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야의 결혼 - Tuya's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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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내몽골 여인인 투야의 기구한 결혼생활 2006
 



감독/ 왕전안
출연/ 위난

척박한 내 몽골 그곳에서 이혼한 전남편까지 책임져야하는 투야의 우여곡적 결혼기

남편이 장애를 입어 경제력이 없어 이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빚어진다면 전남편을 어떻게 해야할까? 아니 그와 함께 새로운 결혼생활을 해야할까 아님 다른 그의 가족에게 돌여 보내야 할까? 이 영화는 우리와는 다른 사회상을 보여주는 강인한 영화이다. 아직은 모계사회가 지속되고 있는 내몽골,사막화가 된 그곳에서 양을 기르며 사는 투야. 하지만 그들에겐 양에게 먹일 물이 절실히 필요했다. 늘 물을 찾아 멀리 나가 물을 길어 오는 투야를 위해 그녀의 남편은 집앞에 우물을 파다가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치게 되고 집안 일이며 경제력도 없게 되었다, 그런 남편 때문에 가사일에 양을 치는 일에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하다시피 하는 투야에게 시누이는 이혼을 하라고 한다. 남편 또한 그녀에게 이혼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남을 배려하거나 이해하고 돕는 것에 앞장서는 여인이며 강인하다. 그러던 어느날 양을 몰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웃의 썬더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발견하고는 집에 데려와 그를 살려낸다. 자신의 마누라에게 버림을 당하듯 한 썬더는 그녀에게 장난처럼 결혼하자는 말도 서슴없이 하는 개구장이같고 하는일마다 안되는 정말 죄수없는 남자이다. 그가 하루는 가축을 먹일 사료를 사러 가는 도와준다고 하고는 트랙터와 같은, 사료를 실은 차가 쓰러져 그 밑에 끼게 되었다. 그것을 이웃들과 함깨 도와주다가 투야 또한 허리를 다치게 되고 그녀는 할 수 없이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혼했다는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 드디어 그녀의 또 다른 남편될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지만 그녀의 희망사항에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그녀는 비록 이혼을 했지만 전남편과 함께 살기를 원했던것, 아무리 좋은 남자가 찾아와도 그녀는 전남편을 마다하면 ’노’ 를 외쳤다. 아이도 둘씩이나 있고 거기에 전남편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말에 남편후보들은 한사코 머리를 흔들며 돌아가고 그녀는 더욱 힘들게 집안일과 양을 돌보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중 그녀의 동창이 큰 돈을 벌었고 현재는 부인과 이혼하여 혼자의 몸이라며 그녀를 17년간 생각해 왔다며 그녀와 결혼하자고 제의를 한다.물론 전남편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 젯밥에만 관심이 있었던지 아님 자신의 돈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인지 투야의 전남편을 시설에 맡겨 놓고는 그녀의 몸부터 탐하려 한다. 전남편은 시설에서 쓸쓸하게 자신을 떠나가는 투야와 아이들을 바라보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투야가 길에서 만나 전남편에게 가보라고 한 썬더와 술을 마시고는 자신을 비관하여 죽으려고 손목을 긋는다. 그 소식을 투야의 남편이 되겠다는 동창에게 전하지만 그는 전화를 끊고는 투야에게도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남편은 투야가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 썬더는 그의 부인이게 모든 것을 털려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결혼을 하기 위하여 떠나는 투야를 말을 타고 가서 겨우 붙잡아 돌려 세우고는 병원으로 향하게 하는 썬더,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 병원에서도 나갈수가 없다. 말이라도 맡기고 퇴원하길 바라지만 병원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썬더는 어쩌지 못하고 있고 투야는 아이들과 함께 모두 죽자고 전남편에게 한다. 그런 와중에 투야의 동창이 전남편의 병원비를 내주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왔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다시 물을 찾아 오랜 길을 가야 하는 힘든 생활과  가난에 허덕이는 생활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계속 결혼 상대자들은 줄을 잇는다.썬더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줄게 없어 그녀의 집앞에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전남편과 투야, 투야는 마음을 열고 그에게 우유차도 갖다 주고 우물의 진행상황도 들어보면서 점점 그에게 마음을 기울인다. 그와 결혼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썬더는 읍내에 전부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고 우물은 텅비어 있다. 그녀는 다시 그녀에게 청혼을 하러 온 남자와 결혼하기를 결정하고 결혼준비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썬더, 실은 아내와 이혼을 하고 우물을 팔 기계를 장만하여 온 것이다. 투야는 그의 본심을 진심으로 받아 들이고는 그와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결혼식날 전남편과 썬더는 싸움을 하게 되고 밖에서는 그녀의 아들과 이웃의 아이가 싸움을 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투야는 그만 아무도 없는 게르에 들어가 눈물을 흘린다.영화는 처음과 끝이 같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투야의 결혼식 장면이다. 결혼식을 했지만 그렇다고 더 나아진것도 없다. 물질적으로는 보탬이 안되는 썬더, 하지만 그의 진심과 남편을 대신하여 그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이웃으로 있었기에 그녀의 모든 사정을 숨김없이 안다는 것뿐이다. 만약에 투야가 전남편을 버리고 아이들과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였다면 성공한 동창과 결혼을 했거나 그외 다른 지금보다는 좀더 나은 남자들과 결혼을 하여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녀는 한사코 자신의 전남편과 함께 할 것을 제시한다. 누가 다시 결혼을 하는데 전남편까지 책임을 지려 할까? 우리의 의식으로는 받아 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풍습은 그런가보다. 그렇다고 그것이 크게 해가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 투야의 눈물이 안쓰럽고 씁쓸하다.

