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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 뇌과학이 알려준 아이에 대한 새로운 생각
신성욱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6월
평점 :
엘리베이터를 탄다. 젊은 아빠가 안고 있는 아이(딸이라 예상되지만 아직은 아들 같은 헤어스타일의 귀여운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마주보며 웃는다. 아이는 잠시 자기 아빠를 쳐다보다가 다시 나를 쳐다본다. 눈을 맞추고 미소짓는다. 문이 열리고 젊은 아빠는 내리려고 한다. 아이에게 “잘 가!”라고 말한다. 아이는 아직 “네, 안녕히 가세요.”를 말하지 못하기에 젊은 아빠가 대신 답한다. “네, 안녕히 가세요.”
아이를 낳은 후에 부모는 모든 일에 전문가가 되어 아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말로만 하는 최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최선이다. 최고의 교육, 친환경 유기농 밥상,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은 아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부모들이 아이를 어떻게 망쳤는가에 대한 보고서이고, 잘못 알려진 뇌과학이 상업적 용도로만 사용될 때의 폐해에 대한 고발이다.
하이퍼렉시아는 과잉언어증이다. 선천적인 자폐아들이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의 일종이다. 하지만, ‘독서 영재’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 중의 상당 수가 하이퍼렉시아의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충격적이다. 이른 시기의 과도한 조기 교육, 문자 교육이 아이들에게 심각한 정신 건강상의 문제, 즉 뇌 발달의 이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19쪽)
엄마 뱃속에서부터 영어를 듣고 자란 영어 영재 진우(가명)가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만 11세 때부터였다. 진우는 부쩍 학교 생활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고, 친구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습 부담이 과중해진 탓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모들은 아이의 무기력 증상에 병원을 찾게 되었다. 16개 항목에 이르는 포괄적 평가와 PET라 불리는 뇌 영상 장비를 이용한 대뇌변연계 부위의 촬영 결과,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저핵 부분에서 심각한 이상이 발견되었다. 대뇌변연계의 손상에 대해 연대 강남세브란스 병원 신의진 교수는 “과도한 스트레스, 즉 과도한 자극, 문자 학습 때문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결과 뇌에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이 코르티솔이 신경 세포의 발달을 억제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41쪽)
이는 “세 살 무렵이면 뇌의 중요한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잘못된 정보, “무엇인가를 배우는 데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가져온 결과다. 부모들은 이전의 뇌과학의 발견 중 일부분만을 가지고서 철저하게 상업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 프로그램에 의지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를 위해 더 어린 나이에, 더 많은 양의 교육을 강요하고 아낌없이 교육비를 지출한다. 경제학에는 조작된 욕망 혹은 수요(manufactured demand)라는 개념이 있는데, 부모들의 불안을 먹고 성장하는 교육시장 역시 그렇다.
부모들이 잘못된 정보에 흔들리는 원인으로 저자는 교육섹션을 통해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신문을 지적한다. 또한 이미 수십 년간 견고하게 형성된 교육 시장이 부모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더 이상 공부하는 곳이 아니며, 공부하는 곳은 학원이다. 학기마다 세련되게 포장되고 업그레이드되는 선행학습 상품이 고객들을 유혹한다. 부모들의 불안감을 끊임없이 자극해 더 깊고, 더 강력한 사교육 시장의 수렁에 빠뜨린다.
후반부에서 가장 주요한 부분은 ‘인간의 뇌는 평생에 걸쳐 발달한다’는 주장이다. 세상이 단 한 순간도 똑같지 않듯이 뇌는 무한한 변화의 세계이며, 하늘보다 더 넓은 인간의 뇌는 아직도 우리에게 신비의 세계로 남아있다. 인간의 뇌가 세 살 무렵에 완성된다는 ‘3세 신화’는 시냅스의 밀도라는 측면에서는 사실이지만, 시냅스의 강화나 약화라는 재배열 과정, 패턴화, 네트워크 형성 등 더 중요한 문제는 간과한 것이다. 시냅스 형성은 후천적 요인 즉,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을 경험하는지, 어떤 자극을 받는지에 따라 크게 좌우되고, 이러한 과정은 평생을 두고 지속된다.
‘영어 뇌 만들기’ 프로그램이란 뇌가 형성되는 영아기부터 동시에 두 가지 언어를 익히면서 동일한 뇌 부위를 사용하는 완벽한 이중 언어 구사자로 만들기 위한 것인데, ‘발음’ 문제를 제외하고는 언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 가설이 여전히 논쟁 중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믿음이 일반인들에게 정보 차원을 넘어 신념으로 굳어져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저자는 인간과 다른 존재를 구별하는 가장 확고한 기준으로 인간만이 가진 특기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바로 ‘눈 맞춤, 응시, 지극히 바라보기’이다. 저자는 ‘바라보기’를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언어라고 말한다. 인간의 뇌에 지금과 같은 구두 언어 시스템이 깃들게 된 것이 불과 3만 년을 전후한 시기임을 고려할 때, 구두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 인류의 조상들은 눈빛과 표정,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며, 이 중에서 지극한 눈빛이 주는 위로와 연민, 기쁨과 흥분이 인간이 인간과 나눌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감동이라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응시(eye contact)를 통해 인류는 나 아닌 다른 존재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발현되었다는 주장이다.
일본 그림책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후쿠인칸 쇼텐’의 설립자이자 동화 작가인 마쓰이 다다시 회장의 어머니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야기 들려주는 사람, 이야기 들려주는 어머니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 갈망하는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뇌는 이런 사람, 이런 어머니 곁에서 가능하다.
“어머니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분이었어요. 어머니는 제게 늘 이야기를 들려 주셨지요. 중학생이 돼서 덩치가 커다랗게 자랐는데도 매일 저를 품에 안고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어떤 날은 시장에서 두부를 싸게 사서 기쁘다는 이야기, 어떤 날은 아버지와 다투고 속상하다는 이야기, 또 어떤 날은 책에서 읽었던 감명 깊은 구절들…….” (255쪽)
정보를 설명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기계적인 일이라 기계조차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중요한 일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어린이를 인간으로서 대하는 일이며, 그 일은 생각보다는 쉽고 간단하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다. 말하고, 듣는다. 사랑한다 말하고, 그리고 안아준다.
모든 과학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은 뇌 연구자들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은 우리 할머니들이 수세대 전부터 들려주셨던 말씀입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라, 아이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라.’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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