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시대 법학자 조국
책의 전반부는 ‘좌절‘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좌절의 시대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좌절하고, 대학생들은 등록금 때문에 좌절하고, 고등학교 학생들은 모의고사 성적 때문에 좌절하고, 중학생들은 물고문, 학교폭력 때문에 좌절하고, 젊은 엄마는 옆집 아이가 벌써 영어학원을 다닌다는 말에 좌절하고, 아빠는 술 먹자는 상사 때문에 좌절한다. 일반 시민들은 정부 여당 10. 26 부정선거 때문에 좌절하고, 주부들은 물가 이야기에 좌절한다.
현정부의 ‘소통 부재’, ‘몰상식’을 비판하시는 조국 교수님은 “우리 시대의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다. 특별히,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제안이 기억에 남는다.
단기간 내로 비정규직 문제는 한 가지 원칙을 적용해야 됩니다. 바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입니다. 똑같은 노동을 하면 그 사람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임금을 같이 주라는 얘깁니다. 현대자동차에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파업의 이유는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 한쪽은 다른 한쪽보다 반밖에 못 받습니다. 이게 지금 전국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47p)
2011년 리뷰 1번 책이 "진보 집권 플랜“이었고, 9월에는 조국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연예인 포스라고나 할까.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듯한 분이 "법"과 "법치", "진보"와 "집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광경 중의 하나였다. 2011년 나의 "명장면" 중 "명장면"이다.
추천도서 : 말랑말랑한 힘(함민복), 밥값(정호승), 사기, 그리스인 조르바
2. 치유의 심리학자 정혜신
심리학자, 의사 정혜신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는데, 그 글을 직접 읽으니,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 부부는 결국 스스로 견뎌 내고 버텨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너를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지만 네 행동과 상관없이 우리는 너를 한결같이 지지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한 10여 년을 그렇게 한 거 같아요. 서너 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그랬으니까요. 그렇게 너무 몰두하지도 않고 너무 개입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다만 “우리가 보기에는 네 행동이 이렇게 보인다, 엄마의 생각과 마음은 이렇다”라는 표시만 던져 놓았습니다. (72p)
내 아이가 나와 비슷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는데 기본적인 자세는 비난하지 않고 항상 포용하고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저렇게 생각하네.” 정도로 말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아이는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통하게 됩니다. (73p)
나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중 하나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남자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부럽지?),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만 한정하겠다.(고맙지?)
나는 첫아이를 낳은 그 다음날, 자고 있는 아이의 곧은 콧날을 들여다 볼 때 느꼈던 그 감동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낳았지만, 내가 낳았는데도, 내가 낳았음에도, 내가 몸소, 직접 낳았는데,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쁜 아기가 바로 내 아기라니... 하지만, 핑크빛 나날은 길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엄마가 되었다. 유아의 기본적인 성향도 모르고 있었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이고 푸근한 사랑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작은 실수도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였고, 아이의 선택을 믿지 못 하는 엄마였다.
둘째를 낳고, 나는 나이가 먹었다. 둘째는 첫째와 다른 기쁨을 부모에게 선사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첫째가 “신기함”이라면, 둘째는 “귀여움”이라고 할까. 첫째가 했던 똑같은 행동을 둘째가 하는데도,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첫째를 봤다. 첫째 아이는 벌써 다섯 살, 여섯 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첫째에게 미안했다. 그 애를 기다려주지 못했던 시간들, 그 애의 결정을 존중해 주지 못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지금부터라도 잘해 주자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물론 지금 나는 “정혜신”씨처럼 좋은 엄마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점점 자라며, 자신의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게 될 때,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아이들을 지지하고, 격려해 준다면, 적어도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는 나를 믿어주는 엄마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볼 때 저는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영향의 총합보다 더 많은 영향을 부모로부터 받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부모가 이렇게 바라보면 세상도 그렇게 바라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부모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세상의 어떤 태클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봅니다. (74p)
나 자신이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준다면, 아이는 세상의 위협, 세상의 태클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3. 타워크레인의 노동운동가 김진숙
저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대중의 역동성을 살려 가는 일, 어떤 구조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 가는 일, 주변에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함께 나아가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8p)
이 강연은 크레인에 올라가시기 전에 이루어진 듯 하다. 얼마나 용감하신지, 얼마나 긍정적이신지 새삼 존경스럽다.
4. 예술가의 좌절 강풀
저는 이렇게 오늘도 좌절을 겪으면서 또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라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나중에라도 좌절을 겪게 되면 제가 했던 두 가지 이야기를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민이 있을 때 그 해결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고, 그것을 모르는 척하느라고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꼭 정공법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그걸 선택해 봐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방법으로 10년 동안 만화가로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 쓸 만한 방법일 것입니다. (153p)
만화를 잘 못 그리는(^^), 만화를 너무 늦게 그리는 만화가를 본 적이 있는가. 여기에 있다. 좌절 전문 만화가 강풀. 강풀씨의 솔직하고, 만화같은 이야기에 맘껏 웃으면서도,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아,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사람이 이렇게 강할 수 있구나. 이렇게 끈질길 수 있구나. 스물 네 시간 중 스물 한 시간 앉아서 작업을 한다는 만화가. 그래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만화가. 아... 하고 싶은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구나. 너무나 나태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계속 부끄러웠다.
5. 철학하는 즐거움 강신주
당장 쓸모가 없어 보여도 우리가 공부하고 책 읽고 감동받아 놓은 걸 하나하나 저장해 놓는 건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이 우리를 보여 줍니다. 모든 것은 정확한 문맥에 놓여야만 제대로 음미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색깔을 가진 천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붉은 천입니다. 분명 붉은 천은 루비를 제대로 볼 때는 장애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붉은 천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붉은 천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투명한 보석을 보는 데는 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4p)
아, 나는 이제야 만났다. 강신주를.
철학뿐만 아니라 시에서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해야만 하는 나 자신, ‘나의 온몸’입니다. 며느리의 몸이 아니라 바로 나, 절대적인 나입니다.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여러분 자신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올해 핀 벚꽃은 작년의 핀 벚꽃이 아닙니다. 나는 여자고 나는 며느리고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겪어야 될 것, 이겨야 될 것, 행복해야 될 것을 여러분이 찾지 않으면 시어머니가 주시지 않습니다. (188p)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나는 책을 읽다가 놀라 책장을 덮었다. 아, 강신주가 직접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내가 찾지 않으면, 내가 행복해야 될 것을 시어머니가 주시지 않는다. 나를 여자라는 끈, 며느리라는 끈으로 묶어두지 말라는 이야기, 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이야기를 철학자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니, 머리가 띵하는 충격에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그래, 나는 누구보다도 나다. 나는 나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다. 그래서, 내 행복은 내가 찾아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인 내가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