이혼을 했지만 그들을 갈라 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몽골의 척박한 사막화도 강한 모래바람도 그저 그들의 믿음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하는 매개체가 될 뿐이다. 비록 가난하여 이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더욱 서로를 견고히 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서로에게서 한사람을 떼우 놓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투박하지만 서로를 챙겨주는 눈빛에서 그들은 이미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경제력이 없어 이웃의 칠칠하지 못한 썬더에게 아내를 내어주게 되었지만 그가 싫은 것이다. 아직은 자신에게 묶여 있는 아내의 끈을 풀고 싶지 않은 전남편의 변함 없는 눈빛에서 투야는 그만 울고 만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물' 처럼 가난을 이겨낼 어떤 희망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결혼을 했다고 하여 가난이 물러간 것은 아닌 그저 전과 같은 상황일뿐이다. 일꾼과 같은 썬더가 한 명 늘었을 뿐이고 투야의 척박한 삶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내몽골의 먼지바람과 함께.이 영화를 통해 투야의 삶에서 '남편' 이란 위치를 다시금 뒤돌아보게 되었다. 여인의 기구한 삶 또한 남편으로 비롯되었지만 결코 그녀는 비관하여 남편을 버리거나 자신의 삶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것을 그러안고 헤쳐나아가려고 한다. 강인한 여인의 삶을 보여주면서 부부란 무엇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더불어 몽골의 스산한듯 하면서도 깊은 내면에서 밀어 끌어낸 듯한 음악이 가슴을 울린다. 뿌연 먼지바람과 함께.부부란 무엇일까.만약에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전남편을 자신의 새로운 결혼생활에 포함을 시키며 함께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심코 본 영화인데 2007년 베를린 영화제 금공상 수상작이다. 아마도 이런 인생의 답을 척박하짐나 투야의 삶을 통해 진실하게 풀어낸 것이 가슴을 울리지 않았나싶다. 모쪼록 남편이란 그런 든든한 그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겠지만 아내 또한 힘들다고 함부로 남편의 그늘을 벗어난다는 것은 믿음을 저버리는 일 같다. 부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주는 영화인듯 하여 좀더 나의 결혼생활에도 깊은 성찰을 가져다 주는 시간이지 않았나한다. 파랑새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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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람(1DISC)
디파 메타 감독, 리사 레이 외 출연 / 에스와이코마드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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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둔 올가미, 아쉬람 2005 

 

감독/ 디파 메타
출연/ 리사 레이(깔랴니), 존 에이브러햄(나라얀),...

