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형도 <엄마 걱정>
아롱이 국어 숙제가 ‘좋아하는 시’ 써오기라는 걸, 밤 9시가 넘어서야 알게 됐다. 아이를 둘이나 키웠는데 아이가 읽을 만한 동시집이 한 권도 없다는데 생각이 도달하기까지 2초가 걸렸다. 아니, 아니야. 한 권은 있겠지. 『콩, 너는 죽었다』 이 동시집, 집에 있지 않나?를 또 3초간 생각했다. 있다손 치더라도 찾을 수 없음이 확실하다. 아롱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라도 적어갈래? <엄마 생각>. 아주 짧아. 이거 봐. 이거. 5학년 어린이에게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내민다. 이게 뭐야? 길어~~ 불평도 잠시.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는 삐뚤빼뚤 기형도의 <엄마 걱정>을 글쓰기 노트에 베낀다. 제목은 <엄마 생각>이 아니라 <엄마 걱정>이었다.
2. 김혜순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김혜순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내 발목엔 낳지 않은 아가들의/ 수백 개 손톱 같은 비늘들이 따갑게 박혀 있네/ 평생 떨어지지 않네’에서 혼자 화들짝 놀란다. 인어가 여자라서 해명도 못 하고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진 건지, 여자는 결국 바다에 매여 있어 땅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인어일 수 밖에 없는지... 왜 그런건지.
3. 싱고 <언니들이 떠난 뒤>
우리집은 남동생과 나, 이렇게 둘이라 형제자매가 많은 집 이야기에는 항상 귀가 쫑긋하게 된다. 1년 만에 정모를 갖는 내일 만나는 친구, 후배들은 4자매의 막내딸이거나 독수리 오남매의 막내딸이거나 5남 1녀의 막내딸이다. 아, 미국에 있는 친구도 4자매의 둘째딸이다. 한 후배랑 나만 남매다. 단촐하기 그지없다. 네명의 언니들과 쪽밤처럼 붙어서 잤다,에 자꾸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