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을 읽었을 때는 책의 내용이 페미니즘과 닿아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만 이제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아이 키우는 일을 전담하기로 한,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정했던 내게 찾아왔던 이유 모를 무력감과 암울함이 내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3 9월의 일이다.

 


다음날 아침이 지나면 집은 다시 거짓말처럼 어질러져 있다. 벽에 기대 앉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다. 어디부터 또 손을 댈까. 아기는 자기만 보아달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옆에서 머리를 바닥에 박아댄다. 집이 나에게도 쉬는 곳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나는 집을 나가서 쉬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30)  

 





<빨래하는 페미니즘>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구체적으로 눈뜨게 해주었던 책이다. ‘여성으로서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아왔던 저자가 결혼과 육아를 통해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이런 갈등과 의문을 페미니즘 고전 읽기를 통해 분석해 가는 책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된 후에야 비로소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것이 적어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슴 터질 듯한 사랑도 느꼈지만 미칠 듯한 좌절감도 맛보았다. 그전까지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새로운 감정이었다. 백만 가지 방식으로 아이와 연결된 어머니가 되고 나서야 페미니즘의 이상향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저버릴 수도 없었다. 아이를 욕조 속에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빨래하는 페미니즘>, 20)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페미니즘이라는 울화통 터지는 주제에 대한 유쾌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맨스플레인은 2010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단어일 수 있겠으나, 이러한 행태는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 오히려 놀라웠던 것은 미국 가정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 달달한 사랑 고백만을 듣고 보았기에, 미국 기혼 여성 부상 원인 1위가 교통사고가 아니라 가정 폭력 때문이라는 통계는 책을 읽던 그 때도 지금에도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 나라에서는 9초마다 한번씩 여자가 구타당한다. 확실히 짚어두는데, 9분이 아니라 9초다. 배우자의 폭행은 미국 여성의 부상 원인 중 첫 번째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49)>

 








읽어야하고 읽으려 했지만 아직 읽어내지 못한 책은 <2의 성>이고, 책이 절판되어 오늘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려는 책이 <여성의 신비>

 













가까운 이들에게 페미니즘 입문서를 추천하게 된다면, 아주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와 자랑스러운 그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그리고 페미니즘 말싸움 실전편, 부제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에 빛나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권하고 싶다.











 




그 때 남성은 ‘내가 보기엔 아닌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동시에 가장 의미가 없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아래라 생겨나는 불평등이라는 주제에서, 남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채로는 영영 당사자가 될 수 없으니까요. 본인이 직접 느낄 수 없으니, 일부러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은 한 혼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볼 수 밖에 없는 문제는 자신은 볼 수 없다고 자기 입으로 밝혔음에도, 공신력을 얻는 쪽은 상대입니다. 내 경험의 정당성마저 남성이 결정하는 겁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27)

 


이런 책이 나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이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한 페미니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으로 새 제목, 새 표지로 다시 나왔다. 반가운 일이다. 만화로 페미니즘을 만나고 싶다면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악어 프로젝트>마스다 미리 여자 만화 시리즈중 하나인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도 좋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이 부제인 <여자다운 게 어딨어>는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차별 받을 때, 그것이 선택의 문제라는 주장에 이렇게 답한다.



만약 당신이 행위주체가 우선이라고 열렬히 주장한다면, 즉 개인이 그가 하는 행동을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또한 당신이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문제를 그들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행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믿기 때문이다. 보수적·자본주의적 세계관은 개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이처럼 행위주체에 무게를 싣는 경향이 있다. ...

반대로 구조가 우선이라고 열렬히 주장한다면, 개인의 행동이 언제나 사회적 상황의 결과라고 믿는다면 개인의 성취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할 수 있다. 진보적·사회주의적 세계관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구조를 우선시한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 73)



 


<혁명하는 여자들>에는 여성 작가 15명의 페미니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늑대여자>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아름다우며 가슴 한 켠을 서늘하게 하는 작품이다.



 

어떻게 날 떠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내가 그간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상황은 계속 변해왔어.” 넌 그에게 말했다. 목이 따가웠다. “그 변화가 문제야. 조너선……”

네가 날 이렇게 상처 주려 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난 믿기지가 않……” (<혁명하는 여자들>, 62)

 






여성 집약적, 모성 집약적 육아에 대한 언급은 의외의 책에서 발견했는데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가 바로 그 책이다.