여인의 삶과 관습이란, 많은 질문을 하게 하는 영화
1938년 인도의 바라나시, 그곳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여인들은 가족과 떨어져 과부들만 있는 곳에서 함께 기거를 하는 '갇힌 삶' 을 살아야만 한다. 길에서 과부를 만나는 것도 불행이요 그들과 말을 해서도 만져도 안된다는 정말 기막힌 관습에 나이 어린 쭈이야는 팔려가듯 간 결혼에서 늙은 남편이 죽자 과부들이 모여 기거하는 곳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버려지듯 그곳에 내팽개쳐지고 만다. 아직 어린 쮸이야는 혼자만의 삶이 아닌 엄마의 품을 더 그리워하고 아직 부모의 그늘에서 자라야만 하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이 죽었다는 이유로 세상과 격리되어 과부들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살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어여뿐 '깔랴니' 는 다른 과부들과는 다르게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다. 그녀와 갠지스강에 길에서 주운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다가 강아지가 도망쳐 가는 통에 쭈이야는 강아지를 잡으러 달려가게 되고 그러다 핸섬하게 잘 생긴 젊은 남자 나라얀을 만나고 만다. 나라얀은 그렇게 쭈이야와 깔랴니를 보게 되고 첫눈에 깔랴니에게 반하게 되지만 그녀가 과부라는 이유로 부모와 그리고 관습과 맞서게 된다. 하지만 그는 영국에서 신식공부를 하고 왔기에 과부가 결코 자신의 삶이나 인생에 해가 되는 '걸림돌' 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부모와 관습, 그동안 지켜져 왔던 고정관념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그리하여 상사병에 걸리듯 그녀를 향한 열병에 시달리는 나라얀 사이를 오가는 귀여운 쭈이야. 하지만 깔랴니는 과부들의 생계를 위하여 과부촌의 큰언니격인 사람의 지시를 받아 몸을 팔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부를 보면 제수없다는 관습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한편 시대는 점점 변하고 있다. 새로운 인물 간디에게 기울어져 가는 사람들, 그리고 낡은 헌법은 바뀌어 과부가 개가를 해도 된다는 법이 발표되지만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꽁꽁 숨어 지내듯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과부들은 그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 깔랴니 또한 나라얀을 본 순간부터 그를 사모하게 되고 그 자신은 남편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처녀와 다름없지만 남편을 만나기전에 그가 죽었다는 이유로 과부가 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듣게 된 나라얀은 그녀와 결혼할 생각을 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리지만 결코 어머니의 낡은 관습을 타파하기엔 너무 시간이 없다. 그리고 아버지는 젊은 여자를 집으로 끌여 들이고 있다.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던 새로운 '사랑' 에 눈을 뜨게 되는 깔랴니, 하지만 나라얀과 결혼하겠다는 것이 쭈리야의 말에 의해 밝혀지게 되고 그는 강금을 당하게 된다. 그래도 그녀는 그곳을 떠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다 과부촌 사람들도 깔랴니의 뜻을 받아 들이게 되고 나라얀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다가 깔랴니는 배를 돌리게 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던 곳이 바로 그의 집이고 그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과부촌에 돌아와 슬픔에 잠긴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여 갠지스강에 빠져 죽고 만다. 그녀가 죽고 난 후 비로소 결혼을 다짐하고 그녀를 찾는 나라얀, 하지만 그들의 낡은 관습에 막혀 빚나가고 그녀가 이루지 못한 현실만 남아 있다. 과부가 이대로 낡은 관습에 얽매여 삶을 박탈당하기 보다는 새로운 삶을 원했던 한 여인에 의해 쭈리야는 나라얀에게 보내지고 그녀가 쭈리야를 나라얀이 떠난 기차를 보내고 뒤돌아 본 현실 세계엔 아직도 낡은 관습이, 그녀가 헤쳐나가야 하는 무서운 현실이 남아 있다. 그렇게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며 긴 여운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를 설 명절에 찾아보게 되었다. 딸들과 함께 앉아서 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인의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남편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뒤웅박 팔자' 라는 말처럼 바라나시의 깔랴니와 같은 과부들이 처했던 삶이 결코 현실에서는 없으란 법은 없지만 시간이 멈춰버린듯한 영화가 끝나고도 끝내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든 안타까움이란. 인도 힌두교들 때문에 인도에서 촬영을 못하고 그와 비슷한 스리랑카에서 갠지스강가를 완벽하게 재현낸 세트에서 이루어진 영화는 현지에서 뽑은 신인 '쭈리야' 때문에 더욱 빛난 영화이기도 하다. 주연 여배우와 남자 배우들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에 더 슬픔이 깊게 베이기도 했지만 쭈리야의 천진한 연기에 더욱 영화가 깊이를 들여낸 영화이다. 이런 보석과 같은 영화를 이제 보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값지게 받아 들여진 명절이다. 삶이란 어쩌면 모두에게 감옥이며 수행터일텐데 유독 과부에게만 자유를 박탈했다는 것이 몹시 씁쓸하다. 영상이 아름답고 음악이 슬프도록 처절하여 더욱 아름다웠던 영화이며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이다. 쭈리야의 맑은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삶이란 자신이 만들어 가는 울타리인데 사회의 관습에 의해 자유와 삶이 억압받는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일까. 조금만 자유를 억압받아도 튕겨져 오르는 현대인들의 삶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구속을 쭈리야의 맑은 눈동자를 통해 볼 수 있다.현실과 맞지 않는 낡은 법은 때론 과감하게 바꾸거나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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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 이야기 - H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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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기다리는 충견 하치의 감동실화 2010

