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라는 작가의 말이 좋아서 먼저 밑줄을 쫙 그어 놓고 다시 한번 더 읽었다. 그가 이 소설에 나타내려 한 것들이 모두 윗 글속에 담겨 있는 듯 하다. 

조정래, 그의 책으로는 필독서인 <태백산맥> <아리랑> 그리고 <한강> 을 거쳐 오랜시간 겨울잠을 자듯 하다가 <인간연습>이란 책을 만났다. 전작들과는 너무 비교가 되는 작품이었지만 그가 역사라고는 할 수 없는 대하소설에 비하면 단편과 같은 장편소설로 전작들은 우리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면 <인간연습>은 그 모든 아픔을 한몸에 담고 있는 전향수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을 오랜 여운에 비하면 이 소설은 작가 능력에 부족한 작품처럼 아쉬움을 남겨 주었는데 얼마전 만난 <사람의 탈>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어찌하다보니 역사의 그 현장에서 밀려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아픔을 간직한 우리 역사와 같은 인물에 대하여 스케일이 큰 소설이지만 빠른 전개로 그 아픔을 전해주지만 그 소설 또한 내겐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면 그의 대하소설의 힘이 아직 남아있어서일까. 그런 소설들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작가에게 대하소설에서 보여 주었던 그 강한 힘을 한번더 보여주길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현대사를 통해 그런 소설을 탄생시키지 못한다고는 볼 수 없는 문제이기에 흡입력이 강한 그만의 힘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해거름에 구불거리는 야산 길을 따라 검은 승용차가 날렵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 늘씬한 몸매의 유연함이 마치 잔잔한 물결을 가르는 물개의 매끈한 몸짓 같았다.’ 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뉴스를 통해 접했던 대기업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일인자인 기업과 이등인 기업,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 라는 말처럼 우린 성적이나 그외 무엇으라도 일등을 하려고 눈물나는 노력을 한다. 사회가 일등만 기억하고 아류는 기억해주지 않기에 남을 밟고라도 일등의 자리에 올라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류’ ’불법’ 을 저지르고도 이슈화가 되면 사회 통념상 눈감아 주기를 그냥 지나쳐 흘러가길 바라는 뉴스를 종종 접하기도 했다. 소설속 주인공이 말하는 ’골든 패밀리’ 라는 부류에 속하지 않아서일까 그런 일들은 내 일이 아니기에 한번 입에 올렸다가 잊고 만다. 그들이 범하는 잘못된 일들을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깨어 있는 자’ 가 되어 그 속을 속속들이 깨부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을 읽는다면 ’깨어 있는 자’ 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다.

일등인 태봉의 그늘에서 이등으로 각인되어야 하는 일광그룹 남회장, 그는 일등인 태봉이 잘못을 저지르면 무죄로 풀려 나지만 자신은 실형을 선고 받는 그 부당함이 싫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무시를 당하며 물려 받은 일광그룹을 일등기업으로 만들고 싶어 대작전에 돌입한다. 자신 밑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윤성훈을 비롯하여 해외파인 강기준을 몰아세워 태봉이나 그외 자신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피를 수혈하게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개척센터’ 이름을 보면 뜻을 알듯 말듯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세하게 모를 그런 팀을 만들고 자신의 기업을 일류로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을 펼친다. 그들 또한 태봉에 맞설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을 스카우트 하는데 알게모르게 기울인 뇌물이 대단하다. 완전한 조직이라 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한 그들은 어마어마한 보수를 기대하지만 워낙에 짠 남회장은 떡값에 불과한 돈으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자신은 모든 것을 가진듯 부풀려졌는데.

드러나지 않는 돈인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조성해 놓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들도 모르는 곳에서 틈이 발견되고 그 틈마져 돈으로 해결을 말끔하게 하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가 남았다. ’이거 갑자기 눈부시게 보이네. 알고 보니 무서운 독종에 영웅 아니신가.’ 라고 할 정도의 강기준과 ’첩보원 같은 게 아니라 그는 바로 태봉그룹의 1급 첩보원이었다. 일광그룹이 닮고 싶어 하는 그 막강한 정보 조직체를 만들어 낸 기둥 중의 하나’ 인 박재우와 남회장 바로 밑에서 그의 실세를 등에 업고 모든 일을 좌지우지 하는 윤성훈, 그들이 모이면 못할것이 없는 철인팀이 되었다. 태봉을 능가하는 조직력과 비자금도 조성을 해 놓았는데 회장 아들에게 재산권과 경영권을 불법승계를 못할것이 없을까. 그들은 한 팀인듯 하면서도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언제고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적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회장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만 그 모든 비리에 대한 반대파가 있는 것이다. 자신과 비슷하게 출발을 했으나 자신보다 먼저 앞서 가 있는 사람을 보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옳은 소리를 한 진검사, 그는 옷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비리와 거짓과 싸우는 일선에 서게 되는 그를 비롯하여 사회에서 깨어 있는 소리가 조금씩 커지게 되고 억억 거리며 회장 밑에서 그의 힘에 눌려 ’허수아비춤’ 을 추던 그들이 회장의 욕심에 조금씩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고 마침내 강기준이 반기를 들고 나온다. 하지만 소설은 너무 갑자기 막을 내린다. 

