트 잔을 들고 있었는데 짙은 색 맥주가 조금 남아 있었다. 여전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의사처럼 생겼다. 다만 몇 시즌이 방영된 후의 얼굴이었다.

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운동장에서 노는 것보다 도서관에 있는 게 좋았죠. 사소한 것 같지만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 말을 늘 명심해야 해.

분명 스파이로 활동할 때 가장 큰 고충은 이런 점일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잘못 투자한 돈과 같다.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훔치는 기분이 든다.

유명해진다는 게 이런 걸까? 숭배와 공격이 뒤섞인, 영원히 달콤 쌉쌀한 칵테일 같은 걸까? 선로가 급격히 바뀔 때 그토록 많은 유명인사가 탈선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건 키스해주는 동시에 뺨을 때리는 격이었다.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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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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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기억에 남아 소설도 보게 되었다.

둘 다 좋지만 그래도 영화 편이 더 좋다. 다른 점도 있고 같은 점도 있다.

영화에서는 영화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인 효과를 최대한 살린 결말이 있었고, 소설에서는 소설이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심리 묘사가 더 자세하다. 영화를 보며 저건 대체 왠 갑툭튀야? 하는 부분도 소설에서는 설명이 되어 있다. 양쪽에서 전부 등장하지 않는 기리시마에 대한 마음도 소설 쪽이 조금 더 명확한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완전히 모호하게 처리한 영화 쪽이 좀 더 마음에 든다.

 

10대들을 보며 좋을 때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커온 것일까? 평범하고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생각이 들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나에게도 중, 고등학교 시절은 아슬아슬하고 아찔하고 불안한 시기였다. 지나와서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박제된 순간들도 많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기이다.

 

소설이 참 좋았지만, 2프로 부족한 느낌을 받은 독자라면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권한다.

 

 

야구부, 기쿠치 히로키

 

 

아마 기리시마도 그랬을 거다, 그냥 콱 그만둬버릴까 생각했고, 그 생각을 무심코 입에 담았고, 또 우연히 이 녀석이 옆에 있다가 들었고, 그리고 지금 이 녀석이 나한테 서슴없이 툭 던진 것뿐이다.

 

 

배구부, 고이즈미 후스케

 

기리시마는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다.

어쩌면 무엇 하나 틀리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스케의 초조감이 멤버에게 옮은 것도 아니고, 히노의 답답함이 전염된 것도 아니다. 아마 하루에 1밀리씩이나, 정말로 느끼지 못할 만큼, 마치 저녁 하늘이 밤하늘로 변하듯, 어느새 기리시마 혼자 붕 뜨고 말았다.

 

감독에게 기리시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삐걱거리며 조금씩 깎여나가는 체육관을 기리시마가 과감히 버린 것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아무도 진짜 이유를 눈치채지 못한 척했지만,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기리시마까지 포함하여 팀을 가장 잘 볼 수 있었던 건 바로 나였다.

나만이 건넬 수 있는 의견이 있었고, 기리시마는 항상 그 의견을 들으러 왔다.

 

 

브라스밴드부, 사와지마 아야

 

인간관계는 유리 공예를 닮았다. 외관은 예쁘고 아름답다. 태양광을 반사하면 여러 방향으로 빛을 발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깨지고, 또 빛이 닿으면 주위에 일그러진 그림자가 생긴다.

 

 

영화부, 마에다 료야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기쁜 일, 즐거운 일을 큰 소리로 외치면 전부 빨아들여줄 것만 같은 하늘.

이 하늘만큼의 땅이 있다. 세계는 이렇게도 넓은데, 우리는 이토록 좁은 장소에서 도대체 무엇을 겁내는 걸까?

 

세계가 이토록 넓은데, 우리는 이 학교를 세계처럼 느끼며 생활한다.

 

괜찮아, 축구 영화를 찍고 싶으면 나와 함께 규칙을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 그러니 조금만 더 어깨를 펴고 달리자.

세계는 이렇게 넓으니까.

 

 

소프트볼부, 미야베 미카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과 꾹 참는 것, 어느 쪽이 어른일까? 이렇듯 좁은 세계에서 살다 보면 알 수 없게 된다. 가스미처럼 그보다 창작 무용할 때 무슨 곡으로 할까?”라고 슬쩍 다른 이야기로 유도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제일 어른다운 방법일까?

 

 

다시 야구부, 기쿠치 히로키

 

멋진 남자랑 예쁜 여자가 나란히 걸으면 누구라도 보겠지? 게다가 고등학교라는 좁은 세계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두려웠다.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될까 봐.......

 

괜찮아, 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라고 기리시마에게 말해주자.

 

 

배드민턴부, 히가시하라 가스미(14)

 

내가 좋아하니까.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일인데, 왜 여태까지 한 걸음 나서지 않았을까?

신발 끈을 단단하게 맨다. 내일 방과 후로 하자, 말 거는 것. 발이 조이면서 머리를 스친 자그마한 결의도 확실한 형태를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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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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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쪽이 넘는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고 술술 읽힐 줄이야.

소설의 가장 큰 덕목이자, 사실상 유일한 덕목은 재미이다.

소설은 교과서도 아니고 문제집도 아니다.

작가가 어떠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든 어떤 주제를 독자에게 던지든 어떤 설을 풀고 싶든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 소설은 재미있다.

소설의 재미 안에 감동도 있고,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다.

소설의 재미 안에 역사가 흐르고 사람이 살고 나의 감정도 춤을 춘다.

 

제정 러시아에서 소련, 다시 러시아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

물론 알면 더 좋겠지만 몰라도 이 소설을 읽는 데에 큰 지장은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비슷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닥터 지바고가 떠오르기도 했고,

역사적 파도에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그 파도를 타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다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정된 공간, 영원과도 같이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주는,

무의미해 보이는 삶에 의미있는 점을 점점점... 찍어서 앞뒤와 좌우가 구별되는 것처럼

로스토프 백작에게 소피야는 어느새 삶의 희망이자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

이 부분은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가 연상되기도 했다.

 

내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삶이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더라도 위엄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백작에 매료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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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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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을 배경으로 한 20대 주인공의 SF.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정적. 이건 등장인물과 시공간을 확대하여 장편 버전으로도 보고 싶었습니다.
뒤에 연결된 것 같은 용에 대한 두 이야기 중 마지막 이야기는 좀 아쉬웠어요. 다른 소설이 워낙 독특하면서도 재미있어서 상대적으로 평이하게 느껴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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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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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재이다.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는 독자들도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치매 걸린 사람의 1인칭 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살아온 세계가 전부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게 되고야마는 자의 절망이 느껴져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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