 



 감독/ 라세 할스트롬
출연/ 리처드 기어(파커교수), 조앤 알렌(아내), 사라 로머...

하치, 인간보다 더 진한 감동을 안겨주다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리처드 기어가 나와서 더 선택하게 되었지만 나도 십여년이 넘게 치와와 두마리를 키우고 있어 어떤 영화일까 하고 기대를 하고 봤다.미리 영화내용을 보지 않고 봐서일까 더 감동적이었다.그런데 이 내용이 실화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시부야의 역 앞에는 '하치' 의 동상이 있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진실앞에 한 한참을 펑펑 울었다. 정말 사람도 하지 못할 일을 충견인 '하치' 가 주인과 나눈 영혼적 교감에 의해서 한것인지 아님 정말 뛰어난 개이기에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힘에 의해 내 마음도 움직였다.,

퇴근길에 파커교수는 역 앞에 버려진 개를 발견하고는 분신물 센터에 맡기려 하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하지만 아내와 딸에겐 먼저 키우던 개가 남긴 슬픔이 있어 키우는 것을 적극 반대하는 아내, 그런 아내와는 다르게 파커 교수는 그 개에게 왠지 남다른 애정을 쏟는다. 그 개의 품종도 이름도 몰랐지만 개의 목줄에 있는 문양과 친구에게 물어 그 개가 일본에서 전통있는 아키타견이고 목걸이에 있는 문양은 행운을 뜻하는 팔인 '하치' 라는 말에 개의 이름을 하치라고 부르게 된다.