조직사회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면 자신의 목소리 보다는 전체나 그외 우두머리의 소리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모두가 ’노’를 하는데자신만 ’예스’ 를 할 수 없음이 ’사오정’ 이나 ’명예퇴직’ 이니 하는 그동안 우리사회에 불어닥친 무서운 칼바람 앞에 남자들의 의지는 나약해지고 말았다.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살기 보다는 어느 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 놓은듯 영혼을 잃어버린듯 살아가는 남자들이 피곤한 사회로 바뀐지가 오래다. 이 소설속에는 ’수컷들의 야성본능’ 인 ’영역싸움’ 이 잘 드러난다. 거기에 ’약육강식’ 이다. 힘이 없는 자는 힘 있는 자에게 먹히고 짓밟히고 만다. 수컷들의 날것 냄새가 나는 소설은 그들이 영역싸움을 하기 위하여 얼마나 비열하고 비굴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가진자의 자만 또한 얼마나 끝이 없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가져야 일등이고 얼마나 더 올라가야 자신의 욕심을 다 채울 수 있는지 그 끝도 없는 싸움에서 자신 또한 스스로 무너지고 있음을 모르면서 계속적으로 앞으로 전진만 일삼는 슬픈 군상의 일면을 일광그룹의 남회장을 통해, 그리고 그 밑에서 자신의 영혼을 돈과 바꾼 이들의 허수아비춤으로 날것 냄새를 그대로 보여준다. 

’윤성훈이 몇 걸음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의 뒷덜미가 꼿꼿하게 곤두서 있었다. 그 성깔 돋은 뒷덜미를 보면서 박재우는, 성질 내지 말아라. 어차피 인생사는 경쟁이고 싸움판 아니더냐.’ 라는 말을 던진다. ’인생사는 경쟁이고 싸움판’ 그것도 수컷들의 싸움판을, 살아 남기 위하여 돈 앞에서 비굴한 그들이 벌이는 비리는 자신들은 비밀리에 움직인다고 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보인다. 문어발식 성장과 집착, 그게 과연 영원할까? 외국의 경우 최고부자인 자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들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을 하던가 기부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선 이야기이다. 우린 어떻게 하던지 자식에게 불법으로라도 물려주려고 하고 남이 모르는 주머니를 차려고 한다. 그러다 걸리면 나도 남처럼 ’무죄’ 이겠지 하는 생각을 갖는다. 무엇이 무죄일까? 국가에 그동안 이바지한 공로가 커서. 그 공로 또한 불법으로 이룩된 것 아닌가. 모두가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소설속에서는 불법으로 축적된 그들의 성이 언제까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을 폭로하듯 진실과 대면하는 반전이 좀더 더 다루어졌으면 하는데 갑자기 끝나서 조금 섭섭하고 아쉽다.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이 선택한 길.
수컷들의 영역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하여 서로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쓴다. 그리고 일에 대한 댓가 또한 마땅히 남보다 더 많이 받길 원하지만 최고 위에 있는 자는 그렇지가 않다. 자신의 주머니를 더 챙기지 남의 주머니를 결코 채워주지 않으려 한다. 그의 주머니엔 욕심이란 것이 들어 앉아 있기에 ’남’ 을 생각하기엔 부족하다. 무엇이든 최고이고 남보다 더 위이길 원하는 자들의 마지막 길은 무엇일까. 진시황 또한 영원한 삶을 얻지 못했듯이 그들이 가려는 길 또한 영원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그치게 되는 허수아비춤처럼 모든 이가 영혼이 없는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일순간 돈의 힘에 눌려 자신을 잃어버렸다 해도 그 길이 늘 언제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맛있는 맛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이성이 있는 동물이기에 언제고 뒤돌아 본다면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현대사를 날카롭게 꼬집은 작가의 필력은 아직 녹슬지 않았지만 무언가 2% 부족함을 느낀다. 이야기가 막 전개되는 시점에서 끝이 난 듯한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어쩜 작가는 그런 일광의 마지막 참혹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허수아비춤을 추던 그들이 느껴야 할 참회의 시간을 어쩌면 독자의 몫으로 돌렸는지 모른다. 그런 과오를 더이상 저지르지 않기 위하여 독자는 깨어 있으라 한다.’회장은 노조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고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가 치가 떨리게 싫어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두가지가 더 있었다. 분배라는 말만 들으면 치를 떨었고, 사회 환원이라는 말에도 치를 떨었다.’ 이젠 후손을 위하여 돌려줘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움켜쥐고 있다고 모두가 내것이 되는것이 아니고 모두가 마지막길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닌 분배와 환원이라 말한다. ’그게 바로 돈의 힘이죠. 돈을 앞세워 실패한 적 없으니까 그들은 돈의 힘을 절대 신봉하면서 거칠 게 없는 거지요. 대학이 돈 힘에 넘어가는 판인데 가난한 개인이야 더 말할것 없는 거지요.’ 돈의 힘을 밑고 날뛰는 각축장과 같은 남자들의 본능을 잘 표현해 놓은 소설은 좀더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니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기업들이 투명경영을 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언제고 허수아비춤을 추어야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는 음보다 양이 많기에 살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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