 


서구사회의 부유층 특유의 모성 집약적 육아intensive mothering’ 문화는 내가 연구한 엄마들에게 확실히 재앙이었다. 이 용어를 만든 사회학자 새런 헤이즈Sharon Hays는 모성 집약적 육아를 자녀 양육에 엄마가 어마어마한 양의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소비하게 (의무화)하는 성편향적 육아방식이라 정의한다. 끊임없는 감정적 소모를 감당하고, 아이의 심리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꾸준히 활동을 제공하고, 아이의 지능발달촉진하는 것까지 전부 다 엄마의 역할로 간주되며, 그 모든 역할에 철저하지 못하면, 심지어 자유방임하기만 해도 엄마로서 태만하다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라고 헤이즈는 전한다. (265)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 책의 부제는 소녀들을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이고, 12명의 여성학자,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칼럼니스트, 기자등의 글을 실었다. 공동체 생활, 모성, 외모 지상주의, 대중문화, 온라인과 여성혐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성 정체성, 몸과 성, 노동, 과학, 환경에 대한 글이 실려있다.

 

가슴에 울렸던 글은 모성에 대한 글이었다. 모성은 신화도 아니지만, 아예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아이와 일, 개인으로서의 와 어머니로서의 가 갈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녀의 주장은 큰 위로가 되었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직업적 성취 사이에서 자아가 찢기면서 날마다 울었습니다.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내가 내 경력을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고통받을 때, 남편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니까요.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데, 저는 만신창이가 되고, 남편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은 채 어엿한 4인 가구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 모성애로부터 막대한 수혜를 입었습니다. 남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토록 강력한 권력이라는 것을 저는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모성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서 아이를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도 괜찮으면 좋으련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엄마가 경력 단절 여성이 되는 이유이고, 절차입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59)

 

그녀는 엄마가 되기 위해 혹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글을 읽어달라고 했다. 모성의 신화에 속아 모성 없는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부탁했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끈끈한 모성애 역시 부인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의 해결책은 선택을 거부하는 것이다. 남성도 아빠로서 엄마와 동등한 육아와 가사의 부담을 지도록 사회, 문화가 강제하고(60), 남녀가 함께 가정과 직장을 모두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모성과 부성이 부모애라는 이름으로 동등해지도록 하자는 그녀의 주장. 팍팍한 현실을 볼 때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제 메타젠더로 본 세상’ <낯선 시선>의 첫 장을 펼친다. 좋아하는 ㅎ님이 보내주신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 야금야금 한 줄 한 줄 아껴가며 읽을 건인지, 보내주신 간식 먹어치우듯 단숨에 몰아쳐 읽을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 했다.





 






월요일이다. 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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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4-03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간식도 어마어마하네요. 저보다 먼저 이 책 시작하시겠어요. 얼른 읽고 후기 남겨주세요! >.<

단발머리 2017-04-03 12:25   좋아요 1 | URL
네 명이 나눠먹고 남을만큼 어마어마했어요 ㅎㅎㅎㅎ 그날 밤이 생각나네요.
아.... 과자로 인심 쓰며 난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른 읽을까봐요~~
아끼지 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공개 2017-04-0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저도 페미니즘을 공부해 봐야겠어요. 이 어마어마한 책들을 읽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
소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7-04-04 12:56   좋아요 0 | URL
몇년 전이던가요. 알라딘 서재에 페미니즘 공부줄이 유행해서요. ㅎㅎㅎㅎ
저도 얼떨결에 줄 서기는 했는데, 공부하는 정도는 아니구요.
요즘에 워낙 페미니즘 신간들이 다양하게 많이 나오고 있어서 다 따라 읽기도 버겁기는 한데,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정말 재미있네요.
새로운 시각,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구요.
함정이라면 알게 될수록 더 아리송하다는 건데요. ㅎㅎㅎㅎㅎㅎㅎ
jsshin님도 같이 해요~~ 페미니즘 알아가기^^

해피북 2017-04-0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정말 어마어마한 책을 소개해주셔서 저도 기회가 될때 야금야금 읽어가야겠어요 ㅎ 그런데 제가 이제까지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 페미니즘하면 워킹맘을 위주로 했던 책들이라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이 컸거든요. 모든 여성을 근간으로 아우를수 있는 책이 읽고 싶었는데 단발머리님이 소개해주신 책들이 참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요일의 페미니즘이란 제목도 참 멋졌고요. 그리고 단발머리림의 고민이 아직 아이는 없는 저지만 깊은 공감이 되었어요^^

단발머리 2017-04-10 16:15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여성의 신비>는 전업주부들의 무력감과 소외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연구한 책이예요.
지금 재미있게 신나게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위의 책들은 제가 읽은 책들이구요. 사실 요즘 페미니즘 책들이 아주 많이 나오고 있는데, 다 읽지는 못하고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일단 제목이 흥미로운 책들부터 읽어가고 있어요.

해피북님도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면 참 좋을 것 같아요. ^^