하치가 파커 교수를 발견한 것일까, 그가 먼저 하치를 발견한 것일까.
주인을 찾아 주던가 남에게 분양을 하려던 아내는 남편이 하치와 함께 하는 즐거운 풍경을 보고는 포기를 한다. 그렇게 하여 한가족이 된 하치는 공을 던지면 물어오는 것이 아니라 늘 파커 교수의 출퇴근을 함께 하려 한다. 그와 하치는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자석처럼 딱 달라붙어 빈틈을 주지 않고 하치는 영리하게도 파커 교수의 출퇴근 시간을, 그것도 퇴근시간에 정확하게 역앞에 나오서 주인을 기다린다. 누가 알려준것도 아니고 함께 온것도 아닌데 녀석은 교수를 그렇게 기다리고 함께 한다. 점점 둘은 가깝게 교감을 나누어 가고 어느날,하치는 출근하려는 교수의 뒤를 따르지 않고 그를 붙잡으려 한다. 왜 그럴까. 역에 따라 나오지 않아 섭섭하던 그에게 입에 공을 물고 나온 하치를 발견하고는 공을 던져주자 얼른 물고 와서는 다시 던져 달라고 하는 하치,일년여 시간이 흘렀지만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다.그게 신기하여 역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는 파커 교수, 하지만 하치는 교수를 기차를 태워 보내고 싶지 않다.무언가 알고 있는 하치이지만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런 하치의 뜻을 파커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교수는 강의를 하기 위하여 학교로 향하고 강의도중 강단에서 그만 쓰러져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하지만 그 일을 알리 없는 하치는 오늘도 역앞에서 파커교수를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집안에서도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 같은데 파커교수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같은 시간에 역앞에 나가 그를 기다리는 하치. 하지만 교수의 아내는 교수가 죽고 하치를 딸에게 주고 집도 팔고는 그곳을 떠나 버린다.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사라진 파커 교수를 무한정 기다리는 하치, 딸의 집에서 다시 도망쳐 역 주변을 맴돌며 교수를 기다리는 녀석, 어떻게 그곳을 찾아 왔는지 모르게 제시간이 되면 교수를 기다리던 곳에서 쓸쓸히 망부석처럼 앉아 파커를 기다린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된 교수가 돌아올리 없고... 그런 시간을 무려 9년간 하치는 계속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 의해 알려지게 되고 마침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하치의 동상이 교수를 쓸쓸히 기다리던 장소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일본에서 먼저 영화화 했지만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하치 이야기' 할리우드편이라고 할 수 있다. 리처드 기어가 시나리오를 보고는 적극 참여를 했다는 것을 보면 영화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는지 알게 된다. 또한 그의 참여로 인해 영화는 더욱 완성도 높게 되었다고 하니 나의 눈물샘을 그토록 자극한 것일까. 하치와 리처드 기어는 하나가된듯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동물이 주연이라 감독과 그외 모든 사람들이 정말 극진히 동물을 대접했다고 하니 더욱 완성도 높은 영화가 나왔으리라. 그리고 이영화는 인간의 눈으로 보여지는 세상만 나온것이 아니라 '하치' 인 개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영상이 담겨 더욱 진실되다. 그들이 인간사를 본다면 어떻게 비추어질까, 카메라는 개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그리고 표정이 없을 듯한 그들의 얼굴에도 표정이 있음을,인간보다 더한 깊은 울림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하치가 파커 교수를 발견한 것일까, 파커 교수가 하치를 발견한 것일까... 파커 교수가 먼저 가고 하치가 나중에 까지 남아서 그를 그토록 잊지 못하고 십여년간의 긴 세월동안 한자리에서 그를 기다렸으니 하치가 그를 발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파커 교수는 정말 행운이다. 사람에게도 바랄 수 없는 그런 믿음을 개인 동물에게서 받는 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리처드 기어의 부드러움과 중후함이 하치와 만나 더욱 중후하면서도 부드럽게 잘 나타난 영화이다. 그를 처음 본 영화 <사관과 신사> 그 영화를 보고는 여고시절 설레임에 한동안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도 나이를 먹고 나도 이젠 그와 함께 늙어가는, 세월 속에 있다. 나이는 속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함께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 역으로 흐르지 않고 세월과 함께 하려는 그의 중후한 멋에 빠져 더욱 감동적으로 보게 된 영화이다. 더불어 인간이 아닌 동물이더도 감정이 있고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음을, 그들을 내 감정에 휘둘리며 대하지 말아야 함을 절실히 느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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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 -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Part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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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 그들의 모습은 해일까 득일까,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1



감독/ 데이빗 예이츠
출연/ 다니엘 레드클리프,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성장한 그들의 모습과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처음 해리포터가 나오고 얼마나 열광을 했던가. 아직 그 열기가 식지 않았음을 성탄절 극장을 찾고 알았지만 영화에 대한 느낌은 반 반인듯 하다. 나 역시나 십년이 된 영화에서 그 세월을 읽었듯이 조금은 식상함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야 마법과 환타지 그리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악에 대결하는 것들이 재밌게 느껴지고 그동안 다른 영화나 책에서 보여지던 것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어서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지만 그도 이젠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린 탓일까 아님 원작을 읽지 않은 무료함일까 이번 영화는 그리 재밌게 보지 못했다. 마법봉을 휘두르는 것조차 처음엔 신기하여 주문을 따라하던 이들도 모두 그들과 함께 성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상은 변하고 이와 비슷한 것에 너무 길들여진 탓일까 새로움은 없었다는 것이다. 

새로움으로 추가된것은 그들이 성장함에 따라 이젠 성인과 같은 장면들이 추가되고 그들뿐만이 아니라 집을 지키는 요정인 '도비' 들이 영화에 좀더 폭을 넓혀 등장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 말도 많았던 영화가 '마지막' 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그들도 성장을 하여 처음과 같은 맛은 떨어졌지만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기다려지긴 한다. 영화는 2편으로 이어져서인지 무언가 먹다 만 느낌에 조금더 허탈함을 안겨 주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며 딸이 옆에서 하는 말, '엄마, 영화 어땠어?' 그렇게 재밌지는 않다고 하자. 엄마가 원작을 읽지 않아서라며 마지막 편은 엄마와 함께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 또한 꼭 마지막 편을 봐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을 갖지는 않는다. 꼭 원작을 읽었다고 하여 영화가 더 맛이 나는 것은 아니다. 원작은 원작대로의 맛이 있다면 영화는 영화대로의 맛이 나름 있는 것이다. 똑같이 표현될 수는 없는 것이다.그런면에서 원작을 읽지 않았고 십년이란 긴 세월에 나른해진 내겐 영화는 환타지이 맛 보다는 환타지이면서 좀더 '인간적' 인 면으로 돌아서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으로 보여졌다.

폴리주스를 마시고 해리포터가 된 친구들, 폴리주스라는 것이 처음엔 무척 새로웠는데 그도 식상한 맛을 보여주었다. 오토바이 추격신 또한 다른 액션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었고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의 키스씬 또한 갑자기 성장한 그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이상한 반전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는데 헤리포터와 그의 친구들을 도와주는 집요정 '도비' 의 활약은 마음이 짠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해서 행복해요.'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록 '개인화' 가 더 많이 이루어진다. 모두가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개인적인 단절된 생활에 접어 들고 있어 모두가 함께 어울려서 하는 생활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 속에서 '정' 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듯 한 도비의 말과 행동은 환타지지만 어쩌면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인간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살고 싶었던 '도비' 를 통해 작가 자신이나 그외 사회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도비가 그들을 도왔다면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와 론은 개개인 한 명씩 떼어 놓고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해리포터를 도와 헤르미온느의 천재적인 머리가 있어야 하고 론의 도움 또한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 그들이 합쳐야 덤블도어의 죽음 이후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빼았긴 호그와트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고 덤블도어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성물' 을 찾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화가 이루어진 사회이지만 서로의 힘이 뭉쳐야 비로소 굴러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과연 그렇다면 '죽음의 성물' 을 그들은 찾아낼 수 있을까. 성물을 찾아내어 죽음을 먹는 자들을 물리치고 예전과 같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으며 혹은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행복하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 처음의 시간으로 돌아가듯 그들이 고군분투 하는 듯 하다. 환타지지만 선과 악의 대결이니 결과는 불보듯 뻔하겠지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혹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그런 세상을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 주어 행복했던 시간만으로도 해리포터의 영향력은 크다고 볼 수 있지만 너무 긴 세월을 이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영화를 선택하는 중에 외화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주고 뒤로 밀려난 우리영화를 보면서 씁쓸하기도 한 것을 보면 이런 영화에 열광하며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날마다 비슷한 반찬을 먹는 다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다. 어찌보면 그 반찬에 길들여지는 것 뿐이지 아닐까. 이젠 환타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것을 찾고 싶은 때가 되었다.도비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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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의 악당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겐 귀여운 이층의 악당과 팔색조 집주인 김혜수의 이층의 악당 



 

감독/ 손재곤
출연/ 한석규(창인), 김혜수(연주), 지우, 동호, 이장우(오순경),윗집아줌마(이용녀),하대표(엄기준)...

내겐 귀여운 이층의 악당 한석규, 그리고 팔색조 집주인 김혜수가 펼치는 좌충우돌 달콤 살벌한 동거기.

이 영화를 놓쳤다면 후회했을 뻔했다. 영화를 개봉후에 보려 하다가 집안에 일이 있어 미루다 겨우 막차를 타듯 보러 갔더니만 우리 부부 외에 한커플, 그나마 그들은 앞자리로 자리를 옮기고 우린 맨 뒷자리에 앉아 보았으니 극장을 통째로 전세낸듯 편하게 보게 되었다. 저녁 시간 맘껏 웃고 영화와 하나가 된 듯 편하게 보기도 했지만 둘만의 좌충우돌 동거이야기가 너무도 웃기면서 둘의 애드립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앳지녀라 할 수 있던 그녀가 중학생 딸을 둔 엄마로 나온 역할이 이젠 그녀에게도 어색하지 않음이 그녀도 세월을 빗겨가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모티비의 드라마에서도 그녀가 아들을 둔 엄마로 나온다는 것이 이제 그녀가 싱글보다는 가정주부로도 손색이 없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 어쩌면 더 편안함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그럴것 같지 않으면서 능청스럽게 '우울증환자' 역을 너무도 잘 소화해 냈기도 하지만 남편을 잃은 과부가 이층에 싱글 남자를 두면서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사건과 사고가 웃음을 주게 만들었다.

영화는 연주의 남편이 창인에게 건네주려던 '청화용문찻잔' 을 집 어딘가에 감추어 두고 그를 속였다는 것이다. 둘이 찻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창인은 갑자기 닥친 경찰에 끌려가고 잘 피했다고 창문 밖으로 나온 연주남편은 그만 낡은 실외기를 밟고 서 있다가 떨어져 죽고 만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여 자신의 젊음도 펴보지 못한 연주는 이층단독주택에서 자신의 외모에 강한 컴플렉스를 가진 사춘기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사이는 물과 불처럼 만나면 늘 불꽃이 인다.그런 사이에 창인은 연주 남편이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은 20억이 나가는 '청화용문찻잔' 찾으러 소설가라 자신을 숨기고 이층에 단기세입자가 된다. 남편이 죽으면서 연주에게 남기고 간 것은 사춘기 딸과 대출이 아직도 많이 남은 단독주택과 그리고 엔틱가게 하나 뿐이다. 그녀는 우울증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약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층에 세를 준것도 돈이 급했기 때문이다. 창인은 찻잔을 찾는 일이 금방 마무리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집 뒤의 빌라 윗층엔 이상한 아줌마가 살고 있다. 늘 베란다에서 그들의 집을 훔쳐본다. 세입자가 된 창인은 늘 연주가 살고 있는 아래층을 염탐하는데  그 이상한 아줌마는 그들을 염탐하는 것이 일상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서로를 멀리서 지켜보듯 하기도 한다. 연주를 어리버리 연하인 오순경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기도 하지만 윗층의 아줌마는 연주네를 상아는 잘생긴 현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꿈' 이 있다. 연주는 돈벼락과 같은 돈을 갈망하고 하대표는 찻잔에 목을 메고 창인 또한 20억의 찾잔을 찾으려 하는 것은 '돈' 때문이다. 오순경은 연주씨와 어떻게 이루지길 바라고 윗층의 이상한 아줌마는 '할머니' 가 아닌 젊음이 영원하길 바라듯 '아줌마' 이길 바라며 상아는 자신의 외모를 고칠 수 있는 성형수술에 대한 비용이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이루어질 수 있거나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에 대한 환상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는 그런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재벌2세인 하대표는 아버지의 돈에 손을 대었다가 덜미가 잡히듯 하게 생겨서 눈가림 할 수 있는 '청화용문찻잔' 이 필요하다. 청화용문찻잔이라고 하니 용이 들어갔으니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면 '임금' 이 사용한 찻잔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그렇게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온지도 모른다. 그 찻잔이 나타나기만 하면 벌써 몇 명의 '꿈' 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찻잔은 쉽게 그들의 눈에 나타나지 않는다. 우울증이 심한 연주는 정신과의사를 찾아가지만 그의 눈빛조차 맘에 들지 않아 속사포로 그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쏟아낸다. 남자의사였던 그는 여자의사의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그런 그녀의 우울증은 이층의 남자와 육체적 교감을 나누게 되고 그러므로 일층에 자주 나타나는 창인이 맘에 안드는 성아는 학교에서 왕따로 수업을 거부하고 집에 온다. 그런 성아를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한 창인의 절규, 그에겐 일터인 일층이 비어 있어야만 연주도 출근을 해야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것. 하지만 그녀들은 그의 속도 모르고 그런 그를 속타고 애타게 만든다. 급기야 죽으려는 맘까지 가지게 되는 성아를 살려내지만 강간범으로 오해나 받는 창인은 급기야 이 집의 비밀에 대하여 그녀들에게 털어 놓는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찻잔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럼 어디에 숨겨 놓았단 말이야.....

하대표의 눈을 돌리기 위해 술수를 쓰는 창인, 하지만 연주는 그를 따돌려야만 혼자서 찻잔을 독식할 수 있다. 그가 길을 가다 우연히 검문에 잡힌 것처럼 그를 경찰에 넘긴다.그리고 이제부터 모녀는 집을 쑥대밭을 만들면서 찻잔을 찾기 시작한다. 성아는 그 찻잔만 찾는다면 성형으로 얼굴을 수정할 수 있고 연주는 지긋지긋한 단독이 아닌 멋진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 있다. 영차 영차..여기저기 집을 부수며 찾잔을 찾는 그녀들 '청화용문찻잔'을 찾을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무엇이 잘되고 잘못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연주는 우울증이 치료가 되고 성아는 이쁜 얼굴로 거듭날 수 있기 보다는 이제는 자신의 외모를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창인은... 그는 그녀들이 새로 이사한 멋진 아파트에 들어오지만 그녀가 걸렸던 불면증, 찻잔을 가지지 못한 것에서 오는 불면증이 그에게 덮친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남자를 거뜬히 요리할 수 있는 연주가 되어 있다. 예전이 이층집주인이 아닌 멋진 여성으로 거듭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역시나 한석규와 김혜수의 연기다. 그 둘의 감칠맛 나는 연기에 웃음폭발이다. 영화는 밀실트릭이기 때문에 더 탄탄하다. 추리소설이나 그외 밀실소설들을 보면 범위가 넓은 것보다는 더 탄탄한데 이 영화 또한 그렇다. 밀실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달콤 살벌한 연애아닌 연애도 그렇고 찻잔을 놓고 벌이는 추격전이나 뭔가 크진 않지만 꽉 찬 듯한 느낌을 준다. 달콤하게 제비처럼 집주인을 녹이려는 창인의 꾀에 넘어가는 듯 하다가 안 넘어가는 살벌한 우울증을 앓는 집주인 연주는 이층 계단을 통하여 둘의 사이가 연결 되는 듯 하다가 남편이 남겨준 유품이나 마찬가지인 물건들이 가득한 '지하실' 에서 부딪히면 그녀에게 기죽고 만다.그래서 꼭 그 곳에서만 갇히고 마는 창인은 불쌍하기 이를데 없다. 창인이 쏟아내는 말들도 재밌지만 연주가 쏟아내는 말들과 연기는 반짝반짝이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 처 먹으면 함부로 조언하고 충고해도 된다는 무슨 자격증 같은게 발급되나봐. 뭘봐 아줌마가 담배 피는것 처음보니..' 하며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녀의 아줌마끼와 깡은 정말 매력만점이다. 거기에 그녀만이 찻잔을 찾을 수 있고 그녀의 손에 찻잔이 주어져 있다면 그녀를 가만히 놔두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구어삶아 놓으면 다시금 원점처럼, '선생인 어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 주세요.' 정말 엇갈리면서 교묘하게 얽혀들어가는 그들의 말과 연기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듯 하면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밀실에서의 재미를 톡톡히 누릴 수 있게 하는 재미 있는 영화이다. 타짜의 장마담도 잘 어울렸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의 연주역이 김혜수 그녀에게 더욱 잘 들어맞는 역은 아니었나 싶다. 세월과 함께 그녀를 읽을 수 있고 세월에 편승한 듯한 그녀의 물오른 연기가 좋았던 이층의 악당, 어쩌면 현대 우리네 가정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기도 하고 '꿈' 을 향해 자신을 버리며 마구 달려드는 현대인들 같기도 하며서 해피엔딩으로 처리한 것을 보면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면 언젠가는 '해뜰날' 이 온다는 희망적인 메세지가 담겨 있는 듯 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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